기업나라
[제 196호] 2020년 04월 07일 화요일

 
기회는 잡고 신뢰는 놓치지 마라
피케이텍시스템㈜ 채권병 대표

“한국의 제조업은 결코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희망 있다”고 말하는 피케이텍시스템㈜ 채권병 대표. 무역업으로 사업을 시작해 제조업으로 10년 동안 자동차 및 전자부품 세 가지를 국산화한 그는 2000년대 들어 회사를 전자제품 힌지 전문 생산기업으로 자리매김시킨 데 이어 모듈화를 구축해 가전 완제품 OEM 제조에도 도전장을 낸 경영인. 위기가 올 때마다 남다른 상황 대처 능력으로 변신을 꾀하며 30여 년의 성장 역사를 써온 그의 경영 노하우는 역시 달랐다. 부천시 원미구에 있는 피케이텍시스템 본사에서 만난 채 대표의 이야기에는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포인트가 살아 있었다.

채권병 대표

국산화 타이밍을 제대로 잡았다
“지금까지 30년 동안 기업을 경영하면서 제가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부품 세 가지를 국산화한 겁니다.”
채권병 대표는 젊은 시절부터 사업을 키워오느라 변변한 취미 하나도 갖지 못했지만, 이것만은 누구 앞에서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CEO다. 실제로 1990년대 수입으로 일관해오던 자동차 호스밴드의 ‘원터치 클립’, 그리고 프레스와 코일스프링 M/C의 장점을 혼합해 ‘멀티포밍’, 노트북 및 PC의 힌지(hinge)를 직접 개발했다. 그는 뛰어난 기술을 갖춘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걸까? 아니었다. 본래 주특기는 마케팅이었다.
피케이텍시스템㈜은 현재 힌지 대표 기업으로 통한다. 관련 특허만도 137건에 달하고, 사업다각화 이전이었던 10년 전만해도 총 매출 100억 원을 힌지 하나로만 올렸을 정도다. 산업공학과 출신이지만 엔지니어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가 창업 후 10년 동안 이 세 가지를 국산화했다는 것은 궁금증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사업에 첫발을 내딛은 것은 1991년. 그때 나이 서른한 살로, 1인 창업자였다. 일본계 회사 한국지사에서 무역 담당으로 4년정도 근무한 게 직장생활의 전부였다.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성격인 데다 도전에 두려움이 없던 그는 일찌감치 직장에서의 승진보다는 자기 사업을 택했다.
“그때는 겁도 없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뛰어들었죠. 사무실도 없었어요. 신혼 초 전셋집에서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무역업으로 시작했습니다. 사무실 주소가 집으로 돼 있으니까 유령회사인 줄 알고 조사까지 나오더군요.”
남들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부품 무역업을 하면서 제조 아이템을 찾기로 했다. 국내 자동차, 전자 대기업들이 한참 성장의 발판을 다지던 시기였다. 기술력 역시 뒤떨어져 부품의 다수를 수입해오던 때였다. 그는 일어에 능숙했고, 영어도 기본은 되는 실력이었기에 부품 수입과 동시에 제조사와 손을 잡고 부품개발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1994년 처음으로 특허출원과 함께 자동차 원터치 클립을 국산화했다. 일본 제품에 비해 품질은 뒤떨어지지 않고 가격은 저렴하니 경쟁력이 있었다. 이어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멀티포밍도 국산화했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사업이 제법 기반을 다지는가 싶었다. 1997년 들어서면서 채 대표는 뭔가 이상한 조짐을 느꼈다. 대기업들의 제품 구매 빈도가 떨어지면서 환율이 오르고 보이지 않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IMF의 전조였다. 외환위기 속에 다급해진 컴퓨터 업체들은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했던 힌지의 국산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환율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폭등하고 있었다.
기회는 이때다 싶었다. 수입 거래처로서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에도 수출을 하던 대만 기업에 지식재산 기술사용료 지급 계약을 체결하고 직접 제조에 들어갔다. 당시 컴퓨터를 생산하던 모든 대기업들에게 디스크타입, 컬러링타입, 캠타입 힌지를 공급했다. 이것이 피케이텍시스템을 힌지의 강자로 탄생시킨 계기가 됐다.
이어 2000년도엔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힌지 전문기업이 됐다. 자연스럽게 대기업과 거래하면서 기업부설연구소 설립과 함께 R&D에 집중했고, 벤처기업이자 부품소재 전문기업으로 인정받으면서 도시바, 파나소닉, 샤프 등의 글로벌 대기업에도 납품했다.
채 대표는 말한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듯이 사업도 제때를 만나야 합니다. 국산화를 일군 것은 과감하게 개발에 뛰어든 저의 도전과 노력도 중요했지만, 세상이 그걸 원하고 있었기에 상품이 된 거죠.”

피케이텍시스템㈜ 제작 부품힌지는 가공정밀도가 기술의 관건으로 노트북, 냉장고, 에어컨 등 전자제품에서 제품 가치를 극대화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피케이텍시스템㈜은 힌지 단품으로 전자 대기업들과의 협력관계를 구축한 후 사출, 표면처리, 조립 모듈화로 기업 경쟁력을 키웠다.

신뢰는 국경이 없는 최고의 달란트다
지금이야 중국의 기술 따라잡기로 인해 힌지 단품만으로는 시장경쟁력이 약해졌지만, 2000년대 들어 힌지는 한동안 전자제품에서 나름의 막강한 파워를 지닌 부품이었다. 1990년대 후반 피케이텍시스템은 힌지를 수입해오던 외국의 총판회사였다. 그 후 직접 힌지를 제조하겠다고 나섰는데, 대만 업체는 선뜻 기술이전을 시켜줬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채 대표는 그 시절 일화를 풀어놓는다.
“대만 회사 측에 말했더니, 두말 안 하고 오케이 하던데요. 그래서 우리 직원들을 한 달씩 그곳에 보내 기술을 배우게 했어요. 당시 설비를 갖추려면 자금이 필요했는데, 그것도 일부분 도와주더군요. 단지 거래처였을 뿐인데 말이죠.”
사실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린 데에는 채 대표만의 남다른 비즈니스 능력과 그로 인해 형성된 거래처와의 신뢰가 숨어 있었다. 무역업 초기 일본의 거래처는 그가 창업 전에 근무했던 회사였다. 창업을 하자마자 일본 회사 관계자들이 도와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을 정도다. 그 때문에 제품 수입은 물론이고 국산화도 한결 수월했다. 힌지 기술을 가져온 대만 회사 또한 첫 만남은 일본 거래처가 직접 소개해준 덕에 쉽게 거래가 이루어졌다.
“뒤늦게 알게 된 건데, 일본계 회사에 근무하던 시절에 일본 직원들 사이에서 제 닉네임이 ‘야간대생’이었답니다. 제가 낮에는 물론이고 밤이 되면 눈이 더 반짝거릴 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비쳐진 겁니다. 그들이 국내 출장을 오면 낮에는 상사들 아래서 업무지원을 하고 저녁에는 식사, 숙소, 쇼핑 가이드 역할을 했는데, 제가 너무 즐겁게 잘하더라는 거죠. 저야 직원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재학 당시 외국어 하나라도 배워놓자는 마음으로 일본어를 독학한 것은 그야말로 잘한 일이었다. 일본계 회사에 입사하고 보니 일본어가 요긴하게 쓰인 것이다. 게다가 그는 ‘스마일맨’으로 통할 만큼 매사에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하고, 사교적인 성격이다 보니 일찌감치 일본 기업 관계자들에게 신뢰를 쌓아놓았다.
그는 자신의 비즈니스 테크닉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내가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지 않고 내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신뢰를 쌓고 상대와 협업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마케터 출신으로서 제조업에 빠르게 접근하고 또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한 노하우가 바로 그것이었다.

철저한 사전준비 후 협상에 임했다
채권병 대표 30여 년째 기업을 이끌어온 채 대표는 베테랑 CEO다. 이런 채 대표가 최근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교해 신사업을 준비 중인 아들에게 잔소리처럼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능력 있는 CEO가 되려면 가장 먼저 자기관리에 철저하라”는 것이다. 채 대표의 이 말에는 철저함을 넘어서 완벽함(?)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저는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타고난 거죠.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술도 중요한 미팅이나 회의가 있으면 자제합니다. 사흘 전부터는 절대 마시지 않죠. 실수가 없어야 하고, 확실하게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일례로 협력회사와 제품 단가 결정을 위한 회의를 하게될 경우, 상대가 제시한 가격이 합당치 않다면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부자재 가격, 가공, 조립, 물류, 인건비 등 정확한 원가가 머릿속에 들어 있어야만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지방이나 해외에 있는 자사 공장을 방문할 경우 정확한 회의 주제와 시간, 인사와 조직관리 점검 사항 등은 물론이고 식사를 위한 이동 경로와 장소까지 스마트폰 노트 페이지에 빼곡히 적어놓고 재확인한다. 비즈니스맨은 실수와 허점을 보이는 순간 신뢰를 잃게 되고 결국 패자가 된다는 것이 채 대표의 논리다.
“일본계 회사에서 근무할 때 철저한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배웠어요. 그때 제가 만난 일본 직원들은 출장을 왔다고 해서 절대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이튿날 회의가 있으면 술은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고, 불필요한 시간은 사전에 차단하는 식이었어요.”

같은 무기로 대기업과 싸우지 마라
제조업에 뛰어든 창업자라면 자기 브랜드 하나는 갖고싶어 하는 게 당연지사. 대다수의 CEO들에게는 최고의 목표이기도 하다. 채 대표 또한 다르지 않았다. 다만 시간을 기다려왔을 뿐이다.
“급한 마음에 섣불리 회사 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았다면, 우리 제품은 빛도 못 보고 회사는 악화일로로 치닫게 되었을 겁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10년을 주기로 위기가 오는 것 같습니다. IMF에 이어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최근엔 코로나19가 발생했습니다. 중소기업은 이런 위기상황을 잘 이겨내야만 기업의 뿌리가 튼튼해지고 자생력이 강해져서 자사 제품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우뚝 설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위기에서 대기업에 공급하는 힌지 제조로 방향을 전환했던 채 대표는 두 번째 위기인 2008년 금융위기 사태에서는 사업전환을 실시했다. 협력사와 공동으로 냉장고 홈바의 오일댐퍼 힌지와 무쉬타입 래치를 개발해 우수사례를 남겼다. 2010년부터는 힌지 단품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하에 일반사출, 특수사출, 다이캐스팅 사업을 접목해 백색가전 모듈 조립 전문기업으로 변신을 추구했다. 이로 인해 히트를 친 S사의 에어컨 덕트 바디와 해외수출용 프리미엄 냉장고 야채칸과 분리칸을 공급하기에 이르렀다.
“대기업과 거래하면서 기술력을 다져놓는 게 중요합니다. 유사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을수는 있겠죠. 하지만 마케팅에서는 백전백패입니다. 장기적으로 자사 브랜드를 갖고 싶다면 대기업과는 차별화된 틈새 아이템을 찾아서 시장을 개척하는 게 유리합니다. 탄탄한 기술력과 함께 단품이 아닌 모듈을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케이텍시스템은 최근 10년 동안 대기업 협력사로서 자생력을 확고히 다지고자 가격협의, 모듈화, 기술개발 등에 주력했고, 동시에 광주 2공장과 중국 및 베트남에 현지공장을 세웠다. 이를 통해 신뢰성 있는 납품 능력 확보와 기술력 향상, 사업장 확장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대외적으로 어떤 글로벌 대기업과도 거래할 수 있는 파워를 구축해놓은 상황이다. 최근에는 공기청정기 완제품 OEM 생산 기업으로도 낙점을 받아 곧 생산에 들어간다.
채 대표는 최근 들어 취미생활로 드럼을 두드릴지 색소폰을 불지 고민하고 있을 만큼 이제는 자기만의 여유도 찾고 싶어 한다. 그간 일에만 집중했고, 그 결과 자사 브랜드 제품 하나는 충분히 내놓을 수 있는 준비가 다 됐다는 얘기다. 다만 무엇을 내놓을지, 또 언제 보여줄지는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것은 대외비이기도 하지만, 자고로 사업이란 타이밍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30여 년간 제조업에서 쌓아놓은 그의 경영 노하우가 과연 어떤 완제품으로 나타날지 사뭇 궁금해진다.

2030 CEO들에게

채권병 대표 채권병 대표는 젊은 창업자들이 소프트웨어와 IT서비스 분야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요즘의 국내 창업 분위기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제조업의 희망 찾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며, 그것은 CEO의 능력에 달려 있다며 젊은 후배 CEO들에게 그는 이렇게 당부했다.

제조업에 희망은 있다
AI, IoT, 협업로봇을 접목시킨 스마트공장이 얼마든지 가능한 환경이다. 인력 탓하지 말고 3D 업종 운운하며 작업환경 핑계 대지 마라. 얼마든지 세계일류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단지 히트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아이템이 없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라.

글로벌 시장을 100% 활용하라
세계라는 무대를 적극 활용하라. 단지 마케팅이나 생산에만 국한하지 말고 해외 기업들과 협업을 하고 무엇이든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있으면 발 빠르게 찾아내서 경영에 맘껏 응용하고 접목시켜라.

의연함을 키워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아야 한다. 위기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온다.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차분하게 대처해야 하고, 이를 잘 극복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CEO다. 평소에 자기 담금질을 통해 의연함과 담대함을 키워나가야 한다.

박창수 기자 사진 김윤해 기자



[2020-04-06, 1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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