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12.04
실패라 쓰고 오답노트라 읽는다
㈜포켓컴퍼니 정규진 대표

“남들은 실패라는데 저에겐 좋은 경험이었어요”, “결론적으로 실패는 아니었어요.” 스물여덟의 청년은 아직 실패에 침몰당하지 않았다. 거듭된 실패를 통해 실패에 대한 통찰조차 얻은 듯하다. 식지 않는 열정으로 실패와 실패 사이의 다리를 무사히 건너가고 있는 정규진 대표에게 〈다시 뜨겁게〉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중고 물품을 내다팔던 중학생 시절 이후 한순간도 그의 열정이 식은 적은 없었으니까.

정규진 대표

실패를 유익하게 받아들이는 법
구글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작은 창고에서 창업한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얘기다. 에어비앤비 창업자들이 어려운 시기에 시리얼 박스를 포장해서 살아남은 고생담도 이 바닥에서는 신화처럼 구전되고 있다. 많은 창업자들이 실패와 고난을 경험한다. 그런데 극히 일부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룬다. 그 차이점은 뭘까? 아마도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일 것이다. 좌절의 아픈 기억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아 새로운 도전을 꺼리는 이가 있는 반면, ‘실패는 실패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며 새로운 도전 앞에 망설이지 않고 나아가는 이들이 있다.
㈜포켓컴퍼니의 정규진 대표는 후자에 속한다. 지금이야 강남 한복판의 사무실에서 20여 명의 직원을 둔 어엿한 비즈니스 컨설팅 전문기업의 CEO이지만,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좁고 지저분한 공유사무실에서 바퀴벌레와 동고동락하며 지냈다. “먼지인줄 알았는데 움직여서 보니 바퀴벌레더라고요.” 유쾌하게 그 시절을 떠올리지만, 당시 정 대표는 진퇴양란의 상태였다. 부산대학교 재학시절 ‘포켓강의’라는 아이템으로 창업했다가 크게 좌절을 겪은 후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바로 서울로 입성한 터였다. 상경 이튿날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고 ‘과연 서울은 사람 살 데가 못 되는 곳’이라는 비참한 생각에 우울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 자신과 함께해온 멤버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자산으로 삼은 그와 멤버들은 다시 회사를 설립했고, 짧은 기간에 1,400개사를 대상으로 컨설팅 실적을 거뒀다. 실패에서 포기할 이유를 찾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품어온 창업의 꿈
포켓컴퍼니는 사업 기획에서부터 개발, 디자인, 마케팅, 투자유치 등 기업 비즈니스에 필요한 솔루션을 올인원으로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예비창업자와 스타트업,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GS칼텍스, KT 등의 대기업에도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했다. 창업멤버 전원이 20대인 스타트업인 것을 감안하면 놀랄 만한 실적이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이르다. 정 대표는 이미 5년 차 기업인이다. 대학교 재학 시절인 2016년에 ‘주머니 속의 선생님’을 슬로건으로 한 학습 앱 ‘포켓강의’로 창업했다. 3분의 짧은 복습 강의를 휴대폰으로 제공해 학습효과를 높이는 에듀테크 아이템이었다. 각종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한 상금을 모아 학원을 인수해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포켓강의 서비스를 테스트하기 위해서였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멘토링하는 일에 대한 정 대표의 열정은 이미 10대 시절부터 그의 마음속에 자라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남다른 교육철학으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홈스쿨링을 했다.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준 부모님 덕분에 중학생 시절부터 중고 물품을 내다 팔아 돈을 벌었는데, 그 일이 적성에 딱 맞았다. 그러니 삼수 끝에 대학에 합격하던 길로 일자리를 구하러 나선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2013년 겨울에 예비대학생이던 그는 중고 재활용품 회사에 취직했고,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2년 넘게 그 회사에서 열정적으로 일했다.
“무작정 쳐들어가서 2주일 동안 돈 안 받을 테니 일하게 해달라고 했어요. 매출을 올려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들어가자마자 이벤트 비용으로 1,000만 원이나 까먹었죠. 그런데 사장님이 제 열정을 좋게 봐주셨어요. 프로젝트 매니저로 2년 반 동안 내 회사라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냉장고를 나르다 깔려 죽을 뻔한 적도 있어요.”
폐업하거나 이사를 하는 매장들을 찾아가 돈을 받고 중고 물건을 가져와서 되파는 비즈니스였다. 중고 거래 플랫폼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당시 직접 플랫폼을 디자인해 만들었는데, 지점이 8개로 늘어날 정도로 회사는 성장했다. 그러다 회사가 법인으로 전환되면서 그만뒀다.
“법인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사장님에게 당당하게 제 지분을 요구했어요. 그동안 일한 보상을 해줄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1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열정페이로 일했거든요. 그런데 사장님은 무슨 말이냐며 오히려 놀라더라고요. 당시에는 서운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제가 세상 물정을 몰랐던 거죠. 열정적으로 일한 만큼 얻은 것도 많았어요. 주도적으로 일하는 법을 배웠고, 내 아이디어와 생각을 PPT 5장의 시트로 상대에게 어떻게 어필할 수 있는지도 배웠어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업무중인 직원들㈜포켓컴퍼니는 사업 기획에서부터 개발, 디자인, 마케팅, 투자유치 등 기업 비즈니스에 필요한 컨설팅을 올인원으로 제공하고 있다.

군대에서도 이어진 창업 열정, 그리고 서울행
내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결국 창업으로 이어졌다. ‘포켓강의’라는 아이템으로 11명의 멤버를 모아 2016년 9월 창업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에 정 대표는 창업 멤버였던 추성후 COO에게 사업을 맡기고 군복무를 위해 입대했다. 휴가를 자주 나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공군을 지원한 그는 군대에서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군대 창업 동아리가 활성화됐고, 각종 공모전도 활발하게 열렸다. 제대로 물을 만난 정 대표는 군대 내 창업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선배 창업자로서 예비창업 군인들을 위한 강의와 멘토링을 했다. 군 복무기간조차 자기계발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던 그는 이 과정에서 컨설팅 역량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포켓강의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쉽게 생각했던 앱 개발에 2년이나 걸렸다. 군 생활을 해내며 앱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그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개발자와 심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앱이 개발됐지만 학원에서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끝이 났다. 강사들과 학부모들이 앱을 사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사들은 새로운 시스템에 거부 반응을 보였고,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공부할 때조차 스마트폰을 쓰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 대표는 결국 학원 경영 포기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하면 꼭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대표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라고요. 포켓강의가 실패한 결정적인 요인은 시장에 필요 없는 물건을 만든 데 있었습니다.”
창업자금은 애초에 바닥이 났고, 학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강사 10명의 퇴직금을 포함해 빚을 1억5,000만 원이나 졌다. 그러나 경제적인 손실보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업이 아닌 꿈을 찾는 여정
정규진 대표 실패를 자산으로 삼아 자신의 꿈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정규진 대표 첫 창업의 실패로 인한 심리적인 압박과 피로가 겹쳤던 탓일까? “서울에 오면 람보르기니를 타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말에 속아 학원이 채 정리가 되기도 전에 정 대표는 홀린 듯이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당시 프리랜서 컨설턴트로 이름 꽤나 알려진 인물이 프로젝트 3건을 제공하겠다며 서울행을 제안했던 것. 무형의 지식과 서비스 등을 거래하는 프리랜서 마켓 크몽에서 1위를 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인물이어서 정 대표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서울역에 입성하자마자 고급 호텔 뷔페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바로 다음날 홈페이지 개발 건으로 기업과 미팅까지 진행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부터 그 사람과 연락이 닿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느낌이었다.
“서울에 입성하자마자 안 좋은 일이 생기니 서울이 싫어지더라고요.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바로 이걸 두고 하는 얘기구나, 뼈저리게 느꼈어요. 부산에서는 스타트업 대표들끼리 네트워킹이 잘 되어 있어서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냈는데, 낯선 서울에 덩그러니 버려진 느낌이었어요.”
정 대표와 멤버들은 강남의 허름한 공유오피스텔에 자리를 잡고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PPT 디자인과 문서 워딩 첨삭 등 그동안의 창업 경험을 살려 닥치는 대로 컨설팅 서비스를 했다. 이것이 포켓컴퍼니의 시작이다.
물론 동종 업종의 경쟁자들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정 대표는 자신 있었다.
“현업 컨설턴트들은 대부분 나이가 50∼60대입니다. 경험은 많지만 디자인 품질과 속도에서 저희가 월등하다고 자부합니다. 창업을 해서 회사를 직접 운영해본 경험, 창업자를 대상으로 멘토링을 하면서 쌓아온 간접경험이 우리의 자산입니다.”
기획에서부터 디자인, 프로그램 개발, 마케팅, 투자 유치를 연계해 제공하는 올인원 서비스 또한 포켓컴퍼니만의 강점이다.
정 대표는 서른 중반까지 스타트업을 위한 진로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우리나라의 어린 친구들은 자기 자신을 고찰할 시간이 없습니다. 꿈을 물어보면 변호사,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그건 ‘직업’이지 ‘꿈’이 아닙니다. 2∼3시간 신나게 떠들 수 있어야 그게 꿈이죠.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진정한 의미의 진로학교를 세우고 싶습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포켓강의’가 실패하긴 했지만, 아직 포기한 것이 아님을 정 대표는 분명히 했다.
“포켓강의는 잠시 보류된 것뿐입니다. 주위에서는 실패라고 명명했지만, 저는 오답노트를 쓰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포켓강의가 잘됐다면 지금처럼 감사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기업을 경영하지 못했을 겁니다.”
정 대표의 오답노트에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가 채워질지 모른다. 오답노트가 채워진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꿈에 그만큼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뜻일 것이다. 구글의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말했다. “우리는 많은 일을 한다.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먼저 많은 실패를 경험해보는 것이다”라고.

임숙경 기자 사진 김윤해 기자

[2020-08-05]조회수 : 597
  • 목록으로
  • 프린트

유용한 정보가 되었습니까? [평균5점/1명 ]

500자 제한 의견달기
이름 비밀번호
내용
인증
* 불건전한 내용이나 기사와 관련없는 의견은 관리자 임의로 삭제 될수 있습니다.
우)52851 경상남도 진주시 동진로430 (충무공동) | 잡지구독문의 T.055-751-9128 F.055-751-9129
Copyright ⓒ KOSM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