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1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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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간 신념을 지킨 기타, 브랜드가 되다
크래프터코리아 크래프터

비즈니스는 생각보다 선형적으로 진화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모든 아날로그 콘텐츠가 곧 무력하게 무너질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시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디지털 콘텐츠가 전할 수 없는 가치와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억팔이가 아닌 퀄리티와 효용성을 자산으로 한 아날로그 콘텐츠는 지금도 건재하다. 크래프터 기타가 그중 하나다. 크래프터는 퇴조하는 기타 시장에서 47년 동안 중심을 잃지 않고 전진하며 흔들림 없는 소리를 냈다. 그래서 더없이 든든한 브랜드다.

크래프터 기타

Brand Timeline
반세기 동안 사랑받은 기타 ‘크래프터’
힙합이나 EDM(Electronic Dance Music)이 대세다. 하지만 지금도 MTV 언플러그드 공연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치는 커트 코베인과 팻 메스니의 연주 모습을 보며 음악의 꿈을 키우는 기타 키드들이 많다. 꼭 음악인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타 선율에서 위안과 즐거움을 얻는다. 기타의 일반론적인 역할을 이렇게 정의할 때, 여기에 가장 충실한 기타 브랜드가 바로 크래프터다.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유수의 기타 브랜드들이 쇠락하는 중에도 반세기 가까이 독보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었던 이유다. 크래프터의 역사는 1972년 서울의 단칸방에서부터 시작됐다.
“할아버지께서, 지하 단칸방에서 직원 네 명으로 출발했어요. ‘소리가 좋은 튼튼한 기타’라는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해 200여 명의 직원을 둘 만큼 규모가 커졌죠. 어쿠스틱 기타 붐이라는 시장 환경도 어느 정도 작용했지만 근본적인 힘은 장인정신이에요. 설립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47년 동안 고집스럽게 품질에 집중한 덕분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기타 브랜드가 된 겁니다.”
박준석 대표 박준석 대표는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크래프터를 이끌며 브랜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박준석 크래프터코리아 대표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크래프터는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기타 브랜드다. 창업자인 할아버지(박현권 ㈜성음악기 회장)와 아버지(박인재 ㈜성음악기 대표)에 이어 지난해 말부터 박 대표가 회사를 이끌고 있다. 크래프터의 산실은 ㈜성음악기다. 그래서 지금도 ‘크래프터’ 하면 ‘성음’을 떠올린다. 크래프터코리아는 성음악기의 대표 브랜드인 크래프터에 집중하기 위해 새롭게 출범시킨 기업이다. 그렇다고 성음악기와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다. 자재 공급, 공정, 노하우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아버지인 박인재 대표의 값진 조언을 시시각각 반영하기 때문이다. 성음악기에서 6~7년간 경험을 쌓은 박 대표이지만 47년을 이어온 브랜드 명성에 흠을 내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크래프터는 태생적으로 신념이 강한 브랜드다. 1970년대 초, 기타 제조 기업에 다니던 박현권 회장은 평소 연주자나 악기 유통사들이 얘기하는 것을 귀담아 들으며 창업을 꿈꿨다. 공산품을 찍어내듯 뚝딱 만들어내는 기타가 아니라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기타를 만들겠다는 신념에서다. 그런 신념으로 내놓은 것이 성음기타다.
당시는 어쿠스틱 기타 붐이 일기 시작할 때여서 어떤 기타든 만드는 족족 팔려나갈 정도로 활황이었다. 그러니 좋은 기타를 향한 박현권 회장의 신념은 유별나 보였다. 하지만 품질을 담보한 비싼 제품은 시대를 초월해 늘 승자가 되는 법. 기타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얻은 생생한 정보에 박현권 회장의 신념이 더해져 성음기타는 처음부터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기존의 다른 브랜드에 비해 고가였지만, 모델이 늘어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자와 악기 유통사들이 성음기타의 소리와 가치를 알아보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제품이 없어서 못 팔 만큼 높은 인기를 끌면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이후 1980년대 말, 2대 CEO가 된 박인재 대표는 성음기타를 브랜드로 성장시키기 위해 모험을 감행했다. 바로 해외시장 공략이다. 내수시장에서 선두권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가격대도 중고가여서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는 아쉬울 것이 없었던 게 당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세계시장에 도전한 것은, 내수시장에 의존하는 구조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호황일 때 불황을 준비한 셈이다.
‘크래프터’라는 브랜드를 론칭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당시 사용하던 ‘성음(Sung Eum)’이라는 이름은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불편하고, 기억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명과는 별도로 ‘브랜드’가 있어야 지속성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크래프터(CRAFTER)’다. 수제품이라는 뜻의 영어 ‘craft’에 ‘er’을 붙인 것으로, 장인정신이 깃든 수제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네이밍에서부터 로고, 시그니처 문양 등 BI 구축에 힘을 쏟았다. 당시 중소기업으로서는 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멀리 내다본 전략은 결국 맞아떨어졌다. 브랜드 크래프터는 반세기에 걸쳐 국내외에서 사랑받는 세계적인 기타로 우뚝 서는 데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하 단칸방은 1만㎡ 규모의 공장으로 탈바꿈했고, 개발·생산하는 모델만도 400여 가지가 넘으며, 한 해 생산하는 양이 8만여 대에 달했다. 수출국가도 하나둘씩 늘기 시작해 40여 개국이 되었다.

Brand Identity
최상의 원재료와 장인의 만듦새
기타를 만드는 것은 여느 비즈니스와는 조금 다르다. 음악이라는 예술적 수준을 기반으로 한 완성품을 세상에 선보여 상업적 결실을 만들어내야 한다. 예술적 감각은 뛰어난데 시장성이 부족하면 비즈니스로 성장하기 어렵고, 지나치게 대중성을 강조하다 보면 예술적 수준을 놓치게 돼 한순간 반짝하는 기타에 그칠 수 있다. 그래서 예술 감각에 더해 비즈니스 감각이 양립되어야 한다. 크래프터는 놀라울 정도로 균형을 잘 유지했다. 다른 산업에 비해 부침의 폭이 크고, 사장되다시피 한 브랜드가 속출하는 기타 시장에서 오롯이 살아남은 비결이다.
퀄리티에 집착하는 브랜드 정체성도 같은 맥락이다. 소비자들이 ‘크래프터’ 하면 떠올리는 브랜드 이미지는 좋은 소리와 탁월한 내구성이다. 예술적 수준을 지키기 위해 크래프터가 추구하는 가치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또한 크래프터는 일반 모델에서부터 커스터마이징 모델까지 제품 라인업을 다양화해 시장성을 확보했다. 그럼에도 전 제품에 대한 퀄리티는 늘 최우선의 가치였다. 재료, 구조, 공정에 이르기까지 퀄리티를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연구하는지 박 대표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타의 퀄리티는 목재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 캐나다, 스위스, 독일 등에서 로즈우드, 에보니, 시트카, 알파인 스프루스 등 최고의 목재만을 구입합니다. 목재를 보는 안목이나 수급 역량도 굉장히 중요한데, 브랜드 업력 덕분에 이 부분을 완벽하게 갖추게 됐죠. 짧게는 200년, 길게는 500년 된 수령의 나무를 들여온 뒤 바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3년 이상 자연건조를 시켜요. 크래프터만의 핵심 노하우죠. 기계식 건조가 아니라 온도 25℃, 습도 45~55%의 항온항습실에서 장기간 자연건조를 한 뒤에 비로소 재단에 들어갑니다. 15년가량 건조한 목재를 사용하는 모델도 있을 정도죠. 자연건조에 들어가는 장소나 시간, 비용 등이 만만치 않지만, 이 과정 안에 크래프터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타는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다 보니 자칫하면 프레임이 3~5㎜ 뒤틀리기 십상이고, 소리가 흩어진다. 이에 비해 크래프터는 3년 넘게 자연건조 과정을 잘 견뎌낸 목재만 사용하다 보니 온도와 습도 변화에 유연하고, 소리 스펙트럼도 풍부하다. 가볍지만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장점 역시 이런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춥고 건조한 러시아에서도, 덥고 습한 태국에서도, 사계절 변화가 큰 한국에서도 퀄리티를 인정받을 수 있다.
공정에 기울이는 크래프터의 자세는 장인에 가깝다. 장기간 건조한 목재를 재단한 뒤 본격적으로 제조공정에 들어가 최소한 한 달 반은 지나야 기타 한 대가 완성된다. 기타통과 네크 제작, 도장, 통과 네크 연결, 줄과 부품 결합 등 셀 수 없을 만큼 공정이 많고, 한 공정 한 공정을 제대로 거치기 때문이다. 공정과 공정 사이에 품질을 체크하는 것만 수십 번, 자재는 대부분 최고급만 사용한다. 사실 기타 시장은 진입장벽이 낮아 얼마든지 간단하고 쉽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크래프터는 처음부터 이를 거부했다. 주문량이 많아도, 라인업이 늘어도, 시대가 변해도 한결같이 장인정신을 담아냈다. 생산 능력을 오버하면 퀄리티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으므로 무리한 생산은 절대 하지 않는 게 크래프터의 철칙이다. 크래프터가 국내에 공장을 둔 유일한 기타 브랜드라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박 대표는 젊은 3세 경영인임에도 장인정신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다.
“20년 이상 근무한 숙련된 기술 인력이 상당해요. 이들에 의해 크래프터의 명성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기술 장인들이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경영진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근간이거든요. 국내 소재의 공장을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만약 생산비와 인건비를 이유로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다면, 경제적으로는 플러스일지 몰라도 브랜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첨단기계 공정크래프터는 수작업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수작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결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작업 공정과 첨단기계 공정을 병행한다.

자연건조 목재기타의 퀄리티는 좋은 목재에 있는 만큼, 전 세계에서 최고의 목재를 구입해 3년 이상 자연건조를 시킨 뒤 비로소 제조 공정에 들어간다.

Branding Tools
最古를 넘어 最高를 향한 혁신
크래프터가 반세기 동안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올 수 있었던 핵심 툴은 ‘기본’과 ‘혁신’이다. 퀄리티로 탄탄하게 기본을 유지하되, 항상 한 단계 더 좋아진 기타를 추구했다. 대부분의 장수 브랜드가 그렇듯, 오래된 브랜드가 주는 정체된 이미지를 깨기 위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창조적인 변화를 줬다. 수작업 공정과 첨단기계 공정을 병행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최상의 품질을 만들어내는 결과치를 산출해 이를 컴퓨터에 미리 입력한 뒤 기계를 통해 구현하는 첨단방식이다. 장인정신과 첨단기계는 상반된 개념이라고 여길 수 있으나 이마저도 창조적인 생각으로 풀어냈다. 수작업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수작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결함이나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기타를 일정한 퀄리티로 유지할 수 있으니 합리적인 생산방식이다. 아날로그 브랜드가 지닌 장점과 한계를 절묘하게 디지털로 시너지를 낸 것이다.
박 대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일부 제조 공정에는 곧 첨단 로봇 자동화 시스템을 접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반적인 로봇 자동화와는 조금 달라요. 생산 효율성을 높이거나 인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퀄리티를 높이기 위한 자동화라고 할 수 있죠. 로봇의 정확도와 장인의 만듦새를 최대한 조화롭게 구성하는 것이 목표예요. 아날로그와 디지털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두 가지 모두를 가져가는 거죠. 계속 발전하는 것만이 생존 비결이거든요. 장수 브랜드로서의 사명감이기도 하고요. 아마 올해 말쯤에는 구조, 소리, 연주감 등이 파격적으로 달라진 새로운 크래프터를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
지식재산권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성공비결로 꼽힌다. 브랜드를 개발하자마자 특허, 상표, 디자인 등의 지식재산권을 확보하고 철저하게 관리했다. 브랜드 개발 시점(1990년대 초반)이 지식재산권 개념이 없었던 때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빈틈없이 짜여진 브랜딩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별로 상표권을 등록한 덕분에 40여 개국으로 수출하면서도 가짜 제품으로 인해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는 일은 한 번도 겪지 않았다. 브랜드 관리의 기본 원칙이지만, 중소기업 브랜드가 놓치기 쉬운 부분을 일찍 꿰뚫어본 셈이다.
크래프터는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도 브랜드에 대한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기존에는 없었던 형태로 아티스트와 손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직접적인 홍보 요청이나 돈과 계약서가 왔다 갔다 하는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라, 양쪽 모두 순수하게 자발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아이유는 ‘아이유 기타’라는 별칭으로 알려질 만큼 10년 가까이 크래프터를 애용하고 있고, 혁오 밴드도 조건 없이 오랫동안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크래프터의 퀄리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국내외에서 기타 시장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지만, 어떤 변화든 크래프터에는 지나가는 과거에 불과하다. 쉬운 길로의 유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세기 동안 흔들림 없이 기타의 질적 성장을 일궈내며 확고한 자리를 지킨 브랜드가 바로 크래프터이기 때문이다.

제작 중인 크래프터공정에 기울이는 크래프터의 자세는 장인에 가까워, 재단된 나무를 제조 공정에 올리고도 최소한 한 달 반은 지나야 기타 한 대가 완성된다.

ECM & 크래프터
브랜드 평행이론


소리
ECM은 명문 음반 레이블로 손꼽힌다. ECM에서 발매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떤 음악이든, 아티스트가 누구든 음악성을 인정받을 정도다.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경영 모토로 삼은 덕분이다. ECM이 스타나 판매량보다는 퀄리티를 최우선 순위로 두고 최상의 소리를 구현해냈듯, 크래프터도 ‘소리가 좋은 기타’를 만드는 데 집중해 명품 기타 브랜드로 성장했다.

신념
ECM은 성공의 기준을 매출액이 아닌 퀄리티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과 반응에 뒀다. 판매량이 높지 않더라도 음악의 퀄리티를 높이겠다는 신념을 지켰기 때문에 관련 브랜드가 침체를 거듭해도 50년 동안 지속성장할 수 있었다. 크래프터 역시 성공 기반은 장인정신을 올곧게 지켜온 신념이다.

김미경 전문기자 사진 김성헌 객원사진기자

[2019-07-01]조회수 :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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