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8.09
일손 부족한데 임금 정체, 일본 경제의 미스터리

 

20년째 임금 제자리
경기가 회복되면 일자리가 늘어나 실업률이 줄고, 노동자들의 임금도 증가해 소비가 증가하는 선순환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 일본 경제가 회복세에 진입하는 과정 속에서도 노동자들의 임금은 오르지 않는 기현상이 나타나 많은 경제학자들을 고민에 빠지게 하고 있다. 이른바 일손은 부족한데 임금은 정체된 ‘일본 경제의 미스터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경제는 최근에 긴 침체기에서 벗어나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1분기까지 5분기 연속 성장세를 나타냈으며, 올해 4월의 실업률은 2.8%로 지난 1993년 8월 이후 23년 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인구감소로 인해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들면서 산업계 곳곳에서 구인난이 심각해지고 있다. 일본의 한 취업 사이트에 의하면 내년의 대학, 대학원 졸업예정자 가운데 취직처가 이미 정해진 사람의 비율이 63.4%로, 지난해보다 8.5%p나 늘어났다. 사실상 완전고용을 달성한 것이라 우리에게는 부러운 뉴스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일손이 부족한데 임금은 제자리라는 게 문제다. 일본 총무성이 집계한 지난해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은 30만 4,000엔으로, 1997년의 29만 8,900엔에서 거의 변화가 없다. 아베노믹스 정책을 밀어붙인 2012년 이후와 비교해도 2014년 29만 9,600엔, 2015년 30만 4,000엔으로 각각 1.3%와 1.5% 상승에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비정규직과 낮은 초봉 젊은층 증가, 노동생산성 정체도 원인
이렇게 된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몇 가지 가설들이 있다. 첫째는 일본 노동시장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는 것으로,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 비율의 증가 때문이라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현재 일본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40% 이상이다. 1990년대의 20% 수준과 비교하면 배 이상 늘었다.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의 비율이 늘다보니 명확히 임금이 늘어야 하는 시점인데도 임금이 오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인구 구성의 변화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높은 임금을 받던 고령자들이 한꺼번에 퇴직하고 낮은 초봉을 받는 젊은 세대로 노동시장의 주력 세대가 교체되면서 평균임금의 상승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과거 경기 침체를 경험했던 일본 기업과 노동자들이 경기 상황이 좋아졌는데도 임금 인상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업은 경기가 좋아져도 미래 경영 상황을 낙관하지 못해 임금 인상을 꺼릴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에는 노동자들도 호경기의 임금 인상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본급을 많이 올리게 되면 경기 악화 때 오히려 고용이 불안해질 것을 우려해, 기본급 인상보다는 보너스 지급에 더 관심이 높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저성장 시대를 거치다보니 노동자들의 대응도 달라졌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덧붙여 최근에는 일본 산업계가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과정에서 임금 상승률이 정체되고 있다는 분석도 더해지고 있다. 최근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매우 정체된 상태를 유지해왔다. 세계노동기구(ILO)에 따르면 각 나라의 2000년 노동생산성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2015년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118’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177, 대만의 153과 비교하면 매우 낮다. 물론 각 나라별 2000년 수치 대비이기 때문에 일본의 생산성 절대 수준은 우리나라보다 높지만, 개선
정도는 분명히 낮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생산성이 이렇게 고전하고 있는 것은 제조업 비중이 낮아진 탓이 크다. 일반적으로 제조업 비중이 높은 나라가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생산성이 빠르게 증가한다.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보다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과정이 훨씬 손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1990년대 25%가 넘던 제조업 비중이 2010년 이후에는 20% 미만으로 떨어졌다.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일본의 제조업체들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해외로 생산설비를 이전했기 때문이다. 즉, 제조업 비중이 줄어들면서 일본의 노동생산성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낮은 임금이 경제 발목 잡을까 우려
이런 산업구조의 변화에 덧붙여 일본 특유의 ‘초과 근무’ 문화 때문에 일본의 생산성이 개선되지 못한 측면도 강했다. 노동생산성은 노동시간 대비 생산량으로 산출된다. 생산량이 많아도 노동시간이 많으면 생산성은 낮아진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경우에는 특유의 근무 문화로 인해 생산량 증대와는 상관없이 노동시간이 많이 투입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우리나라보다 더한 ‘야근’ 문화의 폐해로 생산성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기간 경기 불황을 거친 많은 일본 기업들이 최근에 초과 근무를 줄이는 방식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즉, 생산량을 유지하면서도 노동시간을 줄이는 형태로 노동생산성을 향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통업 등에서 주로 나타난 현상이지만, 이런 현상들로 인해 최근 고용은 늘어나면서 임금은 오르지 않는 현상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경제가 일정 수준으로 성장해도 임금 인상이 따르지 않아 소비가 늘지 않으면 성장이 지속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일본의 임금 정체 현상에 대해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경제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 등으로 기업의 이익은 향상됐지만 임금 수준이 정체되면서 소비가 크게 개선되지 않아 실물 경제가 선순환 구조에 들지 못했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입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복병들로 고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비정규직 증가, 장기 불황 시대의 후과, 낮은 노동생산성의 개선 과정 등의 구조적 변화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학개론서에는 없던 이런 변화들이 어떤 결과를 맺게 될 것인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없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2017-07-31]조회수 :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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