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1912.10
2019년 한눈에 보는 중소기업 지원사업 안내도
물가가 낮으면 디플레이션일까

하락 화살표와 마트카트

저성장보다 무서운 저물가
지난 8월 소비자물가가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8월까지 누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로,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8월에는 -0.04%로 사상 처음 마이너스 수치를 찍었다.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 수출규제 등 대외 여건도 악화하고 있어 전반적인 ‘총수요’ 위축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물가가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고 무조건 디플레이션인 것은 아니다. 디플레이션이란 경제 전반적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2년 이상 물가가 계속 하락할 때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이야기한다. 또 물가가 플러스(+)를 유지하면서 계속 하락하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과도 구분된다.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마이너스 상태를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다.
물가는 두 가지 경우에 떨어질 수 있다. 하나는 생산성 등이 향상되면서 공급이 늘어나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특정 농산물의 풍년으로 가격이 폭락하거나, 기술혁신 등으로 컴퓨터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이런 경우를 ‘공급 측면 디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 싼 가격에 매력을 느껴 구매가 늘고, 가격도 다시 회복되기 때문이다.
반면 수요가 위축되면서 물가가 하락하는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연필 생산량은 비슷한데 연필 소비가 줄어 연필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도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소비자가 싼 연필을 다시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해소된다. 충분히 낮은 가격에서 연필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면 다시 가격이 회복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거나 소비의욕이 떨어져 아무리 가격이 하락해도 연필 소비가 살아나지 않기도 한다. 소비심리가 위축되어 연필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를 ‘수요 측면 디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경기와 물가를 동시에 하락시킬 수 있어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쌓여있는 동전과 그 위에 자란 나무

기저효과 사라지면 다시 오를까?
수요 측면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거대한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 수 있다. 소비자가 소비를 미루면서 물가는 더 하락하고, 기업은 매출이 늘지 않아 생산을 줄인다. 기업이 생산을 줄임에 따라 일자리는 줄어들고, 결국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디플레이션 소용돌이(deflation spiral)’에 빠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경제학자가 디플레이션을 인플레이션보다 더 위험한 현상으로 간주해왔다.
따라서 현재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는지 여부도 중요하지만, 디플레이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면 그 원인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공급 때문이라면 시간이 해결하겠지만, 수요 때문이라면 그 처방이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과 정부에서는 최근의 저물가 흐름에 공급 측 원인이 크다고 이야기한다. 근원물가가 견조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석유나 곡물과 같이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외부 충격 요인에 따라 가격이 크게 요동치는 품목들이 있다. 그 때문에 일시적 충격에 의한 변동분을 제거한 물가를 집계하기도 하는데 이를 근원물가라 한다.
현재 근원물가는 7월 1%, 8월 0.9% 등으로 1% 안팎을 유지한다. 국제유가 하락과 유류세 한시 인하 등으로 석유 가격이 6.6%나 하락한 것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유가 부문이 전체 소비자물가의 0.3%를 끌어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또 작년 이맘때 폭염으로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올랐는데, 올해에는 가격이 안정되면서 전년에 비해 농산물 물가가 11.4%나 낮아졌다. 이른바 과도하게 높았던 수치가 제자리를 찾으면서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는 ‘기저효과’ 때문이라는 것이다. 농산물 물가 하락분도 전체 소비자물가를 0.53%나 끌어 내렸다.
두 품목의 공급 문제를 제거하면 아직까지 디플레이션을 염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정부의 진단이다. 당분간은 공급 측 요인이 지속되면서 낮은 물가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연말부터는 다시 물가가 오름세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한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은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동전이 쌓인 집 위에 치는 번개

디플레이션 불씨는 여전
그런데 최근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는 저물가 현상에 수요 측 요인도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KDI는 《경제동향 9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의 대내외 수요가 위축되며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수요 위축’이라는 단어 하나가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경제학자들은 상황을 진단할 때 매우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한다. 예컨대 지난 3월까지는 경기가 ‘둔화’되고 있다고 진단했지만, 4월부터 8월까지는 ‘부진’하다는 평가를 해왔다. 그런데 여기에 ‘수요 위축’을 얹으면서 최근의 경기 부진에 수요 측 요인도 있다는 의견을 더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물가 흐름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글로벌 공급사슬이 확대되고 IT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업의 생산비용이 절감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장기간 저물가가 이어지고 있다. 전자상거래 확산 등으로 유통비용이 크게 떨어지고, 자동화의 진전으로 인건비 비중이 하락해 물가가 오르지 않는 측면도 있다. 따라서 과거의 물가 잣대로 최근의 경기 흐름을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위험이 있다면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에 관해 최근 한국을 방문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디플레이션의 조짐이 있을 때에는 신중함이 위기를 가중시킬 수 있다”며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단기 부양책”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경기가 침체될 수 있다고 목소리는 높이면서 재정 정책 집행은 머뭇거리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인 셈이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2019-10-07]조회수 :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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