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7.07
한국판 양적완화의 의미

터치스크린과 다양한 그래프들

유동성 공급 위해 무제한 돈 푼다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 위축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국은행도 사상 처음으로 환매조건부채권(RP) 무제한 매입 등과 같은 특단의 유동성 공급 정책을 내놓았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에도 없었던 이번 조치를 두고 많은 언론들은 ‘한국판 양적완화’가 시작됐다는 표현을 한다. 하지만 ‘한국판’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데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조치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양적완화’와는 조금 다르다.
한국은행이 이번에 실시하는 환매조건부채권 무제한 매입은 한국은행 고유의 통화정책 중 ‘공개시장운영’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보았던 ‘공개시장조작’이 이것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공개시장조작이라 불렸으나 어감이 좋지 않아 ‘공개시장운영’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공개시장운영은 한국은행이 금융기관을 상대로 국채 등 증권을 사고팔면서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의 양과 금리 수준을 조절하는 대표적인 통화정책 수단이다.
공개시장운영 방식은 다음과 같다. 한국은행과 같은 중앙은행의 정책 금리는 하루짜리 초단기 금리다. 예를 들어 현재 정책금리는 0.75%인데, 이 금리가 항상 완벽하게 0.75%인 것은 아니다. 금융기관들의 자금 수요와 공급에 따라 어떤 날에는 0.79%가 될 수도, 어떤 날에는 0.73%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은행에서는 이 금리가 조금 높아진다 싶으면 금융기관에서 증권을 사들인다. 금융시장에는 한국은행이 사들인 금액만큼 통화량이 늘어나게 되고, 돈이 늘어나니 금리는 다시 0.75%로 낮아진다. 반대로 금리가 살짝 내려가면 한국은행이 가지고 있던 증권을 판다. 그러면 금융시장의 통화량은 줄어들고, 금리는 다시 오른다. 이렇게 한국은행이 시장에서 증권을 사고팔아 일시적인 자금 과부족을 조정하고 금리를 유지하는 것을 공개시장운영이라 한다.

공개시장운영으론 한계, 양적완화 카드 꺼내
양적완화는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간 특단의 조치다. 양적완화는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 효과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해 시중에서 직접 장기국공채나 회사채 등을 매입해 장기금리를 조절함으로써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공개시장운영은 초단기금리 조절을 통해 금리 수준을 유지하고자 한다. 하지만 금리가 너무 낮아진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미세 조정으로 효과가 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책금리가 0%인 경우라면 중앙은행이 아무리 증권을 사들여도 다른 금리가 0%까지 내려가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중앙은행은 10년 국채, 회사채 등 공개시장운영에서보다 더 다양한 중장기 채권들을 사들여 경기 부양을 시도할 수 있다. 사실상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시중에 푸는 것과 같아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라 하는 것이다. 양적완화는 금융위기 후 미국, EU, 일본 등에서 몇 차례 실시했으며, 실제로 자산가격이 오르고 민간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참고로 양적완화를 실시한 중앙은행들이 다시 자산을 매각하면서 시중 유동성을 줄이는 과정을 ‘테이퍼링(Tapering)’이라고 한다.
공개시장운영은 중앙은행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정책인 반면, 양적완화는 경기 여건이 매우 나쁜 비상시에 쓰는 비전통적인 수단이다. 둘 사이의 차이를 조금 더 이야기한다면, 공개시장운영은 국채, 정부보증채, 통화안정증권 등 정해진 특정 증권을 금융기관을 통해 매매하는 간접 방식이다.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국채나 증권을 사들여 금융기관에게 자금을 공급하고, 이를 통해 금융기관이 더 많은 기업들에게 자금을 공급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금융기관에 자금을 공급하더라도 금융기관이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사들이지 않으면 기업들은 도산할 수 있다. 실제로 금융 경색이 되면 이런 기업들이 문제인데, 시중 금융기관이 이를 꺼리면 효과가 잘 생기지 않는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이런 시중의 채권을 직접 사들여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은행과 현금

전례 없는 특단의 한국형 양적완화 시동
그럼에도 한국은행은 직접 양적완화 방식을 취하기 어렵다. 우선 중앙은행의 돈이 특정 집단이나 특정 지역으로 직접 흘러가게 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분야, 특정 기업에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부가 판단해야 할 문제다. 정부와 독립적인 관계를 가진 중앙은행이 임의로 그런 판단을 하게 되면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공개시장운영 때 매매할 수 있는 증권의 종류를 미리 정해둔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앙은행이 특정 기업에 자금을 마음대로 공급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발권력을 가진 한국은행이 자산을 직접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하게 되면 통화의 신뢰도에 문제가 생길 우려도 있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시중에 뿌리게 되면 화폐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이런 행위가 외국인들에게는 원화가치를 불신하게 만들 수 있다. 환율은 더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원화는 기축통화인 달러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최근 언론에서는 한국은행이 직접 회사채를 인수해야 한다, 혹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논란이 이어지곤 한다. 중앙은행이 경기를 보다 직접적으로 부양할 것인가, 아니면 통화가치의 신뢰를 지켜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쉽지 않다.
한국은행은 이런 논란 속에 공개시장운영에서 매매하는 대상 증권과 대상 금융기관을 크게 늘리고, 금융기관이 원하는 만큼 무제한적으로 사주겠다는 선택을 취했다. 회사채 매입은 금융기관들이 공동으로 조성하는 채권안정화펀드를 통해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완전한 양적완화 방식은 아니지만 자금이 필요한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겠다는 의미다.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2020-05-07]조회수 :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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