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9.21
금산분리 깨지나? CVC 허용 격돌

굳건하던 금산분리 장벽 허문다
정부가 벤처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 Corporate Venture Capital)’을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해 최근 논의가 늘어났다.
CVC는 비금융권의 일반 기업이 재무적 이익뿐 아니라 전략적 목적을 위해 독립적인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이다. 일반적인 벤처캐피탈은 금융권, 정부, 해외자본 등이 자금을 모아 투자하면서 재무적 이익만을 추구한다. 반면 CVC는 주로 대기업이 재무적 이익 외에 모기업의 사업 확장이나 전략 등을 위해 직접 설립하는 투자 자회사라 할 수 있다.
CVC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대 후반 미국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 내부 연구소를 통해 신규 사업을 모색하던 기업들이 기술개발과 투자를 동시에 추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현재 활발한 투자 활동을 하고 있는 구글 벤처스나 GE 벤처스, 인텔 캐피탈, 퀄컴 벤처스 등이 모두 CVC에 속한다. 이들 글로벌 CVC들은 대체로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전략적으로 투자한 뒤 M&A를 통해서 자사 사업에 적용하거나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창출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
최근 글로벌 CVC 투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4차 산업혁명 등이 대두되면서 업계 선두기업일수록 자기파괴적인 혁신이나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기존의 사업 틀 안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스스로 전략적 투자를 통해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이를 연계해 기존 사업을 강화하거나 보완하는 것을 늘려가고 있다.

금산분리

재벌 사금고화 막았던 금산분리 원칙
우리나라의 경우 현 제도에서는 모든 기업들이 CVC를 설립할 수 없다. 현행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에서는 일반 기업의 지주회사인 ‘일반지주회사’가 금융자본인 CVC를 자회사로 보유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이른바 금산분리 원칙 때문이다.
금산분리란 은행업으로 대표되는 금융자본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자본이 서로의 업종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것을 금하는 원칙이다. 기업이 은행의 주식을 일정 한도 이상 보유하거나, 은행 등 금융회사가 기업의 주식을 일정 한도 이상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공정거래법 법령과 고시에 의하면 CVC를 포함한 벤처캐피탈은 금융 업종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일반지주회사는 금융 업종인 CVC를 자회사로 소유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일반지주회사가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전환한 날부터 2년간은 그 자회사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다.
이토록 엄격한 금산분리 원칙이 도입된 것은 두 산업이 결합될 경우 큰 폐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할 경우 계열 금융회사는 기업집단의 부실 계열회사를 계속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금융회사가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경우다. 이런 지원이 지속되면 계열 금융회사도 함께 부실해지고, 경제 전반에 그 파급효과가 미칠 수도 있다. 또한 산업자본 계열의 금융회사가 계열 기업집단만을 위한 자산운용을 해서 다른 주주들에게 손실을 일으킬 수도 있다. 모기업의 지배를 받고 있어 그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해당 기업집단 계열회사에만 유리한 대출 조건 등을 제공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이런 위험 요인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1961년 처음 금산분리 원칙을 도입해, 조금씩 변형은 했지만 그 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벤처 젖줄 vs 재벌 특혜
하지만 일반지주회사가 아닌 일반 기업들은 자유롭게 CVC를 설립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소유를 금지했을 뿐, 지주회사가 아닌 일반 계열사 산하에 CVC를 설립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 6개 계열사가 공동 대주주로 있는 삼성벤처투자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경제계에선 일반 계열사가 CVC를 설립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일반 계열사 산하의 CVC는 단기 실적이나 경영 상황에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장기투자전략을 취하는 것이 중요한 CVC는 지주회사 아래에 있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기업의 투명한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며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장려하면서 한편으로는 지주회사를 차별하는 것도 문제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재계와 스타트 업계의 이런 문제의식을 공감해 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대기업들의 벤처 투자를 늘려 혁신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 현 단계에서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소관 부서인 공정거래위원회는 CVC가 설립되더라도 모기업 지주회사의 자금으로만 펀드를 운용하도록 하는 등의 제한장치를 더 두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벌기업들이 CVC를 만들어 손쉽게 외부 자금을 모아 계열사 늘리기에만 골몰하는 것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CVC 펀드는 외부 자금들과 함께 투자가 이뤄져야 더 투명하게 관리, 운용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어 어느 한쪽의 손만 쉽게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기업들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이를 통해 혁신의 활로를 찾는 것은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하지만 재벌의 무한 확장이라는 문제가 심각했던 우리나라 과거 경제구조를 생각해보면 금산분리의 원칙을 마냥 뒷전에 둘 수도 없다. 위험은 최소화하면서 혁신으로 한 발짝 다가서기 위해 더 치열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2020-08-05]조회수 :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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