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10.27
늘어난 유동성과 기업 투자

기업투자

늘어난 통화량, 사상 최대치 기록

전 세계 국가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코로나19로 촉발된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정책과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맞서고 있다. 자금 공급을 늘려 생산과 투자,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이 채 사그라들지 않은 상태에서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격이 먼저 크게 오르면서 늘어난 유동성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의 유통량을 통화량이라 한다. 통화량을 측정하는 지표는 다양하다. 가장 좁은 의미의 통화량인 ‘협의통화(M1)’는 민간인이 화폐로 보유하고 있는 현금과 은행의 요구불 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을 합한 양이다. 실제로 시중에 돌아다니고 있는 화폐이거나 은행에 잠시 보관되어 있지만 언제든 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통화들을 지칭한다.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통화지표는 광의통화(M2)다. 광의통화는 협의통화에 MMF, 2년 미만 정기예적금, 2년 미만 금융채, 수익증권, 양도성예금증권(CD), 환매조건부채권(RP) 등까지 포함한다. 요구불 예금만큼 입출금이 자유롭지는 않지만 약간의 이자를 포기하면 언제든 인출이 가능한 단기 금융상품들을 포함한다. 광의통화는 다른 통화지표보다 경제성장, 물가 등 실물경제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어 통화 관리의 중심지표로 사용된다. 보통 ‘총통화’라 할 때에도 M2를 지칭한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지난 5월 광의통화량은 평균잔액 기준 3,053조9,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 달 전보다 35조4,000억 원 늘어나 월간 증가액으로는 1986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였다. 총통화는 해마다 4~7%씩 증가세를 유지해왔는데, 최근 증가율이 더 가팔라져 1년 전보다 약 10%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쏟아졌는데, 이 가운데에는 조금 무리한 분석도 있다. 예를 들어 6월 말 기준으로 은행 수신액은 1,858조 원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108조7,000억 원이나 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언론에서는 통화량이 늘어난 것과 연관을 지으며 코로나19로 정부가 열심히 푼 돈이 은행으로 다시 들어가 잠자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공급한 유동성이 실물 경제로 흐르지 않고 은행 금고에만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 수신고에 있는 돈을 모두 ‘잠자는 통화’로 볼 수는 없다. 가계나 기업이 보유한 현금을 모조리 소비와 투자에 쓰고 있는 경우에도 은행 수신고는 늘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늘어난 현금으로 음식점에 가서 밥을 사 먹는 경우에도 해당 통화는 음식점 주인의 예금에 쌓인다. 기업이 대출받은 돈으로 설비투자를 하는 경우에도 해당 금액은 설비를 판매한 기업의 통장으로 들어간다. 현대인들은 돈이 생겼을 때 땅에 파묻거나 금고에 보관하지 않고 대부분 은행에 예치하기 때문이다. 통화량에 요구불 예금 등이 포함되는 이유다.

잠자는 통화인가 곧 발사될 실탄인가?

자산 변동 그래프 금리 인하 등 완화적인 통화정책의 결과로 가계나 기업의 대출이 증가해 은행 수신고가 늘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런 분석은 앞선 보도보다는 현상을 잘 직시한 것이다. 금리를 낮추는 것은 대출을 늘려 자금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서이므로 정책이 잘 작동했다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출로 늘어난 통화가 은행에 예치된 상태만 놓고 잠자고 있는 것인지, 소비와 투자 활동을 하다 은행에 머물게 된 것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이를 확인하려면 다른 지표가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현 상황을 정확히 갈라낼 만한 수단이 없다.
늘어난 과잉 유동성 때문에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이나 주가 상승이 나타나고 있다는 보도도 많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우리나라의 통화신용정책에 관한 사항을 심의, 의결하는 최고 정책결정 기구다. 위원회에서는 통화신용정책에 관해 심도 깊은 논의를 펼치고, 이 내용을 의사록에 기록한 뒤 공개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7월 의사록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들 사이에서도 최근 유동성 증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의 관계와 관련해 설전이 오갔다.
한 위원은 최근 유동성 공급 증가가 실물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경기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산 가격이 먼저 고평가되거나 부채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늘어난 유동성이 가계 부채 증가로 이어져 주택 가격 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다른 위원은 최근 늘어난 유동성 가운데 기업 보유분이 가계 보유분을 크게 웃돌고 있어 유동성 때문에 주택 가격이 상승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한국은행 통계에 의하면 최근 통화량 증가분 가운데 60%가 기업 보유분이며, 가계 대출 보유분은 2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 자금이 부동산, 주식 등 자산 투자에 쓰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몇 배 많은 돈이 기업으로 흘러갔다는 이야기다.
다시 문제는 기업들이다. 기업들이 확보한 자금을 투자에 쓰고 있는지, 미래에 대비해 쌓아두고만 있는지 현재로서는 확인이 쉽지 않다. 통화량 증가에 비해 성장률이 미흡하다면 투자에 쓰지 않았을 수 있다. 투자에 쓰이고 있다면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성장으로 드러날 터다. 하지만 그 효과가 드러나는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정책 효과는 항상 시차를 두고 발생하기 때문에 정밀한 결과를 추정하기 힘들다. 우려를 피력할 수는 있지만 확인 없이 예단만 쏟아내는 게 위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2020-09-03]조회수 :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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