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9.21
영업 9단의 해외 시장 진출기
중소기업人 열전 린노알미늄㈜ 이동규 영업이사



어떤 직원은 그 자체로 회사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회사의 고비마다 그 중심에 항상 서 있는 그들은 영락없는 일 중독자처럼 보인다. 마치 개인으로서의 자기 삶은 없고 회사만 있는 것처럼 목숨 걸고 일한다.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임가공 업체로, 다시 제조업체로 성장해온 린노알미늄㈜의 역사는 이동규 영업이사의 이야기를 빼고는 써내려갈 수가 없다. 이제 막 수출에 물꼬를 튼 린노알미늄의 해외시장 진출이 이 이사의 발끝에서 시작된 것도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임숙경 전문기자 사진 손철희 객원사진기자

15년을 좌우한 선택
1999년, 9년차 직장인이던 이동규 이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산업기계 제조회사에서 생산, 품질관리, 영업 등 다양한 업무를 두루 경험하며 한창 일에 재미를 붙이던 어느 날 친구의 소개로 한 중소기업 사장을 만났다. 린노알미늄㈜의 전신인 삼우로엔지니어링 시절의 이세영 대표였다. 엔지니어링 업체에서 제조업체로 도약을 준비하던 이세영 대표가 제조업체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이 이사에게 회사를 함께 키워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안정’이냐 ‘도전’이냐를 선택하는 문제였다. 한 달간 심사숙고한 끝에 이 이사는 보람 있는 일을 하며 살다가 죽자는 생각에 ‘도전’이라는 험한 길을 택했다. 서른일곱의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도 있었고, 이제 막 제조회사로 출발하는 곳에서 잘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작게 출발하더라도 반듯한 기업으로 성장시키자”는 이 대표의 한마디가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현재, 매출 20억 원이던 작은 엔지니어링 기업은 매출 200억 원을 바라보는 건실한 제조업체로 발돋움했다.
린노알미늄은 알루미늄 소재 및 부품 분야에서는 제법 기술력과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수출 50만 달러를 달성해 수출 유망 기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공장을 두 번이나 옮기며 회사가 커나가는 동안 이 이사의 얼굴에도 주름이 하나씩 늘었다.

도전하는 자에게 넘지 못할 벽은 없다
이 이사가 영업에만 매진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이전까지는 경리, 회계 업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업무에 관여했다. 린노알미늄은 1997년 처음으로 기계를 대여해 임가공을 시작한 상태여서 관리는 물론이고 영업체계가 잡혀 있지 않아 거래처와 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 출근을 해서 회사를 둘러본 이 이사의 입에서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은 더 나빴다. 직원들끼리 역할분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생산 현장의 관리체계는 엉망이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보니 직원들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어 현장에서는 공구가 날아다닐 정도로 살벌한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 고치고 새로 만들어야 할 것들뿐이었다. 입사 후 6개월 동안 이 이사는 그야말로 전쟁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 직원들 개개인의 애로사항을 듣는 것을 시작으로 생산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했다. 나름의 분석을 토대로 다양한 개선활동을 진행하는 한편, 납기 지연과 불량의 원인을 해결해 거래처와의 관계도 개선시켜나갔다.
“당시에는 대표님을 비롯해서 저와 다른 관리자들 모두 권위의식 없이 함께 일했어요. 휴일도 없이 모두 열정적으로 일했죠. 3개월 정도 지나니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어느 순간 직원들의 마음이 하나로 맞춰지는 순간이 오더군요. 그러고 나서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2000년 5월, 공장을 이전하면서 이 이사는 본격적으로 신규 고객 확보를 위한 영업에 나섰다. 한 회사에 매출의 100%를 의존하는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도약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다행히 2000년 들어 알루미늄의 쓰임새가 다양해지면서 많은 기회가 찾아왔다. 골프카의 경량화 소재로 사용되는 알루미늄 프레임을 시작으로 지하철 광고판의 알루미늄 프레임, 지하철 내장재 등으로 품목을 다양화하면서 거래처도 차츰 늘었다.

암도 무너뜨리지 못한 열정
밤낮없이 회사 일에만 몰두하며 1년 넘게 앞만 보고 달리던 이 이사가 쓰러진 것은 회사가 안정을 찾을 즈음이었다. 위암 2기였다. 수술을 받고 몇 달간 입퇴원을 반복한 그는 이 대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쓰러진 지 4개월 만에 다시 출근을 했다. 힘들면 언제든 마음대로 퇴근한다는 조건이었다.
반복된 항암치료로 몸이 쇠약했지만, 새로 시작된 KTX의 곡면 알루미늄 프레임 사업을 제대로 착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침대에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당시 KTX 국산화 사업이 막 시작되면서 알루미늄 부품 업체인 린노알미늄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이사는 다시 쓰러졌고, 회사에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생각에 2001년 9월, 입사한 지 2년 만에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회사에 복귀하기까지는 3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일복 있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이 이사가 회사에 복귀한 2004년은 린노알미늄에게 중요한 시기였다. 신규 물량이 늘어나자 이 대표가 큰돈을 들여 중고기계를 들여놓은 것이다. 1차 벤더로 가기 위한 투자였지만, 막 복귀한 이 이사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공장에 떡하니 한자리를 차지한 기계를 돌리려면 신규 거래를 더 늘려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고객사가 대규모 파업에 들어가면서 신규 거래처 발굴이 더 시급했다.
이 이사는 자동차부품으로 관심을 돌렸다. 자동차 경량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알루미늄이 자동차부품 소재로 막 주목받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경험이 일천한 업체에 발주를 주는 곳은 없었다.
“남들이 귀찮아서 안 하는 것, 힘들어서 안 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영업에 뛰어들었어요. 무작정 알루미늄 부품 업체에 찾아갔지만 만나주지 않더군요. 그렇게 한 달 간 계속 찾아갔더니 다른 업체에서 실패한 부품을 내밀며 한 달 시간을 줄 테니 만들어오라고 하더군요. 사장님을 비롯해 전 직원이 매달렸죠.”
그렇게 26일 만에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이 실현됐고, 이 일을 계기로 린노알미늄은 성장의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이제는 알루미늄 소재 전반에 걸친 압출, 가공, 벤딩, 조립은 물론이고 알루미늄 러버 브러시, 브래킷, 파이프류, 선루프용 알루미늄 레일류 등 고기능 알루미늄 자동차 부품 전반에 걸친 생산기술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해외 영업에 도전, 수출 100만 달러 목표
린노알미늄이 수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다. 내수만으로는 중장기적으로 회사를 성장시키기에 부족하다고 느낀 경영진은 해외시장 진출을 서둘렀다. 기술력을 갖추게 되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다. 이때부터 이 이사는 국내외 유명 전시회는 물론이고 바이어 초청 상담회를 쫓아다녔다. 국내 영업만 해온 이 이사에게도 해외 영업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다양한 수출 마케팅을 시도했지만 2011년까지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이사는 일본 시장에 주목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기업들의 부품 글로벌 소싱이 증가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2010년 일본 업체에 자동차 부품을 처음으로 수출했지만 금액도 미미했고 일회성으로 끝났다.
수출에 물꼬가 트인 것은 2013년 울산시 일본종합무역사절단에 참여한 이후였다. 일본 바이어를 직접 만나 기술을 시연하고 상담을 진행한 끝에 컨테이너 한 대분의 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수출이 이루어져 2013년 50만 달러를 수출했고, 무역의 날 행사에서 ‘신규수출우수기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수출은 기본적으로 기술 경쟁력이 전제되어야 하고, 품질관리 능력, 고객 대응 서비스도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활동들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감이 붙은 이 이사는 일본 거래처 2곳을 추가로 발굴했고, 올해는 북미 업체와도 2건의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100만 달러 수출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북미 시장과 유럽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해 수출 비중을 더욱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올 하반기 이 이사의 해외 출장 일정은 빡빡하다. 9월 15일부터 독일 프랑크루프트에서 열리는 모터쇼를 시작으로 10월에는 북미와 브라질, 11월에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해외 전시회와 수출상담회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이 이사는 새로운 도전 과제를 즐긴다. “비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 이사는 자신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역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도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목표에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에서 삶의 동력을 찾는다.

이세영 대표에게 이동규 이사는?

동지다 10년 넘게 함께하면서 많은 부분을 믿고 의지하게 됐습니다. 특히 영업 부문은 전적으로 이동규 이사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이 이사는 신뢰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며, 정말 성실하게 일합니다. 모든 일에 회사가 우선이죠. 너무 꼼꼼하고 치밀해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저로서는 전폭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은 결국 사람이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중소기업에서는 제대로 된 인재를 찾기 어려운데 저는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분신이다 이 이사와는 코드가 정말 잘 맞습니다. 원칙적으로 접대를 통한 영업을 하지 말자고 제안했을 때, 이 이사가 절대적으로 지지해주었습니다. 빨리 가기보다는 천천히 가더라도 반듯하게 가자고 했죠. 지금껏 이 원칙이 잘 지켜졌습니다. 서로 가치관이 맞았기 때문에 회사를 잘 이끌어올 수 있었고요. 지금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기입니다. 울산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투자가 많이 됐고, 해외 수출도 막 시작됐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회사를 발전시킬지는 저와 이 이사가 함께 만들어갈 몫입니다.

[2014-10-07]조회수 :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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