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9.21
표면처리기술의 한가운데서
㈜영광YKMC 기술연구소 정윤미 연구팀장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자리에 앉자마자 정윤미 팀장이 조심스럽게 문서 하나를 건넸다. 전날 보냈던 사전질의서에 대한 답변서였다. 반색을 하고 들춰보니 A4 5장이 빽빽이 채워져 있다. 이럴 경우 기자의 근심걱정은 싹 사라진다. 굳이 답변서를 읽지 않아도 이미 뭔가를 들은 느낌이다. 지난 1년간 ‘중소기업人 열전’ 코너를 진행하며 중소기업 직원들에게서 듣고자 한 것은 남들을 압도하는 탁월함이 아니었다. 삶과 일을 대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진지한’ 자세였다. A4 5장에 담겼을 진심을 짐작하며 시작한 인터뷰에서 역시나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향해 뚜벅뚜벅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또 한 명의 진지한 중소기업인을 만났다.


임숙경 전문기자 사진 손철희 객원사진기자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연구소

삶과 일에 대한 진지함이 누군가에게는 성실함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열정으로 나타난다. 정윤미 팀장에게는 그것이 완벽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모양이다. 자신에게 던져진 일은 꼭 해내야 하는 그녀의 성격이 수백 수천 번의 실패 후에 하나의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연구자에겐 제격이다. 그러니 다른 길을 가겠다고 연구소를 박차고 나갔다가도 다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 팀장에게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환경공학과 출신으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원자력 폐기물 관련 분야를 연구했다. 지금의 표면처리기술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연구원 신분을 버리고 4년간 수도원 생활을 했었다는 점이다. 스물아홉에 들어가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이 서른세 살 때였다.
“종교생활이라는 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과정입니다. 뭐든 하면 끝을 보려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공동생활에 잘 안 맞았습니다.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더군요. 수도생활을 하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다시 연구소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상에 나와보니 너무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전화를 걸고 받기만 할 수 있었던 휴대폰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메신저를 사용하는 모습에 눈이 핑핑 돌 지경이었다. 변한 세상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영광YKMC에는 애초에 사무직으로 지원했다. 그런데 운명이었을까. 마침 연구소를 설립할 계획이었던 장관섭 대표가 이력서를 보고는 연구소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짧지않은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였다.


예술보다 아름다운 표면처리의 세계

공부라면 정 팀장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표면처리기술은 버거웠다. 하다가 중단할 것 같으면 아예 시도조차 않는다는 정 팀장에게 표면처리는 도전해도 되는지 감조차 오지 않을 정도로 생소한 분야였다. 가르쳐줄 사람도 없으니 일일이 책과 자료를 뒤져가며 혼자 공부해야 했다. 그나마 국내 자료가 없어 일본 자료를 번역해가며 공부에 매달렸다. 현장 직원들의 도움도 받았다. 책에서 배운 내용을 일일이 현장에서 눈으로 확인하며 어깨 너머로 배우다보니 어느 순간 표면처리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표면처리는 한마디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입니다. 부식이 잘되는 알루미늄을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표면처리기술 덕분입니다. 표면처리를 통해 차가운 금속에 여러 가지 색상을 구현할 수 있는 것도 참 매력적입니다.”
그렇게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책으로 집필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됐다. 입사한 해인 2005년부터 쓰기 시작한 금속표면처리와 양극산화(아노다이징) 실무 책자가 4권이나 된다.
영광YKMC는 알루미늄 가공과 비철금속 표면처리 회사다. 5년 앞을 내다보며 미래를 준비하는 장 대표는 항상 “이거 한번 해봐. 실패해도 상관없으니까 일단 해봐” 하며 정 팀장에게 슬쩍 미션을 던져준다. 그중 하나가 마그네슘의 양극산화 표면처리기술이다. 정 팀장이 입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영광은 알루미늄 표면처리 전문회사였다. 알루미늄 표면처리 명장인 장 대표는 연구소 설립을 계기로 마그네슘과 티타늄 표면처리기술 개발에 나섰다. 당시 자동차 경량화 기술이 주목을 받으면서 철이나 알루미늄을 대체할 소재로 마그네슘이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자동차 부품으로 사용하기에는 마그네슘이 자연 상태에서 부식이 심해 고도의 표면처리기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본격적인 연구는 2008년에 시작됐다. 알루미늄보다 내식성과 내마모성이 뛰어난 마그네슘 표면처리 방법을 개발해야 했다. 여기에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영광YKMC의 비전은 친환경 경영, 기술혁신, 고객만족, 투명경영이다. 정 팀장은 친환경 경영과 기술혁신을 자신의 비전으로 받아들였다. 알루미늄 이상의 성능을 발휘하면서도 가공 과정에서 중금속이 포함된 환경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방법을 개발해야 했다.
2009년 유해물질인 불소를 포함하지 않는 마그네슘 양극산화 방법을 개발한 데 이어 작년부터는 기존에 개발한 방법보다 내식성과 내마모성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PEO(Plasma Eletronic Oxidation) 방법에 코팅 방법을 접목한 혼합표면처리 공정을 개발 중이다. 마그네슘 표면처리에 사용되는 6가크롬 대신 3가크롬을 이용한 방식이다. 6가크롬을 3가크롬으로 대체하면 내식성이 반으로 떨어진다. 기술적으로 마그네슘의 내식성을 원하는 수준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탓에 유럽에서도 6가크롬 사용 규제를 자꾸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2013년 말 현재, PEO 방법을 이용해 바닷물 환경에서 504시간을 버티는 수준으로 성능을 끌어올렸다. 알루미늄의 334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이다. 하지만 아직 연구는 끝나지 않았다. 정 팀장의 최종 목표는 1,500시간이다.


중소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살아간다는 것

사실 500시간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장 대표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긴 했지만, 부족한 장비와 인력으로 계속되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이뤄낸 성과다. 그러나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정 팀장은 중소기업의 연구 환경에 적잖이 놀랐다. 그녀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일할 때에는 최신장비로 연구하고 실험해볼 수 있었다. 원하면 언제든 개발에 최적화된 장비와 환경이 갖춰졌다. 그러나 중소기업에서는 달랐다. 부족한 환경에서도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내야 했다. 언제나 시간도 빠듯했다.
전기도금의 일종인 아노다이징 기술은 전기를 이용하는 기술이므로 전류량, 전압, 파형, 주파수 등의 조건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조건이 제품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하려면 각각의 조건에 맞는 다양한 종류의 정류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 필요한 정류기를 다 갖추기는 사실상 어렵다. 당연히 넉넉한 전류량을 가진 정류기 몇 대로 실험을 이어나가야 하니 정확한 데이터를 산출하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느덧 10년 가까이 근무하며 정 팀장도 이제는 저절로 적응이 됐다. 부족한 환경이나마 여러 가지 기술에 도전해볼 수 있는 것은 중소기업만이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12년에 개발한 알칼리 전해액을 이용한 티타늄 양극산화 방법은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뤄낸 놀라운 성과다. 품질테스트에서 자신들이 요구한 수준보다 높게 나오자 기술 개발을 의뢰한 미국 MOOG사 측에서도 놀랐을 정도라고. 그해 초에 ‘올해 안에 수출해야 할 제품’이라고 장 대표가 던져놓고 간 숙제를 정 팀장은 6개월 만에 해냈다. 현재 이 제품은 에어버스 A350 여객기의 날개 조정 부품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작년부터는 이스라엘에도 수출되고 있다.
“사실 아주 어려운 기술은 아닙니다. 물론 계속해서 실패했지만, 안 되면 다시 해보면 됩니다. 해보면 되는데 중소기업에서는 시도를 잘 안 합니다. 실패에 따른 비용 부담을 감수하기 어려운 탓이죠.”
지난 10년간 정 팀장이 출원한 특허만 해도 6건에 이르며, 현재 2건의 특허를 출원 중이다. 실용신안도 11건이나 등록 돼 있다.


열심히 일했던 선배로 오래 기억되길

숙제는 언제나 제때에 해내는 모범생이지만,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분야에서 연구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정 팀장은 올해부터 인하대학교 신소재공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젊은 친구들과 함께 학업을 이어나가는 일이 공부벌레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관련 학부를 전공한 친구들 수준에 맞춰서 공부하려니 따라가기가 힘듭니다. 나름 공부가 특기인 줄 알았는데, 역시 나이의 한계를 느끼네요. 밥을 사주며 젊은 친구에게 과외를 받기로 했어요.”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정 팀장은 벌써 다음 연구에 들어갔다. 휴대폰, 노트북, 태블릿PC 등에 사용되는 반사방지 필름 생산을 위한 양극산화 제품을 개발 중이다. 현재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는 제품인데, 기술력을 요하는 만큼 개발이 완료되면 국내의 관련 산업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속도와 밀도는 공존하기 힘든 속성이다. 거기에 지구력과 자기혁신까지 뒷받침되는 일은 더 어렵다. 전공도 아닌 분야에서 특허기술을 쏟아내고 있는 정 팀장의 연구성과가 경탄스러운 까닭은 그래서다. 의욕이 없어지고 매사에 시큰둥해지는 현상을 ‘노화’라고 한다면 정 팀장은 아직 젊다. 연구 욕심은 많지만 정 팀장의 꿈은 소박하다.
“후배들에게 인정받는 개발자로 남고 싶습니다. 제가 언젠가 이 분야를 떠나도 후배들로부터 ‘표면처리 분야에서 저 선배는 참 열정적이었어’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만큼 저도 노력을 더 해야겠죠.”
수도자로서의 꿈은 포기했지만, 정 팀장은 신이 자신을 꼭 필요한 곳에 보내주었다고 여긴다. 그녀에게 연구는 어쩌면 숙명과도 같은 존재다. 그러니 연구할 과제가 있는 한 공부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따사로운 햇살에 무심코 손을 내미는 소녀처럼, 매순간 마음을 다잡는 사제처럼.



정윤미 팀장의 연구 일지

연구 성과

· 산성액 혼합 전해액법을 이용한 티타늄 양극산화 방법(2006년)
· 옥살산법을 이용한 알루미늄 양극산화 방법(2008년)
· 불소를 포함하지 않는 마그네슘 양극산화 방법(2009년)
· 알칼리 전해액법을 이용한 티타늄 양극산화 방법(2012년)
· PEO 방법을 이용한 마그네슘 양극산화 혼합표면처리 공정 개발 중(2013년~)
연구 저서
「표 면처리 마스킹 공정 유해가스 정화장치 개발에 관한 연구」(2007년), 「금속표면처리와 아노다이징 실무」(2010년), 「양극산화처리 실무」(인천 재능대학교 신소재표면처리과 교재, 2012년), 「실용 표면처리기술 시리즈 5권 양극산화」(2013년)

[2014-12-05]조회수 : 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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