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9.21
“출판사가 잘 돼야 우리도 잘 되죠”
제이엠프린팅 김영호 부장

 

일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울 때가 언제냐고 묻자, 그는 “거래 출판사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라고 말했다. 인쇄제작 서비스 일선에서 활동하는 영업관리자로서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른 사람임을 느끼게 한다. 바로 제이엠프린팅의 김영호 부장 얘기다. 그는 지난 30여 년간 오직 한 분야, 인쇄소에서만 일해온 업계 전문가다.

동료들과 다시 시작하는 시니어
“가정이든 회사든 구성원들 손발이 맞아야 일이 잘 되잖아요. 우리 회사 임직원들이야말로 손발이 척척 맞죠. 그러니까 잡음 없이 회사가 잘 크고, 저 또한 일할 맛이 저절로 나요.”
영업관리를 총괄하는 김영호 부장(53세)은 잘난 척하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회사 자랑만큼은 아낌없이 쏟아낸다. 그도 그럴 것이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인쇄타운에 자리한 제이엠프린팅은 문을 연지 이제 3년밖에 안 된 인쇄소로, 역사는 짧지만 알차게 매출을 올리는 회사다. CTP출력실과 양면 동시인쇄가 가능한 2색기(일명 ‘투투’) 한 대와 4색기를 두 대나 갖춘 데다 진성 거래처만 20여 곳에 달하는 만큼, 지난해 매출 16억 원에 이어 올해는 24억 원을 예상한다. 이만하면 신생업체치고는 꽤 괜찮은 성적이다.
제조업체에서 구성원들 간의 호흡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특히 인쇄소는 인쇄물의 특성상 24시간 인쇄기계가 가동되면서 제본, 제책 등의 인쇄물 제작과정이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출판물의 특성상 시간을 다투는 관계로 영업과 생산부서의 업무 조율이 잘 이뤄져야 한다. 김정모 대표와 제작총괄 임정남 부장은 그와 함께 일한 인연이 각각 13년씩 됐고, 인쇄기사들도 10년 이상 된 동료들이다. 시쳇말로 눈빛만 봐도 서로 소통이 되는 조직인 셈이다.
이런 제이엠프린팅에게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출생비밀이 있다. 3년 전 장항동 내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 인쇄업체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일이 발생했다. 경력 많은 중장년층 업계 전문가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당시 공장장이었던 김정모 대표가 용기를 냈다. 창업과 함께 동료직원들과의 상생을 주도했고, 김 부장은 그중 한 사람이었다.
“전 직장 동료 7명이 함께 뭉쳤어요. 일단 우린 살아남아야 했으니까요. 물론 대표님의 개인적인 영향력이 컸습니다. 전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좋은 이미지와 신뢰감을 주었거든요. 당신의 잇속을 챙기기 보다는, 자기 것 버리고 직원들을 챙겨주는 리더십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을 믿고 따라가도 되겠다는 결심이 선 거죠.”
한솥밥을 먹어도 알다가도 모르는 게 사람 속이라지만, 김 대표와 김 부장은 서로에 대한 강한 신뢰의 끈이 있었다. 김 부장은 김 대표의 의리와 배려를, 김 대표는 김 부장의 책임감 있는 자세를 서로 높이 평가하고 존중했던 것이다.

제판필름 영업으로 이어진 인쇄 경력 30년
김 부장의 인쇄업계 경력은 30여 년이나 된다. 게다가 영업만 해온 게 아니라 제작실무에서부터 잔뼈가 굵었기에 종이, 컬러, 인쇄기, 제본 등 두루두루 해박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다. 인쇄실무를 훤히 알고 있어야 하는 영업관리자로서는 제격인 셈이다.
“20대 초반에 인쇄소에 발을 들여놓았지요. 처음엔 필름을 판에 얹어서 굽는 제판실에서 15년 정도 일했죠. 그러다가 필름출력 업무를 했고, 최근엔 영업관리를 하게 됐습니다. IT발전과 함께 인쇄분야 제작 시스템도 큰 변화를 겪었잖아요. 그 흐름에 따라 제가 하는 일도 달라진 거죠.”
인쇄소에서 필름을 강판에 얹어 판을 굽는 식의 수작업으로 제판작업을 하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물량이 많은 책이나 필름으로만 자료가 보관되는 인쇄물 일부에는 아직도 예전의 방식이 유지되긴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편집디자이너의 컴퓨터에서 편집작업이 마무리되면 곧장 인쇄소 CTP출력실 컴퓨터로 전달되어 자동적으로 판 작업이 빠르게 진행된다. 필름출력이나 제판작업 인력의 역할이 사라진 것이다.
출판인쇄 영업은 마케팅 개념보다는 관리 개념에 가까운 업무다. 김 부장의 일은 20여 곳의 출판사 편집 담당자들과 수시로 소통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거래처를 직접 방문해 편집자들에게 인쇄 시스템과 새로운 정보를 전달해주고 인쇄제작 일정을 상담한다. 인쇄실무 경력이 풍부한 그로선 제작과 관련된 편집자들과의 소통이 수월한 편이다. 출판편집자들의 연령대가 보통 20∼30대로 여성들이 많은 편이고, 50대인 그에게는 딸 또래이기도 하므로 사소한 입씨름 따위는 하지 않는다.
때로는 인쇄상태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담당자들이 컬러나 제본 등에 불만을 제기하는 일도 발생한다. 감성과 섬세함이 기본인 출판편집자들은 보통 사람에 비해 예민한 편이고, 각자의 개성이 강한 편이다. 이런 업계의 인력 특성을 잘 알기에 그는 조금 서운하거나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상대를 먼저 이해하고 끌어안으면서 가는 쪽이다. 다만 그에게도 종종 눈에 보이지 않는 업무 스트레스가 생긴다.
출판영업자들에게 납기준수는 가장 큰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베테랑 김 부장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영업관리자는 생산팀과 거래처 양자의 입장과 상황을 잘 조율하는 것이 임무이지만 그게 뜻대로 되질 않는다.
“생산현장 인력과 장비는 24시간 대기 상태입니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에 인쇄할 데이터(편집물)가 넘어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제작도 늦어지는 거죠. 출판사들이 원고를 약속보다 늦게 주고, 납기는 처음 약속대로 해달라는 일도 잦아요. 수험서적의 경우, 하루만 늦게 발행돼도 출판사 입장에서는 피해가 아주 클 수 있거든요.”
제이엠프린팅은 단행본, 기술서적, 학원교재 등을 주로 인쇄 제작한다. 경력이 오래됐으니 출판분야 종사자들의 심정이야 꿰차고도 남는다. 편집작업이 물건 찍어내듯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 또 담당자 입장에서는 책에 조금이라도 더 애정을 들이다보니 늦어진다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안다. 특히 기술서적과 학원교재는 납기일이 매우 중요한 만큼 인쇄진행 상황에 신경을 곤두세울 때가 많지만, 이마저도 영업관리자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여긴다.

회사도 자신도 중요한 건 오직 품질과 신뢰뿐
인쇄업계는 예나 지금이나 ‘호황’이라는 말이 좀처럼 나오질 않는 분야다. 화학약품과 기름 냄새를 피할 수 없다보니 제작 현장은 ‘3D 업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제품의 고부가가치를 논하기 어렵다. 작업환경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으로 인쇄판을 걸고 기계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점검해야 하므로 현장 인력은 경력자를 절대적으로 요구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현장에서 청년들을 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한 분야만 묵묵히 걸어온 업계 전문가인 김부장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업계 종사자들이 대부분 중장년층으로 고령화 추세입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참으로 걱정스럽죠. 젊은 인력들을 데려다가 전문가를 키워야 하는데 선뜻 하겠다는 사람도 드물고,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인력에 대한 선투자가 이루어져야 하거든요. 참 고민스러운 일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종사자들의 고령화는 가속되고 이로인해 새로운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업계는 불황인데 업체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장에서 은퇴한 인력들이 소규모 인쇄회사를 창업하는 사례가 많아진 데 그 이유가 있다. 영업관리자인 김 부장으로서는 이 또한 피부에 와 닿는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쳐나면 경쟁만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인쇄단가는 이미 공개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단가는 비교적 낮은 수준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가격경쟁은 무의미하죠. 그렇다면 경쟁의 키워드는 오직 품질과 신뢰뿐입니다. 이 때문에 대표님과 간부들이 품질 업그레이드에 대한 회의를 자주 하죠. 우리 회사는 큰 무리가 따르지 않는 선에서 신형 인쇄장비들로 교체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편입니다. 양면 동시인쇄가 가능한 2색기를 도입한 것도 그 대표적인 사례죠. 장비가 좋아야 현장 인력들이 일하기도 쉽고, 인쇄품질도 확실히 다르게 나오거든요.”
거래처들과 직접 부딪히는 영업관리자이기에 누구보다도 인쇄품질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는 신뢰 또한 자신의 무기라고 여긴단다. 직장 내에서는 물론이고 거래처 관리에서도 상호 신뢰가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이 때문에 그간 직장생활 내내 ‘거짓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으며 일해왔고, 이로 인해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아온 터다. 이 때문일까? 회사의 역사가 짧은 만큼 재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보니 회사 매출이 늘어나도 자금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단다. 이 때문에 결재 시 거래처 담당자에게 솔직하게 회사 입장을 대변하면서 어음보다는 현금결제를 부탁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협조가 잘 이루어지는 편이라고.
그가 일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울 때는 인쇄제작 서비스를 해준 출판사의 책이 잘 팔릴 때란다. 출판사가 잘 되어야 인쇄물량도 늘어나고, 그래야만 함께 오랫동안 손잡고 갈 수 있다는 게 상생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게다가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하는 50대에 전 직장 동료들과 새롭게 출발한 만큼, 자신의 힘이 다하는 날까지 회사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기로 작정했단다.
문을 연 지 3년도 채 안 된 회사이지만, 사무실 한편에 놓인 책장들에는 그간 인쇄하여 납품한 수백여 권의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실적이나 다름없는 이 책들 앞에서 활짝 웃는 김 부장의 얼굴에는 나름대로 그만의 자부심과 흐뭇함이 드러난다.

박창수 전문기자 사진 김윤해 객원사진기자​

[2015-09-30]조회수 :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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