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9.24
지금의 매니저 경력, 훗날 사업의 밑거름이 되겠죠
테일게이트 터번 크리스 부매니저

 

스물여섯 살의 미국인 청년 크리스. 한국인이라면 취준생의 길을 걷고 있을 나이지만, 그는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한 후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직업은 다소 이색적인 스포츠바 부매니저. 물론 그가 절실히 원했던 직업은 차량정비 엔지니어였지만, 언어 때문에 직장을 찾기가 쉽지 않았단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일도 즐겁고 만족스럽다고. 오늘의 경험이 훗날 비즈니스를 할 때 꼭 필요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보며 일하는 스포츠바 부매니저
“고등학교 다닐 때 풋볼 선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에서 만족을 느끼죠. 늘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면서 일하니까요.”
미국에서 결혼 비자로 한국에 온 크리스(Chris Sweigart)의 직업은 색다르다. 스포츠바 부매니저다. 국내에서는 외국인들이 많은 거리에서나 볼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스포츠바가 보편화되어 있다. 스포츠바는 야구, 하키, 미식축구, UFC 시즌에 맞추어 각종 스포츠 경기를 라이브 혹은 재방송으로 시청하는가 하면, 포켓볼, 블랙잭테이블, 다트, 비어퐁 같은 실내 게임을 하면서 음식과 음료, 술도 즐길 수 있는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음식이 결합된 공간이다.
크리스는 지난 1월부터 평택의 미군부대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 근처에 있는 스포츠바 테일게이트 터번(Tailgate tavern)에서 근무 중이다. 주방과 서빙 직원들 관리와 고객응대가 주요 업무이지만, 바쁠 때는 직접 음식도 나르고 칵테일도 만든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까다로운 손님이 왔을 때는 힘듭니다. 주문한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만을 제기할 때는 다른 음식으로 대체해 드리지만, 그마저도 싫어하고 아예 돈을 내지 않겠다고 할 때도 있죠. 어쩌겠어요. 손님이 왕이니까 손님을 행복하게 해줘야죠.”
자신이 입사한 후 고객 증대나 서비스 변화에 따른 기여도가 얼마나 큰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자랑하고 싶은 것 한 가지는 2월의 슈퍼볼 시즌을 잘 치른 것이란다. 미국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미식축구 경기인 ‘슈퍼볼’이 매우 큰 행사인데, 이때는 스포츠바의 역할이 매우 큰 편이다. 지난해 7월에 문을 연 테일게이트 터번은 올해 2월이 처음 맞는 슈퍼볼이었다. 이때 크리스는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했다. 사장이나 다른 직원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지 예상을 못해 걱정했지만, 미식축구를 좋아하는 데다 스포츠바 근무 경력이 있었던 크리스는 이 기간 동안 여유 있게 대처하며 영업이 문제없이 잘 진행되도록 움직인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매니저로서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더욱 높아졌다는 크리스. 업소를 찾아오는 고객 중엔 한국인도 있지만, 아무래도 주요 고객은 미군이나 그 가족들이다. 그는 한국에서 미군으로 2년 동안 있었고, 민간인으로 1년 이상을 거주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한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며 도움을 줄 수 있고, 여기서 보람을 느낀다고. 그는 타국에서 자국민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멋진 일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친구 같은 장인, 똑똑한 아내 있어 행복한 크서방
“한국과 이렇게 깊은 인연을 맺을 줄은 몰랐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진 거죠. 휴일이면 종종 아버님(장인)과 소맥을 같이 즐기며 친구처럼 지낼 수 있어 좋습니다. 대화가 정말 잘 통하거든요. 물론 제가 가장 사랑하는 미현 씨가 있어서 항상 행복하죠.”
천안의 처가 인근에서 달콤한 신혼생활을 하고 있는 크리스의 고향은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레딩시티다. 그가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딛은 건 2012년 10월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 1년을 공부한 후 군에 입대했는데, 발령을 받은 곳이 용산 미군기지였다. 낯선 타국 생활로 처음엔 많이 힘들었지만, 한국인들이 인정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가면서 그는 빠르게 한국 문화와 친근해졌다고 한다.
이런 크리스에게 2013년 8월에 우연히 만난 아내 장미현 씨는 그의 인생길을 새롭게 바꿔놓았다. 밝은 인상의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크리스는 반했고, 만나면 만날수록 미현 씨의 매력에 사로잡혔다고 고백한다. 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의지와 강한 추진력도 멋있게 느껴졌단다. 때문에 매사에 급한 게 없는 자신에게 아내의 적극성은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미현 씨는 처음부터 크리스에게 마음을 뺏긴 것은 아니었다. 홍대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당시에 일 때문에 외국인들을 많이 만났고, 그래서 크리스의 프러포즈가 특별하지 않았단다.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크리스를 만나면서 미현 씨는 그의 장점을 더 많이 알게 되었고, 그것이 사랑으로 이어진 케이스다. 크리스는 급한 상황에서도 허둥대지 않고 진지하게 대처하는가 하면, 조금 급한 성격인 미현 씨는 자신을 늘 묵묵히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크리스의 배려심에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 성격으로 보면 두 사람은 상반된 스타일이다. 그래서인지 궁합이 더 잘 맞는 이 커플은 연애시절부터 지금까지 어언 4년간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단다.
크리스와 미현 씨에게도 사랑엔 국경이 없다는 말이 통했다. 2년간의 군복무를 마친 후 그는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젊은 연인들의 뜨거운 사랑에 거리와 시간, 문화는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2015년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지난해에 크리스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간호사로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크리스에게 미래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느긋한 성격만큼이나 시간을 기다리는 쪽이다.
“제 꿈은 본래 풋볼 선수였는데, 체격조건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면서 꿈이 바뀌었어요. 스포츠구단 경영자가 되려고 했죠. 지금은 공부도 꿈도 잠시 뒤로 미뤄 놓았어요. 공부는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은 미현 씨와의 사랑, 한국에서의 일과 다양한 경험이 중요한 만큼, 현실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훗날 먼진 스포츠바 차릴 터
크 서방이 되어 아내의 나라에 다시 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오기 전부터 가장 고민스러웠던 것이 일자리였다.
“사실 제가 원했던 직업은 차량정비 엔지니어였어요. 그런데 구인 사이트에 올라오는 정보는 주로 외국인 영어강사 직업이었어요. 차량정비 분야 직원을 찾는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학력을 요구하거나 한국어가 유창한 사람을 찾더라고요. 저는 4년제 대학 학사학위가 없고,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힘이 들었죠.”
미군 시절, 그는 2년간 차량정비 업무를 맡았다. 나름대로 많은 기술을 익혔기에 비행기나 탱크를 제외하고는 모든 차량정비가 가능하다고 그는 자부하고 있었다. 기업 취업이 어려워서 미군 경력을 무기로 미군부대와 관련된 일자리를 구하려 했는데, 이 또한 쉽지 않았다. 미군 가족들을 우선순위로 취업시키므로 결혼 비자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혔다. 매사에 긍정주의자인 그는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생각으로 유연성을 발휘하기로 했다. 그래서 택한 직업이 스포츠바 매니저였다.
스포츠바 직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야간에만 문을 여는 유흥업소 직원과 다르다. 스포츠바 매니저는 하루 8시간,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근무가 가능하다. 지인의 소개를 통해 그는 이태원의 딜린저스 펍에서 약 9개월 동안 즐겁게 근무했다. 하지만 올 초에 또다시 구직시장 문을 두드려야 했다. 아내의 직장 문제로 인해 천안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 취업 사이트를 통해 평택에 있는 지금의 ‘tailgate tavern’ 부매니저 자리를 찾게 되었다. 이미 1년 경력을 쌓았기에 직장에서의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출퇴근을 할 때마다 적잖게 긴장을 해야 하는 게 불편한 점이란다.
크리스는 자신이 성장해온 미국 문화와 한국 문화를 비교하기보다는 현실을 수용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그는 미국의 젊은이들은 자유를 추구하는 편인 데 반해, 한국의 20대 젊은이들은 공부를 더 많이 하는 것 같다고 칭찬한다. 다만, 요즘처럼 취업난이 극심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현실을 비추어볼 때, 자신이 보는 시각은 조금 다르다고 말한다.
“대기업에 무작정 취업을 하기보다는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고 대기업에 도전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대기업에 바로 취업이 안 되었을 때, 그 공백기간 동안 작은 회사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으니까요.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에서는 직원들끼리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 같고요.”
크리스는 훗날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스포츠바 매니저라는 직업과 경력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언제가 되든 고향의 다운타운에 정말 멋진 스포츠바를 차릴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장이 되려면 반드시 직원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경험해봐야 한다는 게 자신의 생각이란다. 스물여섯이라는 나이답게 마냥 젊고 순수해 보이지만, 그의 내면에선 나름 야무진 경영 마인드가 다져지고 있는 듯하다.

박창수 전문기자 사진 김성헌 객원사진기자​

[2017-04-26]조회수 :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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