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9.21
창업하고 딸도 낳았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죠
네이버후드 오너 셰프 스태퍼드 그레인저

뉴질랜드 외식업계에서 유능한 매니저로 인정받았던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6년 전 한국인 아내와 결혼한 그는 다년간 외식업계에서 쌓은 노하우와 남다른 비즈니스 감각을 무기로 한국에서 수제맥주 전문점을 창업했다. 오너 셰프인 스태퍼드 그레인저다. 그가 운영하는 신촌 창천동의 펍 ‘네이버후드’는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단골들로 북적인다. 그가 직접 손으로 만드는 피자는 안주를 뛰어넘어 점포의 얼굴격인 인기 메뉴가 됐다. 성공적인 사업 안착과 함께 지난해에는 딸까지 태어나 지금은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만큼 행복하단다.

피자 굽고 수제맥주 파는 뉴질랜드 출신 셰프
“피자는 제가 직접 만듭니다. 그래서 정말 바빠요.”
서울의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색다른 수제맥주와 미국식 수제피자가 펍의 얼굴이라고 자랑하는 뉴질랜드 출신의 오너 셰프 스태퍼드 그레인저(Stafford Granger). 그는 신촌 연대 앞 창천동에 자리한 펍 ‘네이버후드(Neighborhood)’의 대표다. 점포 문을 열기 전인 오후 3시부터 밤 1시까지 수제맥주에 잘 어울리는 피자와 샐러드 스낵 등을 직접 만든다. 손님이 많은 주말이면 하루 60∼70판의 피자를 구워낸다. 60여 석에 달하는 홀이 손님들로 가득 찰 때는 두세 명의 아르바이트생만으로는 감당이 안 돼 틈틈이 그는 주방에서 나와 직접 맥주 서빙을 거들기도 한다. 아직은 건강한 마흔한 살의 중년이지만, 하루 11시간 동안 요리를 하고 손님을 맞이하다 보면 힘이 들기 마련이다.
“사실 피곤하죠. 하지만 마음은 늘 즐겁습니다. 손님들이 맥주 맛, 피자 맛에 만족하니까요. 제가 만든 피자를 좋아하는 단골손님들이 많아졌어요. 포장 구입하는 고객들도 늘어나고 있어요.”
스태퍼드는 피자의 생명은 도우(빵)에 있다고 말한다. 손님들이 한결같이 도우가 고소하고 바삭바삭하며 맛있다는 얘기를 한단다. 여기에는 반죽의 배합과 이틀 동안 숙성시키는 그의 특별한 노하우가 숨어 있다. 한번은 손님이 가고 난 자리를 정리하면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어느 손님이 피자를 먹고 난 후, 남은 피자 테두리(빵)로 ‘맛’과 ‘굿’ 이라는 글씨를 만들어놓고 간 것.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어 폰으로 사진을 찍어놓고 수시로 들여다본다. 이쯤 되면 스태퍼드는 본래 피자 전문 요리사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음식과 맥주를 판매하는 이를테면 레스토랑과 맥줏집을 합친 개념의 바(BAR) 매니저로 일했다. 처음엔 단순히 맥주잔만 치우는 아르바이트였지만 성실성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BAR 매니저로 올라섰고, 졸업 후엔 다수의 BAR를 운영하는 유명회사의 직원이 되어 총괄 매니저이자 매니저를 양성하는 강사로도 활약했다. 그러니 그는 외식업계 운영관리 20여 년의 경력자다. 셰프들로부터 피자에 대한 지식을 틈틈이 익혀두었던 그는 창업하기 이전에 수제피자 명인으로부터 직접 기술을 익혔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피자 도우만큼은 직접 만들기를 고수하는 직업정신이 강한 완벽주의자다. 게다가 BAR 매니저 출신답게 네이버후드에서 판매하는 ‘더 랜지 부루잉 컴퍼니’의 다양한 수제맥주 탄생에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15종이 넘는 수제맥주 중 10여 종은 맥주를 제조하는 대전의 양조업체에 네이버후드가 직접 지분을 투자하고 개발과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스태퍼드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어 만들어진, 이를테면 네이버후드 자체 브랜드로 맛의 차별화가 확실하다.

아내의 나라에서 20여 년 경력 노하우를 살리다
스태퍼드가 창업한 펍(네이버후드)은 체인점이 아닌 자체 브랜드 독립점으로, 맥주는 물론이고 피자를 비롯한 안주를 모두 직접 만든다. 일주일에 3∼4일은 네이버후드에 나와 서빙이나 관리를 돕는 구문정 씨는 스태퍼드의 아내다. 구 씨는 중학교 때 뉴질랜드로 유학을 간 후, 6년 전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호텔업계에 근무했다. 두 사람은 이미 15년 전부터 호텔과 외식업계에서 각각 매니저로 일하면서 친구처럼 지내던 사이. 각자 사귀던 파트너들과 결별한 후 싱글로 지내던 시절, 우연한 계기에 연인으로 발전하여 결혼에 골인했다. 아내가 친정 부모님과 가까이에서 살고 싶어 하며 한국행을 제안하자 스태퍼드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처음 접하는 이국땅의 문화가 낯설 법도 한데, 펍 매니저답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국인들의 외식문화였다. 글로벌 문화 수용이 빠르면서도 낙천적이고 술을 좋아하는 국민성 때문에 펍을 운영하기에 매우 유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감 잡은 것이다.
“뉴질랜드의 펍들은 주말에는 손님이 많지만 평일에는 한산해요. 영업 세율이 매출의 30∼40%에 달하는 데다 시급은 매우 높은 편이죠. 외식업 점포 비즈니스를 하기에는 좋지 않은 조건이죠.”
딸만 둘인 처가인지라 장인, 장모는 스태퍼드를 아들만큼이나 끔찍하게 여긴다. 한국 생활 초기에 장인은 사위를 위해 매주 시간을 정해놓고 한국어 개인교사를 자청했을 정도다. 그러니 당신들의 눈에는 소위 ‘술장사’나 다름없는 펍을 창업 한다는 것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욱이 한국인들의 음주 에티켓이 칭찬해줄 정도는 아닌 게 현실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철저한 시장조사와 분석을 거친 스태퍼드는 수제맥주 전문 펍에 도전장을 냈다.
“한국 외식시장 환경이 문을 여는 곳만큼이나 폐업을 하는 곳도 많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실은 우리 부부도 속으로는 걱정을 했죠. 하지만 손님은 꾸준히 늘어났어요. 일하는 재미가 저절로 생겼어요. 정말 기뻐요.”
수제맥주 양조장에 자본과 아이디어를 투자하고 모든 음식의 재료에 들어가는 소스는 그의 손으로 일일이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주인장 스태퍼드는 음식을 만들고 고객을 서비스하는 일에서만큼은 기본을 지키고 정성을 들이는 데 철저한 편이다. 오죽하면 집안에서는 애지중지하는 아내에게도 점포에서만큼은 ‘나를 따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날리는 깐깐한 사장으로 변신할까. 그래서일까? 문을 연 지 4년이 된 네이버후드는 체인 브랜드 점포들이 주를 이루는 신촌 상권에서 차별화된 자체 브랜드 펍으로 단골 확보와 매출에서 성공한 케이스다. 가격파괴보다는 맛의 차별화를 내건 점포이므로 고객층도 나름 주머니 사정이 여유 있는 직장인들이 많은 편이고, 인근의 대형병원과 대학가의 인텔리층도 다수를 차지한다. 요식업계 베테랑인 스태퍼드의 차별화 전략이 제대로 통한 셈이다.
그래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 외식업소다. 손님의 입맛과 성격을 일일이 맞춰주는 고객만족 서비스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더욱이 뉴질랜드와 한국은 문화 자체가 다르니 외국인 점주인 스태퍼드로서는 고객응대와 관리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터이다. 흔히 진상(?) 고객들을 만나면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오클랜드의 경우,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아요. 그래서 다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입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 착한 손님, 힘든 손님이 각각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손님들은 우리에게 돈을 주는 고마운 분들이라는 겁니다. 돈이 들어오는데 화를 내면 안 되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술 마시고 큰소리 내는 손님이 없었던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라고 덧붙이는 스태퍼드. 고객의 소중함을 제대로 읽고 있는 사장이다. 외식업계 선수(?)답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할 만큼 프로 정신과 재치가 돋보인다.

스태퍼드와 구문정 씨는 6년 전 결혼했고, 이듬해에 한국으로 왔다. 지난해에는 예쁜 딸을 낳아 사업 성공에 이어 가정의 행복까지 맘껏 끌어안고 사는 커플이다.

마흔에 딸 얻고 행복한 나날
창업을 한 후로 스태퍼드는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점포를 사수했다.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그만큼 열정을 쏟았다. 그런데 부지런한 그가 두어 달 전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반드시 자신의 휴무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날은 아내인 구 씨가 점포관리를 책임진다. 장사가 잘 되니까 조금은 게으름을 피우는 걸까?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있죠. 우리 딸과 놀아주는 거죠. 사업도 번창해야 하지만, 정말 소중한 것은 가족과 함께 행복한 것이잖아요. 딸 세라(Sarah)가 이제 두 살밖에 안되는데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적어요. 그나마 주 하루만이라도 세라와 놀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몰라요. 저로서는 기저귀도 갈아주고 이유식도 먹여주면서 세라와 보내는 시간이 바로 힐링입니다.”
완벽한 딸바보다. 스태퍼드 입장에서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나이 마흔 살에 얻은 딸이니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겠는가. 이제 걷기와 말하기를 시작하는 세라가 자신의 마음에 안 들거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못하면 자기표현을 할 정도로 ‘미운 두 살’이지만, 그래도 곁에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단다. 나이가 젊다면 아이를 더 갖고 싶은데, 지금으로서는 세라를 잘 키우는 것만으로도 버겁지 않겠냐고 엄살을 부린다.
사업 전개상으로 볼 때 네이버후드는 이제 2호점을 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창천동 본점이 매출이나 인지도 면에서 자리를 확실하게 잡은 터라서 직영점이든 체인점이든 사업 확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욱이 직접 투자한 수제맥주 양조장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점포가 많을수록 좋다. 스태퍼드로서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급하게 서두르고 싶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저는 지금 이대로도 만족스럽고 행복합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것들을 가지려고 애를 쓰고 욕심을 내기도 하죠. 제가 만든 음식과 우리 수제맥주를 찾는 마니아 고객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뿌듯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있으니까요”
스태퍼드의 오른팔에는 장미꽃과 ‘ROSE’라는 타투가 그려져 있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 이름이다. 그가 아내와 딸 그리고 장인, 장모 등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돈과 일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가족이란다. 그는 말했다.
“한국에서의 삶, 더 이상 부러울 게 없습니다”라고.

박창수 전문기자 사진 김성헌 객원사진기자

 

[2017-12-01]조회수 :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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