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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코리아 워커
엄마의 나라에 뿌리내리고 살 겁니다
승일미디어그룹㈜ 디자인팀 정기원 과장

 

‘꽃미남 과장님’으로 불리는 스물일곱 살의 정기원 과장. 경력 4년의 편집디자이너이자 승일미디어그룹㈜ 편집1팀장인 그의 국적은 대만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 온 지 어느새 10여 년이 넘었고, 이제는 한국 문화에 너무 익숙해져 국적만 대만일 뿐 외국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한국인으로서의 현실에 만족스럽단다.

꽃미남 과장, 알고 보면 대만 출신
올해로 입사 4년 차를 맞이한 편집디자이너 정기원 과장. 그를 아는 사람들은 흔히 ‘세 번 놀라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정 과장은 출판디자인 분야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하고 있는 승일미디어그룹㈜(대표 정재원, 이하 SMG)의 디자인 3팀 중 1팀을 이끌고 있는 스물일곱 살의 젊은 팀장이다. SMG는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잡지, 단행본, 홍보물 등 출판물 입찰 시장에서 지난 한 해 동안 60여 건을 수주했는가 하면, 유통업계 광고홍보용 인쇄물 수주 확대로 2016년 연간매출 60억 원대를 올린 출판디자인계 강소기업이다. 이처럼 성장 가속도가 붙은 회사에서 정 과장은 남들 같으면 이제 막 취업을 준비할 나이에 7명의 디자이너를 이끌고 있다. 게다가 20대, 30대로 구성된 50여 명의 직원 중 해마다 인기투표에서 단연코 그는 1위다. 훤칠한 키의 꽃미남으로, 사람들의 호감을 얻는 그의 놀라운 비밀은 다름 아닌 그의 국적이 대만이라는 것.
“제가 굳이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당연히 한국인인 줄 알아요. 아버지는 대만 분이고 어머니가 한국인이죠. 한국에 온 지는 10여 년 됐어요. 국적은 대만이고 한국 영주권을 갖고 있습니다.”
정 과장은 고향인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냈다. 국제학교에서 공부를 했기에 중국어, 영어를 동시에 사용했다. 칭다오의 경우 한인들이 많은 데다, 어머니가 한국인이기에 일상생활에서 한국어와 한국식 문화에도 익숙해 있었다. 특별한 어려움이나 불편함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에 온 후에 발생했다. 한중 관련 사업을 하는 부친으로 인해 대전으로 이주해 오면서부터다.
“처음 1, 2년은 국제학교를 다니다가 일반학교로 옮겼어요. 그런데 많이 힘들었어요. 국제학교처럼 자율적이고 학생을 이해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주입식 교육이다 보니 제가 못 따라가고 적응이 안되었죠. 그러다보니 고등학교 시절, 공부와 멀어졌어요.”
20대 초반에 그는 한동안 목표도 없이 정신적인 방황을 했고, 한국생활에서 만족을 찾지 못했다. 이런 그에게 SMG는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의 기회를 안겨준 직장이 됐다. 2013년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이 막연하게 잠시 일해보겠다고 구직 사이트를 통해 면접을 보고 디자인부서에 보조직원으로 취업했다. 그때만 해도 자신이 출판분야의 편집전문 인력으로 성장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고 한다.

어깨 너머로 배운 디자인, 전문가의 길로
젊은 시절에는 어느 회사에서 일하느냐보다도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가 직장생활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처음엔 디자인 프로그램을 익히는 것부터 배우면서 선배들의 작업보조 역할을 했다. 뚜렷한 목표가 없었기에 스스로도 몇 달 일하다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근무를 해보니 의외였다. 디자인 작업보다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나 윗사람들과의 소통이 즐거웠고, 늘 긍정적인 시각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 정재원 대표의 인간적인 마인드가 가슴에 와 닿았다. 이 같은 사내 분위기는 일에 대한 열정을 만들어주었고,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직장인으로, 전문인력으로 자신이 발전하고 성숙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제가 국적이 다르다고 해서 특별하게 대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직원들이 편하게 느껴지고 회사가 좋아지다보니 6개월이 훌쩍 지나갔고, 일에 대한 욕심도 생기기 시작했어요. 모르는 것은 무조건 물어보면서 흉내를 냈죠. 1년쯤 됐을 때는 나도 편집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뒤늦게 들은 얘기지만, 사실 처음 1년 동안 자신을 이끌어주던 팀장은 ‘정 과장이 귀찮을 정도로 이것저것 물어서 많이 힘들었다’고 하더란다. 정 과장은 자신이 얼떨결에 일을 배운 것 같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의 내면에는 디자인에 대한 남다른 잠재력과 열정이 숨어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정 과장은 직원들과 함께 한 작업의 성과가 좋게 나타날 때 일에서의 보람이 가장 크게 와 닿는다고 한다. 편집디자인은 그 특성상 저녁 늦게까지 작업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데다, 최근 몇 년간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작업량도 크게 늘어나 주말을 제외하고는 일 속에 파묻혀 살다시피 할 정도이다. 하지만 정 과장은 이제 디자인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게 됐다. 그는 사내에서 디자인 작업 속도가 가장 빠른 ‘디자인퀵’으로 불린다. 전문교육도 받지 않았던 그가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해를 거듭하면서 진급도 하며 예비부서장으로 낙점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그만큼 실력이 남다르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오래 못 버틸 거라고 여겼던 가족들마저도 이제는 박수를 쳐주고 있단다.
“이제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뭐냐고 물으면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사실 언제부터인가 모르지만, 저는 그냥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 같아요.”
동료들이나 주변사람들 역시 그는 국적만 대만일 뿐, 한국사람이나 다름없다고 못 박는다. 정 과장 역시 그렇다. 이 때문에 한때는 국적을 바꾸려고도 했지만, 부친의 뜻은 달랐기에 국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단,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한국적인 사람임을 자부한단다.
디자인 1팀의 멤버는 정 과장을 포함해 총 8명. 팀원들이 모두 여성이니 그는 청일점이다. 친구들은 꽃밭에서 일한다고 부러워하지만 팀장인 그의 입장은 다르다.
“직장에서 성별은 중요하지 않죠. 팀워크이죠. 물론 분위기는 한결 부드럽고 화기애애합니다. 디자인은 처음 콘셉트를 어떻게 잡느냐가 관건이라서 늘 고민과 신중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우리 회사는 공공기관 출판물 입찰에 참여해서 실력으로 일을 따내는 회사인 만큼, 늘 긴장 상태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슬럼프 딛고 진짜 디자이너로
경력과 직급이 가져다주는 무게감 때문일까. 그는 일에서만큼은 나이에 비해 한참 성숙한 면모가 도드라진다. 아픔 없이 크는 나무 없듯이 회사생활도 마찬가지다. 일을 처음 배울 때는 도전정신과 호기심이 충만해서 앞만 보고 달리지만, 어느정도 익숙해지면 갈등이나 슬럼프에 빠지면서 흔들리는 시기가 찾아온다. 2년 전, 정 과장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디자인을 계속 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인가? 하는 문제로 갈등을 겪었어요. 처음에는 시키는 것만 하면 되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되니까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고, 또 아랫사람들도 챙겨야 하니까 힘도 들었습니다.”
중간 위치에 있는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과정이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기에는 인간관계에서 정이 깊어졌고, 일을 버리기에는 디자인의 매력에 빠져 있었기에 마음 불편했던 시간이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고 한다.
‘디자인에 정답은 없다’고 말하는 정 과장은 어떤 틀에 끼워맞추는 식이 아니라 그때그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기에 만족과 즐거움도 크다고 말한다. 어느새 연봉도 대졸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친구들의 중견기업 수준 그 이상이다. 다만, 일을 떠나서 그에게도 요즘 한 점 그리움이 있다. 영주권자인 만큼 한국에 정착해서 살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유년시절을 보낸 칭다오에 가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단다. 국제학교 시절 친구들과 즐거웠던 일화들이 떠오르곤 해서 꼭 한번 갈 작정이란다. 국적은 대만이어도 삶의 뿌리는 한국 땅에 내리겠다는 정 과장. 그를 보노라면 글로벌시대 지구촌은 어디서든 정들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정기원 과장의 돌직구
“해외여행 서류, 금융업무 절차 복잡해요”

정재원 대표 정 과장, 새해 들어서는 지각 안 하죠?
정기원 과장 저의 아킬레스건을 또 건드리시네요.
정 대표 웃자고 하는 말이에요. 올해도 입찰에서 좋은 실적이 나올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해주세요. 실적 좋으면 해외여행 티켓으로 포상할 수도 있습니다.
정 과장 해외여행요? 해외 한 번 나가려면 불편해서….
정 대표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정 과장 제가 외국인이다 보니 해외여행을 맘껏 다니기 힘들어요. 일본여행 하고 싶어도 대사관 가서 비자 받고 그러려면 절차가 복잡해요. 그뿐만이 아니죠. 보험 가입이나 신용카드 발급, 이런 것들도 절차가 까다로워요. 그래서 저는 신용카드도 없잖아요.
정 대표 국내 거주 외국인이 200만 명 넘는다고 하던데. 좀 바뀌어야 할 게 많은 현실이군요.
정 과장 특별 보너스로 항공권 주셔도, 비자보다도 일 때문에 여행 못 갈 것 같은데요.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이 입찰 참여하려면 디자인 시안을 위해 날마다 야근해야 되지 않을까요?
정 대표 역시 우리 정 과장 최고! 입찰 성과 좋으면 해외여행 대신 제주도 보내줄게요.
정 과장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박창수 전문기자 사진 김성헌 객원사진기자​

조회수 : 2,186기사작성일 : 201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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