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9.24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은 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이곳을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명명했다. 그의 말대로 평생에 걸친 예술과 사유가 여전히 빼곡히 살아 숨 쉬는 공간. 이곳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정의는 유쾌하게 허물어진다. 권위적인 음악과 시각예술의 작가주의에 균열을 일으키며 관객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했던 백남준의 예술세계, 아니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으로 간다.

 

백남준 예술의 시작부터 끝까지
시선을 달리하면 결코 어렵지 않다. ‘낯설다’가 아니라 ‘흥미롭다’로, ‘이해’하려기보다는 ‘느끼는’ 방향으로. 백남준의 작품은 그렇게 차근차근 마음을 풀어놓고 만나야 한다.
그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과학자였고, 철학자였으며,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어떤 답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로서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던 그는 여전히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현대예술에서 참여가 확대되고, 참여가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넘어선 ‘관계의 미학’이라는 담론이 이루어지기 훨씬 전부터 백남준은 예술의 사회적인 참여 방식을 보여주었다. 음악과 시각예술에서 고전이라 불리던 창작과 수용 방식은 그를 거쳐 전혀 새롭게 변형되기 시작했던 것.
백남준아트센터의 MI에 사용된 수학기호 ‘?- =∞’에서 이러한 정체성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신의 54번째 생일을 기념해 만든 작품 속 수식으로, 하나의 질문을 뒤집어 새로운 질문으로 변형시킬 때 무한한 변형과 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을 그는 특유의 유머를 담아 이야기하고 있다.
건축물 역시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그랜드피아노를 닮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부드러운 곡선이 백남준의 영문 이름 성 ‘Paik’의 첫 글자인 ‘P’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독일 건축가인 크리스텐 쉐멜과 마리나 스탄코빅이 공동으로 설계한 것으로,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거울들이며 건물 내부에서 외부가 환하게 보이는 개방감이 특징적이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이처럼 백남준 예술세계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궤적이 살아 있는 비디오 설치와 드로잉을 비롯해 관련 작가들의 작품, 비디오 아카이브를 소장하고 있으며, 현재는 《비상한 현상, 백남준》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진행 중이다. 더불어 그의 예술관을 미래로 확장하기 위한 기획전 《우리의 밝은 미래-사이버네틱 환상》을 오는 11월 5일까지 연다.

 

음악의 형식을 파괴한 작품세계
백남준아트센터에는 독특한 녹색 공간이 있다. 백남준의 작품 〈TV 정원〉이다. 전시장 로비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으로, 짙은 초록의 아열대 식물들로 무성한 숲 안에서 텔레비전 영상이 꽃을 피우고, 전위예술가들의 공연을 비추며, 상업적인 광고를 내보낸다. 화면 속의 영상은 〈글로벌 그루브〉라는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이다. “지구상의 어떤 TV 채널도 쉽게 돌려 볼 수 있고 TV 가이드북은 맨해튼의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워질, 미래의 비디오 풍경이다”라는 소개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무작위로 나열해 관객으로 하여금 직관적인 관찰을 경험하도록 한다. 텔레비전이 놓인 각도도 일반적이지 않다. 비스듬하거나 아예 누워 있는 것들도 있다. 전혀 다른 시선이다.
1층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백남준의 음악에 관한 예술세계를 ‘참여(Participation)’의 관점에서 탐구하는 《비상한 현상, 백남준》전을 만나볼 수 있다. 백남준이 수학한 독일 프라이부르크 고등음악원의 볼프강 포르트너 박사가 초기 백남준의 음악 아이디어에 대해 ‘비상한 현상’이라고 표현한 데서 이름 붙은 것으로, 여기서 참여는 단순히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음악과 시각예술 체계에 대한 도전이자 실험이다. 즉, 《비상한 현상, 백남준》전의 키워드는 음악 그리고 참여다.
흔히 미술은 시각예술, 음악은 청각예술로 구분한다. 또한 음악은 처음과 끝이 있는 시간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에 미술은 공간예술이다. 백남준은 1963년 독일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에서 ‘나는 음악을 눈으로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는데, 당시에 이러한 존재론적 형식을 타파하고자 시도했던 퍼포먼스와 설치작품이 사진으로 전시된다.
백남준의 예술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영상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텔레비전 영상을 자유자재로 편집하고 송출하고자 엔지니어 슈야 아베와 함께 고안한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로 만든 최초의 작품 〈비디오 꼬뮨〉, 공영방송을 통해 처음으로 방송된 비디오 작품 〈매체는 매체다〉, 인공위성을 활용한 첫 번째 영상작업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바로 그것. 이외에도 196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독일 대표작가로서 출품한 〈징기스칸의 복권〉, 스물네 대의 실제 수족관과 텔레비전 화면이 중첩되는 〈TV 물고기〉 등 다양한 작품이 있다.

낯선 예술과 친밀해지는 공간
2층 전시장의 《우리의 밝은 미래-사이버네틱 환상》전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대한 동시대 예술가들의 시선을 만나볼 수 있다. ‘사이버네틱스’란 미국의 수학자 노버트 위너에 의해 탄생한 용어로, 1940년대를 기점으로 과학기술 분야 전반에 걸쳐 수용된 이론이다. 생명체와 기계를 동일하게 보고자 한 이 이론은 현대 기술의 발전 경향을 주도해왔는데, 이번 전시에 참여한 15명(팀)의 작가들은 현대 기술과 예술을 탐문하며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로봇(Robot), 접합(Interface), 포스트휴먼(Posthuman)으로 섹션이 구분되며, 관련 도서들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기술 휴먼 라이브러리도 마련되어 있다.
작품을 모두 감상했다고 끝이 아니다. 백남준아트센터에는 전시실 외에도 숨겨진 보석 같은 공간이 여럿 있다. 대표적인 곳이 1층의 라이브러리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 황나현+데이빗 유진 문[N H D M]이 설계한 라이브러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독특한 작품처럼 자리하고 있다.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통합되어 한 공간에 존재한다는 개념을 구현한 ‘라이브러리 머신(Library Machine)’이라는 주요 구조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지만 밀도 높은 문화공간이자 문화·예술 전문 공공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소장 도서 분야는 백남준, 미디어 아트, 플럭서스를 비롯한 예술, 철학, 미학, 사회학 등으로 다양한 편. 총 6,000여 권의 국·내외 단행본 및 전시 도록과 정기간행물, 850여 건의 오디오 비주얼 자료, 주요 작가들의 아티스트 파일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일부 도서는 정해진 절차를 거치면 2주일 동안 대여도 가능하다. 라이브러리에서 소장하고 있는 희귀 자료의 경우 이메일(library@njpartcenter.kr)로 사전 예약이 완료된 건에 대해 열람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
로비의 아트숍 역시 [N H D M]의 작품으로, 아트 상품 판매와 휴식의 기능이 공존하는 오픈형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전시 도록과 백남준 관련 서적을 비롯해 전시와 연계된 상품, 국내 예술가들의 공예작품, 디자인 브랜드 상품 등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바로 뒤의 거대한 〈TV 정원〉과 중첩되어 보이는 인공과 자연의 조화도 이채롭다. 그리고 한 층 위는 카페다. 별도의 독립된 공간인 데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넓은 테라스로 연결돼 전시의 여운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다. 1층과 2층 사이에 숨바꼭질하듯 있는 메자닌 공간도 놓치지 말것. 백남준 관련 전시가 수시로 바뀌며 진행된다.

관람 시간 10:00~18:00(7~8월은 19:00까지) ※ 관람 종료시간 1시간 전 입장 마감
관람료 무료(전시에 따라 관람료가 달라질 수 있음)
도슨트 화~금요일 14:00, 16:00 / 토~일요일 11:00, 13:00, 14:00, 16:00
휴관일 매주 월요일(단, 공휴일 제외),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주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10
문의 031-201-8500


2016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작가
블라스트 씨어리 개인전 《당신이 시작하라!(You Start It!)》

백남준아트센터가 2016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자로 선정한 영국의 미디어 그룹 블라스트 씨어리의 개인전 《당신이 시작하라!》가 오는 11월 23일부터 2018년 3월 4일까지 열린다. 블라스트 씨어리는 연극, 라디오, 게임, 웹 등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한 인터랙티브 작업을 통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으며, 이들의 예술적 주제는 미래를 사유하는 예술가의 역할, 관객참여적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와 인간의 공생이라는 주제적 측면에서 백남준의 예술적 정신과 맞닿아 있다. 이번 전시는 국내 첫 개인전으로, 블라스트 씨어리의 예술적인 뿌리와 미래적인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정은주 객원기자 사진 김성헌 객원사진기자 자료협조 백남준아트센터

[2017-09-28]조회수 : 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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