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9.24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서촌 골목을 거닐다
경복궁에서 효자동까지

일을 하다보면 아무리 해도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 ‘궁리’를 해봐도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산책’이다. 산책이라고 해서 거창할 필요는 없다. 잠시 사무실 밖에 나와 회사 주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걷는다는 것은 사유의 시작이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우리 일상 속 산책을 통해 사색과 사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걷다, 발견하다’에서는 그 시작을 긴 시간 동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늘 그 자리를 지켜온 경복궁에서 출발했다. 온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오는 통의동, 창성동, 효자동으로 이어지는 서촌의 길, 경복궁과 이어진 고즈넉한 골목길의 모습을 보여주는가 싶다가도 이내 정갈한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거리. 오늘은 낮보다 밤이 더 매력적인 그 길을 걸어보자.

 길을 걷다
켜켜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곳
요즘 눈길을 끄는 TV 프로그램 중에 유난히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평소에는 잘 느낄 수 없었던 익숙한 것들도 그들의 시선으로 보니 왠지 더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이 바로 우리 궁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다. 높은 빌딩숲 사이에 자리한 궁이 낯설고 신선하다고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그동안 잘 모르고 지나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때로 우리에겐 잠시 마음을 쉴 수 있는 휴식처로, 외국인들에겐 낯선 땅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역사 유적지로서 그 가치를 간직한 경복궁. 최근에는 한복을 입으면 경복궁뿐만 아니라 창덕궁이나 덕수궁 등의 궁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어 한복을 입은 국내외 관람객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경복궁을 한 바퀴 돌아 국립고궁박물관을 지나면 통의동과 창성동, 효자동으로 이어지는 영추문이 있다.
경복궁의 서쪽이라고 해서 서촌이라 불리던 이곳은 길게 영추문을 따라 걸으면 청와대 정문으로 곧게 뻗은 효자로와 만난다. 요즘은 24시간 개방으로 밤 산책을 나온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걷다보면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경복궁 담벼락을 따라 천천히 걷기 좋다. 광화문과 연결된 초입은 식당이나 점포가 많은 통의동이, 조금 더 위로 걸으면 오래된 한옥과 나지막이 자리 잡은 창성동이, 그리고 빌라가 많은 효자동으로 이어진다.
어린 시절 우리가 뛰어놀던 그런 골목인가 싶으면, 이내 번듯한 4층 건물이 반겨주는 곳. 네모반듯한 신도시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골목과 골목이 미로처럼 엉켜 있다. 그렇게 걷다보니 마치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가 고스란히 그 골목에 켜켜이 쌓여 있는 것만 같다. 몇 년 전부터 골목마다 카페와 레스토랑, 갤러리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길 건너 누하동이나 옥인동과 달리 여전히 한적한 골목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오래된 것들을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 오래된 곳에도 아름다움은 있다고 말하는 이 길을 따라 천천히 산책을 시작해보자.

1. 담을 타고 흐르는 넝쿨에서도 집 주인의 마음의 여유가 느껴진다.
2. 새롭게 문을 연 보안1942 지하 2층에 자리한 보안책방. 다양한 인문학 서적을 만날 수 있다.

3. 청와대 직원과 경찰이 많은 지역답게 지역 할인을 하는 곳이 종종 있다.

5.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카페 ‘퀸시바’의 임봉승 바리스타. 이곳에서 인생 2막을 이어가고 있다.
6. 한옥 처마에 오래된 철문은 세월의 흔적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7. 오랜 주택과 빌라들이 함께 공존하는 통의동, 창성동 골목. 조용히 산책하기 좋다.

 그곳에 가면
서촌 골목을 산책하는 세 가지 방법
통의동, 창성동, 효자동은 삶과 예술이 공존하는 장소다. 어슬렁어슬렁 골목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전시가 있으면 ‘스-윽’ 하고 문을 열고 들어서도 누구 하나 막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 마음 내키면 잠시 동네 사람들의 생활을 기웃거려도 보자. 작지만 알뜰하게 꾸민 정원이며, 대문 앞 화분의 모습을 보면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동네를 사랑하는지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곳의 산책을 한 번으로 끝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번 걸을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이면 낮이 주는 한산함, 밤이면 작은 골목과 불빛이 어우러진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청운효자동 골목을 걷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드리겠다.
먼저 이곳이 처음이라면 천천히 동네 구경을 하며 사색하는 걷기를 권한다. 1990년 태풍에 부러졌다는 통의동 백송이 있던 백송터를 가로질러 오래된 한옥을 지나 걷는 이 길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길이다. 마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온 곳만큼이나 신비롭다. 녹슨 대문이나 시대가 뒤섞인 듯 개량된 한옥의 모습, 낡은 창문과 담벼락, 집만큼이나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와 지금은 보기 힘든 서체의 간판까지. 그렇게 가장 일반적인 산책을 통해 동네의 분위기와 낯선 길을 걷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오래된 골목길이 그렇듯, 모든 길은 통해 있기에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하염없이 걷다보면 ‘어? 여기에 이런 게 있었네’ 하며 발견의 기쁨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자기 속도에 맞춰 걷다 가끔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북한산과 인왕산이 마주한 하늘도 볼 수 있다.
두 번째 산책은 갤러리와 서점을 탐방하며 걷는 것이다. 사실 이곳만큼 갤러리가 밀집한 지역도 많지 않다. 30여 곳의 갤러리가 밀집한 곳으로, 초입에 위치한 2003년에 문을 연 대림미술관을 시작으로 1977년에 문을 연 통의동 원조 갤러리 격인 진갤러리를 지나 그 옆 아트사이드 등에서는 규모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더 올라가면 창성동과 효자동으로 이어지는 골목에는 온그라운드, 갤러리 팩토리, 창성동 실험실과 같은 개성 있는 공간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지난 12월에 있었던 아트사이드 ‘빛, 시간, 공간’ 전시는 LED를 이용한 작품을 전시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여기에 일반 서점에서는 보기 힘든 국내외의 다양한 실험적인 출판물과 예술전문 서적들을 구비한 ‘더북소사이어티’와 보안여관 지하에 자리한 ‘보안책방’에서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특히 2013년 홍대 앞에서 통의동으로 이전한 더북소사이어티는 소규모 독립출판 시대를 연 곳으로,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새로운 책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은 잠시 걷기를 멈추고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쉬는 것이다. 멈추는 것은 때로 걷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게 한다. 골목 곳곳에 자리한 카페에 앉아 산책으로 인해 피곤해진 다리도 쉬어가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효자동의 풍경을 감상해보자.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보안여관 옆에 자리한 카페 ‘퀸시바’의 임봉승 바리스타는 “이곳을 찾는 대부분은 인근 관공서에 근무하는 직장인이나 외국인이 많습니다”라며, 그의 커피 맛을 즐기고 간다고 말한다. ‘청와대 직원 & 경찰 1,000원 할인’이라는 입간판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지역만이 가진 특징이다.

 발견하다 #1
두 개의 공간이 빚어낸 하모니 ‘온그라운드’
경복궁 영추문 맞은편, 창성동 골목으로 접어들면 이 동네의 대표 문화거리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길 가운데 4층 건물의 ‘온그라운드’가 있다. 예전에는 가가린이라는 동네 서점이 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비영리 건축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1층에는 건축 관련 전시 공간인 ‘온그라운드_지상소’와 ‘온그라운드 프로젝트 스페이스’가 있고, 2층에는 회화 중심의 전시가 진행되는 ‘온그라운드2’가 있다.
특히 이 공간은 밖에서 보면 분명 4층 건물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옛 주택의 서까래 지붕이 그대로 노출된 더 넓은 공간으로 나타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는 원래 전시 공간이 있던 앞 건물과 뒤쪽에 있는 주택을 결합한 것으로, 처음에는 두 건물을 합쳐 새로운 공간으로 지을 예정이었지만 오래된 주택의 지붕이 주는 아름다움에 건물을 허무는 대신 두 건물을 합치기로 한 것이라고. 그리고 바로 옆에 자리한 온그라운드 프로젝트 스페이스도 원래 두 개의 공간이었던 곳의 벽을 허물고 마치 한 공간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다.
이곳 1층에서는 건축과 관련한 여러 전시가 진행되는데, 특히 지난해 9월에 있었던 ‘Skin, Cut, Construction: Danish Experiments in Concrete’ 전시는 덴마크의 콘크리트 기술과 가능성을 살펴본 전시로, 덴마크 건축계의 다양한 실험과 가능성을 보여주며 관람객의 호응을 얻었다. 온그라운드_지상소는 2018년도에도 주목할 만한 전시를 준비 중이다. 먼저 1월 11일부터 2월 3일까지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에 ‘행위 디자인’으로 유명한 무라타 치아키의 ‘Design of Behavior · Chiaki Murata’ 전이 진행된다. 여기에 온그라운드의 박지윤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2018년 주목할 만한 전시는 4월 즈음 진행될 네덜란드 마르잔 티우웬 작가의 ‘디스트로이드 하우스: 마르잔 티우웬’전이다. 이는 철거 직전의 건축물을 대상으로 공간을 재구성해온 작가의 작업 결과물을 담은 사진을 전시하는 것이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안이 더 넒은 온그라운드. 건축은 물론 미술 전반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는 이곳의 전시를 보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의 걷기는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3 / 관람시간 : 화~토 10시~7시(일, 월 휴관) / 문의 : 02-720-8260

1. 창성동에 위치한 온그라운드. 비영리 건축전문 갤러리로 수준 높은 전시 관람이 가능하다.
2. 1층 온그라운드_지상소는 4층 건물과 1층 주택을 결합한 공간으로, 틈 사이로 비춰지는 햇살이 인상적이다.
3. 온그라운드_지상소와 온그라운드 프로젝트 스페이스로 나눠진 1층. 길과 전시 작품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발견하다 #2
일상을 담는 예술 공간 ‘통의동 보안여관’
1930년대에 지어졌다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보안여관은 지금까지도 그 본연의 모습을 가진 몇 안 되는 공간 중 한 곳이다. 서촌, 특히 이곳 보안여관에서 시인 서정주, 김동리, 김달진 등이 장기 투숙하며 작품을 썼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그들이 창문 너머로 본 세상에도 지금 우리가 본 경복궁과 한옥이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1990년대까지 여관으로서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작가나 인근 청와대 직원들의 숙소 또는 면회 장소로 사용된 이곳도 시대의 변화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오래된 여관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그저 낡은 건물로 치부될 즈음. 2007년 생활밀착형 예술 공간 ‘통의동 보안여관’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여관 건물을 해체하기보다 그대로 유지하며 보안여관이 지닌 역사를 고스란히 유지한 채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통의동 보안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과거 여관의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래되고 낡았지만 그래서 느껴지는 세월의 무게를 간직한 2층 건물, 지금 우리가 보기에 조금 좁아 보이는 작은 방이 여러 개 놓여 있다. 그렇게 각 방은 또 하나의 전시공간이 된다. 약 70년이 넘는 마룻바닥과 계단, 나무 기둥, 천장의 서까래까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은 마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하다.
그리고 2017년에 통의동 보안여관 옆에 4층 높이의 ‘보안 1942’를 지어 문화공간 외에도 여관 본연의 기능이 다시 더해졌다. 옛 보안여관과 새로운 보안여관은 2층에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다. ‘보안 1942’는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전시와 책방, 카페가 함께 있다. 특히 3층과 4층은 과거 여관으로서의 기능을 그대로 살린 ‘보안스테이’를 운영, 예술가는 물론 일반인들도 서촌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다. 이곳의 백미는 경복궁을 내려다볼 수 있는 창으로 서촌의 풍경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는 것.
주소 :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 33 / 관람시간 : 화~일 12시~ 18시(월 휴관) / 문의 : 02-720-8409

1.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보안여관. 마치 풍경처럼 골목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2. 통의동 보안여관 2층에서 보안1942로 향하는 길.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 착각을 일으키는 곳이다.
3. 오래 전 이 방에 묶었던 시인도 이 풍경을 보았을까를 생각해본다.

하정희 객원기자 사진 김성헌 객원사진기자

[2018-01-09]조회수 :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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