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9.24
오래된 골목에서 ‘예술’이라는 변화를 느끼다
마산 창동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고 오래된 유럽의 어느 골목을 지나며 ‘와~’ 하고 연신 감탄을 쏟아내는 사람들. 우리가 왜 그렇게 유럽의 오래된 도시를 가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마도 오랜 시간 축적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돈으로도 절대 살 수 없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축적된 시간만큼 그 가치가 빛나는 오래되고 낡은 골목은 신도시의 잘 짜여진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마산의 오래된 도시 창동.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예술’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그곳을 걸어보자.

 길을 걷다
빈티지 감성이 묻어나는 골목 산책 어때요?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을 보내며 ‘정말 봄이 오긴 하는 걸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했다. 그러나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자연의 순리는 올해도 어김없이 작동을 하는 듯하다. 슬금슬금 겨울의 빗장을 풀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봄을 맞으며, 이 좋은 봄날을 마음껏 느끼면서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은 어디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아직은 딱, 봄이다 할 수 없는 3월 초. 어디를 가야 할까 고민하며 찾은 곳이 바로 따뜻한 남쪽 ‘마산’이었다. 따스한 봄기운을 기대하며 마산의 오래된 동네 ‘창동’으로 향했다. 그러나 너무 빨리 찾은 것일까? 마산 창동을 찾은 3월 첫 주는 유난히도 춥고 하늘은 흐렸다. 머피의 법칙인 걸까? 그 다음 주는 서울이 영상의 기온을 보이며 유난히 파란 하늘을 보여주었고, 남쪽에서는 꽃 소식이 들렸다.
마산은 2010년 7월에 창원시로 통합되며 현재는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로 개편되었고, 창동은 그중에서도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오랜 역사를 지닌 동네다. 1990년대까지 마산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마산의 명동으로 불리며 최고의 땅값을 자랑했던 창동.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250년 골목’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시는 조선시대에 창동 앞 마산포에 ‘마산창’이 설치되면서 조창이 있던 곳이라고 해 ‘창동’이라고 지어졌다고 한다.
곳곳에 새 빌딩들이 들어서긴 했지만 여전히 1980
~1990년대의 빈티지한 정서를 지니고 있는 이곳에서 30~40년 이상 된 가게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쪽샘골목’, ‘샛골목’ 등 정겨운 이름으로 불리는 골목을 누비다 보면 60년 넘게 대를 이어 운영되며 이 지역 사람들의 랜드마크로 자리하는 ‘학문당’ 서점은 물론, 2대에 걸쳐 50년 동안 유부초밥과 우동을 파는 ‘낙원’과 여전히 그 맛을 이어오고 있는 ‘고려당’ 빵집 등을 찾는 즐거움이 있다. 여기에 거리의 풍경도 함께 느껴보자. 요즘 사람들에겐 생소한 레코드가게 앞 악보걸이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창동이니 말이다. 그렇게 어슬렁어슬렁 유랑하듯 길을 걷다 보면 마산의 맛을 경험할 수 있는 부림시장을 만나게 된다.

1_ 세 골목으로 나눠진 창동 예술촌 골목. 골목마다 서로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2_ 3·15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315명의 이름과 소망이 새겨진 희망나무가 있다.

3_ 1983년에 문을 열었다는 창동 예술촌 골목의 길벗 레코드. 가게 앞에 걸려 있는 악보가 반갑다면 30대 이상~!
4_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옆,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 알록달록 채색된 좁은 길을 오르면 저 멀리 마산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곳에 가면
문화와 예술에 흠뻑 취하다
창원시에 통합되며 마산을 찾는 이들의 방문이 줄었지만, 마산은 우리가 만만히 볼 동네는 아니다. 굳이 조선시대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한국전쟁 이후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이곳 마산을 거점으로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김춘수, 천상병, 정진업, 이선관 등 시인은 물론이고 천경자 작가와 문신 작가도 당대에 이곳 창동에 모여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어느 곳보다 문화적 자양분이 풍부한 곳이 바로 이곳 마산, 그중에서도 창동이다. 창원은 지난 2011년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잊혀져가는 창동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자 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을 추구하며 ‘창동 예술촌’ 사업을 시작했다.
마산 창동의 골목마다 세워진 ‘창동 예술촌’은 크게 마산예술흔적 골목, 에꼴드창동 골목, 문신예술 골목으로 나뉜다. 그리고 늘어나기 시작한 빈 점포 50곳을 임대해 지역의 예술가들을 입주시키며 작업공간과 체험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골목의 벽면에는 아기자기한 벽화와 화분은 물론이고, 이곳을 거쳐간 예술가들의 초상이 걸려 있어 찬찬히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문신예술 골목은 마산을 대표하는 조각가이자 화가인 문신 작가를 재조명하기 위한 곳으로, 20여 곳에 지역 예술가들의 작업공간과 갤러리가 모여 있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창동 예술촌의 이러한 노력은 상권의 쇠락으로 떠난 사람들을 하나둘 이곳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중장년층은 청춘의 한때를 그리는 추억여행으로, 젊은 사람들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거리의 풍경과 문화를 보고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만약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걸어야 할지,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곳의 랜드마크인 학문당 서점 뒷골목에 자리한 ‘창동 예술촌 아트센터’를 찾아가자. 창동 예술촌의 사무소는 물론 기획 전시관과 테마 카페가 있어, 잠시 쉬며 창동이 간직한 여러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외에도 창동 상인회와 창동 예술촌의 인터넷 방송국인 ‘창동 방송국’, 테마 선술집 ‘고모령’, 도자기 체험을 할 수 있는 ‘보리 도예 공방’, 어린 시절의 헌책방 모습 그대로 40년의 역사를 지닌 헌책방 ‘영록서점’ 등 다양한 공간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실 창동 예술촌은 거리상으로는 1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길이지만,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골목 이곳저곳을 누빈다면 한 시간이 훌쩍 넘는다.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인근 고려당에서 맛있는 빵과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리거나, 부림시장에 들러 어묵이 많은 떡볶이 한 접시를 먹고 힘을 내는 것도 좋다. 그렇게 배를 채운 뒤, 길 건너 문신미술관과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문신미술관은 창원의 유일한 시립 미술관으로, 조각가이자 화가인 문신 선생이 직접 지은 곳이다. 이곳에서 그의 다양한 회화와 조각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마산 앞바다의 풍경은 일품이다.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은 통영의 동피랑과 비교해볼 때 아직 찾는 이들이 많지 않지만, 원도심의 정취를 느끼기엔 그만이다.

 마주치다 #1
작가 문신이 탄생시킨 또 하나의 작품 ‘문신미술관’
태어난 곳이 꼭 고향인 법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2의 고향, 제3의 고향이라고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년시절을 마산에서 보낸 작가 문신에게도 마산은 그런 곳이었다. 그에게 누군가 ‘고향이 어딘가요?’ 하고 물으면 ‘마산’이라고 답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 그가 오랜 프랑스 활동을 정리하고 다시 마산에 터를 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미술관을 짓겠다는 오랜 꿈을 실현시켰다. 그곳이 바로 창원시립마산미술관인 ‘문신미술관’이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 문신을 조각가로 알고 있지만, 1961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조각가로 활동하기 전에 그는 마산과 부산, 서울 등지에서 활동하는 회화 작가였다. 그는 일상적인 소재를 자신만의 자유분방함으로 표현했다.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은 조각 작품이지만, 그는 조각에만 국한되는 작가는 아니다. 물론 좌우 대칭의 미로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지만 말이다.
그런 그가 1980년 파리의 생활을 접고 마산에 정착하며, 마산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 미술관을 짓기 시작했다. 그 기간이 자그마치 14년이었다. 그것도 오롯이 작가의 힘으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 문신미술관은 선생님의 또 다른 작품입니다”라고 말하는 문신미술관 박효진 학예사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 오르막에 집을 짓는 것도 힘들 텐데, 직접 디자인하고 나무를 심고 옹벽을 쌓았다니, 절로 고개를 젓게 된다. 그렇게 지은 건물이 현재 제1전시관과 제2전시관이다. 지금 봐도 23년 전에 지은 건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를 지녔다. 야외 바닥의 돌도 문신 작가가 직접 디자인하고 대리석을 깔았다고 하니, 이곳에서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개관 1주년을 사흘 앞두고 숨을 거뒀다.
예술가는 죽어도 그의 작품은 오랫동안 남는다고 했던가? 이곳 미술관에는 그의 조각 작품 114점과 유화 10점, 채화 11점, 드로잉 42점을 비롯해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공구 105점까지 총 282점의 작품과 유물이 보관·전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고향에 미술관을 바치고 싶다’는 그의 유지를 받들어 2003년에 시에 미술관을 기증해, 현재는 창원시립마산미술관으로서 다양한 기획 전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작품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문신원형미술관은 작가의 생전 염원을 담아 새롭게 증축한 석고원형 전시관으로, 석고가 조각을 위한 중간 단계가 아닌 최초의 작품이라고 여겼던 작가의 여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석고원형만 따로 전시하는 미술관은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곳만의 특징이다.
문신미술관은 올해 6회의 기획전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지난 3월 23일부터 5월 20일까지 이명세 영화감독과 한상호 다큐멘터리 감독, 전혜원·양리애·여윤경 작가가 참여해 ‘나’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나의 초상’이라는 전시를 시작한다. 또 소장품 상설전인 ‘문신아틀리에’, 문신 청년작가상 수상작가 초대전, 2018 창원조각 비엔날레 특별전, 문신·최성숙 부부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특히 문신 작가의 영원한 동반자였던 아내 최성숙 명예관장의 작품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주소 :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문신길 147 / 문의 : 055-225-7181 / moonshin.changwon.go.kr

1_ 문신 작가의 대표작 ‘해조’(가운데). 작가 스스로 노동자처럼 일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2_ 문신미술관 제2전시관에선 조각가가 아닌 화가로서의 문신의 회화를 감상할 수 있다.

 마주치다 #2
따스한 봄날, 책과 맥주 어때요? ‘책방 산·책’
창동 예술촌 거리에 독립서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여긴 무조건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서점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게 더 마음에 들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찾은 곳이 독립출판사 겸 독립서점인 ‘책방 산·책’이다. 3층에 위치한 책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책은 눈높이에서 볼 수 있도록 위로 빼곡하게 쌓기보다는 공간 곳곳에 비치했다. 이 또한 공간이 넓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사진촬영이 가능한 스튜디오와 앉아서 책도 보고 차나 맥주도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다. 공간을 둘러보며 책을 뒤적이다 보니 책방이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책방 산·책’에서 만난 운영자 박승우 씨는 “책방을 통해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는 문화가 생기기를 바랐습니다”라며, 이러한 뜻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2017년 4월에 오픈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MBC경남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활동하는 5명이 ‘살아 있는 책(Livebook)’이라는 의미를 담아 ‘산·책’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책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일상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곳에서 판매되는 책은 독립출판물로, 1인 출판이나 소규모 출판으로 출간된 책이다. 가까운 부산에서도 작가가 직접 책을 가지고 와 입고를 하기도 하고, 운영진들이 직접 다른 지역 독립서점 등을 다니며 책을 고르기도 한다. 특히 지역의 이름 없는 작가들이 만든 책은 따로 코너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박 씨는 멋있는 책이 아니라 조금은 촌스럽고 서투르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초보 운영자들이라 초반에는 실수도 많았다. 손님 응대도 어려웠고, 계속 사라지는 책을 관리하지 못해 속상했던 적도 있었다고.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은 손님이나 운영진 모두 조금씩 여유를 찾은 듯하다. 덕분에 지난 1년 동안 자체적으로 다큐멘터리 사진 강좌를 꾸준히 진행한 것은 물론, 지역의 팟 캐스트 방송과 인문학 강좌, 독서모임을 하는 장소로도 사람들에게 인식되면서 ‘산책에 가면 새로운 것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책방에 들러 책을 보고 ‘이 정도는 나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책을 만들어 오시는 분도 계시고, 누가 살까 걱정했지만 책을 사는 사람들도 있죠.”
그렇게 조금씩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책방 산·책이 자리를 잡기를 희망했다.
주소 :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거리길 41, 3층/ 오픈시간 : 12:00 ~ 22:00 / 문의 : 055-297-6947

독립출판사와 독립사진가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책방 산·책’은 지역의 문화 플랫폼으로 자리하며, 마산뿐만 아니라 타 지역의 다양한 독립출판물이 판매되고 있다.

하정희 객원기자 사진 김성헌 객원사진기자

[2018-04-04]조회수 : 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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