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9.21
싱그러운 초록의 계절에 즐기는 숲길 산책
서울 안산

언제 봄이 왔나 싶을 정도로 계절은 빠르게 바뀐다. 제법 초여름의 기운이 물씬 난다. 그렇게 6월은 초록의 싱그러움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왔다. 눈을 살짝 옆으로 돌리기만 해도 이제 막 새순이 난 연초록 잎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로수만 봐도 마음이 설레는 요즘. 산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어디 등산이 그리 쉬운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산을 찾는 것이 사치라고 여겨지는 이들에게 서울의 중심에 자리한 이 멋진 ‘산’을 소개하게 되어 기분이 좋다. 해발 295m로 높지 않지만, 우리를 초여름 초록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잠깐 일상 탈출을 꿈꿔보자.

 길을 걷다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만난 ‘안산’
6월은 그 어느 때보다 초록이 넘친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연한 초록빛이 짙게 물들기 시작하는 계절, 초여름이다. 계절의 경계가 모호한 요즘, 도시를 둘러싼 숲의 나뭇잎 색을 보고 ‘아~ 여름이 오고 있구나’를 깨닫는다. 이때쯤이면 어디든 넘실거리는 초록의 세계로 떠나고 싶기 마련이다. 일상으로 바쁜 현대인들이 어디 멀리 가기 쉽지 않을 때, 가까운 숲을 찾는 건 어떨까?
이런 생각으로 서울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알게 된 곳이 바로 서대문구에 위치한 ‘안산’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안산 하면 대뜸 경기도 안산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기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디선가 이름은 들어봤지만 정확히 어디를 말하는지 몰랐다.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자신은 여기에 있다고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서울엔 안산 말고도 북한산, 인왕산, 남산 등 이름난 산들이 많기에 눈길을 주지 않았던 기자의 무심함을 새삼 다시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산을 잘 아는 사람들에겐 그 소중함이 알려진 이곳은 해발 296m로 높지 않아 가벼운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특히 안산 주변의 주민들에겐 동네 뒷산 같은 곳으로, 매일 가족 또는 반려동물들과 산책 코스로 즐기거나, 연인들에겐 가볍게 걸을 수 있는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가 좋다. 여기에 산을 둘러싸고 마련된 ‘안산자락길’은 2013년에 산 주변을 나무 데코로 연결해 굳이 안산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산의 정취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마치 지리산 둘레길이 지리산을 중심으로 그 둘레를 걸으며 산의 풍광을 감상한다면, 안산자락길은 서울의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심지어 계단으로 연결된 길이 없어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가족을 만날 수도 있었다. 알고 보니 안산은 순환형 무장애 숲길로, 휠체어도 다닐 수 있었다.
안산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독립문역 안산자락길을 권해본다. 삭막한 도심에서 잠시의 여유와 역사적 의미가 있는 독립문과 서대문형무소를 찾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잠깐의 시간을 쪼개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도심 한복판에서 계절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는 산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에 가깝다. 이처럼 안산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도심 속의 숲길을 품고 있다.

독립문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있는 서대문독립공원은 잠깐 시간을 내어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안산자락길 초입의 표지판. 미리 얼마나 걸을지 생각해보자.

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가로지르며 걸을 수 있는 안산자락길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 벽돌 건물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보인다.

 그곳에 가면
마음은 지리산 등산객, 현실은 게으른 숲길 산책자
마치 말의 안장을 닮았다고 해서 ‘길마’라고도 불렸던 안산은 도시를 길게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산 좀 탄다’는 등산객이라면 안산을 조금 시시한 산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835.5m의 북한산이나 740m의 도봉산에서 느끼는 성취감도, 안산의 이웃사촌인 339.8m의 인왕산에서 느껴지는 산의 포스도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안산을 오르는 순간, 무참히 깨지고 만다. 무엇보다 안산은 서대문구를 두고 포괄적으로 자리하고 있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 어떤 코스로 걷느냐에 따라 다양한 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등산은 힘들지만 산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게 누구든 안산의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안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정하는 게 좋다. 만약 당신이 연희동이나 신촌 인근이 편하다면, 서대문구청이나 연세대학교 방향에서 시작하면 좋다. 여기서 시작하면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걸을 수 있다. 혹시 도심과 가까운 곳이라면, 앞서 소개한 독립문역이나 금화터널 상부, 봉원사, 한성과학고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일단 안산의 서쪽에 자리한 서대문구청에서 시작할지, 아니면 동쪽의 독립문역에서 시작할지를 정했다면, 코스를 안산 가장 아래쪽의 ‘안산자락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산 중턱에 있는 ‘둘레길’과 더 나아가 정상으로 향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물론 의욕이 넘친다면, 반나절이면 돌 수 있는 ‘이깟’ 산을 두고 그리 고민을 하나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등산이 아니라 일상 속의 산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산책자들에겐 굳이 정상을 오르는 두 번째 코스를 권하지 않겠다. 안산은 30분만 걸어도 기분 좋을 정도의 땀이 흐르고, 싱그러운 6월의 초록 기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독립문역과 연결된 안산자락길을 능안정 방향으로 30분만 걸어도 정상에서 바라보듯 서울의 도심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독립문역에서 전망대까지 왕복 40~50분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어 걷기에 부담 없는 코스다.
유난히 미세먼지가 없던 화창한 날, 독립문역 안산자락길 초입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저 멀리 인왕산과 북한산, 그 아래 청와대는 물론 경복궁과 종로구 일대, 남산까지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고궁과 주택 사이로 우뚝 솟은 아파트와 높은 빌딩은 오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흔히 사람들은 산에 간다고 하면 대뜸 ‘등산’을 떠올린다. 그러나 시원한 바람과 싱그러운 초록의 숲이 어우러진 6월에는 산도 게으른 산책자처럼 걸어보는 게 어떨까? 그러기에 안산은 가장 적당한 곳이다.

 마주치다
딸을 기리는 가족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이진아기념도서관’
독립문역에서 시작해 안산을 오르는 이들이라면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함께 이곳 ‘이진아기념도서관’에 들러볼 것을 권한다. ‘이진아’라는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개인 또는 사설 도서관으로 오해하지만, 사실 이곳은 서대문구립도서관 중 한 곳인 공공도서관이다. 그런데 지리적으로 서대문독립공원과 가까이 있어 공원을 찾는 이들이 한번쯤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보통의 여느 도서관과 다를 게 없는 공공도서관을 사람들이 이처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이곳의 설립 취지가 특별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고(故) 이진아 씨는 2003년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딸을 기억하기 위해서 평소 책을 좋아했던 딸을 생각하며 그의 가족들이 기부한 기부금으로 도서관을 지었다. 이진아기념도서관은 그 이름처럼 딸을 잃은 한 가족의 ‘마음’이 담겨 있는 곳이다. 그래서 도서관 개관일도 이진아 씨의 생일인 9월 15일이다.
이진아기념도서관의 김현민 대리는 가끔 사람들이 “이진아 씨가 누구”인지 묻기도 한다며, 마치 유명한 위인을 대하듯 말한다고 한다.
“이진아 씨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곳 이진아기념도서관도 여느 공공도서관과 마찬가지로 보통의 도서관이고요. 다만 이곳은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난 딸을 기리는 가족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고인에 대한 기억이 잊혀도, 이진아기념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진아’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가족들의 쉽지 않았을 선택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학습을 위한 열람실은 No! 다양한 인문학 강좌는 OK!!
이진아기념도서관을 둘러보면서 놀란 것은 조용히 해야 하는 보통의 도서관과 달리 조금은 분주하고 시끄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1층에 유아 열람실과 어린이 열람실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제 갓 걷기 시작하는 어린이들이 아빠와 엄마 손을 잡고 도서관에서 노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여기에 뻥~ 뚫린 중정이 있는 내부와 전면 유리창의 외관으로 도서관이 밝은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어느새 이진아기념도서관은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존재가 되었다.
“개관 때부터 주민들의 관심이 많았어요. 초기에 엄마 손을 잡고 왔던 아이들은 이제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었죠”라는 김 대리는 개관 초기부터 주민들과 소통하는 도서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에게 도서관은 늘 무엇인가를 하는 곳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도서관에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과 독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재미있는 인문학 강좌를 많이 진행하는데, 지난 5월부터는 주변 직장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퇴근길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었다.
6월부터는 그리스·로마 신화와 클래식 음악을 함께 소개하는 강좌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안산이나 서대문독립공원, 서대문형무소에 들를 계획이 있다면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일정을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또 매년 9월마다 열리는 ‘책 축제’가 올해는 9월 14일, 15일 양일에 걸쳐 열린다고 하니,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9월에 안산자락길도 걷고 책 축제도 참석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나 이처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도 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도서관에서 도서 열람이나 자료 검색 외에 개인적인 학습을 위한 공부는 할 수 없다. 처음부터 공부하는 열람실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책을 보고, 자료나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도서관을 처음 방문하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은 당황하며 돌아가기도 한다고. 만약 자격증 공부를 위해 이진아기념도서관을 찾을 계획이었다면 다른 곳으로 알아보자.
마지막으로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들에게 1층 카페에서 맛있는 음료 한 잔의 여유를 느껴보길 권한다. 특히 야외 테라스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살랑이는 바람을 느끼며 잠시 쉬어가기에 최고의 장소다.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독립문공원길 80 (02-360-8619)
오픈시간 : 09:00~18:00(종합자료실은 22:00까지/ 매주 월요일 및 법정공휴일 휴관

하정희 객원기자 사진 김성헌 객원사진기자

[2018-06-04]조회수 : 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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