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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거제 푸른 바다의 붉은 이야기

 

‘크게 구하고, 많이 건너온다’는 그 이름처럼 거제(巨濟)는 거가대교 개통 이후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겨울에는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붉게 피어나는 동백꽃과 제철을 맞이한 해산물 덕에 눈과 입이 호사를 누린다. 거제의 푸른 바다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찾아서 길을 나선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영원한 삶을 꿈꾸며 신하 서불에게 불로초(不老草)를 찾아오라 명했다. 『삼국지』와 『후한서』에 따르면 서불은 배 60척과 신하 5,000명, 소년과 소녀 3,000명을 이끌고 진나라를 떠났다. 신선이 살 것만 같은 풍경에 반해 서불은 한반도 끝에 위치한 거제도 해금강에 돛을 내렸다. 하지만 불로초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우제봉 정상의 석벽에 ‘서불이 이곳을 지나다’라는 뜻의 서불과차(徐市過此)란 글을 새기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돌아갔다고 한다.
거제는 모래알만큼이나 수많은 남해의 섬 중에서도 크기는 물론 아름다운 풍경으로 으뜸인 곳으로, 옛날부터 물고기가 많이 잡히고 땅이 비옥했다. 서불의 전설이 전해지는 해금강과 바람의 언덕, 신선대, 몽돌해수욕장 등 유명 관광지도 많다. 그러나 이 계절에 여행자의 눈길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붉게 피어나는 동백꽃이다.

울창한 동백섬 그 안에 담긴 마음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땅의 모양이 ‘마음 심(心)’을 닮았다는 지심도(只心島)는 장승포 동사무소 앞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15분이면 도착한다. 짧은 거리지만 배에서 내리면 마치 딴 세계에 온 것 같다. 섬의 유일한 운송수단은 짐수레를 매단 오토바이 몇 대가 전부다. 섬을 둘러보려면 튼튼한 두 다리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심도는 길이 1.5㎞, 너비 500m, 해안선 둘레 3.7㎞에 불과한 작은 섬이라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둘러보아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선착장을 지키는 푸른 인어상과 짧게 눈인사를 나누고 길을 나서면 꽃과 나무가 나그네를 반긴다. 4m는 족히 넘는 키 큰 동백나무들이 햇빛을 거의 차단시키듯 길고 긴 숲의 터널을 이룬다. 겨우내 마셔댄 미세먼지를 털어내듯 깊은 숨을 들이키는데, 도도하게 고개를 쳐든 붉은 동백꽃과 눈이 마주친다. 거제의 비밀이라도 간직한 듯 섬의 70%가 동백숲으로 이뤄진 이곳은 이른 봄인 3월까지 동백꽃이 무더기로 피어나며 하늘과 땅을 붉게 물들인다.
이곳에는 우리가 몰랐던 남다른 아픈 기억이 있다. 지심도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 섬을 요새화하면서 주민을 내쫓고 100여 명의 군인이 주둔했던 곳. 견고한 콘크리트로 지어진 대포진지는 과거 일제가 얼마나 집요하게 우리나라를 괴롭혔는지 잘 알려준다. 우거진 숲 사이에 둥그렇게 판 포진지는 대포를 놓는 곳으로,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균열이 거의 없다. 대포진지 옆 탄약저장고도 옛 흔적 그대로 남아 있다. 밤중에 자신들의 함대를 보호하기 위해 바다를 비추던 서치라이트 보관소나 일장기를 꽂았던 게양대 등은 일제가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전쟁을 준비했는지 짐작케 한다.
하지만 지심도는 군사시설이었다는 게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풍경으로 가득하다. 다행히도 처참한 전쟁이 펼쳐지지도, 폭격을 당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거제시에서 소유권을 이전해 오기까지 지심도는 국방부 소유였다. 사람들은 해방 이후 섬으로 돌아와 당시의 군사시설을 고쳐서 지금껏 써왔다. 섬에는 현재 15가구, 20여 명의 주민이 식당과 민박을 운영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그 옛날에도 꽃은 피고 지고, 새가 지저귀고 파도소리도 요란했을 텐데, 어떻게 전쟁의 나날을 견뎠을까. 누군가는 분명 울면서 가족을 떠올리고, 집에 가고 싶다고 외쳤을 것이다. 마음을 닮은 섬 지심도는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동백의 꽃말처럼 고즈넉하게 우리의 아픈 역사를 보듬고 있다.

 

풍광보다 긴 여운을 남기는 아픈 역사
다시 배를 타고 나와 큰 길로 접어든다. 거리에 흐드러진 동백꽃을 따라 도착한 곳은 6·25전쟁 중 유엔군과 한국군이 사로잡은 공산군을 가둬두었던 포로수용소. 지금은 교통이 편리하지만, 6·25전쟁 때만 해도 거제는 오지의 섬으로 포로를 격리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1950년 11월에 설치되어 1951년 6월에는 북한군 15만 명, 중공군 2만 명, 여성포로와 의용군 등을 포함해 최대 17만여 명의 포로를 수용했다. 당시 거제 인구가 10만 명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포로가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이뤄진 뒤 33일간에 걸쳐 이곳에 수용된 친공(親共) 포로들이 북한으로 송환됨에 따라 포로수용소는 폐쇄되었다. 송환을 거부한 이들은 제주와 광주, 논산, 마산, 영천, 부산 등지로 분산되었다.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거제시청이 위치한 신현읍에 있다. 남아 있던 일부 건물들을 활용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고 분단의 아픔을 되새겨볼 수 있도록 테마파크처럼 꾸며놓았다. 포탄에 맞아 부서진 회색빛 건물이 있고 길 양쪽으로는 당시 사용됐던 탱크, 헬리콥터들이 전시돼 있어 TV나 영화에서만 보던 전쟁이 새삼 실감난다. 탱크전시관을 지나 포로수용소 디오라마관으로 들어가면 전쟁의 축소판이 펼쳐진다. 6·25 역사관, 포로생활관, 훈련관, 포로막사 등 당시의 모습을 복원한 곳들을 돌아보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곳이 비극의 현장으로 불리는 것은 비단 포로를 수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민족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총부리를 겨누던 시절, 거제 포로수용소는 또 다른 남북대치의 현장이었다.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최인훈의 장편소설 『광장』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들은 남한에 남을 것인지, 북한으로 돌아갈 것인지 결정을 강요받았다. 결국 그들 사이에 시비가 붙고, 서로를 죽고 죽이는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그 와중에 유엔군 프랜시스 도드(Francis Dodd) 준장이 납치되기도 하였다. 처참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뒤에도 동족상잔의 아픔을 또다시 겪어야 했던 것. 이데올로기가 남긴 상흔을 떨쳐내지 못한 이들 중에는 소설 『광장』의 주인공인 이명준처럼 실제로 남과 북이 아닌, 중립국행을 택한 이들도 있었다. 17만 명 중 오직 77명만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인도 등에 정착해 새 삶을 이어나갔다.

 

시린 가슴속까지 달래는 거제의 바다
“나는 영웅이 싫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좋다. 내 이름도 물리고 싶다. 수억 마리 사람 중의 이름 없는 한 마리면 된다. 다만, 나에게 한 뼘의 광장과 한 마리의 벗을 달라. 그리고, 이 한 뼘의 광장에 들어설 땐,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그만한 알은 체를 하고, 허락을 받고 나서 움직이도록 하라.”
최인훈의 『광장』을 되뇌며 다시 길을 나선다. 아픈 역사가 앗아간 꽃다운 청춘들, 그들을 위로하고 슬픔을 추스르게 하는 것은 거제의 눈부시게 푸른 바다이다.
도장포에서 학동으로 이어지는 약 10㎞의 길은 거제의 대표 관광지를 두루 만날 수 있게 해준다. ‘바람의 언덕’은 원래 잔디로 덮인 언덕이라고 해서 ‘띠밭늘’이라고 부르다가 2002년부터 지명을 아예 바꿨다. 그 반대편에 신선대가 있는데, 바다와 맞붙어 봉긋하게 솟은 바위산에 뿌리를 내리고 해풍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소나무의 모습이 장관이다. 하지만 진짜 신선놀음은 학동 몽돌해변에서 완성된다. 파도에 휩쓸리는 몽돌 소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듣게 되는 자연의 화음. 차르륵 차르륵 돌 구르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모난 심사도 어느새 둥글게 깎이고야 만다. 시간적 여유가 허락된다면 한려해상국립공원을 옆구리에 끼고 달리는 거제 해안도로를 달려보길 권한다. 들쭉날쭉한 리아스식 해안을 쭉 펼치면 서울에서 부산 거리인 400㎞에 달한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구간은 여차해변에서 홍포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길을 나서다가 제철을 맞은 해산물을 배불리 먹는 것도 이 계절의 거제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 서울 사람들이 삼계탕으로 여름 몸보신을 하는 것처럼 이곳 사람들은 물메기탕과 대구탕으로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다. 특히 살점이 야들야들한 물메기탕은 애주가들의 시린 아침을 달래주는 효자 음식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곧잘 술병을 고친다”고도 나와 있다. 참고로 신선한 멍게와 굴, 성게와 꽃게 등의 해산물은 고현시장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아이와 함께 가면 좋을 거제의 명소
거제조선해양문화관
수족관은 물론 선박의 발달사와 대형 선박의 건조 과정 등을 통해 바다와 배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심해생물전시관과 4D영상탐험관을 비롯해 다양한 체험이 가능해 아이들이 좋아한다. 입장료 3,000원으로 조선해양전시관과 어촌민속전시관 두 곳을 모두 관람할 수 있다.
해금강 테마박물관
폐교를 리모델링한 해금강 테마박물관은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 1층은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그 옛날 이발관, 만화방, 세탁소, 다방 등의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2층에는 중세시대의 범선 모형과 유럽의 장식품 5만여 점을 모아두었다. 추억을 떠올리며 가족 나들이하기 알맞다.
외도 보타니아
지중해 양식의 건물과 3,000여 종의 외국 식물로 꾸며져 있어 들어서는 섬 자체가 마치 다른 나라 같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30여 년 전, 한 개인이 섬을 사들여 정성껏 가꾼 결과라는 사실. 아쉽게도 숙박시설은 없고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스낵 코너만 있다.

글·사진 이계선 객원기자 자료협조 거제시청

조회수 : 874기사작성일 : 201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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