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9.21
글쓰기 무능력자들은 왜 요즘 살기 힘들어졌나

 

유사 이래 한국인이 이렇게 많은 글을 썼던 적이 있었던가? 사람들이 글쓰기와 사랑에 빠졌다. 학교 졸업과 동시에 글쓰기와 담을 쌓던 그들이 쓰기 열풍에 가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글쓰기 시대가 만개했다. 이제는 입담보다 필담이란다. 2013년부터 스멀스멀 불기 시작한 글쓰기 바람은 잦아들기는커녕 점입가경이다.

SNS가 낳은 의외의 사생아?
소위 ‘말’ 잘하는 이보다 ‘글’ 잘 쓰는 이가 더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다. 가까운 예로, 논리적 글쓰기의 대부로 꼽히는 유시민은 각종 TV 프로를 종횡무진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영상시대가 도래하면서 글쓰기 능력은 퇴화되거나 과거의 빛났던 재능쯤으로 치부되는 듯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고루한 방식인 글쓰기가 유행이라니.
불황의 그늘이 깊었던 출판시장이지만 글쓰기 관련 책은 지난 3~4년간 판매율이 빠르게 증가했다. 최근에는 글쓰기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써보는 필사 책도 급증했다. 예스24에 따르면, 글쓰기 도서는 지난 2014년 비약적으로 성장한 뒤 지난해 전년대비 판매율이 61.4% 늘면서 인기도서 유형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올해는 약 50%(2017년 3월 기준)가량 성장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의 표현의 기술』, 『기자의 글쓰기』, 『대통령의 글쓰기』, 『서민적 글쓰기』는 여전히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이며, 『회장님의 글쓰기』, 『힘 있는 글쓰기』, 『베껴 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등 글쓰기 분야도 확장되었다.
그뿐인가? 대학이나 문화센터, 사설학원에는 글쓰기 비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필요와 취미로 글 쓰는 수요 외에 일반인 작가 되기 프로그램과 1인 1 자서전 내기 운동 등 ‘쓰기’는 시대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듯 보인다.
1995년에 설립된 글쓰기 시장의 선두주자 한겨레교육문화센터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대비 120% 증가했다.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 ‘대안연구공동체’ 역시 글쓰기 강좌를 개설했던 2011년에는 정원도 못 채웠지만, 지금은 두 배가량 강좌 수가 늘었다. 여행 글쓰기를 가르치는 HK여행작가아카데미는 2013년에 개설돼 지금까지 400명이 넘는 수료자를 배출했다. 단 한 권의 자서전을 만든다는 콘셉트의 ‘욜로북’ 역시 크라우드펀딩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 1인 1책 쓰기를 도와주는 사업, 1인 출판 역시 성행하고 있다.
글쓰기 열풍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과학저술 전문가 클라이브 톰슨은 『생각은 죽지 않는다』라는 저서에서 “미국에서만 사람들은 매일 1,540억 통의 이메일을 쓰고, 5억 개가 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며, 160억 개의 단어를 페이스북에 쓴다. 우편제도가 발달한 1860년에 미국인 한 사람이 쓰는 편지가 한 해 평균 5.15통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가히 ‘쓰기 폭발’”이라고 밝혔다.

AI 시대, 인간은 더 간절히 표현하고 싶다
글쓰기에는 크게 ‘자기표현’과 ‘자기 해방’이라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SNS의 등장으로 활성화된 것이 자기표현의 글쓰기라면, 1인 1책 저자되기, 자서전 쓰기 열풍은 자기 해방의 글쓰기이다. 다시 말해 전자는 이메일과 SNS에 개성 있고 조리 있게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고, 후자는 치열한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자기를 치유하는 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글쓰기 열풍은 대학 진학은 물론, 취업과 직장 승진을 위한 필수 스펙으로 떠오른 것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열풍을 촉발한 데에는 SNS의 활성화 덕이 크다. 하루가 멀다하고 SNS에는 일반인들의 맛깔나는 글들로 넘친다. 게다가 ‘좋아요’라는 클릭 수와 퍼 나르기는 젊은층의 글쓰기 욕구를 한껏 북돋운다.
글은 나를 표현하는 도구다. 전문가들은 글쓰기 열풍이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발산하고픈 욕망이 사회적으로 퍼지는 증거라고 말한다. ‘침묵이 금’인 시대에는 오히려 표현하는 것이 해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던 산업화시대에 다양한 생각과 창의성으로 무장한 자기표현 방식은 무의미했고, 때로는 자살행위와도 같았다. 그간 축적해놓은 지식을 얼마나 잘 쌓았는지가 경쟁력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기본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신체가 마비되어도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것이 생각하는 능력이다. 프랑스 『엘르』의 편집장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뇌출혈로 쓰러져 거의 모든 신체적인 능력이 마비된 극한의 상황에서도 『잠수복과 나비』를 집필했다. 병상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왼쪽 눈의 깜박임으로 문자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활용했다.
또, 지금의 글쓰기 열풍은 경쟁에 따른 피로가 누적되면서 파생한 현상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글쓰기는 내면을 들여다보고 주변을 살피는 데 가장 적합한 방식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자기 해방의 글쓰기’라는 강연에서 “자신에 대한 글을 쓰다보면 숨어 있는 트라우마와 만나게 되고, 막연한 공포감에서 벗어나는 단초가 된다”고 했다. 게다가 과거보다 글쓰기가 편리해졌다. 관련 서적을 직접 찾지 않아도 웬만한 지식은 인터넷에서 검색되기에 방대한 지식을 모으는 데 한결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땅으로 내려온 글쓰기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글 못 쓰는 사람들은 살아남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그에 반해 글쓰기가 두려운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소위 ‘글쓰기 무능력자’들은 이대로 앉아서 속수무책으로 있어야 할까? 뭔가 쓰고 싶은데 어떻게 글을 쓸 줄 모르는 이들의 특징을 정리하고 해결책을 간단히 제시해본다.
글쓰기 무능력자들의 특징은 마감시간이 없다. 오늘 써도 그만, 내일 써도 그만이다. 또, 타인이 내 글을 보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한다. 잘 쓰고자 하는 의욕이 넘쳐 첫 문장조차 쓰지 못하며, 30분 정도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들썩인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을 지내고 『대통령의 글쓰기』를 펴낸 강원국 작가는 글쓰기 두려움을 이기는 법으로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첫째, 스스로 마감시간을 정해 위기감을 느끼게 하라. 최고의 글쓰기 기법은 ‘마감’이라고 했다. 인간은 위기에 닥치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둘째,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고 ‘자기최면’을 건다. 결혼식 주례사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내 글에 관심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셋째, 단 한 문장이라도 써라. 뇌는 일을 착수하면 마칠 때까지 계속 활동하려 하는 특성이 있고 그 부담감 덕에 몰입한다. 마지막으로, 일정 시간을 내서 습관을 만들어라. 뇌는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려고 버티고 저항하지만 이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자신의 일을 돕기 시작한다. 엉덩이가 무거워지는 순간이다.”
글쓰기 기술을 담은 책들은 이미 시장에 차고 넘치게 나왔다. 쓸 차례다. 글은 글자로 옮긴 말이라고 했다. 말은 누구나 한다. 오늘부터 말을 기록하자. 그것이 당신의 글이다.

최윤경 전문기자

[2017-07-31]조회수 :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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