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9.21
아날로그의 회귀, 반짝 유행인가 재탄생인가

아날로그는 0과 1이 지배하는 세상의 피난처인가
올해 5월 말에 오픈한 스타필드 코엑스몰 별마당 도서관이 화제를 모았다. 임대료 비싸기로 유명한 삼성동 한복판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오픈한 것이다. 코엑스 정중앙에 위치한 이곳은 면적만 2,800㎡(847평)에 이른다. 2개 층에 13m 서가가 설치돼 있고 5만여 권의 장서를 보유한 기증형·개방형 도서관이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삽시간에 SNS를 탔다. 불과 몇 개월 새 수많은 방문객도 찾았다. 그런데 왜 하필 도서관일까?
해답의 단초는 최근 유행하는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출간 한 달 만에 4쇄를 찍으며 유명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꿰찼다. 4차 산업혁명을 다룬 신간이 쏟아지는 가운데, 홀로 ‘아날로그’를 말하며 선전하는 것이 인상 깊다.
1부 ‘아날로그 사물의 반격’과 2부 ‘아날로그 아이디어의 반격’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레이디 가가는 왜 스트리밍 서비스 대신 LP레코드로 돌아섰을까?(1장 레코드판), 실리콘밸리 리더들이 몰스킨 노트에 빠진 까닭은?(2장 종이), 턴테이블과 필름 카메라에 열광하는 10대들의 이야기!(3장 필름), 왜 아마존은 맨해튼에 오프라인 서점을 냈을까?(5장 인쇄물), 오바마가 사랑하는 아날로그 시계, 시놀라는 어떻게 부활했을까?(7장 일), 아이패드가 교사를 대신할 수 있을까?(8장 학교), 낮에는 코딩, 밤에는 수제 맥주 만드는 밀레니얼 세대의 일상!(9장 실리콘밸리)”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목차와 내용에서 엿볼 수 있듯,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디지털 시대에 왜 다시 아날로그가 돌아오고 있는지를 탐사, 분석한 것이 핵심이다.

 

‘유니크’에 답이 있다
아날로그의 회귀는 비단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곳곳에 아날로그 회귀 현상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태원에 자리 잡은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는 ‘아날로그적 영감의 공간’이라는 콘셉트를 내걸고 오픈한 체험 공간이다. 바이닐(LP, 이하 LP) 전문 매장인 이곳은 중고 LP를 뒤적이는 손맛과 음악 취향에 맞게 선택을 대신할 수 있는 큐레이션(Curation)으로 취향이 확고한 젊은이들을 끌어들인다. 물론 디지털 음반은 한 장도 없다.
LP 전문매장의 출현은 LP의 부활과 연관이 깊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 현황에 따르면, 세계 LP 음반 판매량은 2008년 500만 장에서 2015년 3,200만 장으로 6배 이상 성장했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올해 음반과 턴테이블, 카트리지(레코드 음반을 듣는 바늘) 등 LP 관련 시장 규모가 10억 달러(약 1조 1,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국내에서도 2016년 LP 판매량은 28만 장, 매출액은 98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최근에 유명 아이돌 가수들을 중심으로 음반을 LP로 제작하기도 했다.
공간 또한 아날로그의 선전이 눈에 띄는 분야다. 한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책을 판매하는 소책방은 아이러니하게 가장 핫한 동네 합정동, 염리동, 대현동과 같은 신촌을 중심으로 들어섰다. 벌써 20곳이 넘는다.
손글씨의 맛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수제 노트, 다이어리와 만년필 등 필기구 역시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G마켓의 연필 판매량도 3년 연속 증가 추세다. 연필로 쓴 잡지, 연필로만 그린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는가 하면, 진짜 연필 같은 전자연필도 나왔다. 저렴한 필기구의 대명사 모나미는 금을 사용해 만든 ‘모나미 153 골드(5만 원)’를 출시했고, 다양한 꽃모양의 ‘모나미 153 플라워’ 시리즈는 여학생 사이에서 단연 인기다. 한발 더 나아가 만년필의 대명사 몽블랑은 필기 내용을 디지털로 저장해 활용할 수 있는 복합제품도 내놨다. 모두 20~30대가 주요 타깃이다. 몰스킨을 비롯해 개성 강한 다이어리가 인기를 끌며, 손글씨인 캘리그래피(Calligraphy) 열풍도 꾸준하다. 최근엔 손편지를 대신 써주는 기업도 생겼다. 스타트업 ‘손편지제작소’는 손편지가 주는 진실성과 차별화된 이미지 때문에 일반인뿐 아니라 기업 고객도 늘고 있다고 답한다.
아날로그의 열풍은 이미 고사한 필름 카메라 제품을 새로운 형태로 소환하기도 했다. 스마트폰 카메라 앱 ‘구닥(Gudak)’은 필름처럼 한 번에 사진을 24장만 찍을 수 있다. 필름 1롤을 다 쓰면 1시간은 지나야 충전이 된다. 찍은 필름은 3일 지나야 확인할 수 있는데, 색감이 여지없이 필름 카메라의 그 색감이다. 이 앱은 7월에 한국, 태국의 앱스토어 유료 앱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홍콩, 일본, 핀란드, 네덜란드, 뉴질랜드, 브라질 등에서도 호평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실은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로그(Digilog)’
아날로그 열풍의 주역들은 20∼30대 젊은 층이다. 그 물건을 소유했고 문화를 향유했던 세대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아날로그 열풍을 두 가지 시각으로 진단한다.
우리 몸은 근육으로 되어 있다. 이 근육들은 뇌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여전히 땀 흘려 움직이고, 만지고 싶은 욕구를 느끼며, 이로써 쾌감을 얻는다. 문제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본능 중 하나인 촉각이 상실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촉각을 부활하고자 하는 본능이 아날로그를 소환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다른 하나는 ‘또 다른 차원의 럭셔리 시장’의 탄생으로 보는 시각이다. ‘아날로그’는 촉감, 진실성, 개성, 차별화, 설렘, 관계, 취향이라는 단어가 숨어 있다. 보통은 더 품을 팔고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얻을 수 있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디지털이 아니라 한정판, 희소성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상징인 셈이다. 옛것을 그리워하는 현상일 수도 있지만 ‘유니크’로 표현되는 개성의 표출이며, 아이팟과 페이스북 이용에 가세한 부모 세대와 확연히 구분 짓고자 하는 특성이 오히려 ‘아날로그’를 쿨하게 봤다고 분석한다.
물론 대세는 될 수 없다. 가끔씩 특정 영역에서 편리함을 포기하고 관계 중심으로 지내겠다는 것이지, 지속적으로 얽매이거나 사서 고생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숨통을 틔어주는 역할이라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반짝 유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지점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만남이다. ‘구닥’은 아날로그를 제공하지만, 기반은 스마트폰 앱이라는 디지털이다. 즉, 디지털과 결합해 ‘디지로그(Digilog)’로 진화했다.
자,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왜 하필 도서관을 코엑스 한복판에 만들었을까? 가치참여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 유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인데, 바로 여기에 아날로그가 소환된 것이다. 가장 트렌디한 공간에 가장 아날로그적인 공간의 접목. 디지로그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천하무적, 무한 진화처럼 보이는 디지털도 한계는 있다. 오늘의 디지털이 내일의 아날로그가 되기도 한다. 『아날로그의 반격』을 광고하는 문구처럼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알려주지 않은 인간의 미래’를 더욱 고민해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윤경 전문기자

[2017-08-28]조회수 :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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