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9.21
왜 지금 백마 탄 영웅은 나올 수 없나

 

나이 들면서 반드시 행해야 할 ‘업’으로 끝나는 세 가지 계명이 있다. 항상 용모를 단정히 하라는 ‘드레스업(dress up)’,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기 몫(특히 돈)을 지불하라는 ‘페이업(pay up)’, 말을 줄이고 경청하라는 ‘셧업(shut up)’. 회식시간 상사의 영웅담이 시작되고, 감정이 고조돼 걱정과 당부로 흥분되는 시점부터 직원들은 몰래 휴대폰을 꺼내 자신의 일을 시작한다.

나이 들어 셧업 해야 하는 이유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높다. 현재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취임 한 달쯤엔 역대 대통령 중 최고치인 84%까지 올라갔다. 같은 기간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44%, 이명박 대통령도 52%에 불과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높은 지지도의 1등 공신은 ‘탈권위’였다.
문 대통령이 취임 이튿날 재킷을 벗겨주려는 청와대 직원의 손을 거절하면서 “이 정도는 내 손으로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과 행보가 탈권위의 신호탄이 되었다. 국무총리 임명장 수여식에서 함께 허리를 굽혀 이낙연 신임 국무총리와 악수를 하고,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오찬을 하기 위해 식판에 손수 음식을 담았다. 회의에 앞서 커피잔에 커피도 직접 따르는가 하면, 여야 당 대표 초청행사에 직원들이 테이블을 그늘 쪽으로 옮기려 하자 함께 나르는 데 손을 보탰다. 행사장 앞에 쪼그려 앉은 채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손을 잡아줬다.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열린 재계 총수들과의 간담회를 ‘호프타임’으로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호프타임은 노타이를 한 총수들이 명찰을 가슴에 달지 않거나, 서열 순으로 자리를 배치받지 않은 채 치킨에 맥주를 곁들여 마셨다는 자체만으로 ‘격식파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모두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솔한 대화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소통 의지를 보여준다. 탈권위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문 대통령의 권위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높아 보인다.
우리뿐 아니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은 노타이는 물론이고 소매를 걷어붙인 셔츠 차림으로 젊고 역동적인 리더십을 드러내기도 했다. 보수적인 영국에서조차 의회 하원들에게 얼마 전 ‘노타이’를 허용했다. 과거의 가발과 모자 등의 필수복장은 모두 사라지고, 그마저 있던 정장과 넥타이도 파기됐다. 한때 넥타이를 매지 않은 의원에겐 발언권을 주지 말자는 반론도 있었지만 노타이 시대를 막진 못했다.

막강해진 폰
권위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권력과 위세’ 혹은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 또는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신 또는 그런 사람’이다. 전통적으로 권위가 정계, 재계, 학계에서 통용되는 힘이었다면, 새롭게 편승한 분야가 연예계다. 인기로 인해 힘을 가지게 되면 대중 속에서 다양한 영향력을 끼치며 오피니언 리더로서 자리 잡는다. 과거엔 다소 가식이 있더라도 품위와 무게감이 있고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대세였다면, 최근엔 상황이 역변했다.
「효리네 민박」으로 효리 신드롬까지 창출한 원조 섹시스타 이효리는 지금 화려함과 신비와는 거리가 멀다. 소박하고 억지스럽지 않으며, 참하고 착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만 솔직하고 개념 있는 발언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운이 따라주지 않은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니 새로운 여성 리더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대중이 영웅보다는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소통의 리더를 원하게 된 이유는 뭘까? 일단 현대 사회는 영웅 탄생이 불가능해졌다. 대중이 ‘스마트폰’이라는 소셜네트워크로 연결된 강력한 무기를 소유하면서부터 숨겨진 약점은 결국 탄로가 난다. 게다가 광속으로 발전하는 기술과 사회 변화 역시 오늘의 권위적인 요소가 내일의 권위를 담보할 수 없게 했다. 과거에 ‘나이’는 힘이었다. 노인은 경험에서 얻은 지혜와 지식의 매개자이자 희소성 있는 소중한 자원이었다. 지금은 변했다. 다양한 지식매체가 존재하고, 무엇보다 과거의 선험적인 지식이나 지혜가 더 이상 미래의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다. 공급 과잉에, 대체물이 쏟아지고, 성능도 떨어진 셈이다.

권위 있는 리더인가? 권위주의적인 리더인가?
탈권위 추세가 억울한 측면도 있다. 대중의 SNS는 혹독하고 자주 사악하며 간혹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SNS의 혹독한 세례를 치르고 온전한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포퓰리즘에 이용될 수도 있으며, 정확한 평가는 적어도 1년 후에나 가능할 수 있다. 또 나이가 젊다고, 첨단분야에 종사한다고 권위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벤처캐피털 바이너리캐피털의 공동 설립자이자 투자자로 명망이 높았던 저스틴 칼드벡은 여성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상대로 ‘갑질 성희롱’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임했다. 여성들에게 잠재적 투자를 빌미로 호텔방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하거나, 새벽 3시에 여성 기업인에게 만나자는 문자를 보내고, 다리를 더듬는 등의 성추행 사실을 최소 6명의 여성 스타트업 기업인이 폭로했다.
세계적인 차량 공유서비스 업체인 우버 역시 전 엔지니어인 수전 파울러가 회사 내에 광범위하게 퍼진 성희롱과 마초 및 강압적인 문화에 대한 비판 글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기업문화 문제가 부각됐다. 결국 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은 사임했다. 혁신적인 실리콘밸리 역시 경계하지 않으면 ‘마초문화’라는 권위적인 사고가 싹틀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새로운 시대, 모두가 기다리는 진짜 리더가 되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된 『좋은 권위』(2017년 7월 출간)의 저자 조너선 레이몬드는 좋은 권위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에 대한 통찰력, 결정을 미루지 않는 배려심, 직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관대함, 변명을 하지 않는 단호함 등 14가지의 요소를 갖추어야 비로소 세워진다고 주장한다.
『천년의 내공』의 저자 조윤제는 ‘권위와 명예는 스스로 얻을 수 없다’는 글에서 “‘권위’와 ‘명예’는 결코 스스로 얻을 수 없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기 위해 애쓰면 애쓸수록 점점 더 우스꽝스러워지고 존경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고 조언하며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자신의 잘못을 스스럼없이 인정하는 솔직함”에서 진정한 권위가 나온다고 조언한다. 윗사람들이 아랫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기는 참 어렵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바로 인정하고 솔직하게 사과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자 자신의 권위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탈권위가 뜬다는 것은 바꿔 말해 ‘소통’이 뜬다는 의미다. 경영자나 상사의 의견과 지시사항을 받아적기 바빴던 과거와 달리 반론할 수 있고 아이디어를 내고 토론을 할 수 있는 문화만이 불확실성 시대에 생존력을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윤경 전문기자

[2017-09-28]조회수 :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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