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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의 눈 내리는 마을

대한민국에서 겨울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 대관령. 멀리서 찾아온 친구를 반기듯 함박눈이 달려든다. 여기부터 평균 해발고도 700m 눈의 나라, 평창이다. 뜨겁게 추위를 녹여줄 다양한 체험거리가 있어 그 어느때보다 생동감 넘치는 평창의 눈 내리는 마을.

확대보기눈 쌓인 대관령 목장 전경대관령 목장에 들러 가족과 연인이 오순도순 손잡고 산책도 하고, 눈 위에서 뛰놀다 보면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생긴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대관령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가슴이 단번에 뻥 뚫린다. 과학적 이론에 따르면 해발 700m 환경은 호르몬의 분비를 알맞게 조절해 건강에 이롭다고 하니, 실제로 효과를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강원도 평창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고도 ‘해피 700’을 슬로건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이곳은 오래도록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혔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평창은 지금의 평창읍과 미탄현을 합친 작은 고을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 태조가 군으로 승격시켰지만 그 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오죽하면 “한때 난리를 피하기에는 좋은 곳이나 오래 대를 이어가며 살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라고 이중환이 《택리지》에 썼을까?
그러다 20세기 들어서면서 강릉으로부터 방림·대화·진부·봉평면을, 정선으로부터 도암면(현 대관령면)을 각각 흡수해 평창은 전국 군 중에서 세 번째로 큰, 지금의 면적을 갖게 되었다.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고 감자와 옥수수, 배추의 주산지가 되면서 고랭지농업의 메카로 우뚝 자리매김했다.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 스키 역사는 1949년 대관령에 슬로프를 만들어 이듬해 전국대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식 스키리조트가 가장 먼저 문을 연 평창은 이제 동계스포츠는 물론 도심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즐길거리로 겨울철에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겨울에 푹 빠진 대관령 목장
두툼한 솜이불을 덮은 듯 하얗게 변한 한겨울의 대관령. 백두대간에 가로막힌 눈구름이 무시로 큰 눈을 흩뿌린다. 특히 대관령을 지붕 삼은 횡계 일대는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며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총 3개의 목장이 모여 있는데, 각기 다른 매력이 넘친다.
그중 길 초입에 자리한 양떼목장은 관광목장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1988년에 문을 열고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면양을 방목해 기르기 시작한 곳. 너른 초지대를 누비는 200여 마리의 양떼 모습이 한 편의 동화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12월부터는 양들의 바깥출입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겨울에 여길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눈 때문이다. 목장의 정상부에는 큰 통나무를 정(井)자 모양으로 쌓아 만든 귀틀집이 있는데, 여기서부터 비료포대를 타고 눈길을 달리다 보면 누구나 풋풋했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실컷 눈밭을 뛰놀다 전망대에 오르면 횡계 일대는 물론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스키점프대도 보인다.
여의도 면적의 약 7.5배에 달하는 동양 최대 초지를 가진 삼양목장은 그 풍광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사뭇 호쾌해진다. 입구에서 정상까지 거리만 4.5㎞에 이르는데, 15분 간격으로 운영하는 대형버스를 타면 힘들이지 않고 단번에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바람이 주인 행세를 하는 이곳은 은빛으로 눈이 부시다. 눈 덮인 산등성이에는 바람개비를 닮은 풍력발전기 50여 기가 윙윙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아가는데, 올려다보면 목이 아플 정도다. 탁 트인 시야에 눈이 힐링했다면 이제는 입이 즐거울 차례. 목장 초입의 매점에서는 삼양목장에서 만든 유기농 유제품 외에도 삼양식품의 라면과 스낵을 저렴하게 판매한다.
하늘목장은 겨울철에 소문난 트레킹 코스인 선자령과 어깨를 맞대고 있다. 트랙터 마차를 타고 곧장 전망대에 오르면 말문이 막힐 정도로 광활한 경관이 펼쳐진다. 1970년대에 만들어져 2014년 일반에 개방된 만큼 사람 손때가 덜 탔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마차에서 내려 눈길을 따라 선자령 정상까지 올라가보길 권한다. 해발 1,157m이지만 능선이 완만하고 길이 험하지 않아 초보자에게도 알맞다. 정상에 올라서면 동해와 강릉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온통 하얀 눈꽃 세상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지므로 기념촬영은 필수다.

확대보기동강 유역과 백룡동굴동강 유역의 어름치마을은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탐사형 동굴인 백룡동굴 체험과 칠족령 트레킹 등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색체험으로 가득한 관광특화마을
하늘목장 아래 위치한 의야지 바람마을은 겨울철에도 체험객이 끊이지 않는 관광특화마을이다. 마을 이름은 예로부터 ‘의로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중 대관령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한 먹거리 체험이 눈에 띈다. 유기농 치즈, 웰빙피자, 감자전 등을 만들 수 있는데, 만드는 과정이 40분 내외로 짧고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사람 따라 그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그 맛만큼은 모두 으뜸이다.
설원 위를 달리는 산악용 4륜바이크 체험도 인기가 높다. 추수를 마친 논밭에는 미리 얼음을 얼려 눈썰매는 물론이고 스노우 래프팅과 미니 봅슬레이 같은 레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야외 놀이터를 만들어놓았다. 눈밭에 미끄러져도, 커다란 눈덩이를 맞아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좀 더 색다른 체험을 원한다면 미탄면 어름치마을이 제격이다. ‘말이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 원래는 마하리로 불렸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동강과 접하고 있는 데다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 하나인 백운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정부는 2002년부터 동강 부근을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관리하고 있는데, 이 마을 주변에는 천연기념물 259호로 지정된 어름치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생태계를 보호하자는 의미에서 이곳 사람들은 아예 마을 이름까지 바꾸고 본격적으로 주변을 돌보기 시작했다. 일대는 어름치뿐 아니라 동강할미꽃과 수달, 비오리 같은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1979년 천연기념물 260호로 지정된 백룡돌굴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주민들은 협의체를 구성해 동강 래프팅과 카약, 집라인과 스카이점프 등의 체험과 숙박 및 식당을 운영한다.
그중 백룡동굴 탐방은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갖가지 조형물과 색색의 조명으로 장식한 여느 동굴들과 달리 최소한의 탐방로만 마련한 국내 유일의 탐험형 동굴로 1회 20명, 하루 최대 240명까지만 안내자의 인솔 아래 둘러볼 수 있다. 1년에 0.1㎜씩 자란다는 종유석과 석순 등 동굴생성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탐사복에 장화와 장갑, 전등 달린 헬멧을 갖추고 2시간가량 동굴 탐험을 마치고 나면 때 묻지 않은 지구의 속살을 제대로 마주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확대보기오대산 월정사와 전나무 숲길오대산 월정사로 향하는 전나무 숲길.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9㎞의 선재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맑은 기운 가득한 숲속 설경
동강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백운산 중턱에 위치한 칠족령에 올라보자. 백룡동굴체험센터에서 산길을 따라 1.7㎞ 정도 오르면 된다. 산자락을 휘휘 돌아 길이 나 있어서 걷기 수월한 데다, 50여 분의 짧은 등산만으로도 드라마틱한 풍광을 볼 수 있어 만족스럽다. 칠족령 전망대에 오르면 굽이친 백운산 능선은 물론이고, 정선 쪽에서 흘러와 영월과 평창 경계를 이루며 S라인으로 흐르는 동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평창에는 태백산맥의 한 줄기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해발 1,577m의 계방산이 있다. 각종 약초와 야생화가 자생하는 곳으로, 특히 산삼이 유명해 사철 심마니들이 모여든다. 해발 1,089m의 운두령 북쪽에는 반달곰이 서식한다는 깊은 골짜기도 있다. 하지만 깊은 눈이 쌓이면 아무래도 조심해야 하는 것이 사실. 게다가 한번 쌓인 눈은 햇볕도 잘 들지 않아 쉽게 녹지 않는다. 아이젠, 스패츠 등 겨울산행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동행자와 함께 탐방하는 것이 알맞다.
미처 상황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오대산이 품고 있는 천년고찰 월정사로 향한다. 드라마 〈도깨비〉의 남자 주인공(공유)이 여자 주인공(김고은)에게 애틋하게 사랑을 고백했던 곳으로, 몇 년 사이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연인들의 발걸음이 늘었다. 워낙 유명한 사찰이다 보니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이들이 찾지만, 한겨울에는 그 어느 때보다 한적하다. 일주문에서 월정사 경내에 이르는 1㎞가량의 전나무 숲길은 초록과 흰색이 어우러진 몽환의 세상. 고요함 속에 뽀도득 뽀도득 눈 밟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직 얼지 않은 냇물은 졸졸졸 박자를 맞추며 흐른다. 청명함이 가득한 이 길을 걷노라면 탁한 속세의 먼지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일주문에서 금강교까지, 최고 수령 500년 된 전나무 1,700여 그루가 자리하고 있어 ‘천년의 숲길’이라고 불린다. 대부분이 평지로 되어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걸으며 사색하기 좋은 까닭이다. 눈 쌓인 절집 마당에 도착하니, 추녀 끝에 매달려 있는 풍경(風磬)이 바람 따라 맑고 고운 소리를 쏟아낸다. 어디선가 불경 외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이번 겨울 평창은 그렇게 눈으로, 귀로 찬란히 기억된다.

덧붙이는 평창 이야기

확대보기이효석 문화마을과 평창송어축제이효석 문화마을 / 평창송어축제
이효석 문화마을
봉평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 배경지. 이효석 생가와 문학관, 100만㎡ 규모의 메밀밭 등이 꾸며져 있다. 실제로 메밀꽃이 필 무렵인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는 축제도 연다. 메일국수, 전병, 묵사발 등 다양한 메밀 음식을 파는 식당도 여럿이다.

평창송어축제
오대천 일원에서는 12월 21일부터 송어축제가 열린다. 꽁꽁 얼어붙은 강에 구멍을 내고 낚시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맨손 송어잡이는 축제의 하이라이트. 찬바람이 걱정이라면 낚시 텐트를 빌리면 된다. 갓 잡은 송어는 입구에 있는 회센터에서 바로 손질해준다.

글·사진 이계선 객원기자

조회수 : 1,478기사작성일 : 201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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