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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로망
예술이 흐르는 도시 순천

따사로운 햇살 아래 수줍게 피어난 어린잎, 코끝을 간질이는 달콤한 매화 향기, 마음 깊은 불안을 잠재우는 물소리… 코로나19에 빼앗긴 들에도 분명 봄은 오고 있다. 꽃망울처럼 예술이 톡톡 터지는 아름다운 정원의 도시 순천으로 향했다.

확대보기순천 동천 전경

코로나19 탓에 한적해진 거리. 따사로운 햇살마저 비추지 않는다면 얼마나 절망적일까? 혹독했던 지난날을 보상해주는 듯 새봄이 찾아들었다. 나들이가 조심스러운 요즘이지만 남녘에서 찾아드는 꽃소식의 유혹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정원의 도시’답게 순천은 이미 색색으로 물들어가는 중이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매화를 시작으로 산천에 붉은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가 피어나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동천(東川)에는 버드나무가 기세 좋게 연둣빛 기지개를 켜고 있다. 머지않아 물길을 따라 30리 벚꽃이 흐드러질 테다.
자연은 늘 그렇듯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이들에게 따뜻하고 부드럽게 먼저 손을 내민다. 흐르는 강물 소리를 듣다 보면 묵은 때가 깨끗하게 벗겨지는 것만 같다. 씩씩하게 자라난 이름 모를 풀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불끈 솟아난다. 순천은 공유자전거 시스템 ‘온누리’가 잘 갖춰져 있어 페달을 밟으며 봄을 느끼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길은 유순하고 평탄해서 원도심에서 순천만까지 내달려도 두어 시간이면 충분하다.

확대보기전남콘텐츠코리아랩과 지역 창작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사진1 순천 아랫장 곡물창고에 둥지를 튼 전남콘텐츠코리아랩. 지역 콘텐츠 창작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단계별 맞춤형 지원을 펼친다.
2 지역 창작자를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이들이 개발한 제품이나 사업 모델을 전문투자자에게 알리는 데모데이 등을 진행해 비즈니스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아랫장 곡물창고의 대변신, 전남콘텐츠코리아랩
천변 가까이에는 재래시장이 있어 더욱 정겹다. 좀처럼 교통체증이 없는 순천이지만, 오일장이 서는 날만큼은 어김없이 차가 막힌다. 사방에서 사람이 몰려들어 축제를 방불케 한다. 특히 매 2일과 7일에 열리는 아랫장은 전라남도 최대 규모로, 많게는 하루 2만 명이 찾기도 한다. 인근 지역인 여수와 광양, 보성 그리고 섬진강 너머 경상남도 하동과 진주의 상인들까지 찾아와 난전을 벌인다. 질박한 사투리와 함께 육해공 생산물은 물론 약재와 각종 공산품까지 한자리에 펼쳐져 구경할 맛이 난다. 매주 금·토요일에는 시끌벅적한 야시장도 선다.
순천 아랫장에는 지역 창작자를 위한 특별한 인큐베이팅 공간이 자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곡물창고에 둥지를 튼 ‘전남콘텐츠코리아랩’이 그 주인공. 도시재생이 시대의 화두가 되면서 허름한 건물을 새롭게 단장해 지난 2018년 12월 문을 열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사진과 영상촬영을 위한 크로마키 스튜디오, 3D프린터와 목공장비 등을 갖춘 메이커스페이스, 협업을 위한 코워킹스페이스 등 각종 장비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창작자를 위한 교육과 멘토링, 창업지원까지, 꿈을 현실로 만드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공간 활용도가 높고 구매 부담이 큰 첨단장비를 예약제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데다, 체계적인 교육과 지원까지 받을 수 있어 만족스럽습니다.”
건물 2층에 자리한 루키존에 입주한 라온그린(Raongreen)의 이복은 대표. 서울에서 대기업을 다니다 창업을 결심한 그는 사물인터넷(IoT)을 접목한 스마트 양식장을 구축하고, 위치기반 증강현실(AR)을 이용한 콘텐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업 이름처럼 ‘첨단기술로 즐거움을 그리는 회사’로 커나가며 2년 연속 채용인원까지 늘고 있다.
전남콘텐츠코리아랩은 이처럼 ‘빛나는 작은 아이디어가 글로벌 콘텐츠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창작자 양성을 위해 영상과 출판, 웹툰과 캐릭터, 문화상품 개발과 SNS 마케팅 등 전문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이들이 개발한 제품이나 사업 모델을 전문투자자에게 알리는 데모데이를 진행하기도 한다. 매달 다양한 수업이 열리는데, 문화콘텐츠 분야의 유명인사를 초청해 경험담을 듣는 실패학 콘서트가 단연 인기가 높다. 영화감독 박찬욱, 만화가 이현세, 뇌과학자 정재승 등이 초대돼 매회 만석을 이뤘다.
“지난해까지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안정화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올해부터는 캐릭터 및 영상 콘텐츠를 특화해 젊은 감성으로 창작 열기를 한층 달굴 것입니다. 로컬 크리에이터를 많이 육성하는 것이 지역 성장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전남콘텐츠코리아랩 설연수 센터장은 시대에 부합하는 콘텐츠 교육 과정을 개설해 수면 아래 있었던 지역 창작자를 발굴하고, 시제품 제작과 역량 강화 워크숍 등의 행사를 통해 지역 기업이 세계 무대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확대보기라온그린의 이복은 대표와 작업공간 사진‘첨단기술로 즐거움을 그리는 회사’ 라온그린의 이복은 대표. 크로마키 스튜디오와 3D프린터 등 고가의 장비와 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공간 활용도가 높아 만족스럽다고 한다.

도시재생 1번지, 문화의 거리와 옥리단길
아랫장 구경을 마치고 원도심으로 향했다. 물 맑은 옥천(玉川)이 굽이굽이 흐르는 중앙동, 향동, 저전동 일대를 일컫는다. 1990년대 들어 법원, 검찰청, 교육청, 세무서 등 공공기관이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동천 동쪽으로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살기 편한 아파트 단지로 사람들은 떠났고, 오래된 도심은 점차 쇠락했다.
2009년부터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낡은 주택과 건물에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주민이 주도하는 도시재생사업이 꾸준히 진행되면서 일대는 서서히 변화했다. 차 없는 거리를 만들어 보행자의 편의와 안전을 도모했고, 거리 곳곳을 벽화와 바닥분수 등으로 꾸몄다. 아랫장에서 2㎞ 남짓 떨어져 있는데, 자전거로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닿는다.
노란색 해바라기가 입구에 그려져 있는 ‘작업실의 오후’는 누구나 편안하게 오가다 그림을 감상하는 곳. 순천만의 붉은 칠면초가 펼쳐진 풍경을 즐겨 그려온 서양화가 한임수 작가가 오랫동안 카페로 운영하다 갤러리로 재개관했다. 순천을 기반으로 한 지역 작가의 전시와 주민들을 위한 예술강좌가 수시로 열린다. 맞은편에는 누구든 책을 보며 쉬어갈 수 있는 ‘한옥글방’이 있다.
터만 남아 있던 순천부읍성(順天府邑城) 서문도 복원되었다. 유선형의 건물에는 마을방송국과 도서관, 전시실 등이 들어섰다. 주변에는 영상미디어센터 두드림과 문화예술복합공간 장안창작마당, 조강훈 아트 스튜디오와 한복명인 김혜순공방, 선비체험문화학습관 등 볼거리가 즐비하다. 대로변을 살짝 벗어난 골목에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과 카페도 생겨났다. 맛은 물론 인테리어 센스 또한 서울의 경리단길 못지않아 젊은 층에서는 ‘옥리단길’이라 부른다.
오르막길에 자리한 ‘청수정 카페’는 뛰어난 가성비로 남녀노소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은 곳. 순천시가 ‘새뜰마을 사업’을 진행하며 철거를 고민하다 주민들과 뜻을 모아 1930년대에 지어진 한옥을 리모델링했다. 동네 주민들은 청수정협동조합을 만들어 어머니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집밥과 다과를 판매하고 있다. 공동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로 정성껏 차린 엄니밥상은 1인분에 7,000원. 10가지가 넘는 반찬마다 정성이 가득 들어 있고,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점심시간에만 집밥을 먹을 수 있다. 옛날 과자인 오란다와 커피, 대추차 등의 음료는 오후 6시까지 맛볼 수 있다.

확대보기순천부읍성 서문안내소와 오픈 갤러리 ‘작업실의 오후‘, 맛집 ‘청수정’1 원도심에는 지역민이 주도하는 도심재생사업이 한창이다. 순천부읍성 서문 안내소는 작은 도서관뿐만 아니라 마을방송국, 전시실 등이 들어서 있는데, 주민들이 직접 운영한다.
2·3 문화의 거리 입구에 자리 잡은 작업실의 오후(3)는 누구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오픈 갤러리. 가성비 뛰어난 맛집 청수정(2)은 달동네로 이어지는 언덕길 맨 끝에 있다.

여행자를 위한 순천 가이드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로 가득한 도시 순천. 대부분의 관광지까지 대중교통이 편리해 뚜벅이 여행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대한민국 최고의 봄꽃 여행은 물론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시간여행도 가능하다.

확대보기매곡동 탐매마을
매곡동 탐매마을
담장과 문패, 우편함과 헌옷수거함에도 매화가 만발해 있다. 열두 달 내내 시들지 않는 그림 꽃이다. 탐매희망센터 뒤쪽 정원에는 쉬어갈 수 있는 벤치와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확대보기조례동 드라마세트장
조례동 드라마세트장
1960년대부터 1980년대의 달동네 모습이 완벽하게 재현돼 있다. 옛 교복을 입은 젊은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 든다.

확대보기짱뚱어탕
영양만점 짱뚱어탕
순천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갖은 채소와 양념을 넣어 푹 끓인 일종의 민물탕이다. 오염되지 않은 갯벌에서 자란 짱뚱어는 비린내가 없고, 타우린 함량이 높아 기력 회복에 좋다.

확대보기장어구이
순천만 장어구이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장어는 봄철에 잃어버린 입맛을 북돋아주는 명실상부한 보양식의 절대 강자. 순천만에서 잡아 올린 자연산 장어는 소금구이로 먹어도, 양념을 발라도 꿀맛이다.

확대보기웃장 국밥
웃장 국밥골목
매 5일과 10일에 오일장이 서는 웃장에는 이름난 국밥집이 여럿인데, 장날과 상관없이 붐빈다. 국물이 말갛고 살코기가 푸짐하다. 2인분 이상이면 수육 한 접시가 따라 나온다.

확대보기순천만 국가정원
순천만 국가정원
대한민국 1호 국가정원으로, 규모가 커서 순천만 습지까지 한번에 다 둘러보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봄이면 튤립과 철쭉, 유채꽃과 벚꽃, 초록빛 일렁이는 갈대밭을 볼 수 있다.

확대보기낙안읍성 민속마을
낙안읍성 민속마을
전시용으로 박제된 초가집은 흔하지만 실제 사람이 사는 곳은 드물다. 마을 전체가 조선시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살아 숨 쉬는 박물관으로, 이곳에 100세대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확대보기선암사
천년고찰 선암사
보물 제400호인 아치형 돌다리 승선교와 대웅전 등 여러 보물을 지닌 천년고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선암사에 매화가 지고 나면 겹벚꽃이 절집 마당을 붉게 수 놓는다.

글·사진 이계선 기자

조회수 : 1,342기사작성일 :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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