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10.27
후손에게 물려줄 회사를 만들어야죠
㈜에이치엠금속 서홍규 대표의 위기 극복기

서홍규 대표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5년 회생 불능이라는 판정을 받고 회사를 포기할 위기에 놓였던 그는 절치부심 끝에 2017년 4월에 보란 듯이 기업회생절차를 조기에 마무리했다. 그러고도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높다. 길고 긴 고난의 터널을 빠져나온 그의 앞엔 자동차 시장의 불황, 최저임금 인상과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악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난제를 풀기 위해 그는 다시 현장으로 들어갔다. 최고의 순간에 위기를 맞았고, 최악의 순간에 희망을 본 서홍규 대표.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홍규 대표

최고의 순간에 찾아온 위기
경남 함안산업단지 본사 건물 3층에 위치한 대표이사실에 들어선 순간,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책상 위에는 서류 대신 먼지가 쌓여 있었고, 책장과 소파 등 방안에 비치된 가구 어디에도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은 없었다. 오랜 시간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을 방문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아니나 다를까, 서홍규 대표는 아주 오랜만에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2013년 3월 경남 진주에서 이곳 함안으로 주조공장을 확장 이전하고 첫 가동을 시작한 이후 서 대표는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IMF 사태로 인해 주변 주조회사들이 차례로 문을 닫을 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쳤을 때도 거침없이 성장가도를 달려온 그였다. 최고의 이익률을 기록하며 매출이 고공행진을 하던 2011년에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해 야심차게 설비투자를 단행했다. 완공된 본사 건물에 널찍하게 자리 잡은 자신의 방을 둘러보며 달콤한 미래를 그렸을 터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서 대표는 대부분의 시간을 1층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며 보내고 있다.
최고의 순간에 서 대표를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경기불황이나 거래처 도산 등과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니었다. 생산시설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불량률이 10배로 치솟았지만, 그 원인을 찾지 못해 2년 넘게 적자에 허덕이다가 결국 2015년에 기업회생을 신청하는 신세가 됐다. 35년 주조 외길을 걸어오는 동안 품질과 생산성, 불량률에서는 자타공인 최고를 자부해온 서 대표이기에 좌절감은 더 컸고, 그가 입은 자존심의 상처는 깊었다.

함안 신공장2013년 3월에 가동을 시작한 함안 신공장. 지난해 말 안정적인 생산체제를 구축한 ㈜에이치엠금속은 올해 흑자 경영을 기대하고 있다.

IMF도 금융위기도 막지 못한 성장세
서 대표가 개인사업자로 창업을 한 것은 1986년. 당시 연탄 온수보일러 보급이 한창이던 때에 창업한 서 대표는 최고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며 승승장구했다. 한창 잘나갈 때는 한 달에 8,000대 가까운 온수보일러를 생산하며 연간 3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부터 기름보일러가 보급되면서 온수보일러가 사양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40개에 달하던 온수보일러 기업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서 대표는 결국 마지막 온수보일러 제작자가 됐다.
궁여지책으로 맨홀을 생산하던 서 대표는 1995년에 ㈜에이치엠금속을 설립하고 중장비 부품, 농기계 부품 제조사로 변신하며 인생 2막을 열었다. 온수보일러와는 전혀 다른 품목이다 보니 새로운 주조 생산라인이 필요했다. 한창 생산현장에 자동화 물결이 일던 당시, 난다 긴다 하는 경쟁사들은 100억 원에 이르는 주조 자동화라인을 구축했지만, 연매출 10억 원 정도였던 서 대표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결국 2억 원을 투자해 어렵게 기계를 마련한 서 대표는 밤이나 낮이나 현장에서 직접 기계를 손보며 개선작업에 매달렸다.
“100억 원짜리 생산라인을 구축한 회사의 현장을 구경했는데 속이 상하더군요. 소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로서 묘한 소외감이 들었어요. 하지만 저에겐 품질로 최고를 기록해본 경험과 노하우가 있었습니다. 결국 품질과 생산성, 가동률에서 우리가 그들보다 월등히 앞섰습니다.”
IMF 당시 일감이 줄어들어 주조기업들이 줄도산을 하던 때에도 에이치엠금속은 오히려 성장 가도를 달렸다. 뛰어난 품질과 가격경쟁력이 고객사를 불러 모으는 요인이 됐다. 매출이 오르자 서 대표는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봐야만 했던 자동화라인을 구축했고, 이를 바탕으로 만도에 자동차 브레이크의 핵심부품인 캘리퍼를 납품하며 고속 성장 시대를 열었다. 당시 고객사인 만도의 대표가 생산물량을 늘려달라고 직접 에이치엠금속을 방문했을 정도였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기업회생 절차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주조는 결국 품질과 생산성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같은 양의 원자재를 사용해 같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제품을 불량 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서 대표는 생산 고도화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경쟁사들이 모두 도입에 실패한 설비를 연이어 성공리에 구축하는 과정에서 생산성은 계속해서 높아졌고, 매출은 수직 상승해 2010년에 276억 원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1995년 창업 당시 10억 원으로 시작해 불과 15년 만에 거의 30배로 키운 유례없는 성장세다.
고객사의 물량 확대 요구에 힘을 얻은 서 대표는 2011년에 경남 함안에 부지를 마련해 신공장 구축에 나섰다. 진주 공장의 월 생산능력이 1,800t이었는데 이를 두 배로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 400억 원의 자금이 투자됐다. 고객사인 만도에서도 월간 2,000t의 제품을 납품하는 조건으로 50억 원어치의 기계를 지원했다. 2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2013년 3월부터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했다. 진주 공장에서는 2% 내외에 불과했던 불량률이 20∼30%로 10배 이상 급증했는데,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던 것. 만도에서 파견 나온 전문가는 물론이고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가들도 3년 가까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만도와의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에 빠졌다.
“주조공장에 새로운 설비를 구축하면 안정되기까지 보통 1년은 걸립니다. 남들보다 늘 잘해왔기 때문에 금세 안정될 줄 알았죠. 그런데 그 기간이 3년 이상 걸릴 거라고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한순간에 주저앉게 되더군요.”
2013년 한 해에만 적자가 80억 원 가까이 났고, 시간이 가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빚이 약 600억 원에 달했다.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던 서 대표는 결국 법원에 기업회생 신청을 했지만, 회생 불능이라는 판결문을 받아야 했다. 지쳐서 포기하고 싶었던 서 대표의 오기를 발동시킨 것은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기업의 담당자를 만나고 나서였다.
“당시에는 너무 지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수하겠다고 나선 회사가 우리의 기업 가치를 터무니없이 낮게 잡더군요. 그 금액에 팔았다가는 저를 믿고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에게 돈을 갚을 수 없겠더라고요. 그분들이 입을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회사를 팔더라도 어느 정도 정상화시킨 후에 팔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전문가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였는데, 서 대표가 현장으로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불량률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전문가에게만 맡겨놓은 것이 폐인이었다. 생산라인 전체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는데, 35년간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서 대표가 바로 그 적임자였던 것이다.
불량률이 떨어지자, 회생 불능 판정을 받은 지 석 달 만인 2015년 10월에 함안 신공장 가동 이후 처음으로 이익이 발생했다. 자신감이 붙은 서 대표는 법원의 담당 부장판사를 만나 사정을 설명하고 다시 조사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꼭 회사를 살려내겠다는 일념에 탄원서까지 냈다. 회생 불능 판정을 받은 기업이 재조사를 받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이 일을 서 대표는 결국 해냈다. 법원으로부터 재조사 승낙을 받고, 조사를 통해 회생 능력이 있다는 판정을 받아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2017년 4월 기업회생 절차를 조기에 마무리했다.

끝나지 않은 위기, 멈추지 않는 도전
서홍규 대표 35년 주조 외길을 걸어온 서홍규 대표. 위기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주조산업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회생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서 대표가 입은 내상은 생각보다 깊었다. 특히 1986년 개인회사를 창업할 때부터 함께했던 직원들이 하나둘씩 떠나던 순간은 그에게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저만 힘들었겠습니까? 형편이 어렵다 보니 떠나겠다는 사람을 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외국인 근로자들이 월급을 못 받아도 좋으니 계속 회사에 남아 있겠다고 하지 뭡니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서 대표는 현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년간 생산라인을 안정시키는 방안을 찾는 동안 영업은 지지부진했고, 그 사이 자동차를 둘러싼 시장 환경도 급격히 악화됐다. 납품 단가는 그대로인데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는 계속 올라 수익성은 떨어졌다. 그럴수록 서 대표는 현장에 더 오래 머물렀다.
지난해 57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도 이익을 내지 못했지만, 올해부터는 흑자경영이 가능해질 것으로 서 대표는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품질을 큰 폭으로 안정시키면서 원가절감 방안을 마련했고, 신차에 공급될 물량이 확보된 데다 단가인상 등 외부적인 요인도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이라면 2025년까지 남은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을 것으로 서 대표는 기대하고 있다.
위기를 넘어오면서 서 대표는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다.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경영자로서 그의 최종 목표다.
“열악한 주조공장을 누가 맡으려고 하겠습니까? 4차 산업혁명의 시대입니다. 자율주행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5G 서비스도 이미 시작됐습니다. 로봇과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까지 난이도가 높아 자동화가 불가능했던 주조공정을 혁신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습니다. 이런 기술을 현장에 도입하지 않는 기업은 분명 앞으로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서 대표는 올해 흑자경영으로 돌아서고 경색된 자금이 돌기 시작하면 스마트공장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눈앞에 떨어진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급급한 위기 속에서 그는 여전히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더 이상 목이 마르지 않으면 죽은 것과 같다. 경영자로서 아직 펄펄 끓는 열정을 품은 서 대표에겐 위기도, 도전도 현재진행형이다.

임숙경 기자 사진 김윤해 기자

[2020-02-07]조회수 :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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