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10.27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뿐
지엘테크21㈜ 주재만 대표

실패는 주저하는 사람보다 확신하는 자에 의해 초래되는 경우가 많다. 근거와 신념이 결여된 확신은 무모함에 가깝다. 지엘테크21㈜의 주재만 대표가 그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물론 그의 실패는 전형적이었지만, 지금의 그는 전형적이지 않다. 재창업을 한 지 5년. 이제 겨우 흑자를 내기 시작했고, 여전히 빚은 남아 있지만 그는 사업이 재밌다. 해외출장을 위해 이용하는 저가항공의 경험을 무용담처럼 얘기하는 그의 얼굴에선 실패의 그늘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아들에게 창업을 권할 정도의 창업예찬론자다. 그땐 없었고 지금은 있는 것. 자신의 확신에 대한 근거와 신념이다.

주재만 대표

쉽게 생각했다 큰코다쳤던 첫 창업
주재만 대표가 자신의 무모함을 깨닫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3개월이다. 대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만 무려 17년이나 한 그는 미련 없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선택한 업종은 태양광과 LED조명. 때는 바야흐로 2014년이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대충 짐작이 가는 스토리다. 물론 두 업종 모두 당시엔 미래산업으로 각광을 받았던 분야다. 하지만 2014년이면 한창 잘나가던 태양광사업이 주춤하기 바로 직전이고, 차세대 조명으로 짱짱한 기대를 모았던 LED조명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전락할 조짐을 보이던 시점이다. 어느 영화 속의 대사를 빌리자면 ‘망하기 딱 좋은’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주 대표에게 주저함은 없었다. 바로 개인사업자를 내고 대구시에 LED조명 소매 매장을 차렸다. 기대와 희망으로 자신감은 완충전 상태였다.
“그냥 돈이 되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태양광사업은 덩치가 커서 한 건만 수주해도 금액이 1억 원이 넘으니까요. 태양광건설업 분야에 지인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죠. LED조명 사업도 병원 한 곳만 뚫으면 될 것 같았어요.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죠.”
호기롭게 태양광건설업자를 만나러 다니고, 알음알음으로 병원을 10여 곳이나 방문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초기 자본이 없다 보니 시공사에 끌려 다니다가 결국 태양광사업은 일찌감치 접었다. LED조명 쪽은 사정이 더 좋지 않았다. 병원 측 관계자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들을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의지를 보여주는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B2B 사업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자 LED조명을 오픈마켓에 팔아볼 생각도 했다. 그러나 당시가 어떤 때인가? 너도나도 LED조명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자는 이미 한도초과 상태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초기 시장에 출시된 LED조명이 당초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품질로 소비자들을 실망시키고 있었다. 높은 불량률 때문에 AS 문의는 빗발쳤고, 결국 주 대표는 3개월 만에 깔끔하게 수건을 던졌다.
“가만히 실패의 원인을 곱씹어보니 한 가지밖에 없더군요. 저에게 경쟁력이 전혀 없었던 거예요. 잘 아는 분야에 도전을 해도 될까 말까 한데, 시장이 유망하다고 무턱대고 들어갔으니 제대로 될 리가 있나요?”

나만이 할 수 있는 분야를 찾다
주재만 대표 통관과 물류 분야의 구글을 꿈꾸는 지엘테크21㈜의 주재만 대표. 첫 창업의 실패를 거울 삼아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포기가 빨랐던 만큼 재기도 빨랐다. 하지만 무모하게 시작했던 첫 창업과 달리 이번에는 한걸음 한걸음씩 단계를 밟아갔다. 주 대표가 선택한 아이템은 중국에 진출한 제조기업의 세관 리스크를 줄여주는 수책관리 솔루션(HBM : Hand Book Management)이다. ‘내가 갖고 있는 경쟁력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찾은 해답이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쌓은 17년 경력을 살릴 수 있는 분야이자 회사에 다닐 당시 이미 시장에서 니즈를 확인했던 분야다.
당시는 국내 제조사들이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던 시점이다. 해외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기업에 원부자재 수입에 대한 관세 면제 혜택을 주는 대신, 엄격하게 기업을 관리·감독하는 권한을 세관에 주었다. 하지만 중국의 세관정책이 자주 바뀌는 데다, 워낙 관리가 까다로운 분야이다 보니 세관의 정기적인 조사에서 거액의 벌금을 맞는 경우가 많았다. 대기업의 경우 세관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조 단위의 벌금을 맞는 경우도 있었다. 공장과 시설을 중국에 그대로 남겨둔 채 야반도주하는 기업이 속출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주 대표는 2014년 12월에 지엘테크21㈜을 설립하고 바로 개발에 착수했다. 이번엔 섣불리 덤벼들지 않고 차근차근 개발을 해볼 요량이었다. 중국 코트라무역관을 찾아 수책분야 전문가를 어렵사리 수소문할 수 있었다. 그에게 여러 차례 교육을 받으며 주 대표는 6개월간 개발에만 매달렸다.
제품이 개발되기까지 버티는 것이 관건이었다. 친인척들에게 돈을 빌리고,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그것도 모자라 기술보증기금에서 자금을 지원받았다. 그래도 개발자금은 턱없이 부족했다.
“돈이 진짜 없어서 끌고 다니던 차를 팔았어요. 어느 날은 주머니에 현금이 한 푼도 없어서 혹시나 하고 교통카드를 들고 나갔는데, 거기에 만 원이 남아 있는 거예요. 당장에 버스를 타고 일터로 나갈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두 번의 포기는 없다
자금이 바닥난 것보다 주 대표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며 포기하자는 직원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6개월 만에 어느 정도 성능을 끌어올린 제품이 나온 상태에서 때마침 중국에 진출한 대기업에서 먼저 연락이 왔지만, 제품의 신뢰성이 떨어지다 보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도 계속 적자가 났다. 그래도 주 대표는 포기할 수 없었다. 시장 니즈가 분명하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할 자신이 있었다.
중국 세관의 데이터와 연동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중국은 2016년 3월에 세관 데이터를 개방했다. 그런데 개방하기로 공표해놓고 데이터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가이드를 내놓지 않았다. 주 대표는 어렵사리 수소문해 세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중국 현지기업을 찾아 컨소시엄을 맺고, 마침내 세관 데이터와 연동한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사업이 쉽지는 않았다. 저렴한 가격으로 치고 들어오는 중국 현지기업과의 경쟁도 버거운데, IT 서비스 기업으로서 중국에 지사가 없는 것은 큰 핸디캡이었다.
그러던 차에 기회가 왔다. 중국 고객사였던 대기업이 자사의 베트남 공장에도 수책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먼저 제안을 해온 것이다. 주 대표에게 베트남은 그때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이었다. 세관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세관 데이터를 어떻게 연동할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정보도 없었고, 인맥도 없었다. 한 달 뒤로 잡힌 고객사와의 출장 일정을 앞두고 그는 혼자서 베트남행 비행기에 올랐다.
“중국에 출장 다닐 때는 몰랐는데, 베트남은 멀어서인지 비행기 요금이 비싸더군요. 그래서 저가항공을 타고 갔죠. 누구를 만날지 모르지만 일단 선물을 바리바리 챙겨서 가는데, 짐을 부치는 데도 돈을 받더라고요. 좁아서 불편한데 기내식은커녕 물도 안 주던데요.(웃음)”
그렇게 베트남 땅에 처음 발을 디딘 주 대표는 비즈니스 분야의 인맥이 많은 통역을 통해 세관 쪽 인사와 연이 닿을 수 있었고, 그를 세 번이나 찾아간 끝에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파트너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2016년 겨울 베트남에서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다시 실패한다 해도 내 사업이 최고
수책관리 솔루션 지엘테크21은 중국과 베트남 현지에 진출한 기업의 세관리스크를 줄이는 수책관리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 주 대표는 1년에 절반 이상을 중국과 베트남에서 보낸다. 대기업의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덕분에 중국과 베트남에 상당한 고객을 확보한 덕분이다. 그리고 지난 2019년 2월에는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수책관리 솔루션 패키지 ‘스몰 핀(Small-Pin)’을 출시했다. 한국어는 물론이고 중국어, 베트남어, 영어를 지원하는 스몰 핀은 중국과 베트남에 진출한 제조기업이 쉽게 설치하고 편리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든 솔루션이다. 여세를 몰아서 올 하반기에는 소규모 기업들을 위해 ERP 없이 세관 데이터만 간편하게 볼 수 있는 버전을 오픈할 예정이다.
몇 년간 제품개발에 돈을 쏟아부은 탓에 창업 후 줄곧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지엘테크21은 2018년에 소폭이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월매출로 최고인 5억 원을 올렸다. 이 기세를 이어가면서 올해 꾸준히 월매출 5억 원을 올리는 것이 주 대표의 목표다.
첫 창업에 실패하고 지금의 사업을 안정 궤도에 올려놓기까지 5년이나 걸렸다. 하지만 주 대표에게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통관 쪽에 발을 디딘 만큼 이 분야에서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이다.
“통관과 물류는 IT 낙후 분야입니다. 그만큼 기회가 무궁무진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참 좋은 시장이죠. 기술을 접목하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아이템이 제 머릿속에 너무 많습니다. 구글이 검색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모아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했듯, 통관과 물류의 모든 데이터가 축적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습니다.”
주 대표는 인터뷰 다음 날 베트남으로 다시 출장길에 오른다고 했다. 베트남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지 사흘 만에 다시 비행기를 타는 고된 일정인데도 그의 얼굴에는 피로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 돈이 없어 차를 팔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도, 집에서는 사업이 잘 되는 줄로만 안다는 말을 할 때도 남의 이야기하듯 쿨하기 그지없다. 그와의 대화 어디에서도 실패의 그늘이나 후회의 기색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아들이 2년만 회사를 다니고 바로 창업을 했으면 한단다. 그의 쿨함이 허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힘들지만 해볼 만하다는 것이 그가 두 번의 창업 끝에 내린 결론이다. 그러면서 결국 이 모든 쿨함의 근원이 되는 한마디를 던졌다.
“어떤 상황이 와도 신념을 잃지 않고 버티다 보면 길이 보입니다. 그 길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면 됩니다.”

임숙경 기자 사진 김윤해 기자

[2020-03-04]조회수 :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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