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10.27
끝까지 갑니다! 후퇴할 수 없는 장기판의 졸처럼
계영윈테크 남선희 대표

코로나19 사태를 바라보는 남선희 대표의 심정이 착잡하다. 2년 넘게 베트남 사업에 공을 들였는데,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현지에서 생산 제품이 들어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해 고객사의 실적 부진으로 창업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미 세 차례의 실패를 경험한 남 대표는 이번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보겠다고 했다. 누군가 공장 설비를 전부 들고 나가기 전까지는 버텨보겠다는 것이 30년 중소기업 경영자로서 그가 품은 각오다.

남선희 대표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 경영자로 산다는 것
“누굴 장기판의 졸로 아나!” 상대가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여길 때 흔히 하는 말이다. 슬픈 얘기지만 우리나라 중소기업과 장기판의 졸(卒)은 참 많이 닮아 있다. 장기판 위의 졸은 전쟁터에서 맨 앞에 배치된 병사들처럼 승리를 위해 가장 먼저 희생되는 존재다. 위험에 처해도 후퇴할 수가 없다. 전진하거나 옆으로만 갈 수 있다. 그것도 답답하게 겨우 한 칸씩만. 1차, 2차, 3차 협력사로 수직계열화된 산업 구조의 말단에서 소기업은 가장 힘든 일을 하고, 가장 긴 시간을 일하면서도 가장 적은 이윤을 가져간다. 그럼에도 생존을 위해 뒤로 물러설 수 없는 것이 우리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숙명이다. 계영윈테크 남선희 대표의 지난 30년은 그가 지난해 말에 펴낸 소설 《졸의 전쟁》의 제목처럼 전쟁과도 같은 것이었다.
“가만히 보면 우리 사회에서는 졸들끼리 전쟁을 하면서 삽니다. 작은 기업끼리 단가 후려치기도 하고, 비열하게 뒤통수를 치기도 하죠. 내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때론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얽히고설켜서 산업의 큰 줄기가 됐고,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중소기업이 바로 그 밑동 역할을 했습니다.”
남 대표 또한 그 얽히고설킨 줄기의 끝자락에서 중소기업 경영자라면 누구나 겪었을 실패와 재기를 반복하며 기업인으로 성장해왔다. 그의 30년 경영 이야기는 우리나라 모든 중소기업 경영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위기마다 좌초됐던 두 번의 창업
남 대표는 스물아홉 살에 창원에서 첫 창업을 했다. 여기에는 꿈보다는 현실을 쫓아 살 수밖에 없었던 20대 청년의 고민과 좌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학교 시절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고 나서 문학에 심취했던 청년은 적성에 안 맞았던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기술이 있어야 먹고살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했던 시대였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명문고였던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의 기계과에 진학했지만 수업보다는 도서관에 있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근근이 버텼지만, 졸업 후 취업은 하지 않았다. 몇 년의 방황 끝에 자동차부품 회사에 들어가 CNC 오퍼레이터로 일하기 시작한 것이 20대 중반. 동창생들은 이미 대기업에서 자리를 잡을 시기였다. 짧은 직장생활을 끝내고 창업에 뛰어든 것은 순전히 청년 남선희의 자존심과 오기 때문이었다.
“중소기업을 옮겨 다니면서 일을 참 많이 배웠어요. 일을 통해 안정감을 찾고 자신감을 얻었죠. 당시 우리 학교 출신들이 창원, 울산, 거제 등지에서 한창 창업을 할 때였어요. 엘리트 의식이 강한 친구들인데, 취업 후 4년이 지나면 대학을 나온 동년배 신입사원을 관리자로 받아들여야 했어요. 그걸 견딜 수 없었던 거죠.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CNC 2대를 빌려 기어와 자동차부품 임가공 회사를 차린 것이 1991년의 일이다. 2대로 시작해 CNC를 15대까지 늘리며 회사를 키우는 재미를 맛봤다. 하지만 역시 IMF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고객사들이 고꾸라지는 상황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어떻게 해볼 겨를도 없이 허무하게 첫 창업이 실패로 끝났다.
어떻게든 일거리를 찾아야 했던 남 대표는 고철업을 하는 친구의 회사에서 2년간 일했다. “고철사업을 했으면 아마 크게 성공했을 것”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우스갯소리를 하는 남 대표는 2003년 휴대폰 부품가공 회사를 차렸다. 고철업이 유망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번듯한 사업체를 갖고 싶은 욕심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몇년 안 가 2008년에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고객사가 무너지자 그곳에 의지하던 협력사 20여 곳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리해서 새 공장을 지은 상황이어서 피해는 더 컸고, 몇 년을 버티다 결국 손을 들었다.

지난해 출간한 졸의 전쟁 도서와 남선희 대표1 지난해 12월에 남선희 대표가 출간한 《졸의 전쟁》에는 우리나라 영세 소기업들의 애환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2 남 대표는 세 번의 창업과 실패를 통해 회사를 끝까지 살려내겠다는 소명의식이야말로 기업인들이 가져야 할 덕목임을 깨달았다.

뼛속까지 기술쟁이, 다시 불구덩이로
두 번의 창업이 실패로 끝난 후, 남 대표는 제조업이 아닌 중고 공작기계 판매업에 손을 댔다. 돈은 제법 잘 벌렸고, 시간도 많았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아무 때나 사무실에 출근해 사업체 대표들과 낮부터 술을 마시며 빈둥거렸고, 돈이 벌리자 골프도 치러 다녔다. 현장에서 기름때 묻혀가며 일만 하던 그로선 자신에게 생긴 이런 여유가 어색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게으름에 적응해가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다간 평균치 이하로 살겠다 싶어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어쩐지 남을 속이는 것 같더라고요. 당연한 노력의 결과 같지가 않았어요. 더구나 아무리 좋은 중고기계를 가져다줘도 욕을 얻어먹기 일쑤였어요. 사기꾼 소리까지 듣다 보니 사람이 황폐해지더군요. 돈은 벌었지만, 마음에 상처가 남았어요. 저처럼 마음 약한 사람이 할 일이 아니더라고요.”
결국 뼛속까지 기술쟁이였던 남 대표는 2014년 12월 중고기계업을 할 당시 안면이 있던 펌프제조사 대표로부터 영업권을 인수해 계영윈테크를 설립했다. 그런데 사업자등록증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문제가 터졌다. 글로벌 펌프 회사인 윌로의 협력사인 줄로만 알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는데, 이미 관계가 끝난 껍데기 계약서였던 것. 기술력이 떨어지고 납기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이미 윌로에서 퇴출된 상태였다. 고객사의 구매팀장을 찾아가봤지만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다. 억 대의 인수금을 그대로 날릴 판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모든 걸 걸고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며 차린 회사였다. 어렵게 알아낸 고객사 구매팀장의 집 앞에서 나흘을 잠복했다. 그래도 통하지 않았다. 아내까지 나서서 구매팀장을 찾아가자, 그제야 품질관리팀장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었다.
그러고 나서 정확히 두 달 만에 계영윈테크는 윌로의 워스트 협력사에서 베스트 협력사가 됐다. 두 달간 남 대표는 아내와 함께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제품 제조에 매달렸다.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공장에서 숙식을 하며 지냈다. 남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과 닦듯이 먼지 하나 없이’ 제품을 반짝반짝하게 만들어 납품을 했다. 결국엔 20회 이상 품질에 이상이 없는 협력사에게 주어지는 무검사 대상에 선정됐다.
“품질관리 담당자들이 원래 깐깐합니다. 처음에 납품하니 제품을 발로 걷어차더군요. 그래도 굽신거리며 젊은 친구들에게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 갈 데가 없었으니까요. 절벽에 매달렸을 때는 손을 놓든가, 있는 힘을 다해 올라가든가 두 가지 방법뿐입니다. 당시에는 어떻게든 올라가자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래서 아내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었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마스크를 끼지 않고 현장에서 장시간 일하던 아내는 폐를 크게 다쳤다. 이 일은 남 대표의 가슴에 지금도 아픔으로 남아 있다.
이후 2년간 남 대표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펌프바디에 이어 케이싱, 랜턴, 임펠러 등 계속해서 품목을 늘려나갔다. 탄력을 받아 2017년부터는 베트남 진출을 시작했다. 하지만 베트남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를 시점인 지난해, 고객사인 윌로가 영업전략 실패로 인해 실적 부진에 빠지면서 계영윈테크도 주춤했다. 2015년 8억 원에 불과했던 매출을 2018년 28억 원으로 끌어올리며 매년 회사를 성장시켰지만, 지난해에는 목표했던 40억 원의 절반 수준에 만족해야 했다. 올해 심기일전해 회복해보려던 찰나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밑바닥에서도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난다
그 와중에도 남 대표는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며 여유를 부렸다. 작년에 생산량이 줄어든 덕분(?)에 남는 시간을 할애해 6개월 만에 완성한 《졸의 전쟁》의 후속작도 집필할 예정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졸의 전쟁》은 고철업자, 공구상, 중고기계상 등 영세 소기업들의 애환을 담은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그들의 척박하고 어려운 현실, 그것을 뚫고 나가려는 몸부림이 실핏줄처럼 수천 갈래로 뻗어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우리나라 역사의 주역들인데, 지금껏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없더군요. 누군가는 밑바닥에서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낸 그들의 이야기를 남겨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업은 소강상태지만 글을 쓸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남 대표. 그는 주말이면 공장에 홀로 나온다. 아무도 없는 공장에서 혼자 기계를 돌리고 일을 하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무아지경이 되어 글을 쓸 때는 행복감이 밀려온단다. 그렇다고 사업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아내까지 동원하며 살려낸 회사다. “사업가는 사업을 해야한다”는 것이 실패와 재기를 반복하면서 남 대표가 내린 결론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세 번의 창업에서 제가 살아남지 못했던 것은 마지막까지 회사를 살려내겠다는 소명의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중소기업 경영자는 불도저를 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미 차에 탄 이상 멈출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든 산을 뚫어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 공장을 다 들고 나가기 전까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한 칸밖에 가지 못하는 졸이 때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졸이 왜 무서울까? 후퇴가 없기 때문이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움직여 결국 왕도 잡아먹는다.

임숙경 기자 사진 김윤해 기자

[2020-04-06]조회수 : 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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