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10.27
함께 웃어줄 이들이 있다는 건…
㈜효창산업 신도헌 대표

역경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는 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신이다.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좌절로 뒤틀려버리기 일쑤인 게 우리네 인생이다. 그런데 간혹 이 미신을 한 번쯤 믿고 싶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두 번의 실패와 세 번의 창업 과정에서 혹독한 수업료를 치르고 월반없이 한 단계씩 올라온 ㈜효창산업 신도헌 대표 같은 이들이다. 역경은 한 사람의 장사꾼을 진짜배기 경영자로 만들었고, 경험은 그에게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선물했다. 실패의 과정에서도 간혹 아름다운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것은 실패에서 교훈을 얻은 이들에게만 드물게 주어지는 성과급 같은 것이다.

신도헌 대표

그가 요즘 웃고 다니는 이유
신도헌 대표는 요즘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특허등록증만 보고 있어도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철구조물 및 보도용 강구조물 제작·시공기업 ㈜효창산업이 보유한 지적재산권은 총 6개. 2017년 법인으로 전환하고 나서야 비로소 기술개발을 시작해 각고의 노력 끝에 확보한 보물들이다. 올해로 경영 27년 차인 신 대표의 경영 인생은 특허 전과 후로 나뉜다. 수주받은 일을 해내는 데에만 급급해 ‘오늘’만 살았던 그는 이제 2년 앞, 3년 앞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운다. 공공기관을 상대로 영업을 할 수 있게 됐고, 그러다 보니 회사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이 크게 달라진 것을 느낀다.
“철밥 먹은 지 20년이 다 돼갑니다. 남들 다 하는거 해가지고는 이윤도 적고 성취감도 없겠더라고요. 맨날 남의 물건만 만들어주다가 끝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 망해봤으니 이젠 우리 이름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 한 개쯤은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기술개발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특허를 가지게 되면서 회사가 살아나는 게 보이더군요.”
신 대표가 ‘내 것’의 참맛을 알게 되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들이 보기엔 작은 성취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일궈내기까지 떠올리기도 싫은 참혹한 실패의 순간들이 있었다. 때로 성장은 참혹한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런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의 효창산업이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신 대표는 잘 안다.

대리점 사장의 꿈을 이룬 것도 잠시
두 손을 꼭 쥔 신도헌 대표 시작은 피아노 대리점이었다. 직업훈련원에서 조율 기술을 익힌 그는 조율사 생활을 해서 번 돈을 모아 스물네 살에 경북 구미의 번화가에 피아노 대리점을 차렸다. 대리점 사장이 꿈이었던 청년의 바람은 그렇게 이뤄지는가 싶었지만, IMF가 몰아치고 나서 2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 하루에 한 대 꼴로 팔려나가던 피아노가 한 달에 10대도 안 나가는 상황에서 본사가 재고 소진용 물건만 공급하는 갑질까지 하자 상황은 더 악화됐다. 30%가 넘는 은행 이자를 갚아나가기도 벅찼다. 대리점을 운영해 번 돈으로 대구 시내에 장만했던 아파트 두 채를 날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6개월. 갈 곳이 없어 컨테이너에서 가족들과 1년을 살았다.
사업의 ‘사’자도 듣기 싫었던 그가 철을 만지게 된 것은 그즈음. 피아노는 꼴도 보기 싫었지만, 먹고살기 위해 중고 피아노를 수리해 모은 돈으로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마련한 그는 미련 없이 대기업 건설사의 1차 협력사인 냉동공조설비 제조기업의 구매부서에 입사했다.
그런데 6개월 근무하고 나니 슬슬 욕심이 생겼다. 비전이 있는 업종이라는 생각이 들자, 일단 현장업무를 지원했다. 나중에 회사를 차리려면 현장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피아노 대리점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가진 조율 기술로 밑바닥부터 다져서 대리점까지 차렸던 그다. 열심히 현장 기술을 익히면 남들은 생각하지 못한 걸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결국 그는 회사에서 가장 빨리 현장소장이 됐다. 보통 현장소장이 되기까지 7∼8년이 걸리는데, 그는 이것을 3년 만에 해냈다.
“처음엔 현장 작업자들한테 무시도 많이 당했어요. 검정고시 출신에 전공자도 아니니까요. 고소작업을 하는 작업자에게 안전장구를 착용하라고 아래에서 고함을 지르면 듣고도 못 들은 척 합니다. 저도 좋은 말이 안 나가죠. 그러면 실수인 척 하면서 스패너를 일부터 툭 흘리는 겁니다. 별일 다 있었어요.(웃음)”

첫 실패보다 더 뼈아팠던 두 번째 실패
10년은 현장에서 일을 배울 작정이었던 신 대표의 두 번째 창업은 다니던 회사가 입찰담합에 걸려 문을 닫으면서 앞당겨졌다. 현장으로 부서를 옮길 때부터 이미 창업을 마음에 두고 있던 그는 현장소장 당시 똑 부러지게 일하던 그를 눈여겨본 고객사 몇 곳의 도움으로 압력용기 제조회사를 차렸다. 전국 군부대에 유류저장고를 납품하며 연매출 7억 원을 올릴 정도로 회사를 성장시켜 2년 이상을 운영했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터졌다.
어느 날 군부대에 납품할 탱크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자재상 대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다짜고짜 “지금 일할 정신이 어딨냐?”며 최종 고객사인 대기업이 부도 위기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 말을 안 믿었어요. 큰 기업이 설마 망할까 싶었죠. 그래서 하던 일을 계속 했어요. 그런데 며칠 후에 우리의 고객사인 2차 협력사 담당자로부터 결제에 문제가 생길 것 같다고 전화가 왔어요. 부랴부랴 쫓아가니, 벌써 채권단이 구성되어 제가 낄 자리는 없더군요. 3차 협력사이다보니 구제받을 방법이 없더라고요. 4억 원 가까이 손해를 보게 생겼는데, 소송을 해도 2∼3년이 걸린다니 답이 없었죠.”
혹시나 돈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두 달을 버텼지만, 결국 그는 깨끗이 포기했다. 매출의 80% 가까이 의존하던 고객사가 무너지자 버틸 방법이 없었다. 몇 년간 열심히 일해서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를 다시 처분해서 직원들 월급을 정산해준 후 폐업 수순을 밟았다.
“아파트랑 인연이 없는 팔자인 것 같다”고 웃으며 말하면서도 신 대표는 “안 겪어본 사람들은 모른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당시 신 대표는 실제로 극단적인 상황까지 갔었다.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한순간 전봇대로 핸들을 꺾은 것. 정신을 차리고 나니 ‘차까지 부셔놨다’는 자책감이 들면서 차 수리비를 당장 어떻게 할지 걱정이 들었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털어놨다.
사업은 절대로 안 할 생각이었던 신 대표는 지인들이 현장소장 자리를 제안하는 것도 거절하고 경남 사천의 한 조선소에 현장 용접기사로 취업했다. 하루 12∼13시간씩 일하면서 친구도 만나지 않고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지냈다.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즐거움
미소 짓는 신도헌 대표 그렇게 2년 정도 일을 하니 빚을 갚고도 2,000만 원이 수중에 모였다. 그즈음, 회사를 운영할 당시부터 가깝게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철 구조물 제작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협력사를 바꾸고 싶어 하는 기업이 있으니 소개를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다시는 사업을 하지 않을 거라던 그는 흔들렸다.
“솔직히 그 말을 듣는데 기분이 좋았어요. 당시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였는데, 아직 저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2,000만 원으로 임대공장 계약을 하고 용접기 3대를 샀죠.”
당장 제품을 만들겠다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는데, 자재를 살 돈이 없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일종의 사기’였던 것. 일단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다음 고객사 담당자에게 전화로 사정사정을 해 겨우 자재를 공급받아 제품을 생산한 것이 효창산업의 출발점이다. 이후 신 대표는 고객사와 신뢰를 쌓으며 계속 회사를 성장시켰다.
“예나 지금이나 저는 직원들에게 손해를 볼 것 같은 일은 오히려 더 잘하라고 합니다. 수주받은 일 중에는 손해가 날 게 뻔한 일들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인력이나 자재를 줄이지 말고 제대로 해내라고 하죠. 작은 이익보다는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남아야 내 기술도 개발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렇게 창업 4년 만에 효창산업은 자가공장 시대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신 대표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의 도움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일을 더 수주받고 싶어도 설비가 받쳐주지 않아 고민하던 신 대표는 중진공 담당자로부터 법인으로 전환하라는 조언과 함께 재창업자금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중진공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효창산업도 없다”고 단언하는 신 대표는 작년 6월에는 제2공장도 마련했다.
법인으로 전환하고 나서 신 대표는 오래도록 생각만 하던 기술개발에 욕심을 냈다. 두 번째 창업의 결정적인 실패 원인이 자신의 기술이 없어서였다고 판단했던 그는 평상시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아이템을 하나씩 꺼내 개발하기 시작했다. 내진 기능이 있는 조립식 확장 보도로 특허를 받은데 이어, 확장 보도의 트러스 브라켓으로 디자인 특허를 2건이나 등록했고, 여기서 탄력을 받아 최근에는 좁은 곳에서도 용접이 가능한 토치를 개발해 특허를 등록했다.
실제로 특허는 곧바로 매출로 연결됐다. 올해 특허기술로만 예정된 수주액이 23억 원에 이른다. 이런 추세라면 지난해 매출액의 2배 달성은 거뜬하다. 신 대표는 조금 더 욕심을 내본다. 보도에 이어 조립식 확장 차도를 개발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웠다.
신 대표는 비로소 이제야 진짜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사업을 장사로 생각했기 때문에 진정한 비즈니스를 못했던 것 같습니다.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되어 앞을 못 봤었죠. 500원에 만들어 600원에 납품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더욱이 이젠 저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다 보니 회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어요. 그러니 업계 돌아가는 정보를 알 수가 있나요? 그것이 패인이었죠. 지금은 직원들을 믿고 마음껏 영업을 하러 다닙니다.”
직원들은 그에게 버팀목이자 추진력이다.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것도, 지역사회 결식아동들에게 이익을 환원할 수 있는 것도 마냥 즐겁다. 직원들과 함께 웃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사업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신 대표. 요샛말로 그는 찐경영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임숙경 기자 사진 김윤해 기자

[2020-05-07]조회수 :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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