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10.27
꿈 없이 살아서 뭐해요
수카프 서애진 대표

불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금속공예를 업으로 하고 있다. 그 업으로 생의 정점을 찍었다가 떠올리기도 싫은 추락을 경험했다. 시련은 깊은 내상을 남겼고, 여전히 자책으로 괴롭다. 그러나 서애진 대표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처음의 자리로 돌아왔다. 좌절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낙관과 자신의 꿈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들이 내는 화려한 빛으로만 빛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무수히 오가는 대전역 지하매장 한쪽에 앉아 작품을 한 줄 한 줄 꿰는 그를 보고 있자면, 세상을 밝히는 건 자신의 소중한 꿈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내 점멸등처럼 껐다 켜기를 반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희미한 반짝임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서애진 대표

세상에 없던 액세서리의 탄생
은수공예품 액세서리 브랜드 ‘수카프(Sukarf)’로 서울 도심 한복판까지 진출했던 서애진 대표는 2018년 겨울 대전역 지하상하로 다시 돌아왔다. 지방의 작은 공방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성장한 샤넬과 구찌처럼 한국 전통의 명품 금속공예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당찬 꿈이 시작되었던 곳이다. 서울 명동과 강남, 동부이촌동, 전주, 김해 등에 6개 프랜차이즈 매장을 내며 사업이 정점을 찍었을 때도, 임대료를 못 낼 정도로 사업이 바닥을 쳤을 때도 포기하지 않았던 매장이다. 서너 명이 들어서면 꽉 찰 만큼 좁은 이 공간 한쪽의 작업공간에서 서 대표는 위기의 격랑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자신의 꿈을 다시 끄집어내 한땀 한 땀 작품을 만들고 있다.
수카프는 스카프처럼 목에 두를 수 있는 목걸이형 액세서리로, 서 대표 손에서 탄생한 국내 유일무이의 은수공예품이다. 자수와 뜨개질 기법을 금속공예에 접목해 특유의 입체감과 볼륨감을 살리면서도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과 세련미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6년 유네스코로부터 ‘한국의 아름다운 수공예품’으로 선정된 데 이어 2014년에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최하는 ‘글로벌 명품화 육성제품’에 선정됐고, 우리나라를 방문한 해외 국빈들에게 선물용품으로 증정될 만큼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수카프의 목걸이형 액세서리수카프는 스카프처럼 목에 두를 수 있는 목걸이형 액세서리로, 자수와 뜨개질 기법을 금속공예에 접목해 특유의 입체감과 볼륨감을 살린 은수공예품이다.

운명처럼 돌고 돌아 금속공예
누구 못지않게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서 대표에게 금속공예는 미워하려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애증의 존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업했던 그는 미술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어 늦은 나이에 미대 입시를 준비했고, 입시학원 강사의 추천으로 회화 대신 금속공예를 택했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가보니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현실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불을 무서워하고 겁이 많았던 그에게 금속공예는 충격 그 자체였다. 금속을 녹이기 위해 불을 써야 하는 것도 문제였고, 망치를 비롯한 장비들도 무시무시하기만 했다. 2학년을 마친 뒤 7년이나 휴학을 하고 방황했던 그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 건 순전히 자존심 때문이었다. 대학 동기들이 공모전에서 잇달아 수상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자신만 정체되어 있다는 회의가 들었던 것.
졸업 후 귀금속 제조 전문기업에서 일한 1년 반의 경험은 서 대표가 창업의 길을 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회사에서 보내준 일본 연수에서 불 없이도 금속을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을 접한 그는 무릎을 탁 쳤다. 은행에서 일할 당시 배웠던 선진 마케팅 기법과 고객 서비스 전략을 금속공예 산업에 접목하고 싶다는 열망도 그를 창업으로 이끈 또 다른 이유였다.
“귀금속 회사에서 일하며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1980년대까지 수출산업으로 각광받았던 금속공예 산업이 왜 침체되었는지를 알게 됐죠. 직접 부딪쳐보니 낙후된 고객 서비스와 마케팅, 후진적인 조직문화가 원인이더라고요. 그래서 욕심이 났어요. 금과 돈은 실컷 만져봤으니 배운 걸 활용해서 우리나라 금속공예 분야를 대표하는 브랜드를 만들어보겠다고요.”
퇴사 후 결혼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온 서 대표는 금속공예 브랜드의 꿈을 펼치기 위해 2003년 코네주얼리(Conejewelry)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용접방식 대신 자수와 뜨개질 기법을 응용한 기술을 개발했고, 은의 변색을 막고 알레르기를 방지하는 표면처리 코팅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받고 미국 FDA 테스트도 통과했다.

노점에서 시작해 서울 한복판에 입성
그렇게 세상에 없던 전혀 새로운 액세서리가 탄생했다. 하지만 서 대표는 서두르지 않았다. 매장을 내기에 앞서 2년간 합판으로 만든 이젤을 어깨에 메고 대전시 소재 대학가와 아파트단지를 돌며 노점 장사를 했다. 주말에는 남편의 차를 얻어 타고 서울 지하철역 주변에도 노점을 펼쳤다.
“내가 만든 제품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고 싶었어요. 물론 몸 고생, 마음 고생이 많았죠. 자리싸움 때문에 쫓겨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품을 신선하게 봐준 고객들로부터 가능성을 봤어요. 노점에서 장사가 잘되니까 옆에서 건어물 팔던 상인이 노점 프랜차이즈를 하고 싶다고 제안한 일도 있었어요.(웃음)”
2년간 노점을 해서 모은 1,000만 원으로 대전 시내에 작은 매장을 마련하고 나서도 서 대표는 1년간 틈틈이 노점 장사를 했다. 그렇게 입소문이 퍼지면서 수카프가 차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유명 연예인들이 먼저 협찬을 제안해오면서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졌다.
혼자서 노점으로 시작한 사업은 몇 년 사이 직원 24명을 둔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했고, 여기저기서 프랜차이즈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주, 김해, 서울의 부촌으로 불리는 동부이촌동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이어 패션의 중심지인 서울 명동 한복판의 롯데백화점 소공동점에 매장을 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준비 없이 시작한 프랜차이즈 사업은 서 대표에게 오히려 독이 됐다. 겁이 많아 운전도 못하는 그에게 법정싸움까지 벌여야 했던 5년간의 기억은 떠올리기도 싫은 고통 그 자체였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중간중간에 서 대표는 “그때 생각만 하면 머리가 멍해지고 기억이 잘 안 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무리한 사업 확대가 부른 화
서애진 대표 감당하기 힘든 실패를 딛고 다시 금속공예 명품 브랜드의 희망을 쏘아올리고 있는 서애진 대표 고해성사를 하듯 조각조각 전한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김해시에 프랜차이즈 매장을 두 군데 오픈한 것이 화근이었다. 장유점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는 곳에 매장을 열겠다는 제안이 들어와 계약을 진행했는데, 장유점에서 새 매장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고소를 한 것. 난생처음으로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서류를 준비해 부랴부랴 달려갔지만 다행히 고소는 취하됐다. 경찰서에서도 고소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장유점과의 갈등을 해결하느라 다른 매장에 신경을 못 쓴 탓에 새로 매장을 오픈한 점주가 폐업하겠다며 물건 구입 대금을 반환해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이런저런 일에 시달리며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서 대표는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차용증을 써줬다. 하지만 그 차용증 한 장이 이후 기나긴 법정싸움으로 이어질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TV 홈쇼핑을 무리하게 감행하면서 재정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빠졌다. 무리하게 투자를 받아 홈쇼핑을 진행했는데, 중간에 MD가 교체되면서 상황이 안 좋아졌다. 가격 인하와 함께 사은품까지 제공하면서 여섯 번 완판에도 오히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돌이켜보면 제 역량에 비해 무리하게 사업을 벌인 것이 원인이었어요. 다른 경영자들도 공감하겠지만 중소기업은 자금이 빡빡해요. 없는 자본금으로 내 브랜드 만든답시고 로드숍에 프랜차이즈에 TV 홈쇼핑까지 병행하면서 에너지가 소진됐던 거죠.”
재판에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미 사업은 기울어 있었다. 금융기관에서 집과 공장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했지만, 그것으로도 모자라 부모님과 형제들에게까지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궁지에 몰려 동생 퇴직금에 손을 댄 것은 서 대표에게 가장 뼈아픈 기억이다.
“은행에 다닐 때 직원들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이자 때문에 대출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빚지는 게 그렇게 싫더라고요. 그래서 은행 다닐 때도 대출 한 번 받지 않았어요. 그런 제가 동생이 퇴직한다는 전화를 받고 그 돈을 저한테 빌려줄 수 없겠냐고….”
그렇게 서 대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한 땀 한 땀
서 대표는 동생에게 빌린 퇴직금 일부를 아직도 갚지 못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6월 폐업을 하고, 다시 브랜드명인 ‘수카프’를 사명으로 재창업을 한 것이 2018년 12월의 일이다. 국세를 밀려 회생 기회를 놓칠 뻔한 순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도움으로 어렵게 재창업 기회를 얻었다.
다시 돌아온 그는 그사이 바뀐 시장 환경에 적지 않게 놀랐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재편된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컴퓨터를 배우고 포토샵과 일러스트 과정도 들었다. 1년간 준비해서 해외직구 결제 시스템까지 갖춘 온라인 쇼핑몰을 구축했지만 코로나19로 잠시 오픈을 미루고 있다.
하지만 반가운 소식도 있다. 현대홈쇼핑의 제안으로 올해 9월 구찌, 프라다 등의 명품 브랜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클럽 노블레스’를 통해 제품을 선보이게 됐다. 중진공의 재창업자금 덕분에 제품제작비용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며 서 대표는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같은 처지에 놓인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게 전할 조언도 잊지 않았다.
“신용회복과 재창업 과정에서 참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TV 홈쇼핑을 망설이는 제게 중진공 담당자가 우리 제품은 경기를 타지 않으니 도전해보라고 격려했는데, 그 말이 큰 힘이 됐어요.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이전의 자신을 버려야 해요. 시대는 변하는데 내 몸과 생각이 과거에 얽매어 있으면 안 돼요. 그러니 옆에서 조언해주는 전문가들 말에 귀를 기울이세요.”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고도 서 대표는 왜 다시 창업의 길로 들어선 걸까? 그에게 수카프라는 브랜드는 삶의 목표이자 이유다.
“폐업하고 지인으로부터 취업 제안을 받았어요. 좋은 조건으로 영입하겠다는데 거절했죠. 밥은 먹고살겠지만 그렇게 산다면 살아 있을 이유가 없겠더라고요.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저는 우리나라 금속공예를 대표하는 국가대표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그래서 해외시장을 개척한다고 러시아, 중동까지 안 다녀본 곳이 없어요. 저는 아직도 명품 브랜드를 꿈꿔요.”

임숙경 기자 사진 김윤해 기자

[2020-07-07]조회수 :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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