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10.27
두드리고 또 두드리다 보면
스킨러버스코스메틱 김희용 대표

사막에 풀씨를 뿌리면 어느 순간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아 다 날아간 것만 같지만, 어느 순간 뿌리를 내리고 움을 틔우는 끈질긴 녀석이 있다. 김희용 대표에게 사업은 ‘사람 가슴에 풀씨 뿌리기’다. 이 궁리 저 궁리 해서 두드려보지만 시장은 움쩍도 않는다. 그러나 실낱같은 끈을 붙들고 두드리고 또 두드리다 보면 사막의 씨앗에서 새싹이 돋는 기적의 순간을 맞는다. 그때 비로소 땀 흘림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거친 숨을 몰아쉬게 된다는 김 대표. 화장품 외길 30년 여정에 지치고 고달플 법도 하건만, 그는 오늘도 창업 새내기인 것처럼 한도 초과의 열정으로 도전을 이어간다.

김희용 대표

모공 하나 열리지 않은 매끈한 피부에 깊은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 김희용 대표. 예순을 코앞에 두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동안의 소유자다. 매일 마스크팩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면서도, 자신이 만든 마스크팩을 직접 시연하는 그에게선 오랜 연륜과 제품에 대한 짙은 애정이 묻어났다. 자신의 지난날을 담담하게 풀어놓으면서 끊임없이 ‘희망과 도전’을 전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그가 점점 더 젊어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동안 피부의 비결을 30년 화장품 업계 이력에서 찾으려 했던 얄팍한 생각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오늘 아침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늙어 보였다면 김 대표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봐야 한다. 청춘의 싱싱함은 생물학적 나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열정’이 만들어내는 것임을 알게 된다.

다시 실패한다 해도 화장품

1987년 참존화장품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화장품 업계에 첫발을 디딘 후 김 대표는 단 한순간도 한눈을 판 적이 없다. 회사를 나온 이후 창업과 실패를 경험하며 지금의 스킨러버스 코스메틱을 다시 창업하기까지 30년. 그의 경영 인생 고비 고비에는 우리나라 화장품산업의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너도나도 화장품산업에 뛰어들어 이제 레드오션으로 전락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김 대표에게 화장품은 여전한 ‘기회의 땅’이다. 1등 영업맨이었던 그가 1991년 개인사업자로 참존화장품 대리점을 운영할 때부터 화장품 시장에 대한 비전과 확신이 있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워낙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영업 체질입니다. 영업 최전선에서 몇 년 일해보니 이 업종이 여성을 상대로 하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소비성이 강한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더욱이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르는 화장품도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니 다시 사야 합니다. 여전히 비전이 있는 아이템이고, 지금도 화장품보다 더 좋은 아이템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리점을 차리고서도 그의 탁월한 영업력은 빛을 발했고, 장안에 영업 잘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대기업에서 총판을 맡아달라는 스카웃 제의를 받은 것이 IMF 직전인 1997년의 일이다. 작은 개인 대리점과는 차원이 달랐다. 당시 화장품의 새로운 유통 채널로 떠오른 대형마트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였고, 김 대표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모두가 힘들어했던 IMF도 거뜬히 이겨내고 승승장구했다.
화장품 유통만으로도 큰돈을 만진 김 대표는 차츰 자신의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전국 각지에서 난다 긴다 하는 대리점 사장 5명과 의기투합해 동업의 형태로 회사를 차린 것이 2001년. 그는 쟌퀼화장품의 대표로 화장품 제조에 첫발을 내디뎠다.
“총판을 운영할 당시 대형마트와는 직거래가 아니라 중간 유통사를 끼고 거래를 했습니다. 유통사 사장님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며 인맥을 쌓아왔는데, 그분들이 제품만 제대로 만들면 물건을 팔아주겠다고 해서 용기를 냈습니다. 더욱이 유통 선수들끼리 창업을 했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죠.”

에이솔브 스파이더 실 마스크2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한 ‘에이솔브 스파이더 실 마스크’. 콜라겐 앰플과 실 그물망이 반응해 리프팅 효과를 극대화한 마스크팩이다.

대기업 공세에 맥없이 무너진 ‘내 브랜드’의 꿈

당시만 해도 화장품 업계는 제품 구색을 갖춰야만 대리점과 대형마트 영업이 가능했다. 김 대표는 그간의 경험을 살려 60여 가지 제품을 라인업했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쟌퀼’이라는 브랜드로 전국 유통망에 제품을 공급했다. 국내 화장품 시장이 호황기를 맞은 데다 튼튼한 유통망까지 확보했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창업 3년 만인 2004년에는 직원을 30명까지 둘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성장의 기쁨을 채 맛볼 새도 없이 위기가 닥쳤다. 당시 화장품 유통은 여러 브랜드를 취급하는 종합화장품 매장이 주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샤, 페이스샵 등 저가를 내세운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종합화장품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화장품 시장의 유통망이 재편되면서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잘 나가던 화장품 기업들조차 대기업의 공세에 줄줄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작은 기업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언제나 자신감에 차 있던 김 대표로서는 뼈아픈 실패였다.
“너무 쉽게 생각했어요. 영업에 자신이 있었고 인맥도 구축해놓았으니 계속 잘될 줄 알았죠. 그런데 시장이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그 트렌드를 앞서서 보지 못했던 거예요. 저가 프랜차이즈로 성공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 남대문시장 가판대에서 화장품을 팔던 사람들이에요. 대기업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장의 방향을 앞서 내다보았기 때문에 성공한 겁니다.”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직원 인건비 8,000만 원을 포함해 매달 1억 원 이상을 상회하는 지출을 버티기가 힘겨웠다.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부동산을 처분해 자금을 수혈해봤지만, 결국 포기하고 2007년에 문을 닫았다.
실패의 쓰라림보다 김 대표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오랜 시간 동고동락해온 동업자와의 갈등이었다. 참존화장품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 창업까지 함께 하며 가장 가깝게 지내온 동료를 잃은 것은 그에게 지금도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됐다. 지금까지 30년간 사업을 하면서 그 누구와도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끝낸 적이 없었던 그였기에 상처는 더 컸다.
화장품이 지긋지긋할 법도 한데, 김 대표는 폐업 후에도 화장품 업계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대기업과 저가 프랜차이즈가 장악한 국내 시장에서는 더 이상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김 대표는 그때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다. 폐업 직전에 인연을 맺은 베트남 바이어를 버팀목으로 하여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베트남 바이어를 통해 한국 제품을 공급하면서 조금씩 재기의 불씨를 당기고 있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디디고 일어나다

김희용 대표 베트남에 이어 중국 시장 진출에 성공한 김희용 대표. 30년 화장품 외길을 걸어온 그에게 화장품은 여전히 비전과 매력이 넘치는 분야다. 2013년 스킨러버스코스메틱을 창업하기까지 7년 가까운 공백기는 김 대표에게 새로운 도약을 위한 ‘버겁지만 희망찬’ 준비기간이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디디고 일어나야 하듯이 화장품은 저의 삶 자체였기 때문에 다시 일어서야겠다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도 창업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어요. 실패를 통해 값비싼 경험을 했는데, 그것을 그대로 사장시킬 수는 없었죠. 계속 문을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어요. 제가 원래 한 곳에 머무르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일단 확신이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나아갑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요.”
혈혈단신으로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면서 이리저리 발품을 판 끝에 김 대표는 과거의 다품종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선택한 아이템이 마스크팩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마스크팩 하나로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도 나왔다. 아직 마스크팩이 대중화되지 않은 해외에서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2013년 10월, 오랜 준비 끝에 김 대표는 스킨러버스코스메틱을 창업했다.
창업 이후 김 대표의 지난 7년은 한마디로 해외 시장 진출 분투기로 요약된다. 한국콜마 개발진의 도움을 받아 마스크팩 제품은 개발했지만, 작은 기업의 대표가 혈혈단신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쉬웠을리 없다. 쟌퀼화장품 시절부터 눈독을 들였던 베트남은 물론이고 중국시장의 문을 두드린 지가 벌써 10년이다. 한 해에 10회 이상 전시회에 참가하고 있지만, 부족한 자금 탓에 마케팅을 마음껏 할 수 없는 것이 늘 아쉬울 따름이다.
“사업하는 사람들 모두 중국에 기회가 있다고 합니다. 많은 인구, 드넓은 땅이 펼쳐져 있죠. 하지만 부딪혀보니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이념이 다른 중국이 문을 쉽게 열지 않는다는 걸 경험해본 사람은 다 압니다. 10년을 별러왔지만, 결국 중국에 왔다 갔다 해서는 바이어를 잡기 힘들다고 판단해 상하이에 지사를 세웠습니다.”
도전이 일상인 그에게도 해외 시장 진출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오랜기간 바이어와 믿음을 쌓아온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믿음이 쌓이다 보니 베트남 바이어가 물건을 발주할 때 금액의 절반을 선지불해줄 정도다.
“다음 주에 2억 원어치 제품을 선적합니다. 우리를 믿지 못하면 그 큰 돈을 먼저 건네주겠어요? 2억 원이면 하노이 뉴타운에 아파트 한 채를 살 돈이에요.”
베트남 바이어와의 거래는 중국 시장에 집중 마케팅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스킨러버스코스메틱 제품은 이제 중국 상하이 SI티비를 비롯해 베트남과 두바이, 인도의 홈쇼핑에도 진출했다. 본격적인 중국 진출 채비를 위한 위생허가도 마무리된 상태여서 바이어들의 문의가 차츰 늘어나고 있다.
베트남 시장에 대한 기대도 여전히 크다. 인구가 9,300만 명이나 되고, 1975년 전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가 많아 우리의 1980년대 후반 상황과 비슷해 성장 잠재력이 무한하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 바이어와 독점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도 올렸다.
‘열심히 하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믿음으로 김 대표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수시로 해외 출장을 다니는 그는 도저히 걷지 못해서 주저앉기 전까지는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한다. 지치지 않는 열정이 오늘도 그의 생물학적 시계를 뒤로 돌리고 있다.

임숙경 기자, 사진 김윤해 기자

[2020-09-03]조회수 :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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