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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도시제조
아날로그의 매력을 품다
마장뮤직앤픽처스

LP 음반의 소릿골을 따라 바늘이 돈다. 타다탁, 지지직~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순수한 아날로그 소리가 주는 따뜻함이 있다. 잡음일 수도 있는 이 소리는 음악을 듣는 데 있어 가장 경건한 인트로다. 한때는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나오자마자 사 모았다. 그렇게 진열장을 가득 메웠던 음반들. 그 많은 음반이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턴테이블의 수명과 함께 쓸모가 없어진 음반들은 몇 해 더 진열장에 방치되다가 정리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것 같다. 이내 후회가 몰려온다. 번거로움을 이유로 사라졌던 LP가 다시 돌아왔다. ‘서울의 브루클린’이자 ‘인더스트리얼 힙타운’이라 불리는 성수동에 자리한 국내 유일의 LP 생산공장에서는 보유 설비로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최대의 양을 뽑아내고 있다. 그 중심에는 마장뮤직앤픽처스의 백희성 기술이사가 있다. 현역 래커 커팅 엔지니어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LP 사랑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확대보기백희성 기술이사

LP의 화려한 부활

마장뮤직앤픽처스의 성수동 공장은 국내 유일한 LP 제작 공장이라고 들었다. 레코드 공장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번거로움보다는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레코드 공장이 사라진 게 아닐까? 1950년대 LP(Long Play Record)의 등장으로 국내 가요계는 대량생산이 이루어졌다. 카세트테이프가 나오기 전까지는 LP 세상이었다. 더 많은 노래를 담을 수 있는 카세트테이프에 밀리더니, CD가 나오자 LP는 설 자리를 잃었다. 편한 건 빠르게 받아들이고 불편한 건 금방 없어지는 법인데, 한국은 그런 점에서 유별나게 빠른 편이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LP 생산공장들이 사라졌던 적이 없다. 미국, 독일, 체코에 유명한 생산공장들이 있는데, 이곳 LP 공장이 가동되기 전까지 해외 LP 공장에 제작 의뢰를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제작에 기본 5개월은 걸렸고, 제조단가도 높고, 해외 배송비까지 부담해야 했다. 하지만 마니아들은 그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LP 음반을 기다리더라.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LP의 어떤 가능성을 보고 뛰어들었나?
산업적으로 어떤 가능성을 보고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이전까지 벨포닉스라는 레이블에서 일을 했다. 아날로그를 추구하는 레이블이었다. 아날로그 릴 테이프와 빈티지 악기, 앰프, 마이크를 사용하여 컴퓨터가 아닌 테이프 녹음을 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2005년 벨포닉스의 크루들과 LP로 듣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한번 만들어볼까?’라는 말까지 나오게 됐고, 그때부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LP는 모두 백희성 엔지니어의 손을 거친다는데, LP 제작 기술을 원래부터 보유하고 있었나?
이야기가 좀 길다. 원래는 F16 전투기의 사출좌석 부분 정비 엔지니어였다. 그러다 자동차 정비에 관심이 생겨 자동차학과에 입학해서 배운 후에 자동차 세차와 정비를 겸한 사업을 시작했는데, IMF 때 직격탄을 맞았다. 사업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을 때 음악이 곁에 있었다. 대한항공 시절부터 음악동아리 활동을 했었고, 주변에 음악을 하는 지인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자연히 벨포닉스 레이블에 녹음 엔지니어로 들어가게 됐다.
LP 제작은 처음이라 제작 기술을 배우려고 1세대 레코드 엔지니어 선배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청계천과 황학동부터 충북 괴산 등 LP 기술자가 있다는 곳은 전국 방방곡곡을 도장 깨듯 다니며 만났다. 기술만 전수받는다고 LP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소릿골을 새길 수 있는 기계를 찾는 것이 먼저였다. 수소문 끝에 1968년에 설립된 유니버설레코드에 원판 커팅머신 풀세트 한 대가 유일하게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계를 인수하러 찾아갔더니, 기계만은 안 파신다 하더라. 스튜디오를 통째로 사야 파신다고 하셔서 그렇게 했다. 이곳이 마장동 스튜디오다. 마장뮤직앤픽처스는 마장동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고, 이곳 성수동 공장에서 LP를 제작한다.

확대보기제작중인 LP / 백희성 기술이사1_ 국내 LP 제작 기술을 되살린 백희성 기술이사

확대보기원판 확인 작업도금을 하고 본뜬 원판을 확인하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자부심

기술을 전수받아 LP를 제작하기까지의 과정도 궁금하다.
유니버설레코드의 기계를 인수한 게 2010년이다. 그런데 10여 년 동안 멈춰 있던 기계이다 보니 전원을 켜자 부품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이 기계를 쓸 수 있는 기계로 만드는 데만 1년 반이 걸렸다. 이후 래커 커팅 기술을 터득하는 데 2년여의 시간이 걸렸고, 그 이후에는 음질의 수준을 높이면서 계속 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쳤다. 거의 3만 장 가까운 LP를 버려가면서 음질 연구를 했던 기간이 거의 6년이다. 이런 과정에서 지금의 마장뮤직앤픽처스 하종욱 대표와 조인하게 됐고, 2016년 회사를 설립했다. 품질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긴 2017년, LP 공장을 론칭했다.
LP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먼저 레커판에 소릿골을 새기는 커팅 작업을 한다. 그 다음으로 원판의 모양대로 본을 뜨고 도금 처리를 해 스탬퍼로 만든 후, 여기에 PVC 원료를 올려 프레스 기계로 찍으면 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사실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현미경으로 일일이 표면을 검수하고 청음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LP 생산 과정에서 품질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LP 제작의 전 과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곳은 마장뮤직앤픽처스가 유일하다. 성수동에 LP 공장을 연다는 소문이 돌 무렵, 음반 업계에서는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LP 제작의 모든 과정을 ‘메이드 인 코리아’로 만들어 업계에서도 당당히 인정을 받고 있다.

LP 공장이 문을 연 지도 4년이다. 그동안 어떤 음반들을 만들었나?
제일 처음 발매한 것은 가수 조동진의 마지막 정규 6집 《나무가 되어》다.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그가 고인이 되어 더 뜻깊다. 이후 조동진 1집~5집 전집과 조동익의 《어떤 날》을 비롯해 조용필, 김광석, 장필순, 빛과소금, 이문세, 이소라 등 거장들의 음반을 리마스터링(복각)하여 발매했다. 이 외에 백예린, 크러쉬, 이날치 등 신세대 장르 앨범으로 확장되고 있다. 뉴트로 붐을 타고 요즘은 젊은 세대들도 LP를 많이 찾는다.
6월 현재 제작 중인 LP만 해도 김동률의 《동행》, 유앤미블루 1집, 글렌체크 1집 등 1만 장이 훌쩍 넘는다. 버스커버스커 1집과 1.5집의 경우 1만 장 주문이 들어왔는데, 라인을 쉬지 않고 돌려도 한꺼번에 찍을 규모가 안 되어 나눠서 찍고 있다.

확대보기마장뮤직앤픽처스에서 제작한 LP들국내에서 생산되는 LP는 마장뮤직앤픽처스 성수동 LP 공장의 백희성 엔지니어의 손을 거쳐 탄생된다.

아날로그의 끝은 LP다

국내에서 대가 끊어졌던 LP 제작 기술을 되살린 현역 유일의 엔지니어로서 제작하고 싶은 앨범이 있나?
클래식 앨범이다. 클래식의 경우 조용한 부분이 많아서 잡음이 안 나도록 더 신경을 써야 한다. LP 공장 론칭 이후 클래식 앨범인 요한나 마르치의 《바흐 :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1집》을 발매했던 적이 있다. 심혈을 기울여 발매했는데, 완판되고 재발매 요청이 들어와 더없이 기뻤다. 클래식 마니아도 그렇고 LP 마니아도 그렇고 예민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재밌고도 어려운 작업이 클래식 앨범 제작이다. 그리고 그 어려운 일을 해낼 때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 앨범을 좋아한다. 이 음반을 리마스터링하고 싶고, 한국의 100대 명반이라 꼽히는 앨범의 리마스터링 작업을 일부 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하고 싶다.

이사님에게 LP란 무엇인가?
LP는 아날로그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손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LP는 레코드판을 꺼내 눈으로 한번 확인하고, 만져보고, 턴테이블에 올려 음악이 나오길 기다리는 과정을 거쳐야 음악을 들을 수 있다. LP는 아날로그가 주는 그 불편함이 매력이자 가치다. 그 매력에 이끌려 제작에까지 발을 들인 것 같다. 발을 들인 이상 세계적인 LP 제작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메이드 인 코리아’ LP를 만들고 싶다.
소리를 진동시켜 음악이 나오는 LP는 몸에 좋은 음악이다. LP가 주는 아날로그의 가치, 따뜻함을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길 바란다.

최진희 | 사진 김윤해

조회수 : 295기사작성일 : 202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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