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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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도시제조
제조의 과거와 현재를 잇다
부강

한때 2,000여 곳에 달하는 기계금속 가공기업들이 즐비했던 서울 문래동은 국내 철강유통산업의 메카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 상황에 따라 우여곡절과 부침을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렀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1,300여 개 기업이 남아 도시 제조업의 뿌리를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작은 부품을 깎고, 조이고, 다듬으면서 40년 훌쩍 넘게 앞만 보고 달려온 부강의 최성락 전 대표. 이제는 아들에게 대표 자리를 내주고 아들의 시대를 응원해주는 그의 모습에서 뿌듯함이 느껴진다. 최 대표와 함께 나이를 먹은 수동 범용 선반과 첨단 머시닝센터가 마주 보고 있는 풍경이 마치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서 있는 듯한 모습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 이 공간에서는 제조의 슬기로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확대보기부강의 최성락(오른쪽), 최선우(왼쪽) 부자

확대보기부강의 제조 2대가 맞잡은 손 / 부강에서 깎고 다듬어 만든 부품 샘플들1 부강의 제조 2대가 맞잡은 손
2 부강에서 깎고 다듬어 만든 부품 샘플들

이 일이 천직이라는 믿음

이곳에서 일한 지 오래되신 것 같다.
최성락 1982년에 문래동에 첫발을 디뎠다.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89년이다. 기계 한 대 구입해서 무작정 시작했다. 다행히 공장장으로 일하던 회사 사장님이 배려해주셔서 회사 내에 작은 공간을 내주셨고, 월세도 안 받으셨다. 그곳에서 3년 있으면서 부강의 기반을 닦았다. 그리고는 줄곧 앞만 보고 달려왔다. 처음 배울 때는 실수도 많이 하고 다치기도 했다.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 일이 좋았던 것 같다. 힘이 들어도, ‘여기서 만든 부품은 믿을 수 있다’는 이 한마디를 들을 수 있으면 됐다.

아버지와 함께 일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됐나?
최선우 올 3월이면 만 2년이 된다.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서 할 뜻은 없었다. 평소에도 아버지의 일터에 자주 놀러 오곤 했다. 8년 전쯤인가, 앞 공장에 자동 머시닝센터 4대를 들여놨다고 하길래 구경할 겸 견학을 갔다. 아버지는 뭐든 수동으로 만드시는데 버튼 하나면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모습이 신세계였다. 기계 한 대만 있어도 웬만한 대기업 연봉보다 더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배우면서 잔소리 꽤나 들었겠다.
최선우 내 업무는 아버지가 하시는 일과 전혀 다르다. 머시닝센터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직업전문학교에서 1년 과정을 수료했다. 다만, 아버지 앞에서는 힘들단 소리를 못 한다. 그러면 “아버지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긴긴 잔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버지가 닦아놓은 터에서 일하다 보면 아빠 찬스가 있지 않나?
최선우 물론 큰 도움을 받았다. 직업전문학교를 마치고 현장에서 경험을 쌓을 때 아버지가 가라는 곳으로 가서 일할 수 있어 좋았다. 일반적인 작업현장에서 2년 차는 기계를 만지지도 못한다. 어깨 너머로 배워야 하고, 버튼맨이라고 해서 때가 되면 버튼만 누르거나 허드렛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주변이 모두 아버지 네트워크여서 그 덕분에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최성락 금방 적응하지 못할 줄 알았다. 현장을 가능한 한 많이 굴렸는데 잘 해내더라. 말할 수 없이 뿌듯했다.

확대보기최성락(오른쪽), 최선우(왼쪽) 부자

사람도 기계도 세대교체

부강은 주로 어떤 부품을 만들어 어떤 곳에 납품하나?
최선우 업종으로 말하면 임가공업이고, 랙크기어, 베벨기어, 클러치기어 등 각종 특수기어를 전문으로 가공한다. 주로 포장기나 분쇄기 등 산업용 기계에 들어가는 부품이다. 머시닝센터를 구입한 이후에는 반도체나 로봇, 우주항공 분야 등에서 형상이 까다로운 다양한 정밀부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산업용 장비를 만드는 거래처 외에 한국항공대학교, 카이스트, 인하공전 등 대학원에서 필요한 실험장비 부품이나 다양한 샘플 가공을 하고 있다.

사람도 기계도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것 같다.
최성락 그렇다. 아들이 아니었으면 머시닝센터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자동기계를 내가 다룰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퇴근 전에 세팅만 해놓으면 뚝딱 만들어놓으니 얼마나 좋은가! 수동으로 만들려면 품질 생각하랴, 납기 생각하랴, 시간이 모자랐다. 고장만 안 나면 365일 24시간 내내 가공할 수 있는 자동기계 좋은 거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1억 원이 훌쩍 넘는 가격 때문에 엄두도 못 냈는데… 아들이 청년창업자금을 지원받아 구입하더라. 역시 젊은 사람이 나서서 일하니 뭐가 달라도 다르다.

생산성이 많이 좋아졌겠다.
최선우 대표직을 맡은 지 2년 차인 2020년에 최고 매출을 찍었다. 지금 규모에서 생산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해내고 있는 것 같다.

확대보기왼쪽 최성락 전 대표, 오른쪽 최선우 대표내 마음에 드는 제품을 만들자는 자세로 부품을 만들어온 최성락 전 대표(왼쪽)와 쇳덩이가 제품이 되어 나오면 뿌듯하고, 의외로 제조업이 적성에 맞는다는 최선우 대표(오른쪽)

내 마음에 드는 제품

2대째 제조,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최성락 머시닝센터나 자동복합 CNC선반 등 자동기계가 시장에 나온 지는 30년이 넘었지만, 문래동에 자동기계가 들어온 지는 몇 년 안 됐다. 수동 선반과 밀링기를 필요에 따라 개조해가며 의뢰받은 부품을 제조했는데, 이 방식으로 대를 이어 제조를 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제조를 업그레이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최선우 하던 일을 승계받았다고 하면 이곳 문래동 1세대 소공인들, 엄청 부러워한다. 소규모 철공소가 모여 지금의 기계금속 가공 집적지가 형성된 지도 40년이 넘었다. 기업이 나이 든 만큼 1세대 대표의 나이도 들었다는 말이다. 그들이 닦아온 길을 이을 수 있다는 건 영광이다. 문래소공인특화지원센터에 가보면 소공인 2세 모임도 있다. 아직은 일에 적응하는 단계라 익숙해지면 2세 모임에 참여해 그들과 소통하고 싶다.

2021년 새해 소망과 목표가 궁금하다.
최선우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종식되는 것이다. 부강의 경우 의료장비에 들어가는 부품 비중이 많은 편인데, 코로나 때문에 거래처가 병원에 들어가지 못한다. 3차 벤더인 우리에게 영향이 있을 정도이니 제조업의 상황이 얼마나 안 좋겠는가. 올해 열심히 일해서 규모 있는 거래처를 하나라도 더 확보해 최고 매출을 경신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머시닝센터를 한 대 더 구입할 계획이다.

제조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최성락 그저 기계소리 들으며 쇳가루 냄새를 맡으면서 하루하루 일해왔다. 굳이 철학이라고 포장한다면 ‘납품 전에 내 마음에 드는 제품을 만들자’다.
최선우 아직 철학은 없지만, 머릿속이나 설계도에 그려진 것을 현물로 만들어내는 것이 뿌듯하다. 그래서 최종 목표는 설계부터 조립까지 완제품으로 제조해내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확대보기작업 의뢰서공장 한켠에 놓여 있는 작업 의뢰서

최진희 | 사진 김윤해

조회수 : 1,243기사작성일 : 20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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