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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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질문
흩어지는 생산체계, 벼룩들의 시대가 온다
이원재 LAB2050 대표

직무의 소멸을 가져오고 있는 기술의 진화는 현재 거의 모든 나라에서 노동의 미래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만들어내고 있다. 단순 업무에서부터 고도의 전문 영역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노동이 기계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감염병은 이러한 변화의 징후를 더욱 증폭했다. 근심스러운 미래가 더 앞당겨진 지금, 우리에게 강요될 명백한 변화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지난 200년간 인류는 큰 조직 안에 있어야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신념처럼 품어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산업시대의 노동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2050년을 살아갈 미래 세대를 위한 정책과 담론을 연구하고 있는 LAB2050 이원재 대표는 인간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결국 인간 스스로임을 강조하며, 노동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꿀 때가 됐다고 말한다.

확대보기이원재 대표

코로나19로 자동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노동시장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노동문제 연구자로서 코로나19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코로나19가 변화를 만들어냈다기보다는 이미 일어나고 있던 변화가 예상보다 빨리 펼쳐진 것입니다. 디지털 전환이 일어난 1990년대부터 이미 우리 사회의 고용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변곡이 일어난 시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25년 정도에 걸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인가요?
그 얘기를 하려면 고용 형태가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 그 역사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산업혁명 이전 전근대 시대까지의 생산 단위는 가내수공업이나 작은 가족기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었고, 위계적인 가부장제에 의해 움직였죠. 그러다가 산업혁명 이후에 큰 공장이 생기고 방적기, 컨베이어벨트와 같은 기계들이 공장에 들어오게 됩니다. 노동자들은 기계 근처에 배치되고, 기계를 중심으로 위계가 짜입니다. 생산 단위들이 흩어져서는 안 되니 인수합병의 형태로 몇몇 큰 기업들이 경쟁하는 ‘독점화 경영’의 형태로 재편되고, 당연히 대규모 고용이 이루어졌죠. 기업은 노동자를 끌어들여서 계속 일을 시켜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정년보장 시스템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런데 1980년대에 이미 이러한 고용 형태에 변화의 징후가 보였습니다.

근대적인 고용 형태가 와해되어가는 과정이겠네요?
그 징후 중 일부가 1980년대 미국에서 나타난 레이거니즘(Reaganism), 즉 신자유주의입니다. 기업이 필요할 때에만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고용을 유연화하는 흐름이었죠. 이것이 본격화된 것이 1990년대인데, 그 주요 요인은 인터넷 혁명입니다. 이때부터 기업은 필수적인 부문 외에는 아웃소싱을 합니다. 통제가 어렵고 결과물을 운반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불가능했던 일들이 인터넷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죠. 그래서 하청에 재하청이 생겨납니다. 기업은 핵심 인력만 고용하고 나머지는 비정규직, 외주, 프랜차이즈라는 형태로 새로운 위계를 만듭니다. 그러면서 강하게 묶여있던 기업과 노동자 간의 관계가 느슨해지고, 원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직업의 안정성도 떨어지게 됩니다. 여기까지 온 것이 지금의 상태입니다.

요즘엔 그 관계가 더 느슨해지고 있습니다. 긱 노동처럼 전혀 새로운 고용 형태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중심 없이 생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노동의 형태가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크몽과 숨고가 대표적입니다. 서비스 수요자와 생산자가 서로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업무(task) 단위로 자신이 필요한 서비스만 제공받거나 제공할 수 있으면 그만입니다. 이것이 바로 ‘긱 노동(Gig work)’입니다. 블록체인과 같은 개별화 기술의 발달로 자유노동, 독립노동이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생산체계가 이미 흩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때마침 코로나19가 나타났고, 더 흩어져야 할 사회적인 명분이 생겼다. 바로 ‘방역’이라는 명분이다. 이미 변하고 있던 생산관계를 더 빨리 변화시켜야 할 이유가 기업 입장에서 생긴 것이다. 앞으로 플랫폼 노동, 자유노동, 독립노동으로 고용 형태가 더 빠르게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같은 현상을 놓고도 한쪽에서는 일자리의 불안정화로, 한쪽에서는 고용 형태의 진화로 받아들인다.

확대보기기업, 노동, 사회보장의 미래 관련 ppt 화면

불안정한 일자리의 증가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는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기술의 발전이 일자리를 파괴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주장합니다.
기술 변화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그들의 바람대로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한국의 부가가치 성장 궤적과 제조업 고용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1991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나라 제조업의 부가가치는 7배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에 고용은 늘지 않았습니다. 자동화로 인해 제조업의 생산성이 높아져 사람이 덜 필요하게 된 것이죠. 여기에 어떤 뜻이 숨어 있을까요? 제조업의 부가가치가 절반밖에 성장하지 못했다면 아마 고용은 붕괴됐겠죠. 이미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생긴 유휴노동을 흡수하는 곳이 서비스업인데, 고용을 많이 창출하는 5개 분야인 도·소매, 음식·숙박업, 사회복지 서비스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처우가 열악합니다. 요약하자면 돈 버는 데서는 일자리가 안 늘어나고, 돈을 못 버는 데서는 일자리가 늘어난 셈입니다. 그러니까 전반적으로 불안정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기술의 진화 외에 일자리를 파괴하는 또 다른 요인은 없나요?
굉장히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기후위기와 에너지 문제입니다. 전 세계 GDP 규모를 보면 1800년 이전까지 1,000년간 거의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까지 완만하게 성장하고 이후에 성장률이 치솟습니다. 인류가 자원을 빠른 속도로 없애면서 성장했고, 그만큼 탄소를 많이 배출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습니다. 게다가 구체적인 징후도 나타났죠. 바로 감염병입니다. 코로나19는 세계 경제에 정확하게 타격을 가했습니다. 두 번째는 보호주의입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세계 교역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 이 수치의 변화를 봐왔기 때문에 2015년부터 이 얘기를 해왔습니다. 이런 상태를 그대로 놔둔다면 당연히 고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많은 전문가들이 얘기하듯, 노동절벽 시대가 오겠네요?
기술이 발전하면 직업이 없어진다는 전망은 아주 단선적인 얘기입니다. 기술 본래의 목적이 인간의 직무를 없애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기계가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냐 하면, 그건 다른 얘기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직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요. 인간의 가치는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정의해줄 것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저는 그 부분에서 변화가 생겨야 한다고 봅니다. 변화가 생기면 희망이 있고, 변화하지 않으면 굉장히 좌절스러운 사회에서 살 수도 있습니다. 장기근속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는 좋고, 단기 일자리는 나쁘다는 생각에 변화가 필요할 때입니다.

확대보기이원재 대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곳에
기회가 있다

고용절벽에 대한 다양한 대안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앞서 얘기한 신자유주의가 있지만,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미국 사회만 봐도 이런 흐름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죠. 반대로 미국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는 국가가 전 국민에게 일자리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비자발적이고 종속적으로 만들어 사회의 역동성을 떨어뜨리게 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강력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독일식 모델도 있지만 노동조합이 활성화되지 못한 국내에 도입하기에는 한계가 있고요.
가장 많이 논의되는 것은 북유럽 모델입니다. 국가가 사회보장을 강력하고 폭넓게 제공해 개인이 자유롭게 직장을 옮겨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마저도 제조업 중심으로 짜인 20세기형 모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작할 때부터 21세기형으로 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플러스알파가 필요합니다.

북유럽 모델에 더해져야 할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LAB2050에서 연구하고 있는 기본소득입니다. 사회보험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사회보장을 하자는 것입니다. 지금의 국민연금은 연금을 많이 내면 더 많이 받는 구조입니다. 이 연결고리를 풀어서 국가가 폭넓게 사회보장을 해줘야 합니다.

기본소득은 자유노동, 독립노동의 흐름과도 일맥상통한다. 기술의 진화로 사라지는 직업이 생겨나면서 이제 개인은 평생 몇 차례 직업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임금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직업을 얻기 위해 재투자할 기회에서조차 불평등이 생겼다. 기본소득은 생계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자신에게 투자할 여력을 만들어준다. 이것이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의 논리다.

그렇다면 개인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앞으로 중요한 트렌드 중 하나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분야에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그린 뉴딜’인데요. 기후변화와 관련해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다양한 일자리가 생겨날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사회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성장해왔지만, 그에 반해 사회적인 신뢰도는 낮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공동체가 와해됐기 때문인데,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주체가 바로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입니다.

그런데 사회적기업이나 마을기업이 잘 활성화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생계가 불안정하니 가치 있는 일보다는 자꾸 안정된 일자리 쪽으로만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교육 비용을 모두 개인에게 맡겨두고 있습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먹고사는 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가치 있는 일에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변화하는 고용 형태에 대해 기업에서도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업은 수평적인 개인들과 협업한다는 생각을 갖고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합니다. 고용자와 피고용자를 동일하게 협력자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지금처럼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처우가 다르거나, 심지어 명절 선물에 차별을 두는 일도 없어지겠죠. 또한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이라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시장에서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코로나19로 많은 국가들이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몇 년간은 공공부문, 그중에서도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곳에서 많은 일거리가 나올 것입니다.

기업이 무조건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도 변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1인 기업, 소기업의 역할이 커질 것입니다. 이미 오래전 찰스 핸디는 그의 저서 《코끼리와 벼룩의 시대》에서 이것을 예견했습니다. 코끼리는 대기업을, 벼룩은 가볍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1인 기업과 소기업을 비유한 것인데요. 그는 벼룩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지고 중요해질 것으로 봤습니다. 지금은 혼자서 사업을 하더라도 세계에 닿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컨테이너 박스에 제품을 실어서 태평양을 건너가야 그것이 글로벌화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로컬에서 소중한 것을 잘 발견하는 사람이 세계화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콘텐츠를 유튜브에 실어 전 세계인들이 보게 하면 그것이 바로 세계화, 즉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입니다. 덩치를 키우기보다는 그 사회에 필수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간 위계적인 대기업 체계 안에서 살아온 우리는 그 체계 안에 들어가야만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낙오자 취급을 해왔다. 그러니 공무원과 공기업의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수많은 청년들이 본능적으로 달려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생산체계가 잘게 쪼개지고 있는 지금, 장기근속이 가능한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린다는 것은 실제로 실현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목표다. LAB2050에서 최근에 펴낸 《코로나 0년 초회복의 시작》에는 장기근속을 권하는 지원사업 ‘청년내일채움공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드러나 있다. 장기근속을 ‘표준’으로 삼고, 단기근속을 ‘비정상’으로 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중소기업 상황과는 간극이 있어 보이는 주장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오랫동안 표준이라고 생각했던 고용의 형태가 우리 눈앞에서 붕괴되고 있는 것을 목도하는 상황에서 한번은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확대보기코로나 0년 초회복의 시작 책 표지

이원재 LAB2050 대표는 경제평론가로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더 나은사회에 대한 비전을 연구하고 있다. 《한겨레》 경제부 기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했고, 한겨레경제연구소를 설립해 5년 반 동안 소장을 지냈다. 이후 희망제작소 소장, 여시재 기획이사,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쓴 책으로 《노동의 미래》,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MIT MBA 강의노트》 등이 있다.

임숙경 | 사진 김성헌

조회수 : 1,626기사작성일 : 20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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