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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기술
어느 슬기로운 연봉협상

협상을 잘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화려한 말솜씨? 뛰어난 임기응변 능력?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 정말 뛰어난 협상가들은 협상 상대방의 처지, 상황, 욕구를 최대한 많이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상대방이 툭 내던지는 요구사항이 아니라 도대체 상대방은 어떤 이유로 저런 요구를 하는지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확대보기협상의 기술 일러스트

“갑자기 연봉을 30% 올려달라니, 참 당황스럽구먼.”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친구 최 대표. 프로그래머인 박 과장과의 연봉협상 문제로 내게 고민을 토로했다. 박 과장의 올해 연봉이 3,500만 원인데, 그는 내년 희망연봉으로 30% 인상을 요구했다. 만약 그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이직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단다. 3년간 근무하면서 묵묵히 성실하게 일해온 직원이고 연봉 관련해서도 까탈스럽게 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좀 특이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
나는 최 대표에게 물었다.
“박 과장은 왜 연봉을 그렇게 많이 올려달라고 하지?”
그러자 최 대표의 반응.
“그거야 뭐 뻔하지. 회사에 기여한 바 있으니 대우를 해달라는 거 아니겠나?”
나는 최 대표에게 말했다.
“원래 박 과장이 연봉에 대해서는 그리 민감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갑자기 연봉을 그렇게 많이 올려달라고 할 때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최 대표는 여전히 갸우뚱한 표정이었다. 나는 최 대표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일단 다음 협상 때는 바로 돈 이야기부터 하지 말고 스몰토크를 하면서 무슨 고민이 있는지 한번 속내를 이끌어내봐. 뭔가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최 대표는 박 과장과의 두 번째 연봉협상 미팅에서 박 과장이 회사에 기여했던 바를 자연스럽게 화제로 올리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 다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박 과장, 집에 혹시 무슨 일이 있는가?”
머뭇거리던 박 과장은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꺼냈다. 박 과장에게는 초등학교 4학년 딸이 있는데, 그 애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었단다. 담임선생님과 의논해본 결과 왕따를 주도한 친구들이 여러 명이라 선생님이 주의를 줘도 왕따 문제는 재발할 가능성이 커서 아무래도 전학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박 과장 부부도 아이를 계속 이 학교에 보내기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만 전학을 가려면 이사를 해야 하는데, 새 전셋집을 알아보니 최소한 2,000만 원의 전세자금이 추가로 필요했다. 결국 대출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데, 이래저래 돈이 많이 들어갈 상황이라 박 과장은 기존 연봉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만약 연봉인상이 충분치 않으면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라 털어놓았다.
최 대표는 박 과장을 위로하면서 생각해보았다. 어차피 박 과장은 대출을 통해 전세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회사가 주거래 은행을 통해 박 과장의 대출을 알선해주고, 회사가 연대보증을 선다면 최저금리로 대출이 가능할 것 같았다. 다만 회사가 아무 이유 없이 박 과장의 대출채무에 대해 연대보증을 서준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내게 그 부분을 문의했다.
나는 “거봐. 사연이 있잖아. 연대보증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면 되겠네”라고 말하며 회사와 박 과장 사이에 계약서를 써서 박 과장이 나중에 그 채무금을 갚지 못할 경우 자신의 퇴직금과 대출 연체금을 상계처리하는 걸로 정리하면 된다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최 대표 이야기를 듣고 보니 박 과장 딸이 영 마음에 걸렸다. 어린애가 얼마나 상심이 클까? 마침 내 의뢰인 중에 학생 심리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가 있어 그분과 통화해봤더니, 바로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맞춤 클리닉 상품이 있다고 했다.
부모와 아이가 같이 와서 상담을 받는 방식으로, 한번에 15만 원씩 총 3회 45만 원인데, 내가 소개하면 30만 원만 받고 진행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최 대표에게 이 클리닉을 알려주었다. 최 대표는 박 과장에게 클리닉을 소개하고는, 자기가 비용을 다 계산해두었으니 가족과 함께 클리닉을 방문해보라고 권유했다. 박 과장은 그런 클리닉이 있는 것조차 몰랐다면서 최 대표가 시키는 대로 가족을 데리고 그곳을 방문했다. 최 과장 부부는 클리닉을 다니면서 딸의 고민이 무엇인지, 그리고 딸이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왕따의 경험은 아픈 일이었지만 그로 인해 가족 간에 서로를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됐던 것.
“조 변호사, 박 과장 부인이 내게 편지를 보내왔더라. 정말 고맙다고. 내가 다 눈물이 나더군. 고마워. 자네 덕분에….”
결과적으로 박 과장과의 연봉협상은 다른 직원들과 비슷한 수준에서 원만하게 마무리되었다. 박 과장의 회사에 대한 고마움이 예전보다 더해진 것은 덤이었다.
만약 최 대표가 오로지 연봉인상률만 놓고 협상을 진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박 과장이 원하는 바는 30%. 최 대표는 5~6%를 주장. 그럼 계속 인상률만 놓고 줄다리기를 했을 것이다. 그러면 오로지 하나의 이슈만을 가지고 협상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협상은 융통성이 없다. 이를 협상가들은 ‘빈곤한 협상(Poor Negotiation)’이라 한다.
하지만 최 대표는 박 과장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박 과장이 처한 상황과 그의 내밀한 고민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논의할 만한 이슈가 더 많아졌다. 대출 문제와 아이 왕따 문제가 논의의 대상이 되자 최 대표는 연봉인상 외의 다른 솔루션을 제시해줄 수 있었다. 즉, 여러 이슈들을 주고받다 보니 최 대표의 부담은 줄이면서도 박 과장에게 실질적인 만족을 주는 협상이 가능해졌다. 이를 협상가들은 ‘풍부한 협상(Rich Negotiation)’이라 한다.
내가 쓸 수 있는 자원은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협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상대방의 상황과 처지, 욕구를 최대한 많이 파악하는 것이다. 알아야 보이고, 보여야 대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CEO들에게 필요한 협상 기술은 충분한 질문과 경청이다.

조우성 변호사

조우성 변호사는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약 20년간 파트너 변호사로 근무했다. 현재는 법률사무소 머스트노우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변호사 활동 외에도 기업과 관공서를 대상으로 법률, 협상, 리더십 강의를 진행하며, 팟캐스트와 유튜브 등에서 콘텐츠 크리에이터로도 활약하고 있다.

조회수 : 1,398기사작성일 : 20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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