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9.21
협업으로 새로운 가치 만드는 제조업 플랫폼 전략
홍기영 경제학박사·《매일경제》 월간국장

‘플랫폼 사업’이라고 하면 으레 우버나 에어비앤비, 직방이나 카카오택시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는 디지털과 함께 탄생한 플랫폼 사업의 현대적 형태일 뿐, 실질적인 플랫폼 사업은 이미 70년 전부터 시작됐다. 1951년 미국 뉴욕에 등장한 ‘다이너스 클럽’이라는 최초의 신용카드가 바로 플랫폼 사업의 시초였다. 소비자와 가맹점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끌고 들어와 현금이 없어도 거래를 할 수 있다는 혁신적인 가치를 부여했다. 지금의 우리에게 신용카드는 너무 일상적이어서 별 감흥이 없겠지만, 당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의 황폐함 속에서 이제 막 진공청소기, 세탁기, 토스터기가 개발되던 시대였다. 이때 플라스틱 카드 한 장이 현금을 대체한다는 사실은 분명 지금의 에어비앤비와 카카오택시와 같은 혁신에 틀림없었다.
홍기영 박사는 플랫폼 사업 연구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미주리대학에서 화폐금융론을 전공했던 당시 신용카드를 연구하면서 플랫폼 사업의 초기 형태를 목도했다. 이후 15년간 꾸준히 플랫폼 사업의 변화에 주목해왔으며, 특히 2003년에 국내 미디어 최초로 해외 금융 용어였던 ‘다면 플랫폼(multi-sided platform) 비즈니스 전략’을 소개해 국내 학계에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홍 박사와 함께 제조업이 어떻게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홍기영 박사

많은 사람이 플랫폼 사업이라는 것이 최근 수년간 젊은 글로벌 벤처 기업가들에 의해 ‘느닷없이 등장한’ 신종 비즈니스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플랫폼 사업이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업의 한 방식이다. 그런 점에서 제조업도 예외일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제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러한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제 기업이 생존해왔던 전통의 시대가 완전히 무너졌고, 다시는 그 길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양상이다. 살기 위해서는 변화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도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제조업 경영자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피로감부터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살아남는 기업은 위기를 ‘변화의 시그널’로 받아들인 기업이었다.

본격적으로 제조업의 플랫폼 전환에 관해 다루기 전에, 우선 현재의 제조업에 대한 진단을 한다면요?
경영 환경이야 늘 어렵기는 했지만, 지금은 단순히 ‘힘들다, 전망이 어둡다’의 수준을 훌쩍 넘어섭니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제적 충격이 지속되고 그에 따라 부실기업이 급증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탈세계화, 글로벌 고립주의, 미·중 신냉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환경 변화가 동시에 왔습니다. 비유해보자면 국내 경제는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의 수립이 없으면 전통적인 사업들은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원가절감 위주의 수비형 전략으로는 지속성장이 곤란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한 방법이 바로 제조업의 플랫폼 비즈니스로의 변화입니다.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핵심은 ‘서로 만나지 못하는 많은 거래 상대방을 연결하는 디지털 장터를 만들거나, 그곳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 기업은 먼저 생산자와 소비자를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연결합니다. 과거에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 새로운 소비자가 등장하고, 새로운 생산품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협력자’와 함께 상호작용이 생깁니다. 다시 요약하자면,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은 새로운 협력자들과 손을 잡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새로운 소비자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플랫폼 사업은 IT기업에서나 가능하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과연 제조업도 플랫폼 사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고, 또 가능한 일인가요?
플랫폼 사업은 IT기업과 제조업을 망라하는 ‘새로운 생존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역사 속에서 시장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경쟁 상대에 뒤지면 도태되고 만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은 막강한 전력으로 미국을 선제공격했지만 레이더, 암호해독, 신무기 개발 등 기술혁신에 뒤져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기존의 제조업은 일명 ‘파이프라인 비즈니스 모델’이었습니다. 부품을 조달하고 조립해서 생산하고 유통을 하면 알아서 팔리는 세상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효율성과 생산성만 강조하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기술이 바뀌고, 소비자가 달라지고, 수요가 변화하는 지금의 시대에 제조업이 전통적인 방식만을 고집해서는 스스로 폐쇄적인 환경에 접어들고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파이프라인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대척점에 있는 것이 바로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다. 전자가 단선적이고 일괄적이었던 사업 모델이라면 후자는 다면적이고 다층적이면서 마치 주변과 함께 하나의 망(網)으로 연결되어 상승작용을 낳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우선 경영자가 회사의 가장 핵심적인 역량을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디지털화할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전체적인 변화의 과정을 일컬어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라고 한다. 여전히 플랫폼에 무심하거나, 혹은 변화하는 세상에 막연한 두려움만 가진 경영자가 있다면, 가장 먼저 염두에 두고 고민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디지털 전환’이기도 하다.

홍기영 박사

제조업이 디지털 전환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기존의 사업 태도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파이프라인’에만 의존했던 기업이 ‘플랫폼’으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경영자의 인식의 전환이 매우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맞습니다. 제조기업이 플랫폼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려면 근본적이고 역동적인 변화가 수반돼야 합니다. 기업 전략, 운영 프로세스, 조직 관리 등 기업 체질을 몽땅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가 선행돼야 핵심적인 변화가 가능합니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나만의 차별화된 비교우위 상품과 서비스로 새로운 시장, 블루오션을 창조하는 사업 모델입니다. 고유한 역량과 협력자의 경쟁력을 종합해 플랫폼에 연결된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협력자와 고객 확보가 우선이고 수익화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모든 기업이 사업 초기 단계에서는 규모 확대(scale-up)를 추구합니다. 하지만 어느 시기에 이르면 탈규모화(unscaling)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파이프라인 기업이라면 수직적 통합으로 구축했던 규모 확대 전략에서 벗어나 고도로 집중된 시장으로 사업을 분산하고 다각화하는 전략을 사용해야 합니다. 모두가 거래하는 생태계를 만들고 소비와 공급을 연결해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네트워크 효과’로 핵심 가치를 창조하고 사업영역을 확장해나가야 합니다. 플랫폼 생태계에서는 뛰어난 역량과 기술, 제품, 서비스를 제공하는 참가자들이 모여 거대 집단을 형성합니다. 한마디로 다른 사업자들과 함께 ‘비즈니스 공동 운명체’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플랫폼 사업이 ‘공동 운명체’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면, 플랫폼을 자체적으로 만들기보다 기존의 플랫폼과 협력하는 것도 꽤 유용한 전략일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제조기업들이 개별적인 플랫폼 사업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제조업이 플랫폼으로 전환하거나 플랫폼과 협력하는 전략은 총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다른 기업에 문호를 개방해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하면서 고객에게 제공되는 제품을 확대해나가는 전략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라는 놀이를 해봤습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으면서 협력해나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서로 다른 특성을 갖는 고객을 연결해서 고객집단을 교류하도록 만들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고객집단에 제공함으로써 네트워크 효과를 내는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업 스스로 플랫폼이 되기보다는 네이버와 아마존, 알리바바 등 기존 플랫폼의 참여자로서 협업하는 전략이 유효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여러 가지 방법을 업종에 맞게 종합적으로 활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박사님께서 쓰신 책의 내용 중에 보면 “생산시설을 외주화해서 빌려 쓰고 설비와 인력을 자동화(인공지능)하고, 판매는 소셜네트워크와 검색엔진을 이용해 탈규모화를 촉진한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폐쇄적인 구조를 탈피하고 네트워크의 효과를 누린다는 점에서 중소기업에게도 매우 현실적인 플랫폼 전략의 하나라고 보여집니다.
사업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내부화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무엇이든 과도하게 소유하는 기업은 자금 운용의 비효율을 낳고, 변화무쌍한 환경 변화에 대응해 날렵한 사업 전개를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규모가 작고 목표가 명확하고 기민한 기업은 어려운 환경에서 외부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경쟁에서 이기는 전략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수직적 통합에서 탈피해 고도로 집중된 시장으로 사업을 분산하고 다각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의 제조 중소기업이 혁신적인 스타트업과 함께 협업하는 것도 일종의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기업과 스타트업은 사업의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기술 분야의 제조 중소기업은 스타트업과 함께 기민하고 신속하게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시장적합성을 찾는 활동을 협력해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기반기술을 공유하면서 핵심 가치를 창조하는 기술 플랫폼 생태계는 대학, 연구기관, 투자자, 협력기업 등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는 구조를 갖게 됩니다. 중소기업 내 연구조직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사업화에 나서면 스타트업으로 커나갈 수 있고, 외부 연구조직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규모의 경제’가 새로운 형태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투입의 규모가 생산량을 늘리지만 한계에 직면하면서 수확체감의 법칙이 나타나지만, 이제는 소비자와 협력자, 내가 속해 있는 네트워크가 늘어날수록 이익과 가치가 증가하는 ‘한계수확체증의 법칙’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업을 바라보는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플랫폼으로의 전환이든 디지털화든, 그 모든 것의 핵심은 바로 ‘데이터’이기도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의 쌀이라 불리는 ‘데이터’ 활용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업 활동을 하다 보면 다양한 데이터가 생성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 데이터이며, B2B 분야에서도 기업 데이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업마다 세분화되어가는 고객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객 데이터 정보를 축적하고 분석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또 하드웨어에 스마트 기능을 장착해 데이터를 모으고 고객 경험을 제고하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보여집니다. 농기계 제조회사가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모아 또 다른 사용자에게 농업 정보나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정부에서 ‘농업 빅데이터’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정부의 데이터 산업 육성책에 의해 앞으로 다양한 데이터 축적이 확대되고 거래됨에 따라 외부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기존의 플랫폼에 휩쓸려 오히려 자신의 산업 경쟁력을 잃을 위험은 없을까요?
‘플랫폼 면역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존의 플랫폼에 휩쓸리거나 잠식되지 않는 기업 스스로의 힘과 능력을 의미합니다. 기업마다 플랫폼 면역력이 다른데, 그 기반은 제품기술력과 브랜드 파워, 상품의 경쟁력, 시장 지배력, 다수의 충성고객 확보 등입니다. 자체적으로 대체불가의 경험을 고객에게 제공한다면 어떤 경쟁 상대라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선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잘 파악하고, 그것을 강점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약 플랫폼이 서로 경쟁하는 구조인 상태에서는 기업의 협상력을 키워 플랫폼을 다변화하는 방안도 가능합니다. 아울러 자신의 업종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한 직거래(P2P) 전략을 모색할 수도 있습니다.

제조업에게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의 도입은 곧 디지털 전환을 전제한다. 어쩌면 너무 많이 들어 해묵은 주제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미래의 도전에 맞설 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K-뉴딜)’을 발표했다. 이 사업을 구성하는 세 가지 큰 축의 하나가 바로 ‘디지털 뉴딜’이다. 이제는 그 어떤 방식이든지 디지털이 함께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남훈 기자 사진 김성헌 기자

[2020-08-05]조회수 :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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