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Spotlight
혁신이라고 말해지는 순간, 혁신은 없다
박영규 인문학자

기업은 물론이고 개인마저 ‘혁신’을 삶의 화두로 부여잡고 있는 시대다. 외부 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새로운 방식의 생존을 위한 노력도 결국은 혁신의 한 종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정한 혁신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수많은 경영학자와 기업인이 이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미 2,500년 전에 이미 이러한 혁신 철학을 말한 사람이 있다. 바로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철학자인 노자(老子)이다. 그는 만물의 원리는 도(道)라고 지칭하며 자신의 사상을 펼쳤지만, 오늘날에는 이 도(道)를 ‘혁신’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영규 인문학자로부터 도와 무위(無爲)의 개념이 어떻게 혁신과 진보적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들어보았다.

확대보기박영규 인문학자

박영규 인문학자는 서울대학교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나왔으며 중앙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학교 총장, 한서대학교 대우교수, 중부대학교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동아비즈니스리뷰》에 장자와 주역 사상으로 살펴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간관계와 리더십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교육청과 서울경제신문 산하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등이 있다. 최근작으로는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가 있다.

노자는 신비에 싸인 인물이다. 생몰 연대도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그가 지었다는 《도덕경(道德經)》은 국경을 지키던 평범한 관문지기에게 남긴 말을 글로 옮긴 것이다. 더욱이 당시는 공자의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였다. 엄격한 윤리규범과 철저한 사회적 질서를 주장했던 성리학은 당시의 사회 구조를 떠받치는 핵심 사상이었다. 이에 비하면 노자의 사상은 자유와 파격의 연속이었다. 그는 비움과 내려놓음, 구분 없음 등을 주장하며 당시의 성리학을 비웃었다. 심지어 노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장자는 공자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큰 도둑놈’이라는 비아냥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인이 노자의 사상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도덕경》 전체를 통독해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자 사상은 오늘날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활용될 부분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 MBA의 과정에 《도덕경》이 필독서인 것만 봐도 그렇다.

우선 노자가 살았던 시대와 《도덕경》이 집필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춘추전국시대는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면 전쟁이 있었던 때입니다. 그러니 당시 서민들의 삶은 팍팍했고, 늘 죽음의 경계를 오갈 만큼 불안했죠. 이런 상황에서 노자는 지금의 사회는 왜 이렇게 혼란한가, 이 혼란을 끝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아 할까,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그 고민의 결과가 바로 《도덕경》이라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 공동체를 위한 윤리규범까지 마련해놓았으니, 한 사회를 통찰했던 철학자의 사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자가 말한 도(道)는 매우 어려운 개념입니다. ‘성질이나 모양이 없고, 변하거나 없어지지도 않으며 항상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긴 쉽지 않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 더 나아가 경영자들은 어떤 의미로 해석하면 좋을까요?
《도덕경》의 첫 문장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입니다. “도라고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도라고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선 여기에서부터 사람들은 막힐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저는 노자의 사상에서 다양한 혁신의 원리를 통찰했습니다. 만약 위의 문장에서 ‘도’라는 것을 ‘혁신’으로 바꿔보면 ‘혁신이라고 말해질 수 있는 것은 혁신이라고 할 수 없다’가 됩니다. 실제로 우리 눈앞에 이미 나타난 혁신은 더 이상 혁신이라고 부르기 힘듭니다. 과거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혁신 중의 혁신이었지만, 지금 이것을 혁신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냥 일상에 불과할 뿐이죠. 그런 점에서도 노자가 말한 도(道)는 끊임없이 새로운 실천을 해나가는 근본 원리이자 세상을 이롭게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노자를 ‘보수주의자’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노자와 혁신을 결합하면, 노자는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이었으며,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자의 성리학이 당대의 정치, 사회적인 구조를 단단하게 하는 역할이었다면, 노자의 철학은 그런 보수성을 깨고 오늘날의 ‘파괴적 혁신’을 위한 사상적 토대를 만들어놓았다고 볼 수도 있다.

노자의 철학이 오늘날의 경영에는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으로는 ‘비움’을 말할 수 있습니다. 비움이란 경영자와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개념이지만, 사실은 경영자야말로 누구보다 이 비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쓴 《혁신기업의 딜레마》에는 왜 혁신적인 기업이 나중에는 실패를 하는지에 대한 원인을 규명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최초의 혁신제품을 만들어낸 다음에 후속 제품을 출시할 때 기존의 우월적인 시장점유율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주춤하는 사이에 다른 기업의 제품이 등장하고, 결국에는 최초의 혁신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비움을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창의성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의 편견이 비워진 곳에 새로운 생각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죠. 빈 방, 빈 술잔, 빈 타석 등 우선은 뭔가가 비워져야 새로운 것이 생성될 수 있습니다. 레이밴으로 유명한 선글라스의 대명사 ‘바슈롬’은 콘텍트렌즈를 크게 히트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에 더 많은 수입을 가져다준 것은 다름 아닌 렌즈 세정액이었습니다. 바슈롬은 일회용 콘텍트렌즈 기술도 보유하고 있었지만 세정액 판매 수익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 기술을 제품화하지 않았습니다. 그 틈을 존슨앤존슨의 자회사인 비스타콘이 비집고 들어와 콘텍트렌즈 1위 자리를 단숨에 차지해버렸습니다. 혁신을 지키려고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혁신에서 밀려난 것이죠. 경영자들 역시 혁신의 과정에서 자꾸만 기존의 혁신을 내려놓으려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비움을 통해 성공한 제품이나 서비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구글의 홈페이지입니다. 인터넷 초창기만 해도 포털의 절대 강자는 야후였습니다. 첫 페이지에는 수많은 디렉토리들이 있었고, 광고와 정보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방문자를 최대한 머물게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구글은 완전히 다른 노선을 선택했죠. 마치 사막처럼 텅 빈 공간에 조그만 검색창 하나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본질적인 목표 이외에는 모든 것을 비워버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자 이용자들은 그 안에서 무한한 자유를 느꼈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 구글의 성공을 이끈 발판이 되어주었습니다.

이런 비움의 철학이 개인적인 영역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이름을 이미 얻은 후에는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조언을 할 수 있습니다. 촉망받던 여성 CEO 머리사 메이어는 구글에서 야후로 옮긴 후 “내가 누군 줄 아느냐”라는 식으로 직원들을 매우 위압적으로 대했습니다. 그의 소통에서는 설득, 대화, 타협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재직하던 5년의 시간 동안 촉망받던 IT 기술자들의 절반이 떠났고, 결국 야후는 오늘날처럼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비우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를 비워내고 새로운 것을 채우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합니다. 이는 잘나갈수록 몸을 낮추는 자세와도 연관이 됩니다.
노자의 철학에는 물(水)에 관한 비유가 유난히 많이 등장합니다. 물은 곧 도에 가깝습니다. 자연스럽게 아래로 흐르면서도 모두에게 이로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애플의 주역 가운데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일했던 워즈니악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 역시 실리콘밸리의 천재였지만, 잡스와 싸우지 않고 겸손하게 물처럼 행동했습니다.

확대보기박영규 인문학자

박영규 인문학자는 4차 산업혁명의 출발지였던 실리콘밸리 자체가 이미 노자가 말하는 ‘자궁’과 매우 닮아 있다고 말한다. 자궁은 비어 있는 곳으로서 만물이 탄생하는 근원의 상징이다. 이렇게 본다면 ‘밸리(계곡)’ 역시 비슷하다. 애초 포도농장이었던 실리콘밸리 지역은 사람들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IT광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새로운 혁신적 기술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노자에게는 ‘무위(無爲)’가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경영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인간의 노력으로 인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경영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위가 아니라 유위(有爲)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무위는 마치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진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은 소비자가 수요를 창출하는지, 또는 기업이 수요를 창출하는지 그 경계가 매우 애매해진 상태입니다. 이렇게 딱 부러지게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인터렉션’이 매우 중요합니다. 쌍방향 소통을 통해 함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는 지금의 소비 트렌드와 들어맞습니다.

노자의 철학에 혁신의 원리나 요소에 관한 내용도 있을까요?
노자의 철학보다는 노자를 이어받은 장자의 철학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장자는 노자의 《도덕경》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냈다고 보면 됩니다. 장자는 하늘로 솟구치는 ‘대붕(大鵬)’이라는 커다란 물고기 이야기를 합니다. 한번 날면 6개월을 나는 대붕은 하늘에 올라 과연 왜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습니다. 바로 이 짧은 이야기에 혁신의 요소가 숨어 있습니다. 대붕은 지구상의 존재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존재입니다. 즉, 공간이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번 날면 6개월을 날기 때문에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인간의 상식에 도전합니다. 즉, ‘시간-공간-인간의 상식’이 바뀌어야 혁신이 이뤄질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혁신적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시간을 엄청나게 줄여주거나, 공간에 대한 개념을 바꿔주는 것입니다. 에어비앤비나 우버 등이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다른 사람의 공간(집)에 머문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고, 길거리에서 택시가 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에어비앤비나 우버는 그러한 시공간을 변화시켰습니다. 이런 서비스에서는 모두 기존의 상식이 무너져내리고 맙니다. 시공간과 상식을 파괴할 수 있을 때, 그곳에 혁신성이 숨어 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게 필요한 노자의 한마디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노자는 구분을 짓지 않는 통합적 사고를 하라고 말합니다. 무엇인가를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다툼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흑인과 백인, 이민자와 미국인을 철저하게 구분 짓고 그것을 분열의 지렛대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전례가 없는 분쟁과 다툼에 빠졌습니다. 노자에게는 행복과 불행도 한 몸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행복은 곧 불행을 담고 있으며, 불행에도 행복의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자연에서는 호랑이가 하는 역할도 있고 개미가 하는 역할도 있습니다. 덩치가 작은 개미가 하는 일이라고 해서 의미가 없진 않습니다. 따라서 중소기업이라고 주눅이 들거나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통합적으로 보게 되면 중소기업 역시 이 사회의 든든한 경제의 토대로서 존재하고, 따라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가겠다는 자세로 혁신에 집중하다 보면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도덕경》에는 ‘천리지행 시어족하(千里之行 始於足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이야기죠. 제프 베조스가 우주개발을 위해 만든 블루오리진의 슬로건은 ‘그라디팀 페로키테르(Graditim Ferociter)’입니다. 라틴어로 ‘한걸음씩 용감하게’라는 뜻입니다. 중소기업들 역시 ‘한걸음씩 천천히, 용기 있게’ 가려는 자세를 갖춘다면 분명 혁신적인 기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전복적인 철학자로 니체가 있다면, 동양철학사에서 가장 전복적인 철학자는 바로 노자다. 그의 이러한 전복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역동성’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비워져 있어야 채워진다’는 말만 봐도 그렇다. 노자는 ‘비워진 상태’와 ‘비워지지 않은 상태’를 완전히 구분된 두 가지 장면으로 보지 않고 역동성의 관점에서 보았다. 비워지고 채워지고, 다시 비워지는 일련의 과정을 전체적으로 보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비워져야 채워진다’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중소기업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러한 역동성에 대한 믿음이다. 비록 지금은 여러 상황 때문에 힘들고 어려울 수 있지만, 스스로의 잠재된 역동성을 믿고 새로운 준비를 해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혁신의 길, 바로 도(道)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이남훈 기자, 사진 김성헌 기자

조회수 : 481기사작성일 : 2020-12-03
기사 만족도 평가
별 개수를 클릭하여 기사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이 기사의 별점
평균 0점 / 0
별 5개 / 매우 만족

의견글 작성
  • (삭제 시 필요)
* 불건전한 내용이나 기사와 관련 없는 의견은 관리자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메뉴 열기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