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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터 소재가 곧 혁신이다
㈜그래피

수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불리던 3D프린터가 AI, 로봇, 드론 등에 자리를 내주며 체면을 세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가장 큰 이유는 ‘느린 속도’와 ‘내구성이 약한 소재’를 들 수 있다. 속도는 그나마 어느 정도 빨라졌는데, 소재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다. 이러한 가운데 3D프린터용 광경화 소재 개발에 성공하여 세계 굴지의 3D프린터 회사들과 소재 공급 계약을 진행 중인 기업이 있어 화제다. ㈜그래피의 심운섭 대표를 만나 혁신 소재가 만들어나가는 시장에 대해 들어봤다.

확대보기3D프린터로 만든 치아 교정장치

3D프린터 26년 노하우를 소재에 불어넣다
“프린터의 소재를 흔히 잉크라고만 생각합니다. 종이도 소재 중 하나인데 말이죠. 종이의 종류는 많은데 프린터 회사에서 지정한 용지만 사용하라 한다면, 아마도 지금처럼 저렴한 종이를 골라 쓸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피의 심운섭 대표는 3D프린터 소재 발전이 늦어진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3D프린터 업계에서 초반에는 소재보다 프린터 기술에 집중하느라 늦어진 부분도 있지만, 3D프린터 소재를 ABS 수지와 PLA 수지로 한정시킨 것이 문제였다는 것. 물론 이들 소재는 일반 플라스틱과 유사한 강도를 가지고 있으며 내충격성, 강도, 내수성, 전기적 성질이 우수하다. 하지만 고온에서 변형을 일으킬 수 있고, 플라스틱 냄새가 나기 때문에 실제 산업현장이 아닌 시제품 제작 및 교육용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3D 설계 엔지니어로 시작해 26년간 3D프린터 시장에 몸담으며 소재 개발에 앞장섰던 심 대표는 2017년 1월에 ㈜그래피를 설립했다. 2000년대 초에 일본의 금형 회사와 광경화성수지(포토폴리머)를 개발한 경험이 있던 그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소재 개발을 본격화했다. 광경화성수지는 빛을 가하면 액체가 고체로 바뀌는 소재다. 그래피는 200℃ 이상의 고내열성은 기본이고 고내마모성, 고강도, 고경도 특성을 가진 광경화 소재 개발에 성공했다. 이 소재는 망치로 내리쳐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 자동차, 드론, 헬멧,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 다양한 시장을 개척할 수 있으므로 3D프린터 시장의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는 게 심 대표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열경화성 수지로 만들어진 물체는 필요 없어지면 쓰레기가 되지만, 이 소재는 태우면 없어질 뿐 아니라 냄새나 유독가스가 없어 매우 친환경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확대보기심운섭 대표3D프린터용 신소재를 개발하여 세계에서 인정받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그래피를 설립한 심운섭 대표

덴탈 기자재 시장을 접수하다
그래피가 개발한 3D프린터용 광경화성수지는 ‘S Plastic’과 이를 기반으로 한 ‘Tera HarzⓇ’이다. 이 소재는 해외에서 반응이 더 뜨겁다. 국제 공인인증시험기관인 한국고분자시험연구소를 통해 권위 있는 테스트를 거쳐 글로벌 시장의 경쟁사들과 비교했을 때 탁월한 기능성을 인정받았다. 이 소재는 현재 프랑스 1위 프린터 회사인 P사와 소재 공급 계약 체결을 완료한 것은 물론, 전 세계 1, 2위를 다투는 글로벌 3D프린터 기업들과 소재 공급 계약 및 관련 비밀유지협약(NDA)을 체결했다. 또 독일의 최대 화학 회사와도 계약을 진행 중이다.
심 대표는 이 소재를 덴탈 부분에 적용했다.
“전 세계 치아교정 의료서비스 시장에서 3D프린팅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의료서비스 중 디지털화가 가장 빠른 분야죠. 2021년 추정치만 봐도 약 4조 원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심 대표는 개발한 소재로 투명교정장치(3D 다이렉트 얼라이너)를 직접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체친화적이고, 기존의 강화 플라스틱 필름보다 강도가 높으면서 힘이 필요한 부분에 따라 두께 조절이 가능해 부분교정도 가능한 교정장치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 또한 기존의 교정장치는 제작에 1~2주일이 걸렸지만 3D프린터를 이용하면 1시간 내에 제작할 수 있으며, 필름 및 후가공이 필요 없어 원가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특히 체내에 들어가는 소재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한데, 그래피의 소재는 솔벤트 등 유기용매를 쓰지 않을 뿐 아니라 세포독성과 유전독성 면에서 안전성을 입증받았다.
한편, 올해 초 의료용 고분자 소재 안전성 테스트를 완료하고 JW중외제약㈜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업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바 있는 그래피는 최근 ㈜네오바이오텍과 3D프린터 소재 개발 및 공급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네오바이오텍은 디지털 덴티스트리의 핵심인 구강 3D스캐너, 3D프린터 등을 치과에 공급하는 회사다. 그래피는 이번 총판 계약으로 국내 덴탈 기자재 시장을 접수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학계에서는 협업 요청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건양대학교 등 치과대학의 여러 대학 교수진으로부터 치과용 소재에 대한 공동연구 요청을 받고 일부 진행 중에 있다.
그래피에서 개발한 투명교정장치의 경우 직접 프린팅하는 기술에 대한 특허를 출원 중에 있으며,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2등급 의료기기 인증을 진행 중이다. 이 장치와 관련해 CE 및 FDA 인증까지 진행되면 기존의 세계 1위 투명교정회사인 인비절라인의 시장점유율을 상당부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심 대표는 기대하고 있다.

그 소재, 얼마나 혁신적이냐고요?

시제품부터 완제품까지 완벽 커버 _ S Plastic
3D프린터 사용자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개발된 고기능성 광경화성수지인 S Plastic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친환경 범용 소재다. 이 소재는 덴탈 용도 외에 산업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범용 재료인 S-100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 굴곡 강도는 130Mpa(석고 깁스의 경우 35Mpa)
• 200℃ 이상에서도 불에 타지 않는 고내열성
• 경화 전·후 10μ(미크론) 미만의 수축 변형률(사실상 수축 변이량이 거의 없다)
• 자극이 거의 없어 의료기기 등급 소재로서 사용자의 작업 환경 개선
• 투명한 고탄성 소재로 다양한 산업군에 적용 가능
• 셰이프 메모리 기능의 소재로서 웨어러블 기기 제작도 가능
확대보기고기능성 광경화성수지 S Plastic

상식을 뛰어넘은 소재 _ Tera HarzⓇ
Tera HarzⓇ는 조 단위를 의미하는 ‘Tera’와 독일어로 레진을 뜻하는 ‘Harz’를 합성해서 만든 그래피 고유의 브랜드다. 딱딱한데 부드럽고 질긴 것이 결합되어 새로운 물성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신소재인 Tera HarzⓇ는 강하고 단단하며 압축 강도까지 매우 뛰어나다. 광경화성 소재지만 사출 플라스틱 이상의 기능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제 공인인증시험기관인 한국고분자시험연구소에서는 테스트 장비가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하중을 제한하고 있는데, 해당 테스트에서 Tera HarzⓇ 소재는 2.7t으로도 파괴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 세계 1위 화학회사인 독일의 바스프는 Tera Harz T-65N의 플라스틱 물성을 검증했는데, ‘Good handling! Good smelling! No break!’(충격강도, ISO179A)의 평가를 받았다. 지금까지 3D프린터 소재 중 그 어떤 것도 냄새까지 좋다는 소재는 없었기 때문에 의미가 더 크다.
그래피는 이 소재를 이용해 3D프린터로 투명교정장치를 만들었으며, 뜨거운 물을 부으면 형상 복원이 되고 살균소독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큰 장점이다.
확대보기신소재 Tera HarzⓇ

모두가 아니라고 했던 소재 개발의 꿈을 이루다
그래피가 이 소재를 가지고 처음 만든 것은 디지털 깁스였다. 깁스의 경우 한번 하면 풀 때까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골절 부위보다 불필요하게 커서 움직이기도 불편하고 씻을 수도 없으며, 시간이 지나면 약한 부분은 깨지기도 한다. 깁스를 한 부위의 근육이 없어지는 부작용도 있다. 하지만 그래피가 개발한 디지털 깁스는 고강도 소재일 뿐 아니라 골절 부위에 딱 맞게 제작을 할 수 있고, 착용한 채로 씻을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회사를 설립한 지 4개월쯤 됐을 무렵, 이 아이템을 가지고 여러 중소기업 지원기관을 찾아갔는데 모두 거절당했어요. 제가 담당자였어도 선뜻 지원금을 내주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찾아간 신용보증기금에서 가능성을 보고 5억 원이라는 자금을 지원해줬습니다.”
지금은 다 상환했지만, 이 5억 원은 그래피에게 시드머니가 됐다. 그뿐 아니라 심 대표가 광경화성수지를 개발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절망적일 정도로 비관적인 반응을 보였음에도, 그가 묵묵히 헤쳐나갈 수 있는 커다란 용기가 되었다고 회상한다.
심 대표는 지난 2018년 ‘도전! K-스타트업 2018 혁신 창업리그’에 참가 신청을 했다.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그래피는 인천지역에서 참가한 수백 개 기업 중 지역 심사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 본선에 진출하여 결선에는 통과하지 못했지만 사업성은 인정받았다. 전문가로 참여한 심사위원 중 한 명이 그래피의 기술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따로 연락이 온 것이다.
이를 계기로 기술개발을 더욱 고도화했으며, 올 4월에는 크라우드펀딩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그래피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크라우디를 통해 총 3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청약 개시 하루 만에 최초 목표금액 2억5,000만 원의 80% 이상을 달성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후 목표액을 3억 원까지 증액하여 102%의 달성률을 보였다.
“초창기엔 무색무취이면서 인체에 무해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화학 소재라는 이유만으로 인재를 채용하기 힘들어 연구개발, 제조 등 모든 일을 혼자서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대내외적으로 기술력과 시장성을 인정받다 보니 함께 연구개발하는 연구원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현재 그래피의 임직원 28명 중 18명이 연구원이다. 심 대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구개발에 집중하여 글로벌 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강소기업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마침 기술력도 세계가 먼저 인정해 11월 미국FDA 승인이 확정됐다. 그래피가 디지털 덴탈 분야를 넘어 산업용 소재 시장에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확대보기디지털 깁스그래피가 초창기에 개발한 디지털 깁스

확대보기Tera HarzⓇ 소재 교정장치Tera HarzⓇ 소재를 가지고 3D프린터로 만든 교정장치를 확인하고 있다.

최진희 전문기자 사진 손철희 객원사진기자

조회수 : 3,307기사작성일 : 201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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