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1911.17
2019년 한눈에 보는 중소기업 지원사업 안내도
기술 장벽이 경쟁력의 담보가 됐다
㈜태정기공 신태수 대표

쉬운 제품은 만들지 않는다. 남들도 만들 수 있는 똑같은 제품에는 관심이 없다.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더라도 오직 자체 기술로 자신만의 제품을 만든다. 자동차 및 선박용 볼트와 너트, 자동차 바퀴 교체 시 사용하는 잭을 제조해온 ㈜태정기공의 신태수 대표는 28년간 고집스럽게 이것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한다는 그의 경영 전략에 물음표가 던져진다. 답은 간단했다. “경쟁력 때문이다”라고.

신태수 대표

Management Point 1
남들이 못하는 어려운 아이템을 택한다
포드나 GM의 해외시장 입찰 경쟁에서 굵직한 물량을 수주하곤 한다. 자동차 부품의 특성상 3년에서 5년의 장기계약 수주다. 직원 수 80명의 중소기업으로선 지속경영의 안정성 보장은 물론이고, 기술력을 입증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쯤 되면 ㈜태정기공(대표 신태수)의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태정기공은 지난 1991년 4월 부천시 소사구에 자리한 삼정공업단지 임대공장에서 4명의 직원과 함께 첫발을 내딛었다. 기계과 출신인 신태수 대표는 1978년 태양금속에 입사해 10년간 근무했고, 그 후에는 전 직장 상사가 창업한 기업에 관리자로 합류해 4년간 경력을 더 쌓았다. 그리고 창업에 나섰던 것. 영업 노하우에 기술까지 습득해 제조 중소기업을 창업한 대표들의 흔한 스토리 중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좀 달랐다. 초창기부터 거래처들을 찾아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어려운 것 있으면 우리 회사에 주세요”였다. 왜 그랬을까?
“자동차나 선박에 들어가는 일반 볼트와 너트는 대량생산이 필수였어요. 소기업으로서는 주문도 받을 수 없는 아이템이죠. 방법은 남들이 안 하는 것, 못하는 것을 하는 수밖에요.”
대량생산 기업들은 제조공법이 복잡하고 어려운 제품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태정기공은 기존 기업들이 회피하는 자동차용 소량생산 부품들을 제조하면서 단조기술로 공정을 줄이고 가공비도 절감시켰다. 이를테면 틈새시장 공략이었다. 그의 전략은 통했다. 기계 두 대로 시작한 첫해 매출은 8,000만 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듬해엔 1억6,000만 원, 3년 차엔 3억2,000만 원을 달성했다. 매년 두 배씩 증가했던 것. 액슬 하우징에 들어가는 ‘플러그시트(plug seat)’를 710원에서 410원으로, 스프링 가이드는 1개당 1,300원에서 절반 가격인 650원으로 절감시켰다. 자동차 1차 협력사들로서는 이런 태정기공과의 거래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태정기공은 창업 후 거침없는 성장을 거듭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매출 증가와 사업 확장은 지속됐고, 해외 입찰 물량까지 따내면서 더 큰 공장이 필요했다. 2007년 약 1만㎡(약 3,000평) 규모의 공장을 충주산업단지로 이전해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사업을 이끌어오는 동안 신 대표의 제품철학은 확고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데, 늘 숨 가쁘게 달려왔어요. 아이를 낳아 키우듯이 성장과정을 밟으며 조금씩 키워온 거죠. 지금 생각해도 차별화된 아이템에 주력해온 게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소기업일수록 자기만의 무기가 있어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Management Point 2
why로 기술을 이끈다
㈜태정기공이 개발한 잭 최근 ㈜태정기공이 개발한 잭은 중량을 40%나 줄였고, -40~50℃, 습도 95%의 악조건 속에서도 사용이 가능할 만큼 내구성도 뛰어나다. 태정기공은 인도의 잭 생산기업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해 모델당 매출의 3%를 로열티로 받는다. 우즈베키스탄의 잭 생산기업과도 기술제휴를 맺었다. 중소기업이 해외에서 로열티를 받으니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기술력이 강하다는 얘기다. 볼트와 너트는 물론이고 잭에서도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글로벌 강소기업이다. 국내시장에서는 창업 초기부터 소문이 자자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당당하게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은 2007년 미국 GM의 입찰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인도 기업과 최종 경쟁에 올라갔는데, 승자는 우리였죠. 5년 동안 800만 개를 수주받았어요. 무려 350억 원에 달했죠.”
대량수주로 인해 생산설비를 늘리고 공장을 이전, 확장하는 과정에서 애로점이 뒤따랐지만, 이를 통해 회사는 제2의 성장 발판을 마련하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추는 계기가 됐다. 최근 들어서도 태정기공의 기술력은 업계 화두가 되고 있다.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 자동차에 걸맞은 맞춤형 경량화 부품과 제품을 개발하면서 유명 자동차 메이커들과 굵직한 계약을 잇달아 터트렸다.
태정기공은 3년 전부터 부품 소재의 경량화에 주목하고 R&D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스틸 소재 사용으로 무게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자동차 엔진룸의 프론트 프레임 레일 부싱(Front frame rail Bushing)을 다단 포머 기술을 이용해 60xx 계열 알루미늄 냉간 단조로 개발했다. 사전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실패확률을 줄이고 개발기간도 단축시켰다. 그간 쌓은 노하우의 결실은 ‘BMW X5’ 차종 50만 개와 ‘포드 익스플로러’ 차종 150만 개의 부품 수주로 이어졌다. 더욱이 해당 완성차 메이커의 본국인 독일과 미국 부품 생산기업과 경쟁해 일군 결과였기에 신 대표로서는 그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경량화 기술력이 불러온 경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차량 펑크 시에 사용되는 스틸 잭을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으로 개발해 중량을 무려 40%나 절감시켰다. -40~50℃, 습도 95%의 악조건 속에서도 사용이 가능할 만큼 내구성도 뛰어나다. 지난해 12월 GM의 핵심 차종을 대상으로 한 극한 테스트에 합격해 양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젊은 시절, 신 대표는 영업을 하면서도 직접 공부를 통해 단조기술을 습득했다고 말한다.
“기업은 현실에 안주하면 안 됩니다.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이 장수기업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변화를 이끄는 신기술을 어려운 것으로만 볼 필요는 없어요. 저는 물론이고, 우리 회사 직원들은 현장에서 늘 스스로 ‘why’를 떠올리는 자발적인 문제제기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기술을 이끌어가죠.”

Management Point 3
차입경영을 자제한다
신태수 대표 사업을 이끄는 CEO라면 반드시 자유로울 수 없는 한 가지가 바로 ‘자금’이다. 신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자금난을 기억할 때마다 그에게 떠오르는 두 번의 사건이 있다. 창업을 결정했을 때, 사실 손에 쥐고 있는 돈이 없었다. 장비를 구입하려면 3,000만 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했다. 신용보증기금에 가서 대출을 알아봤지만, 연대보증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때 많은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다시 신용보증기금에 찾아가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연대보증 없이는 대출이 불가능한 시절이었으니, 대출이 안 된다면 창업을 포기할 작정이었다. 그의 진실성에 감동한 걸까? 담당자는 신 대표만을 믿고 대출을 해줬다.
그 후로 그는 무차입 경영을 선언했다. 돈을 빌려서 사업하는 것은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다는 자신만의 철칙을 세웠다. 적든 크든 돈을 모아서 공장을 늘리고 이전하는 식으로 이어갔다. 그런데 17년간 고집해온 이런 경영철학도 규모의 성장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2007년 미국 GM 입찰에 성공했어요. 그런데 수주량과 납기를 맞춰주려면 설비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이었죠. 어렵게 따낸 해외 입찰이잖아요. 게다가 하필이면 이듬해에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발생한 겁니다.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수주 건에 대해서는 이상 없다는 GM 측의 증명서까지 보여줬는데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대출은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충주로 이전을 해왔지만 설비자금이 부족해서 참 답답했지요.”
2008년 12월 30일이었다. 시화공단 입주 시절에 알게 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의 문을 두드렸다. 자금 문의를 했더니, 담보 없이 신용으로 지원하는 자금은 다 소진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술력과 성장가능성만 믿고 자금을 지원한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회사 입장을 호소하며 담당자와 미팅을 했고, 결국 이듬해 1월 초에 4억여 원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역시 중진공은 중소기업의 편에서 일하는 곳임을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자신이 내세우던 무차입 경영이란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입장이 된 신 대표. 그는 기업이 성장을 지속하려면 자금 차입의 고리를 끊을 수 없는 일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다만 은행 돈이든 사채든, 남의 돈을 빌려오는 것은 무서워해야 한다고 전한다. 사업을 확장하면서 욕심 부리지 않고 차입을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또한 CEO라면 셀프 컨트롤로 극복해야 할 몫이란다.

Management Point 4
위기 대처에 강하다
기업은 그 규모를 떠나서 국내외 경제, 정치, 사회 환경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언제, 어떤 위기가 닥쳐올지 모르는 일이다 보니 기업의 수장이라면 늘 살얼음판을 걷는다는 각오로 경영에 임해야 한다. 다만, CEO의 대처능력에 따라서 기업의 운명은 엇갈린다.
20여 년 이상 기업을 운영한 대한민국 CEO라면 피해갈 수 없었던 위기가 1997년에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다. 창업 후 매년 전년대비 200%의 매출 성장을 거듭해오던 태정기공에도 이 시기에 어김없이 칼바람이 불어왔다. 수주가 줄어들면서 매출 급감은 물론이고, 결제받은 6개월짜리 어음조차 무려 30% 할인이라는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신 대표가 이때 직접 찾아나선 돌파구는 인도네시아 직수출이었다.
“7년 동안 애써 키워온 회사 문을 닫아야만 하는가 싶어, 고민이 많았죠. 고민 끝에, 트럭과 트레일러 허브볼트, 너트를 자카르타 부품공구 상가에 판매해보기로 길을 선택했습니다. 스웨덴, 독일, 일본 차종 29개 모델의 허브볼트, 너트를 직접 개발했어요. 제가 직접 나가서 샘플을 보여주고 주문을 받아 수출하는 식으로 영업을 펼쳤어요.”
수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수입은 제법 짭짤했다. 달러로 결제를 받았던 만큼, 회사가 겪고 있던 자금난에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수금이었다. 당시 거래처들은 신용장도 개설되지 않은 상태였으니, 직접 수금을 하여 돈을 들고 들어와야 했다. 지금은 불법행위로 곧장 구속감이지만, 그때는 가능한 일이었고 또 어쩔 수 없었다. 두 달에 한 번씩 자카르타로 날아가서 3만~4만 달러씩 수금한 후에 외투 좌우 주머니와 바지 주머니, 그리고 캐리어의 옷 속에 각각 달러를 분산시켜 가지고 들어왔다. 그 덕에 태정기공은 자금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 시절만 해도 그는 비행공포증이 심했다. 자카르타에 도착하기 전, 난기류 지역을 통과할 때면 늘 흔들림이 심해 매번 신경안정제를 먹어야만 했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 때도 또 한 차례 험난한 고비를 넘겨야 했다. 중진공 지역본부에 먼저 담당이사를 보냈지만,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답만 갖고 돌아왔다. 결국엔 신 대표가 다시 찾아갔다. 이때 역시 그의 끈질기고 강한 대처가 위력을 발휘했다. 중소기업의 위기 극복은 전적으로 CEO의 리더십과 자금해결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게 그의 경영지론 중 하나다.

자동차 및 선박용 볼트와 너트자동차 및 선박용 볼트와 너트, 자동차 바퀴 교체 시 사용하는 잭을 생산하는 태정기공은 타사가 못하는 어려운 제품을 선택해 시장에서의 차별화와 경쟁력을 키웠다.

Management Point 5
직원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신 대표가 쓰는 돈 중에 가장 아까워하지 않는 돈은 바로 직원에게 쓰는 돈이다. 특히 그는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한다. 배우겠다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입장이다.
품질관리팀 박해원 부장은 입사 후 자발적인 교육을 통해 후배 사원들에게 성공의 롤 모델이 된 케이스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실습을 나온 것을 계기로 입사한 후, 병역특례요원을 거쳐 4년제 야간대학교를 졸업했다. 회사 측의 배려와 학비 지원이 뒤따랐기에 가능했다. 그 후 박 부장은 남다른 열정과 능력을 보여주면서 33세에 최연소 부장이 됐다.
“직원 누구라도 뭔가 배우고 싶어 하면 비용의 50%를 부담해줍니다. 회사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라고 할지라도, 무엇이든 배우려 한다면 지원해주죠. 헬스나 수영을 다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신 대표가 신입직원들에게 대놓고 하는 말이 있다.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자신의 스펙을 쌓아 5년 후엔 어딜 가든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직장인이 되라”는 것이다. 그런 후 이직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박수쳐주겠다고.
그는 2017년부터 전 직원이 2인 1조로 일본의 협력사에 4박 5일 일정으로 견학을 다녀오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유달리 업무 집중도가 높은 일본의 협력사와 우리가 무엇이 다른지 직접 눈으로 보면서 느끼고 배울 점은 벤치마킹하라는 의도에서였다. 회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컸지만, 잘한 일인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직원들이 자신의 영역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직원들의 업무 집중도가 높아졌고, 지난해부터는 시차출퇴근제를 실시 중이다. 사전에 월 계획표를 제출한 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다. 근로시간을 줄여야 직원들의 삶을 질도 좋아지고, 직원들의 삶이 행복해야 회사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게 신 대표의 생각이다.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신태수 대표의 경영 테크닉


신태수 대표 너무 인간적이다
퇴직하는 직원들에게 회사가 지급해야 할 퇴직금 외에도 별도로 위로금을 손에 쥐어준다. 회사를 위해 일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누군가는 왜 그래야 하냐고 말하지만, 이것이 곧 퇴사 후에 재입사하는 직원들이 생겨나고 10년 이상의 장기근속자들이 많은 이유 아니겠는가?

포기란 없다
어려운 아이템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도중에 포기하는 법이 없다. 새롭게 개발한 아이템들이 미국 시장에서도 호평을 받는 것은 우리 회사가 친환경 자동차 시장의 선두주자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선 게 아니겠는가?

일 외엔 취미가 없다
특별히 즐기는 취미가 없다. 핑계 같지만, 사실 그럴 만한 여유 시간이 없었다. 일에만 미쳐 살아왔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일이 곧 취미라고 여기며 회사에 올인했기에 지금의 태정기공도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다.

박창수 전문기자 사진 박명래 객원사진기자

[2019-06-04]조회수 :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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