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02.28
2019년 한눈에 보는 중소기업 지원사업 안내도
참고 기다려라, 다만 남들 못하는 걸 해라
동양다이캐스팅㈜ 오경택 대표

1980년대 들어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한 국내 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의 이면에는 손에 기름때를 묻혀가며 직접 부품 개발에 나서고 다리품 팔며 영업하면서 묵묵히 뿌리산업을 지켜온 중소기업인들이 있다. 다이캐스팅으로만 33년 한길을 달려온 동양다이캐스팅㈜의 오경택 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 2019년 인천시 중소기업인대상을 수상한 남동공단의 선배 기업인이지만, 늘 그러했듯이 올해도 그는 경영자로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뿌리산업 기업으로서의 장수 비결을 들어보았다.

오경택 대표

남들이 못하는 걸 해내다
창업에 뛰어든 33년 전이나 지금이나 오경택 대표에겐 변하지 않은 열정 하나가 있다. 제품개발이다. 1980년대에 본격화된 국내 다이캐스팅이 걸어온 역사가 곧 그의 기업 인생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30대 중반 시절 창업에 뛰어든 것도 다이캐스팅 개발 욕심에서 비롯됐다.
“기계과 출신이거든요. 대기업에서 R&D를 담당하다가 중견기업 개발실로 이직했는데, 거래처들이 공급해주는 제품에 문제가 있었어요. 다이캐스팅이 새로운 부품제조법으로 등장한 시기였던 만큼 그때는 기술력이 약했어요. 단적인 예로 부품 표면에 기포가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겁니다. 답답했어요.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겠다 싶었죠.”
1980년대 국내 산업계는 자동차와 전자를 비롯한 다양한 산업이 한참 확대되고 성장하던 시기였다. 이에 편승해 부품제조 중소기업들이 많이 생겨났다. 오 대표도 막연히 그 창업 트렌드에 휩쓸린 것은 아니었다. 대기업 부품 수요 시장에서는 다이캐스팅의 장점이 크기 때문에 제품의 다양화와 수량 확대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데, 협력업체들의 기술력은 그에 못 미치는 게 답답했다.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은 프레스로 찍어내던 보일러 내장 열교환기를 다이캐스팅으로 고급화하는 것이었다. 이 제품은 협력사의 시장 확대에 맞물려 초창기 자리매김에 큰 역할을 했다. 막 창업한 개인기업이었으니 가족들은 물론이고 처가 식구들까지 달려들어 밤새워가며 제품을 생산해내고, 아침에는 납품을 하는 식이었다. 일찌감치 한 차례 부도를 맞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개발에 대한 집착이 강한 그는 가스압력 조절기를 국산화시키면서 이것이 대기업들과의 거래로 이어지는 발판이 됐다. 그 후 D전자의 팬히터 부품을 다이캐스팅으로 개발하면서 1990년대 초중반을 거침없이 달렸다.
2000년대 초입 들어서는 가스오븐레인지에 장착되는 레귤레이터(regulator)를 개발하여 GE에 수출하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의 문을 열었고,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일렉트로닉사와 마베(MAVE)도 거래 물고를 텄다. 이어서 2010년대 들어서는 자동차 자동변속기 부품도 개발해 대기업들에 납품해왔다.
회사가 한참 도약하던 시기에는 오 대표가 국내외 영업을 직접 뛰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 부서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팀장들의 리더십에 의해 움직이면서 경영에 집중한다. 다만 지금까지도 그가 손을 떼지 않는 것이 있다면 역시 ‘개발업무’다. 자체 기술연구소에 전문인력들이 있지만, 오 대표는 신제품 개발시엔 어김없이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그는 성격 자체가 대놓고 자랑하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사내 교육장에 널린 듯이 전시돼 있는 수백여 종의 다이캐스팅 제품만큼은 방문객들에게 자신 있게 보여주면서 설명한다. 이 제품들이 회사 성장의 역사를 대변하는 산증인이이기도 하지만,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생산하되 남들이 못 만드는 신제품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는 그의 경영철학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마장비남동공단 1공장에 있는 이 장비는 국내에서 유일한 독일제 연마장비로, 다이캐스팅으로 양산된 부품들의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역할을 한다.

고난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무던히 인내했다
남동공단 남동동로154번길에 자리한 동양다이캐스팅㈜ 본사 3층에 있는 오 대표의 집무실. 제조업으로 연간 매출 280억 원을 올리며 직원 150명을 거느리는 CEO의 공간 치고는 그 크기와 모습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색 바랜 액자와 단촐한 소파는 물론이고 인테리어를 했다는 느낌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소탈한 외모만큼이나 검소함이 묻어난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오랜 세월 무던하게도 뿌리산업을 이끌어올 수 있었던 기업인의 솔직한 자화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는 창업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위기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얘기한다.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숙명이라고 여겼어요. 사람도 기업도 꽃길만 걸을 수는 없잖아요. 부도를 맞든 위기에 처하든, 특별한 방법은 없습니다, 그냥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기업인으로서 져야 할 책임 아니겠습니까.”
그간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회사가 안정기로 돌아선 것은 불과 몇년 전이라고 털어놓는다. 창업 이후 줄곧 인내를 거듭하며 버텨야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시쳇말로 지난 30여 년간 기업인들이 겪은 큰 평지풍파는 모조리 다 겪었다. 흔한 말로, ‘팔자 드세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동양다이캐스팅의 과거는 굴곡이 많았다.
사업을 시작한 지 2년 지났을 무렵, 당시 연간 매출에 달하는 2억 원 규모의 부도를 맞았다. 이렇다 할 돌파구는 없었고, 직장생활 시절에 만났던 거래처 담당자들이 신의(信義) 하나로 일감을 보태준 덕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부품 국산화와 신제품 개발로 다시 일어서는가 싶었는데, 1997년 IMF는 내수시장에 주력했던 이 회사에 더 큰 위기를 불러왔다. 일단 공장 가동을 멈추고 20여 명 직원들의 퇴직금을 정산한 후 일시적으로 회사 문을 닫았다. 1년 후 다시 공장을 돌리자 직원들이 하나같이 재입사했고, 수출시장 개척과 동시에 도약과 성장의 시기가 찾아온 것만 같았다. 그것도 잠시였다. KIKO 사태를 겪으면서 2009년 즈음에는 심각한 자금난에 부딪혔다.
위기상황을 여러 차례 겪으며 은행 빚은 쌓일 대로 쌓인 상태였던 만큼, 눈 뜨고 일어나면 회사를 어떻게 할까 절박한 심정이었다. 기업의 성장동력을 인정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지원으로 재도약의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불행스러운 사건은 또 터졌다. 7년간 50여억 원이 투자된 개성공단 폐쇄는 그야말로 눈물을 쏟아야 할 만큼 속상한 일이었다.
“서비스업이나 IT벤처들과 달리 뿌리산업은 기본 구조부터가 다르거든요. 대내외 경영환경이 최적화된 상태일지라도 안전, 품질, 자금 등의 애로점이 뒤따르는데, 큰 부도를 맞거나 외환문제 또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앞에서는 그야말로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그런데 어쩌겠어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지속경영이 가능하니까 CEO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더라도 그 상황을 극복하는 수밖에요.”
오 대표는 험난한 파도를 잘 버티며 견뎌내는 CEO의 뚝심이야말로 뿌리기업 경영인에게 매우 중요한 힘이라고 강조한다.

업무중인 동양다이캐스팅 직원들3D업종에 속하는 현장이지만 직원들의 애사심과 신뢰는 강해 장기근속자들이 많은 것이 이 회사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가스압력조절기동양다이캐스팅㈜은 가스압력조절기 국산화를 비롯해 팬히터 부품과 레귤레이터 등의 다이캐스팅을 개발해 국내외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품질은 직원이, 직원은 CEO가 책임진다
오경택 대표 명찰그가 CEO로서 기업 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1999년이었다고 한다. 거래처들이 부도가 나고 문을 닫는 시기였기에, 일시적으로 공장 가동을 멈췄다. 직원들과는 퇴직금을 주고 작별을 고했다. 하지만 1년 후 공장이 돌아가자 그들은 다시 돌아왔다.
“감동이었지요.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다시 뭉쳤으니까요. 기업의 성패는 직원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들이 일하기 싫어하면 품질을 보장받지 못하는게 당연한 거니까요. 우리 회사가 자랑할 것 중 대표적인게 다이캐스팅 개발과 품질인데, 그래서 글로벌 기업들도 먼저 인정하고 손을 내민 거라고 봐요. 그만큼 직원들이 열심히 일했다는 거죠.”
10년 이상 된 직원들은 어림잡아 열댓 명이나 되며, 지난해에 20년 장기근속자도 두 명 탄생했다. 현장 팀장 중엔 20여 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입사하여 지금도 근무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이 사내 각 부서 팀장으로 움직이는 만큼, 최근 들어 오 대표는 지역 내 중소기업인 활동이나 산학연 세미나에 참석할 만큼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는 직원들의 애사심이 대단하다고 추켜세운다.
지난해 무재해 12배 달성 현장으로 인정을 받기도 했지만, 과거엔 현장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지붕에 올라가 직접 불을 끄는 직원도 있었다. 그가 결혼하는 직원들의 주례를 서기도 하는 데에는 그만큼 신뢰로 쌓여진 관계, 즉 노사화합의 아름다운 결과를 드러내기도 한다.
“대표가 잔소리 많이 한다고 품질이 좋아지는 건 아닙니다. 직원들의 노력과 애정이 품질을 만들거든요. 그러려면 제가 반드시 해야 할 게 있어요. 직원들은 제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들이 집안걱정, 돈걱정 하지 않고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제 몫이거든요.”
지금은 회사 차원에서 주택구입 대출 지원도 해주지만,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던 시절엔 오 대표가 직접 은행 대출을 받아 전셋집 마련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20여 년 전, 당시 의료기술로는 손가락 절단 접합수술이 어렵던 시절 직원에게 안전사고가 났을 때는 지인들을 총동원하여 휴무 중인 의사를 응급실로 불러들여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던 일도 있다. 그는 어떤 일이든 직원들의 애로점을 공유하고 함께 풀어가는 것이 CEO로서 당연히 해야 할 몫이라는 입장이다.

부가가치를 만드는 게 지속성장을 이끈다
기업의 가치와 비전은 지속성장이다. 소비재 산업이라면 없던 제품을 만들어 마케팅을 통해 시장을 창출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뿌리산업은 다르다. 우선 경기 흐름이 원만해야 하고, 협력사인 대기업들의 생산 물량이 늘어나야 부품 중소기업들도 동반 성장이 가능하다. 오 대표의 가장 큰 고민도 늘 비전을 말할 수 있는 성장동력을 만드는 일이다.
“뿌리산업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장기적인 비전을 추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중국의 추격도 만만찮고, 노동력 확보도 어렵죠. 그래서 추구해온 것이 남들이 만들지 못한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파고들고, 그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력을 투자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신사업 선도기업일지라도 후발주자들과의 경쟁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 때문에 동양다이캐스팅은 다른 기업들이 도전하지 않은 틈새시장을 뚫으면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부품 제조에 주력해왔다. 초창기 단순 다이캐스팅에서 벗어나 다듬질, 표면처리, 조립 등의 후가공까지 완료하여 부품을 납품하면서 경쟁력을 키웠다. 2공장인 화성공장 준공과 함께 국내에서 유일하게 독일제 연마 장비를 갖추고 스마트공장화를 위한 MES 시스템도 도입했다. 이 같은 일련의 노력은 그간 험난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순이익 증가와 함께 신규 채무 발생을 제로화시킨 결정적인 이유다. 그런가 하면 GE와 일렉트로닉스의 레귤레이터 시장 40%를 점유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엔 안전밸브를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더 키워나갈 수 있게 됐다.
다이캐스팅 제조과정에서 뿌옇게 솟아오르는 연기만큼이나 머리카락이 온통 하얗게 된 오 대표. “뿌리산업계의 미래가 마냥 밝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성장을 위한 비전을 찾아나갈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의 백발을 보노라면, 지난 33년간 다이캐스팅 기술 발전과 산업계 성장을 이끌어오느라 고민과 열정을 아끼지 않은 당당한 그의 훈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년 CEO들에게

오경택 대표 뿌리산업 중소기업들은 1970년대, 1980년대에 급격히 증가했다. 이 때문에 지금은 2세 경영시대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동양다이캐스팅㈜도 6년째 경영 2세가 생산과 영업 현장에서 실무를 쌓으며 경영수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타 산업들에 비해 뿌리산업의 경영환경은 좋지 않다. 이 때문에 동년배 경영자들을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다음 세대 경영자들에 대한 걱정이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그들에게 전한다.

CEO는 본인 스스로 배워야 한다
마케팅은 의뢰하면 되지만, 기술은 자체 확보가 필수이며 누구보다도 대표가 잘 알아야 한다. 제조업 경영 전반에 걸친 지식 또한 마찬가지다.

CEO는 위기 대처를 위한 힘을 키워야 한다
교도소 담장 철조망 위에 선 사람만큼이나 늘 위기에 처한 상황인 게 중소기업이다. 어느 쪽으로 떨어질지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CEO의 몫이다.

CEO의 남다른 한 수는 결정력이다
때로는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CEO에겐 외부의 눈치나 분위기에 아랑곳없이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뚝심이 필요하다.

박창수 전문기자 사진 김윤해 객원사진기자

[2020-01-13]조회수 :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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