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202012.05
잠재력과 리더십으로 경영하라
엠텍 백영순 대표

백영순 대표는 창업 12년 차 CEO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의 세계 10위 내에 드는 부품업체에 모듈화된 엔진 및 연료필터의 기능성 부품과 센서를 납품하는 제조회사를 이끌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도 아니고 단 한 번의 직장 경력도 없는 그가 홀로서기를 통해 일군 회사 치고는 그 경쟁력과 비전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12년 전에 나는 여자가 아닌 ‘리더’라는 이름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백 대표의 경영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았다.

백영순 대표

내 안에 숨은 나를 찾아냈다
“지금의 제 모습은 13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죠. 글로벌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사업을 한다는 것은 꿈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참 신기하죠. 저에게 리더 기질이 잠재돼 있었나봅니다.”
백영순 대표. 그가 명함을 내밀기 전에는 누가 봐도 자기 모습 잘 가꿔온 중년 여성쯤으로 보인다. 60여 명의 직원을 이끌고 자동차의 EMS(엔진제어부품) 및 자동차 연료필터 기능성 부품을 제조해 연간 145억 원의 매출을 올린 중소기업의 CEO라는 사실을 알면 다들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그는 인천의 기업 경영인들 사이에서는 제법 잘 알려진 CEO 중 한 사람이다.
“40대 들어서기 전까지는 사업에 관심도 없었어요. 나도 자립을 해보자는 생각과 함께 골프웨어 전문점을 운영하게 됐는데, 우연찮게도 그게 제조업으로 이어졌어요.”
2009년 봄이었다. 공대 출신 골프동호회 경기에서 멤버가 부족하다고 단 하루만 참여를 부탁했고, 고객관리 차원에서 응했다. 회원 중 CNC가공 중소기업 대표와 대화 도중 그게 어떤 일인지 궁금해했더니, 대답이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CNC 선반에 자재를 투입하면 부품이 저절로 가공되어 쏟아져나오는데, 그걸 소쿠리로 받기만 하면 된다는 거였다. 돈다발을 챙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즉석에서 무턱대고 그 분야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상대는 물론이고 합석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여자가 무슨 부품가공업을…?” 하며 비웃었다. 그때부터였다.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던 도전의 욕구가 터져나온 것은.
제조회사에 다녀본 적도, 지켜본 적도 없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후 결혼과 함께 살림만 했던 주부였고, 골프웨어 전문점을 운영한 것도 고작 1년이었다. 그런 그가 일을 저질렀다. 가게를 접고 당시 1대당 1억 원이던 CNC선반 5대를 구입해 제조업에 도전장을 냈다. 뭔가에 홀렸는지 자신도 모르게 사업이 시작됐다. 그러니 창업 후 좌충우돌은 예고된 일이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제가 바로 그 꼴이었어요. CNC 선반 설비는 1층에 설치하는 게 기본 상식이거든요. 진동을 못 버티면 제품이 다 불량이 나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2층 임대공장을 얻어 직원들과 벽에 페인트 칠도 하고 장비를 설치한 겁니다. 황당한 일을 벌인 거죠. 첫 주문을 받았는데 납기는 지켜야 하잖아요.”
다시 장비를 해체해 공장을 이전하고, 첫 제품으로 코어 프론저를 가공해 가까스로 납품했다. 그 다음 문제는 주문량에 비해 장비가 남아도는 것이었다. 한 대씩 늘렸어도 됐는데, 이미 일은 벌어진 셈이니 어쩌겠는가? 어차피 시작한 일, 제대로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백 대표는 직접 거래처를 찾아다니며 주문을 받아왔다. 2년 후엔 GM코리아에 솔레노이드 밸브를, 독일 말레에 CRDI용 수위 센서와 히터를 각각 공급하게 됐고, 창업 4년 만인 2013년엔 수출유망중소기업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백 대표로서는 새로운 자신의 발견이었다.

엠텍 사옥엠텍은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 10위 안에 드는 부품회사에 모듈화된 엔진 및 연료필터의 기능성 부품과 센서 제품을 납품하는 작지만 강한 기업이다.

여자가 아닌 사장으로 일했다
비즈니스에서의 성차별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10여 년 전에 백 대표가 초창기 사업을 펼칠 때만 해도 제조업계에서 여성 CEO에 대한 편견은 심했다.
“금융권에서는 인형공장을 하면 대출해줄 수 있는데, 기계부품이라 대출이 안 된다고 했어요. 또 어떤 거래처에서는 친구를 데리고 와서 함께 식사하면 안 되겠냐고 하더군요. 거의 인권 침해 수준이었죠. 목구멍에서 ‘이 자식들이 정말’ 하는 소리가 맴도는데, 차마 못했어요.”
일찌감치 각오를 했다고 한다. ‘나는 여자가 아니고 사장이다’라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음주가무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였지만, 거래처 담당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여사장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마치 술꾼처럼 닥치는 대로 술을 마시고 해장국도 함께 먹었다. 주문량이 떨어지면 거래처 대표를 만나 무조건 믿고 맡겨달라고 생떼를 쓰면서 일감을 빼앗아 오다시피 한 적도 있었다.
초창기에 부품을 납품하던 거래처에 부도가 났을 때는 당장의 손실을 걱정하기보다는 거래처의 협력사를 찾아가 거래처가 납품하던 부품을 직접 제조할 수 있게 맡겨달라고 요청했다. 당시에 그 거래처는 엠텍이 가공한 부품을 조립해 협력사에 납품하고 있던 터였다. 거래처 협력사에서 처음엔 고개를 흔들었지만, 끝내는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때부터 기술력 강화를 위해 개발 인력을 보강하고 품질환경인증서를 취득했고, 기업부설연구소도 설립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언제부터인가 백 대표는 자신의 내면에 똑 부러지는 결정력과 강한 리더십이 자라고 있음을 실감했다.
“직원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리더라고 마음먹으니 누굴 만나도 의욕과 자신감이 넘쳤어요. 그래서 저는 후배들이나 직원들에게도 종종 조언합니다.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여자라서’를 내세우지 말라고요. 여자가 아닌, 일에서의 전문가로 나갈 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백 대표가 지난날의 경영 이야기를 긴장감 없이 편안하게 늘어놓기까지는 남모르는 인내의 시간도 필요했다. 자금, 인력, 수주 등 이런저런 장애요인이 있을 때면 침대 끝자락에 쭈그리고 앉아 소주병도 비워보고, 타는 가슴속으로 눈물 흘리며 마음을 다잡은 것만도 수차례. 그때마다 사업에 뛰어들면서 가졌던 ‘멋지게, 나답게 한번 살아보자’는 초심을 곱씹었단다.
이제 업계에서는 그를 여자로 보는 사람이 없다. 사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단호한 말 한마디에는 나이, 성별, 지위 등 모든 벽을 허물어뜨리는 카리스마가 있다.

엠텍의 모듈화 제품초창기에는 단품가공 납품 위주의 제조회사였지만 기술개발과 함께 모듈화를 추구하면서 엠텍 자체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모듈화로 내일의 먹거리를 늘렸다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은 단품을 가공, 납품하는 것만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따른다. 임가공의 수익성 한계는 뻔한 일이니 가격경쟁력에서 치이기 마련이다. 답은 ‘모듈화’에 있다. 엠텍의 출발도 부품 단순가공이었다. 시장 상황을 보는 눈이 생기면서 백 대표는 모듈화가 필수라고 판단했다.
단품 가공 납품에서 조립까지 끌어들여 부분품으로 확대시켰고, 다음엔 관련 부품 개발을 통해 연료필터와 센서 등 각각 모듈화된 완성품을 생산하게 됐다. 새로운 아이템을 수주할 때마다 직접 발로 뛰면서 자신의 주특기인 ‘우리는 할 수 있다. 내가 책임지겠다’는 태도로 일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이제는 ‘엠텍’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글로벌 자동차 부품 시장 입찰에 통합형 제품으로 참여하는 반열에 올라섰다. 현대기아자동차의 한국 말레, 한국 만앤휴멜, UFI, 파커 등을 통해 주요 기능성 부품을 공급하고, 수출 부품은 프랑스 소제피, 독일 말레, 델파이를 통해 르노, 닛산, GM, 포드, BMW에 수위 센서와 히터 조립품 등을 직접 양산 공급한다.
이 과정에서 힘든 일도 많았다. 생산설비는 확장시켰는데, 정작 일감은 줄어들어 위기를 겪은 적도 있었다. 가장 막막한 때는 직원 월급을 못 줄 만큼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였다. 하지만 그의 배짱은 남달랐다. CNC선반이 8대였을 때, 한 달에 1대씩 팔아서 직원들 월급을 해결하기도 했다. 3대까지 팔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기술력 강화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사업 초창기에서 도약기까지는 전적으로 발로 뛰는 영업력과 뚝심으로 버무려진 백 대표의 사업 기질이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성장기로 접어든 최근엔 기술력이 가세한 형세다. 엠텍은 자동차 연료필터의 연비 개선 및 클린 부품, EMS 제어기술 부품, 자동차용 압력 및 온도제어 센서류 등을 보유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부품 시장에서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켜놓았다. 이에 따라 연료필터 핵심 부품의 해외 신규시장 확대로 2017년 엠텍 본사 사무동 및 공장도 신축했다. 그는 부품 생산업체라면 귀담아 들어야 할 만한 메시지를 이렇게 전한다.
“자동차 업계는 갈수록 신차 주기가 빨라지고 있어요.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으로서는 그때그때 대응하는게 쉽지 않은 일이죠. 우리 회사는 차종 변화에 덜 민감한 핵심 제품 모듈화를 이루었고, 친환경에 대비한 부품 개발로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다가올 내일은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엠텍은 요즘 친환경 분야인 전기차와 수소차용 신규 아이템 개발 및 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중이다. 유명 글로벌 자동차회사의 핵심 부품을 제조하는 만큼 현재 생산하는 제품의 수명이 당장 끝날 우려는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미래 수요 예측에 따른 대비를 한다는 입장이다.

백영순 대표

시니어 인력 활용에 적극적이다
백 대표의 경영 노하우 중에서 돋보이는 것을 또 한 가지 찾는다면 인력 채용과 관리 능력이다. 엠텍의 경우 단순 부품 가공에서 출발한 만큼, 새로운 부품 개발 기술력이 절실해지기 시작한 것은 모듈화를 추진하면서부터다.
“고급 엔지니어들이 필요한데, IT벤처도 아니고 더욱이 그 무렵은 창업한 지 10년도 안 된 회사였잖아요. 직원을 구하려 하면 면접 보러 오겠다고 하고 당일엔 나타나지도 않아요. 이런 일을 겪은 뒤, 대기업 엔지니어 출신으로 은퇴 전후의 시니어들을 찾기로 했습니다. 기술력도 경력도 풍부한 분들이잖아요.”
시니어 채용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다만 인력은 채용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관리가 더 중요하다. 일부 인력은 단기간 근무 후 결별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몇 차례 있었다. 자신의 경력을 앞세워 회사 지분을 요구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회사에서 필요한 인재이긴 하지만, 자칫 잘못 판단하면 공든 탑이 무너지듯 회사가 공중분해되는 일은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결국 백 대표는 그들에게 조용하게 카리스마를 날렸다.
“경영에 참견하려는 그들에게 화를 낼 필요는 없어요. 딱 잘라서 말했죠. 업무 타협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경영 타협은 불가능하다고요. 사실 제가 모든 기술 문제는 직접 해결 못해도 인력 관리를 포함한 경영은 제대로 할 수 있어야 CEO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닌가요?”
정확한 선 긋기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단, 회사와 내가 함께 성장한다는 마인드를 지닌 시니어 전문인력이라면 얼마든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머리를 맞대는 스타일이다. 재직 중인 이상영 전무를 비롯해 김차식 연구소장 등은 백 대표가 선호하고 인정하는 시니어 전문인력들이다. 그들로 인해 회사에는 새로운 기업문화도 생겼다. 정년퇴직 나이를 넘겨도 계속 일할 수 있는, ‘정년 없는 회사’가 된 것이다.
그간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직원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업무를 떠난 대화와 속내만은 늘 엄마 같고 누나 같은 마인드로 대했다고 백 대표는 고백한다. 기업의 가장 큰 자산은 사람인 만큼 장기적으로는 ‘사람 냄새 나는 회사’를 추구할 작정이란다.
올 들어 엠텍은 액추에이터, 밸브, 센서, 모터의 통합기술 융합회사로 제2의 도약을 선언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강소기업을 추구하는 이 회사의 올 예상 매출액은 174억 원. 새로운 제품 수주로 인해 코로나19도 잊고 24시간 공장을 가동 중이다. 내년에는 경영학 석사과정에 입학해 자신의 경영능력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백영순 대표. 말 한마디, 표정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는 그가 펼칠 내일의 엠텍이 기대되는 시간이다.

2030 CEO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백영순 대표제조업과 경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들었기에 오히려 더 많이 배우고 느꼈다는 백영순 대표는 젊은 세대의 창업 도전에 박수를 쳐주는 입장이지만, CEO로서 꼭 필요한 의지와 능력은 반드시 스스로 키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무엇이든 부딪혀서 밀고 나가라
절대 뚫을 수 없어 보였던 철벽 같은 장애물도 지나고 나면 창호지에 불과한 것이 삶이고 비즈니스다. 인생사는 공부머리로 살아가는 게 아니다. 내 앞의 시련과 장애물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하지 말고 정면돌파하여 해결하라. 그런 가운데 진정한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도 발견할 수 있다. 도전이라는 말은 이래서 필요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워라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로 소통하는 게 젊은 층의 일상이다. 개인기는 뛰어나도 협업 능력은 떨어진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인간관계에서의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비즈니스는 사람과의 관계 유지다. 거래처 담당자, 고객, 직원 모두가 경영자의 관계 유지 대상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대화를 통해 형성되고 함께 협력할 때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라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영상을 비롯해 빨리 보고 느끼고 잊어버리는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젊은 세대들의 이러한 성향은 더 강하다. 리더는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책 속에 그 답이 숨어 있다고 본다. 전문지식은 물론이고 사는 데 필요한 모든 지혜는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 나는 대로 독서하라.

박창수 기자 사진 김윤해 기자

[2020-06-03]조회수 :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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