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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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경영 이야기
이미지를 바꿔라 ‘숀의 작전’이 시작됐다
㈜쎄믹스 유완식 대표

 

살아온 이력을 보면 분명히 이과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볼수록 문과적인 사람이다. 반도체 웨이퍼 검사장비 제조업체 ㈜쎄믹스의 유완식 대표. 순수 국내 기술로 웨이퍼 프로버(Wafer Prober)를 제조해 세계 3대 제조사에 등극시킨 공학박사 출신 경영자. 그런 그가 쎄믹스의 경영자로 살아온 17년을 돌아보면, 경영에 대한 그의 생각을 개조하는 시간이기도 했단다. 정답 도출에 민감한 이과형 사고방식에서, 생각에 생각을 더해 깨달음을 얻는 문과형 사고방식으로의 전환. 그래서일까? “Think Big to Talk Big!”을 외치는 그의 2017년 작전명, ‘숀의 작전’이 몰고 올 변화가 또 어떻게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창업의 걸림돌 없애준 그 여자 박애랑
유완식 대표를 찾아간 날은 ㈜쎄믹스가 경기도 광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그래선지 회사는 새 단장에 분주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눈길을 확 잡아끈 것은 회사의 사훈. 벽을 띠처럼 두른 다음과 같은 문구였다. “Think Big! Fun, Pride, Profit, Talk Big!”
영어 자체를 놓고 보면 쉬운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단어들이 갖는 연관성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창업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쎄믹스와 유 대표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한 쉽게 풀리지 않는 개념이다. 이해를 위해 쎄믹스 창업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17년 전, 당시 유 대표의 직업은 LG산전 책임연구원. 지금은 사라진 LG반도체로부터 연구 과제를 위탁받아 그 책임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연구가 제법 잘 진행되던 그 무렵,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겼다. 대한민국의 기업사에 빼놓을 수 없는 하이닉스 탄생 역사의 그림자에 유 대표와 팀원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진행하던 업무를 중단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이 쎄믹스 창업의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다름 아닌, 당시 팀의 연구과제는 반도체 검사장비인 웨이퍼 프로버(Wafer Prober) 개발. 이를 묻어두기 싫었던 그는 회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잔존 대신 창업을 택했다고 한다.
“2000년에 창업을 했습니다. 벤처 창업이 한창 무르익은 시절이어서 연구원들의 창업이 러시를 이루기도 했죠. 그래서인지 창업이 두렵지는 않았어요. 저와 지금의 김지석, 나현찬 전무, 그리고 요즘은 몸이 아파 잠시 회사를 쉬고 있는 박철우 이사가 창립 멤버죠. 이들과 동업자적 개념으로 분권적 경영을 약속하고 창업에 나섰어요. 지금 와서 보면, 결과적으로 우리가 계획했던 경영방식이 성공한 셈이죠. 하지만 창업 당시엔 대다수가 이런 창업이 성공할 수 없다고들 했어요. 그런데 딱 한 사람만 열렬하게 지지해줬죠. 그 사람이 바로 제 아내입니다.”
아내의 이름은 박애랑. 1년 전 화장품회사를 해보겠다며 아내도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아내는 여태까지 제 손으로 돈을 벌어본 적 없는 무한긍정주의자란다. 바로 그런 아내 덕분에 유 대표는 창업의 첫 관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기꺼이 아내가 주택담보 대출에 동의해주면서 가족의 반대라는 걸림돌 없이 조금은 유쾌하고 수월한 창업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첫 납품은 제왕적 통치자 리처드 덕분?
쎄믹스는 자본금 2억 원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창업은 단지 첫걸음을 뗀 것뿐, 쎄믹스가 넘어야 할 난공불락의 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웨이퍼 프로버 제조가 가능한 기업은 일본과 미국의 초거대기업 3개사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야는 매출 수조 원에 이르는 초거대기업 3사가 완벽하게 장악한 금단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무명의 신생기업이 들어가기에는 바늘구멍만 한 틈새조차 허락되지 않는 너무도 견고한 성이 앞에 놓여 있었다.
“창업 후 2년 가까이 국책과제를 진행하고 벤처캐피털로부터 5억 원 정도 투자를 받아서 회사는 살아 있었지만, 말 그대로 쫄쫄 굶고 있었어요. 게다가 2001년부터 벤처 붐이 확 꺾였고, 국내업체는 하이닉스와 삼성밖에 사줄 곳이 없었죠. 그런데 삼성은 자체적으로 제작하고 하이닉스는 투자가 안 되던 시절이니, 국내엔 팔 곳조차 없었어요. 그런데 우연치 않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대만의 한 웨이퍼 테스팅 업체가 나타난 겁니다.”
해당 기업의 이름은 윈스텍, 대표의 이름은 리처드였다. 제품 대신 페이퍼만 들고 해외로 고객을 찾아 헤매던 시절, 유 대표는 지금까지도 가깝게 지내는 대만의 에이전트사의 한 바이어로부터 리처드를 소개받았다. 때마침 웨이퍼가 8인치에서 12인치로 넘어가기 직전인 시대였다. 유 대표는 말 그대로 리처드에게 사활을 걸었다. 쎄믹스의 제품은 8인치 웨이퍼 검사에도 당장 적용이 가능하면서 곧 나올 12인치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더불어 파격적인 가격 경쟁력을 내세웠다.
“당시 유일하게 출시된 일본 제조사의 12인치 제품을 쓰면 가격이 너무 비싸니까, 우리 것을 설치해 대만에서 가장 먼저 12인치 웨이퍼 프로버를 설치해보라고 했죠. 그와 더불어 12인치 웨이퍼가 생산될 때까지 무한 A/S도 약속했어요. 저희 입장에서는 행운이었던 게, 리처드는 좋게 말하면 카리스마가 대단한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독재자였어요. 임직원 누구 하나 그에게 반항하지 않으니까, 리처드만 잡으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어찌 보면 모험이었다. 하지만 리처드는 일반적인 다른 업체의 복잡한 결정구조에 비하면 비교적 상대가 쉬운 비즈니스 상대였다. 윈스텍의 결정구조는 리처드 사장이라는 큰 산만 넘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예상은 맞아떨어졌고, 마침내 리처드 설득에 성공한 쎄믹스는 첫 수주를 따낼 수 있었다. 2002년 9월, 2대로 시작해 총 17대의 제품에 대한 순차적인 납품이 결정되었다. 뛸듯이 기쁜 일이었지만, 끝나지 않은 전쟁의 서막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실물제품이 만들어지고 첫 시제품 2대의 납품을 마쳤지만, 제품은 현장에서 크고 작은 변수에 부딪혔다. 아닌 게 아니라, 첫 납품 직후 곧바로 리처드 사장이 대노하는 일이 발생했고, 그 이후로 취소하겠다는 으름장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쎄믹스 입장에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기회였다. 유 대표는 납작 엎드려 리처드가 제품에 만족할 때까지 그의 개선 요구를 100% 수용했다. 그렇게 윈스텍으로 수출한 제품이 안정화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년여. 그럼에도 리처드 사장은 누구보다 고마운 존재였다. 난공불락으로 여겼던 시장진입을 가능하게 해준 최초의 고객이었으니까.

 

‘숀의 작전’ 불붙여준 싱가포르 에이전트 ZMC
이처럼 윈스텍과 거래를 트면서 쎄믹스에는 가파른 성장의 사다리가 놓였다. 이후 몇 년 동안 윈스텍과의 거래만으로도 먹고살 걱정이 없었다. 게다가 윈스텍을 기점으로 대만 시장에서 하나 둘씩 의뢰가 늘면서 쎄믹스의 인지도가 나날이 높아졌다. 덕분에 쎄믹스의 매출은 2007년 180억 원을 찍었다. 그런데 그 후 6년. 불현듯 유 대표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년 반 전쯤입니다. 재무제표를 살펴보는데 ‘아차!’ 싶었습니다. 회사는 2007년 이후 6년째 매출이 요지부동이었던 겁니다. 좋게 보면 회사에 부침이 없다는 뜻이죠. 하지만 그것이 잘되고 있다는 뜻은 분명 아닙니다. ‘이것은 문제다!’라고 핏대 세우고 지적하는 역할을 할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제가 제 몫을 하지 않아 벌어졌던 일이죠.”
유 대표는 자신을 탓했고, 자신의 직무유기라고 진단했다. 2007년부터 회사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겠다며 시작한 태양광사업과 자회사 쏠라딘에만 매몰된 까닭이다. 이는 경영자로서 통합적인 시선으로 회사라는 숲을 봐야 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반성이기도 했다. 바로 그 무렵, 싱가포르 에이전트사인 ZMC와 그 직원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ZMC 직원들이 아니었다면 우리 회사는 망했을 겁니다. 2013년 당시, 매출 180억 중 100억을 ZMC가 달성했을 정도니까요. 압도적인 싱가포르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할 만큼 지금까지도 활약이 대단한 협력사입니다. 그런 ZMC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잘하는지 궁금해진 겁니다. 그래서 벤치마킹을 하러 갔죠. 그때 재미있는점을 발견했습니다. ZMC는 임직원들에게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하지만, ‘못하는 것은 못한다고 안 한다’라는 것입니다.”
유 대표가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였다. 그때까지 유 대표는 직원들에게 으레 ‘모든 것을 잘하라!’고 지시했단다. 그런데 정작 모든 것을 잘하라고 하면,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안 하면 되더란다. 모든 것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면 무얼 잘하고 못하는지 티가 나지 않는다. 그제야 회사가 답보 상태인 이유가 짐작이 됐다.
“그 무렵, 경영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그리고 우리의 마인드가 달라지려면 제가 제시하는 것부터 달라져야겠더군요. 작은 것 하나하나에 매달리면,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보이지 않죠. 회사의 큰 그림, 즉 숲을 봐야 각자의 위치가 보이고 자신이 하는 일과 역할이 보이게 되죠. 그래야 자신이 하는 일도 재미있고 프라이드도 생기고,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회사의 이익으로 돌아와요. 다음으로 더 큰 목표를 말할 수 있게 되고요.”
‘Think Big! Fun, Pride, Profit, Talk Big!’이라는 개념의 등장이다. 한편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유 대표가 2017년 미션으로 제시한 ‘숀의 작전’도 이해해볼 수 있다. 자신의 영문명인 숀을 따서 이름 붙인 ‘숀의 작전’은 ‘회사의 이미지를 바꿔라!’라는 유 대표의 제안이다.
“이미지를 바꿔야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기존의 목표였던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하자’는 개념 정도에서 회사가 변화를 꾀한다면, 그저 제품을 개선하는 수준에서밖에 혁신되지 않죠. 하지만 ‘회사의 이미지를 바꿔라!’라는 큰 그림이 제시되면 달라지죠. 회사의 하위 구조인 조직과 개별적인 목표도 회사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에 맞춰집니다. 그야말로 회사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세부적인 분야와 조직, 그리고 임직원 개개인에게 혁신의 동기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처럼 유 대표의 발상의 전환이 불러온 경영효과는 실제로 2년 전부터 달라진 매출이 입증하고 있다. 5년간 5배 성장으로 1,000억 원 매출 회사가 되겠다는 목표가 정확하게 실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2016년 두 해 동안 40%씩 성장해 매출은 270억 원, 385억 원을 기록했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변화가 ‘2017년에도 여전히 유효한지’를 지켜보는 것 역시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My Leadership
유완식 대표

존중의 리더십을 발휘하자!
유 대표가 자신의 장점으로 꼽는 것 가운데 하나가 상대를 존중하는 일이다. 그 밑바탕에는 분권이나 독립을 중시하는 유 대표의 가치관이 깔려 있다. 직장생활을 하던 과거에도 유 대표는 간섭받는 게 너무 싫었다고 한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쎄믹스는 분권적 경영을 17년째 운용하고 있으며, 세간의 편견을 깨고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상대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존중해야 나의 아이덴티티도 존중받는다는 유 대표의 존중의 리더십은 쎄믹스 임직원들이 자유롭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는 설명이다.

오로지 경영만 생각하자!
2년 반 전,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 유 대표는 이때부터 문과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종일 앉아서 경영만 생각하는 일도 많아졌단다. ‘어떻게 하면 회사가 잘될까?’, ‘직원들에게 어떤 모티브를 줄까?’ 따위의 당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천착해 생각에 생각을 더하게 되더란다. 거꾸로 말하면, 이는 연구개발에서는 조금 멀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분권적 경영이 잘 유지되면서 연구개발은 다른 임직원들이 충분히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은 경영자이므로, 다른 것보다 오로지 경영만 생각하고 이에 치중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이다.

영속적인 회사를 만들겠다!
영속적인 기업을 만드는 것은 CEO에게 주어진 숙제다. 사실 유 대표가 다수의 기업이 포기한 태양광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쏠라딘을 운영하는 이유도 이 같은 영속성과 연관되어 있다. 기업의 영속성이란 측면에서 다른 사업을 해보는 것은 중요하고, 또한 태양광으로 성공하는 사례로 남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기업은 잘되는 사업과 잘못되는 사업이 상호 보완되면서 함께 갈 때 영속성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때문에 지금으로선 잘되고 있는 쎄믹스가 더 잘되어 주춤하는 쏠라딘을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박은주 전문기자 사진 박명래 객원사진기자​

조회수 : 2,475기사작성일 : 201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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