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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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경영 이야기
대운은 야누스 모습으로 옵니다
아하정보통신 구기도 대표

얼마 전 일본의 대표 일간지 《요미우리신문》의 기자는 1면 기사를 쓰기 위해 아하정보통신 구기도 대표를 취재했다. 구 대표가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기회로 극복한 사례의 적임자라고 판단해서란다. 구 대표는 작년에 0.5초 만에 체온을 재는 비대면 발열 측정기를 국내 최초로 5월에 출시해 대박을 터트렸지만, 곧 지옥 같은 시간을 맛봤다. ‘청춘’이 인생의 어느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면, 구기도 대표의 청춘은 위기와 기회가 켜켜이 쌓여 단단해진 지금이 아닐까?

확대보기구기도 대표

욕심이 부른 나쁜 기회

새벽 4시 30분이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전날 사들였던 37억 원가량의 CCTV를 모두 도둑맞았다는 소식이었다. 포장도 뜯지 않아 따끈한 상태였다. 창고엔 CCTV 하나 설치할 겨를도 없이, 8t 트럭 가득 채웠던 제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하늘이 노랬다. 마침 합작회사가 분리되면서 처치 곤란한 생산품을 거의 반값에 구매하는 행운을 얻었다. 사업을 확장할 꿈에 부풀었는데 그저 꿈일 뿐이었다. 구기도 대표는 하루아침에 준비되지 않은 가난을 맛봐야 했다. 가난은 차고 매웠지만 더 차가운 것은 돌아선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한국 대기업에 팀제가 막 도입되던 때, 20대 팀장으로 일찍 승진했지만 그만큼 견제세력이 많았죠. 그게 싫어서 회사를 나오고, 중견기업에서 본부장으로 일했어요. 여기서도 사장님과 영업 방식에 이견이 생겨 퇴사를 고려하던 중에, 함께 일하던 직원 82명이 다 같이 나오겠다 해서 책임감에 순간적으로 창업했거든요.”
다행히 구 대표를 따르는 사람들과 신용 덕분에 일이 잘 풀렸고, 30대 초반에 아파트 두 채와 별장까지 소유하고 주말마다 직원들과 보트를 타며 여유를 즐겼다. 하지만 사람들의 태도가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 덕분에 세상사를 일찍 깨달았다.
아하정보통신 구 대표의 경영 인생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화다. 아하정보통신은 터치센서 기술을 기반으로 전자칠판, 전자교탁 등을 개발, 제조한다. 전자칠판 및 교탁시스템, 판서 모니터 국내 판매 1위(2019년 말 기준, 시장점유율 40%) 기업이다. 2007년 세계 최초 평판형 LCD 전자칠판 개발, 2012년 세계 최초 UHD(4K) 전자칠판 개발, 2018년 세계 최고 IN CELL 터치 전자칠판 개발로 기술력도 인정받았다.
최근엔 AI 안면인식 비대면 피부적외선체온계(ASP-1000) ‘아하스마트패스’를 개발했고, 국내 최초로 의료기기로 승인받았다. 그 근간엔 전체 직원의 25%에 이르는 연구인력과 매년 매출액의 6%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하는 구 대표의 과단성, 전략적인 사고와 혜안이 있다. 특허만 100여 개에 이른다. 핵심 특허 중 상당수는 국제특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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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을 배우니 전자칠판에서 기회가 오다

“다행히 거래처는 그대로 있었어요. 재산을 다 정리해서 대금 치르고, 직원들 내보내고 남은 금액으로 작은 공간을 얻어 창고 겸 가정집을 만들어 일했어요. 집사람도 이때 합류했죠. 인건비를 아끼려고 직접 천장까지 오르내리며 선 까는 작업도 했어요. 처음엔 빨간색 전선에 무엇을 꽂고 파란색 전선에 무엇을 꽂는 줄도 몰라서 용산 사장들에게 물어물어 작업했죠. 이틀 밤새고 포항·목포 간 고속도로 갓길에 트럭을 세우고 쪽잠을 잔 적도 많아요.”
부부가 사투를 벌여 4년 만에 빚을 모두 갚았지만, 금융 여신거래가 가능하기까지는 5년이라는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 와중에 2002년 정부에서 전체 강의실의 70%를 e강의실로 바꾼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이것은 원격교육을 한다는 것이고, 콘텐츠 제작에 따른 편집과 촬영 비용을 줄일 방법이 무엇일까 꼬리에 꼬리를 묻다가 나온 해답이 ‘수업현장을 그대로 녹화하자’였다. 이렇게 전자칠판과 전자교탁 시스템이 탄생했다.
지금은 보편화된 기술이지만, 당시엔 영상 따로 음성 따로 움직일 만큼 기술의 수준이 초기 단계였기에 치밀하게 개발했다. 다행히 2007년부터 시장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2008년에 세계일류상품에 등록돼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삼성전자에 여섯 번 찾아가서 거의 반값에 LCD 패널을 공급하는 협상을 하고, LG디스플레이에 84인치 UHD 패널의 1년간 독점 계약권을 따내기도 했어요. 당시에 무슨 줄이 있냐고 난리였는데, 전 세계에 UHD 전자칠판을 처음 출시하면서 대기업 간의 UHD 패널 시장 판도를 바꾼 도화선이 되기도 했어요.”
지금의 김포공장을 분양받은 것도 그때다. 성장을 위해선 생산시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당시 매출액이 45억 원에 불과했던 기업이 과감하게 40억 원 하는 땅을 분양받았다. 전시회를 쫓아다니며 바이어를 직접 챙긴 것도 유효했다. 훈장 같은 항공 마일리지 160만 마일 덕분에 63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상장을 준비했다. 40억 원, 80억 원, 120억 원. 매출액이 빠르게 증가했다. 금방 500억 원이 달성될 것 같았다. 복병은 중국이었다. 2012년부터 중국 기업들이 전자칠판을 벤치마킹해서 반값에 팔기 시작했다. 360억 원 매출액은 7~8년을 횡보했다. 이익률은 갈수록 떨어졌다. 기술개발을 꾸준히 하면서 부품 생산기지를 다각화한 덕에 그나마 2019년도부터는 중국 기업들과 같은 가격으로 수출할 수 있는 가격구조를 갖출 수 있었다.

확대보기아하정보통신의 연구개발구기도 대표는 매년 매출액의 6%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한다.

코로나19로 찾아온 행운, 스마트패스

대범한 그였지만 2018년쯤 큰 위협을 느꼈다고 한다. 전자칠판의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구 대표는 다른 시장을 살폈다. 이때 개발한 제품이 얼굴인식 출입통제 시스템이다. 한창 제품개발이 완성될 때쯤 코로나가 터졌다. 이거다 싶어 방향을 틀었다. 온도 센서를 부착해 체온을 감지하는 비접촉 체온측정 장비로, 0.5초 만에 얼굴을 99%까지 정확하게 판독하는 ‘스마트패스’가 5월에 세상에 나왔다. 스마트패스는 정확하고 편리하며 인건비까지 줄일 수 있어 빠르게 입소문이 퍼졌다. 3개월 만에 300억 원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경쟁사들의 민원에 따른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강력한 조치로 많을 때는 일주일에 30억 원 하던 매출이 5,000만 원으로 뚝 떨어졌다. 의료기기가 아닌 것으로 체온을 재거나 체온계로 오인하게 하면 안 된다는 조치였다.
구 대표는 정공법을 선택했고, 몇 달씩 준비해 작년 12월 9일 어렵게 의료기기로 승인을 받으면서 논란을 잠재웠다. 국내에서 안면인식 피부적외선체온계를 정식으로 승인받은 최초의 제품이 됐다.
“스마트패스는 피부적외선체온계의 온도 오차범위(±0.2)가 식약처의 의료기기 피부적외선체온계 허용 오차범위(±0.3)보다도 적어요. 35개국에 수출하고 있고, 10만 개가 예약돼 있죠. FDA 승인은 이미 받았고요.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 헬스케어 분야로 사업도 다각화할 거예요. AI와 IoT가 결합된 전자칠판도 내놓을 예정이고, 멸균 공기정화기도 개발 중입니다. 작년엔 미중 무역분쟁 덕에 미국에서 가장 큰 플래너(Planer) 기업과 OEM을 시작했고요.”
그는 2020년 매출액은 750억 원을 예상하며, 2021년에는 1,000억 원, 2022년에는 1,500억 원 달성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회사 곳곳엔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소프트뱅크 표어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사훈 ‘처음처럼’이 그의 마음 상태를 말해준다면, 이 표어는 무의식중에 있는 그의 행동지침을 알려주는 것 같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처럼 불시에 맨홀에 빠지고 천둥이 치는 게 인생이지만 그처럼 ‘늘 깨어 있고’, ‘행동’한다면 누구라도 한 번쯤 행운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확대보기63개국 수출 세계지도아하정보통신은 전자칠판 및 전자교탁 시스템, 판서 모니터를 63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Interview

구기도 대표의 삶과 철학

못 이겨낼 실패는 없다고 생각.
충분한 난상토론 끝엔 과감한 결단.
리더의 정확한 오더가 조직을 살려.
관련 기술서적만 3,000권 독파.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건 아니야.

확대보기구기도 대표

토목공학과를 전공하셨는데 전공과 무관한 길을 걸으셨습니다.
점수에 맞춰 지원했습니다.(웃음) 법조인이 되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공대가 더 적성에 맞을 것 같다고 판단하셨나봐요. 또 공대 가야 먹고 산다고. 그런데 적성과 맞지 않았어요. 취업이 잘 되던 때라 어렵지 않게 전공과 무관한 업종과 직무 분야로 취직을 했어요. 그래도 토목과 특유의 밀어붙이는 추진력, 시작과 끝을 명확히 하는 공정관리 마인드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전자업종 회사를 경영하며 기술을 직접 진두지휘하시는데, 힘들진 않으신가요?
저희 집 서재에 가면 전자 관련 서적만 3,000권이 넘습니다.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AI도 2000년도 초반부터 관심을 두고 쭉 공부해오던 거예요.

사훈이 ‘처음처럼’입니다. 대표님의 ‘처음’이란 무엇일까요?
첫 실패 후 재기하면서 가진 마음입니다.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어려웠지만, 조그마한 것도 고마워하고 다시는 망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강박관념처럼 자리 잡게 됐어요. 망하면 너무 힘든 걸 알았으니까요. 한국에서 중소기업이 27년을 버티는 게 참 힘듭니다. 0.1초, 0.2초 만에 판단하는 습관은 그때부터 길러졌고요. 최근에 집사람이 이런 말을 하대요. 실패하고 엄청난 빚이 짓누를 때, 당신이 술이나 먹고 좌절했다면 우리 가족은 이미 분해됐을 거라고요. 4시간 이상 자지 않고 일했고, 오히려 그때 책도 썼어요. 근데 못 이겨낼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30대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할 때잖아요.(웃음)

‘불사조’라는 애칭이 있다고 들었는데, ‘운이 좋았다’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운을 믿습니다. 지금이 그때죠. 27년 만에 이런 운은 처음 맞아봅니다. 기금 모집도 받고, 제품을 재생산하고, 차기 아이템 3~4개 실현할 수 있을 만큼 큰돈을 최근 몇 개월 사이에 벌었습니다. 근데 불교 교리 중에 운은 자기를 둘러싼 조직, 노력 등이 합쳐져서 시대가 갑자기 뒤바뀔 때 올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준비된 사람에게만 운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두렵지 않으신가요? 큰 시련도 두렵지만 갑자기 찾아온 운도 두렵잖아요.
저는 담금질이 많이 된 사람이에요. 웬만한 건 두렵지 않아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많이 해보죠. 걱정만 한다고 돌파구가 생기진 않잖아요. 제가 YTN 〈강소기업이 힘이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출연진들 모임이 있어요. 사장님들 얘기 들어보면, 죽을 결심 안 해본 사람이 없어요. 국내에서만 돌파구를 찾으면 안 돼요.

그럼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중소기업 대표들은 많이 알아야 합니다. 내가 모르는 분야를 직원만 믿고 가면 안 됩니다. 최소한 트렌드를 읽고 내후년에 내놓을 제품 정도는 구상해야죠. 연구소 직원들과는 충분히 난상토론을 합니다. 그리곤 정확한 오더를 주죠. 출제자의 의도가 명확해야 해요. 가끔 어떤 대표들을 보면 ‘인생은 한 방’이라고 생각하는데, 충분히 검토하고 전 세계를 무대로 경쟁자의 기술, 아이디어를 알지 못하면 망합니다.
수많은 간담회에 참석해보면 답답할 때가 많아요. 세계 시장에 내놔서 팔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환경 탓만 하죠.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이에요.

깨어 있으려면 정신적인 여유도 필요할 텐데, 루틴 같은 게 있나요?
가끔 절에 가서 기도합니다. 골프는 일 년에 한두 번 칠까 말까 하고요. 최근엔 살도 뺄 겸, 집사람과 승마를 같이 배우고 있어요. 저녁에는 자전거를 타지요.

중국의 약진이 두렵지 않나요?
중국을 배제한 제조업은 불가능합니다. 처음엔 그들이 제 물건을 벤치마킹했지만, 제가 힘이 없어서 뺏긴 거죠. 그들도 절 미워해서 그런 건 아니고, 먹고살려고 한 것뿐이에요. 화웨이가 스마트폰을 왜 그렇게 빨리 출시했는데요.
중국에 가보면 베이징대학, 칭화대학 나온 엘리트 몇 명이 밤새워 일합니다.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요즘 기술 트렌드는 신기술보다 융합신기술입니다. 자기 기술과 현존하는 다른 기술을 결합해 소비자가 환호하고 감동할 수 있는 새 제품을 내놓는 능력. 그걸 해내는 게 관건이죠.

최윤경 | 사진 박명래

조회수 : 3,011기사작성일 : 20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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