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Vol. 213
기업나라
2021-09-07

 
주체성이라는 무기를 다듬어야 할 때
신명호 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

사회적경제는 그 지향점이 물질이 아니라 사람에 있다는 데에서 우리에게 지금의 암울한 처지를 헤쳐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준다. 사회적경제가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인간다운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14년째.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힘입어 사회적경제가 양적인 팽창을 이뤘지만, 한편에서는 정부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과 주체성 부족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문제는 국가의 의지나 방향이 아니라 스스로의 문제를 풀기 위해 연대와 협동을 할 수 있느냐이다. 현장에 몸을 던져 사회적 경제를 실천하고 연구해온 신명호 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은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연대와 협동이라는 사회적경제 본연의 가치를 성찰해봐야 할 시점임을 강조했다.

신명호 소장

2010년을 전후로 사회적경제기업이 양적으로 엄청나게 팽창했습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난 배경은 무엇인가요?
사회적경제라는 용어가 도입되기 전에도 이미 우리 사회에선 사회적경제 조직이 자체적으로 발전해왔습니다. 특히 협동조합은 일제 강점기에 등장해 역사가 깊습니다. 이후에 신용협동조합, 소비자생활협동조합 등이 생겨났고, 관변협동조합인 농협과 수협이 조직됐습니다. 정부가 산업 발전에 필요한 자금을 동원하기 위해 하향식으로 만든 관변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의 원칙과 정신을 잘 지켜왔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자생적으로 발전해온 협동조합도 있습니다. 당시에 만들어진 법들은 정부가 협동조합을 양성하겠다는 의도보다는 협동조합이 마구잡이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도록 틀거리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 이후에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겠군요.
그렇습니다. 2000년대 들어 정부가 사회적경제를 양성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가지고 하나둘씩 관련 법을 제정하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등이 순차적으로 제정되었는데, 그 영향으로 사회적경제가 양적으로 팽창했습니다. 부처를 막론하고 경쟁적으로 사회적경제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죠. 고용 창출과 빈부격차 해소가 정부의 과제였으니까요. 그래서 자활기업은 보건복지부, 사회적기업은 고용노동부, 협동조합은 기획재정부, 마을기업은 행정안전부로 소관도 제각각입니다. 이렇게 경쟁적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서로 엇비슷해져서 이것들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도 생겼습니다.

질적인 성장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사회적경제의 양적 팽창이 우리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의지와 실행 덕분에 사회적경제가 양적으로 팽창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이 성과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겠죠. 이 분야에서 일자리가 늘어난 것도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사회적경제가 지향하는 민주적인 운영, 배려와 연대의 정신이 기업의 조직문화로 정착된 것도 긍정적인 측면이고요. 실제로 과거에 경제활동에서 배제되었던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부분적이긴 하지만 사회적경제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인식이 확장된 것도 사실입니다.

저서 빈곤이 오고 있다, 한국 사회적경제의 역사, 한국 사회적경제의 거듭남을 위하여

절실함에서 나오는 연대와 협동이
사회적경제의 근본 가치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사회적경제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필요성부터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적경제라는 단어 자체가 상당히 추상적입니다. 대단한 뭔가가 있을 것 같은 착각도 불러 일으키죠. 많은 분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기업을 육성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런데 그건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하는 것이 사회적경제입니다. 초기자본주의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가 생겨났고, 그런 문제에 당면한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협동조합입니다. 문제가 있고, 그 문제로 인해 영향을 받아 불행하고 고통스럽고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죠. 일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라면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나 기업이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가 있다면 그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받을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결국 사회적경제의 출발점은 절실한 ‘필요’와 ‘욕구’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 주도로 사회적경제기업이 육성되다 보니 떠밀려서 혹은 유행에 편승해서 사회적경제기업을 창업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사회적기업 교육을 하러 다니다 보면 강의를 듣고 나서 수강생들이 “지원금을 준다는데 한번 창업해볼까?”, “무슨 아이템으로 해볼까?”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지자체 공무원들이 사회적기업 관련 강좌를 진행하고 나서 수강생들에게 사회적기업을 만들라고 독려하는 것도 봤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아니겠습니까. 당사자의 절실한 필요와 욕구 없이 만들어진 조직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기업이라면 기본적으로 ‘시장’이라는 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넘어야 합니다. 파도 하나가 지나가면 곧바로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옵니다. 위기는 늘 오기 마련인데, 위기를 넘어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창조적인 사고와 혁신은 절실한 사람들의 생각으로부터 나옵니다.

떠밀려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주체성이 약하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내 사회적경제기업의 경우 주체성이 약하고 제도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정부 지원금으로 엉터리 기업을 만들고 있다는 오해와 함께 부정적인 인식이 싹트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회적경제기업의 출발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절실함입니다. 창업을 하기에 앞서 구성원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부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서로 믿고 화합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문제에 부딪혔을 때 뚫고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지키려고 하는 원칙들, 즉 민주적인 운영, 자율과 독립, 사회적 배려를 잘 지킬수록 사람으로부터 힘이 나옵니다. 성공한 사회적경제기업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범적인 사례를 소개해주세요.
성공한 사회적경제기업의 사례는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천안에 소재한 사회적기업 즐거운밥상은 아주 훌륭한 모범 사례 중 하나입니다. 2005년에 천안지역 자활센터 사업단으로 출발한 즐거운밥상은 지역의 취약 계층에겐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소비자에겐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큰 이윤을 남기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이곳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어야 한다는 사회적기업의 가치를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흔히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다’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대개는 말로만 그칩니다. 그런데 즐거운밥상은 조직문화가 민주적입니다. 중요한 결정은 모두 구성원들의 회의를 거쳐 이루어집니다.

신명호 소장

주인의식을 갖게 되면 경영에 있어 어떤 이점을 갖게 되나요?
일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회사가 잘되어야 내가 잘된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업은 노동생산성이 다른 기업보다 월등히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기업이 위기에 빠졌을 때 주인의식은 더더욱 큰 힘을 발휘합니다. 위기가 왔을 때 임금을 스스로 깎겠다거나 일을 더 많이 하겠다는 결정을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합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절대 동원할 수 없는 자원을 지역사회에서 동원해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경제기업의 강점입니다. 사회 자본의 형태일 수도 있고, 자원봉사와 같은 인적 자원, 호의를 동반한 후원금 등 다양한 형태로 지역사회로부터 자원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사회적기업이 사람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요? 그 기업이 원래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을 때 사람들은 감동하게 됩니다.

유럽에서 사회적경제기업의 성공 사례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해외와 국내는 사회적경제가 발전해온 과정 자체가 다릅니다. 시민사회가 얼마나 튼튼하게 발달해왔느냐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유럽의 경우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자발성이 상당히 튼튼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협동조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는데요. 197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는 여러 가지 사회적 위기가 닥칩니다. 전통적인 형태의 협동조합으로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다중이해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협동조합이 만들어집니다. 정부에 법을 만들어달라거나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한 게 아니라 공통된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서비스 제공자, 후원자,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 심지어 정부기관이 모두 들어와서 구성원이 됐습니다. 전통적인 협동조합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서 시작됐다면, 새로운 형태의 협동조합은 ‘사회’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된것이죠. 그렇게 해를 거듭하면서 협동조합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정부에 법을 만들고 지원을 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0년 이상 철저하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상향식으로 이 과정이 진행됐다는 점이 우리와 다릅니다.

사회적경제다움에 대한 성찰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결국 구성원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느냐가 사회적경제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얘기인데요. 어떻게 해야 주체성을 높이고 유지할 수 있을까요?
원론적인 얘기이지만,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다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예전에 한 대안학교 학부모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자문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교사들의 월급을 올려주기 위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을 해보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쌀을 들여와서 팔겠다는 의견, 자동차보험을 판매하겠다는 의견 등이 나왔죠.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협동조합을 하면 누가 일을 할 것이며, 월급을 한 푼도 받지 않고 봉사를 할 수 있는지요. 학부모들이 자신 있게 답변을 못해서 결국엔 하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차라리 수업료를 인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요. 이 사례처럼, 보통은 여럿이 함께하면 무조건 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 명이 하기 때문에 오히려 책임을 서로 미룰 수도 있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안이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구조적으로 무임승차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 사회적경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중도에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서울 서대문구와 은평구에서 공동 공장을 운영하는 동네빵네협동조합이라는 곳이 그런 과정을 거쳐 재정비를 하고 지금은 성공적으로 조합을 운영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곳도 다른 협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초창기에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여러 명이 모이면 시설자금을 지원해준다는 생각에 쉽게 시작했다가 문제들이 터져나오면서 조합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죠. 너무 준비 없이 시작했다는 것을 자각하고 나서 조합원들 스스로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받았고, 회원들 사이의 관계를 다지면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이런 모든 노력을 다 했는데도 위기를 넘을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만두는게 낫다고 봅니다. 후회 없이 할 것 다 해보고 행복한 이별을 하는 것이죠.

일단 시작하기로 했다면 사회적경제의 주체들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경영에 임해야 할까요?
정부가 주도해서 사회적경제를 규정하다 보니 그 틀에 맞추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정부 지원만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요. 옆을 안 봅니다. 주체성이 약하다 보니 협동과 연대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죠. 이것은 치명적입니다. 사회적경제의 핵심이 연대와 협동인데, 위에서 뭔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되겠죠. 실제로 사회적경제다운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이 혼재해 있는 실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적경제의 원칙과 정신에 비교적 가까이 가 있는 기업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회적경제가 추구하는 정신에 동의하고 찬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는 의미이니까요.

사회적경제다운 기업이 많아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기업 내부에서 성찰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문화혁명을 하듯이 누군가 완장을 차고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연대해 서로에게 힘을 주는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는 움직임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신명호 소장

신명호 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대학원 시절, 철거민 정착촌에 석사 논문을 쓰러 갔다가 그곳에 눌러앉아 12년을 살았다. 거기서 고 제정구 선생, 정일우 신부 등과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도시빈민연구소(지금의 한국도시연구소)에서 일했다. 가난한 이들의 일자리 문제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협동조합, 자활기업, 사회적기업 등을 공부했고 이들을 아우르는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이론과 실천을 결합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현재 한신대학교 사회혁신경영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쓴 책으로 《빈곤이 오고 있다》, 《마을공동체운동의 원형을 찾아서》(공저), 《한국 사회적경제의 역사》(공저), 《한국 사회적경제의 거듭남을 위하여》(공저) 등이 있다.

임숙경 | 사진 김성헌



[2021-09-06, 1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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