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Vol. 213
기업나라
2021-09-07

 
뿌리산업 여전사
동아플레이팅 이오선 대표

얼굴만 봐서는 25년째 표면처리 사업을 하는 CEO라고 믿는 이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그가 도금 현장에서 장갑 끼고 공장을 도는 모습을 보지 않는 한 십중팔구는 믿지 않는다. ‘부산에서 가장 바쁜 CEO’, ‘야생화’라는 닉네임에 익숙해져 있는 동아플레이팅의 이오선 대표. 회사를 표면처리 업계 스마트팩토리 사관학교로 만들겠다는 그는 뿌리산업의 여전사다. 부산 녹산산업단지의 부산청정도금센터에 가면 “어서 오이소” 하며 맞이하는 이 대표를 만날 수 있다.

이오선 대표

동아플레이팅은 부산청정도금센터 내에 6개 동을 공장으로 확보하고 있는 전기아연 표면처리 전문기업으로, 지난 1997년 설립됐다. 주요 고객은 글로벌 기업들과 국내 대기업 1차 협력사들로, 최근 3년간 매출 60억 원대를 유지했다. 표면처리는 3D 업종 중 하나로 불리던 분야인 만큼 여성 CEO인 그를 달리 볼 수밖에 없다.
“이제는 두려운 게 없어요.”
이 대표의 입에 배인 말이다. CEO로서 걸어온 여정이 험난했다는 얘기인 동시에 자신감 또한 크다는 말이다. 그의 경영 이야기를 듣노라면 ‘정말 그랬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지만, 동아플레이팅의 시계를 되돌려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가 표면처리 사업에 뛰어든 것은 우연이었지만 경영자의 길은 운명이었다. 37세에 보험회사 소장으로 사회생활의 꽃을 피우던 시절, 보험계약과 대출 등이 얽혀 있던 도금 회사가 부도가 났다. 이 대표는 일부라도 건져보겠다는 생각에서 담보로 잡아두었던 그 회사를 끌어안았다. 임시 사장을 앉혀놓고 상황을 지켜봤지만 숨은 빚이 여기저기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경영의 길에 들어섰다.
이 대표는 사업에 뛰어들고 10여 년간 좌충우돌하면서 시련도 많았다. 도중하차란 없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일념으로 기술과 시장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기술개발과 최신 자동화 설비를 꾸준하게 도입한 것이 성장에 큰 역할을 했고, 무엇보다도 지난 2015년부터 올해까지 6년간 5회에 걸쳐 진행한 스마트공장 구축은 생산관리, 품질관리, 인재관리 등 다양한 효과를 가져왔다. 또 2019년 아연도금 라인 증설과 아연·니켈 합금 라인 신설은 코로나19 악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에 전년도 수준에 달하는 실적을 달성하게 했다.

이오선 대표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야생화처럼 다시 일어선 이오선 대표는 이제야 그동안 사업해온 보람과 결실을 체감한다고 말한다.

파란만장했던 시련, 강한 CEO를 만들다

부도가 난 도금 회사를 떠안고 대표의 길을 걷는 과정은 시작부터 가시밭길이었다. 1997년 당시 30대 여성이 표면처리 사업을 하겠다고 하니 관공서 담당자의 말이 가관도 아니었다. ‘당신의 외모가 결격사유’라면서 사업자등록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
“제가 도금할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위장사업장으로 못 박는 거예요. 결국엔 등록을 했는데, 며칠 후 담당공무원이 직접 확인하러 나왔어요. 작업복 입고 일하는 저를 보더니 ‘진짜 하네요’라고 말하더군요.”
현장 확인 후에 이 대표를 신뢰하게 된 담당 공무원은 회계사무소를 추천해주었고, 행정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등 우호적으로 변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직원 관리와 실무지식의 부재였다. 직원들은 여자 사장이라는 이유로 그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어렵게 회사를 일으키려던 즈음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앞이 캄캄했지만 위기는 기회가 됐다. 경제위기로 이직마저 어렵게 되자 직원들은 그를 따르며 협력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초창기엔 통장에 돈 들어오기 무섭게 빚을 갚기 바빴다. 거래처를 찾아가면 숨은 빚이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전 사장이 남긴 빚 15억 원과의 전쟁이었다. 하루는 저녁에 집에 가니 두 아이들이 전등도 켜지 않은 채 있었다. 전기세 연체로 전기 공급이 중단됐던 것.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에 그는 돈을 버는 대로 일부씩 나눠 갚으며 거래 물량을 늘려나갔다. 5년을 넘기니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지만 사업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오폐수 문제까지 꼼꼼히 챙기지 못했던 상황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환경법에 저촉돼 그가 구속이 된 것.
“제가 법무부대학 출신입니다.(웃음) 우리 회사도 잘못했지만, 인근의 다른 회사들 문제까지 저한테 덧씌워진 사건이었죠. 용서를 구하는 수밖에요. 날마다 반성문을 썼어요. 철창문 너머에 보이는 고양이가 너무 부럽더군요.”
2002년도였다. 47일 만에 구치소에서 나와 자유인이 됐지만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면서 사업장을 접는 길밖에 없었다. 극단적인 생각도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힘들어도 살아야 하는 팔자라고 여기고 사업을 다시 꾸려갔다. 설비구축이 절실했다. 빚도 다 갚지 못한 거래처 대표에게 되레 1억 원의 융통자금을 빌려 오늘의 토대가 된 사업기반을 구축했다. 이 대표는 말한다.
“사업을 하다 보면 우여곡절이 많지만 유독 시련이 많았어요. 위기상황을 겪고 다시 일어설 때마다 더 강해지더군요. 표면처리 사업이 아니면 갈 곳이 없고, 여기서 끝을 봐야 한다고 나 자신을 세뇌시켰어요.”

부품 표면처리자동차 조향장치와 안전벤트에 조립되는 부품들을 표면처리하는 동아플레이팅은 업계 선두주자로 인정받고 있다.

현장에서 직접 기술 익혀 기능인으로 우뚝

이 대표는 지난 2019년 4월에 국내 제조 업계 여성 CEO로서는 처음으로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됐다. 여성 CEO라는 명함을 내세우기보다는 현장과 기술을 제대로 아는 제조업 대표가 되려고 노력한 결실이다.
제조업은 현장중심 경영이 필수다. CEO가 현장의 실무지식을 모르면 회사는 성장하지 못한다. 화학과 기계부품 지식이 전무했던 그는 사업 초기부터 일단 현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배우는 방법을 고수했다.
“직원들 비위를 맞춰가면서 그들이 귀찮아할 정도로 모르는 것은 일일이 물어보면서 배웠습니다. 트럭에 제품을 싣고 직접 납품을 하러 다니다가 교통사고도 경험했고요.”
어깨 너머로 기술을 하나둘씩 익히면서 그가 중요시한 또 한 가지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2005년 위기가 다시 찾아오는 듯했다. 표면처리에 사용되는 약품의 인체유해성이 거론되면서 매출이 뚝 떨어졌다. 다행히 그해 말에 발 빠른 화학약품 제조기업들이 친환경약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경력이 많은 기술자들일수록 새로운 약품에 시큰둥했다. 가격도 기존보다 비싼 데다 자신들의 경험치만 고집했다. 환경문제로 구치소까지 다녀온 그였다. 앞뒤 재지 않고 친환경약품을 ‘아연3가도금’에 활용했다. 그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거래처들이 환영했습니다. 이미 친환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던 거죠. 단가는 올랐는데도 오히려 주문량이 늘었고, 새로운 거래처가 생기면서 매출도 증가했죠.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그 후 그는 대외활동의 보폭을 넓혀나갔다. 약품 제조사들을 찾아가 약품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가며 표면처리기술 노하우를 배웠다. 모르는 게 있으면 한국재료연구원 전문위원들과 대학교수들을 찾아다니면서 답을 구했다. 그는 자칭 ‘학습형 CEO’라고 말한다. 대학 학위보다는 경영 실전 지식을 얻으려고 상공회의소와 한국생산성본부 등에서 주관하는 경영자과정 수강에도 부지런을 떨었다.
“코로나19 이전엔 수시로 특성화고등학교나 마이스터고등학교 특강을 다녔어요. 배운 것을 활용해야 그게 제대로 된 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이든 경영이든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나눔의 경영이 아닐까요?”

스마트팩토리에서 미래의 답을 찾다

이 대표는 ‘CEO는 변화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경영 교과서 같은 지침을 실천하는 데 주력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스마트팩토리 구축이다. ‘도금 업체가 무슨 ERP를 도입하느냐’는 말이 나오던 2006년에 ERP를 도입한 이 대표는 스마트팩토리 구축 필요성이 가시화되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결단을 내렸다.
“2015년 초에 MES를 도입했습니다. 당시 단가이력 관리, 수기작업 영업관리, 재고 관리 등에서 문제점이 쌓이면서 업무효율성 저하는 물론이고 생산품의 이력 관리 및 추적이 불가능했죠. 마침 스마트공장지원사업도 있으니 기회는 이때다 싶었어요.”
MES 1단계로 실시간 생산현황 모니터링과 도금조건 정보 모니터링 시스템 그리고 바코드 시스템을 도입했다.실시간으로 생산현황 집계가 나타나고 제품이력 관리가 가능해지면서 납기준수와 고객대응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이어서 2018년엔 ‘대중소 상생형 스마트공장 구축’ 프로그램에 참여해 주요 공정에 라인 불량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했다. 사무실에서 현장 제어가 가능해졌고, 약품 재고관리가 용이해 비용 절감은 물론 안전까지 챙기게 됐다. 생산성이 향상되고 장비 수명 또한 극대화시키는 성과를 가져왔다. 회사가 투자해야 하는 비용이 적지 않았지만, 구축 후에 나타나는 효과를 보며 그는 신이 났다. 2019년에는 스마트공장 고도화 사업인 ‘자동화통제제어시스템’으로 이어갔다. 데이터를 활용한 최적화된 작업조건 관리가 가능해졌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올 들어서는 RPA(로봇 프로세스 자동화)를 도입해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 관리를 자동화시켰다. 또 부산청정도금센터 내에 공장을 추가로 확보하고 모든 공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표면처리 스마트팩토리 롤모델을 구축 중이다. 오는 10월에 문을 여는 이 사업에 자그마치 한 해 매출을 뛰어넘는 80억 원이 투자됐지만, 할 일을 했으니 속이 시원하다고 말하는 통 큰 CEO다.
“스마트팩토리라면 이유도 조건도 묻지 말고 시작해보라고 권유해요. 공장 시스템 개선을 통한 혁신이 필수인 시대이고, 여기엔 CEO의 몫이 99%죠. 남은 1%는 직원들이 채운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자그마치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된 스마트팩토리는 인력구성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과거엔 외국인 근로자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원 내국인이다. 전자, 신소재, 화공 등을 전공한 고학력자들이 입사했고, 전 직원 30명의 평균 연령은 27세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현장 직원들 중 다수가 관리 및 R&D 부서로 이동했고, 여유 인력이 생기면서 외부 교육은 물론이고 반차, 반반차 휴가 사용도 가능해졌다. 스마트팩토리 전도사가 된 이 대표는 제조업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스마트팩토리 구축을 통한 기업 성장, 이건 CEO가 하기 나름이에요.”

이오선 대표의 삶과 경영​

표면처리 CEO로 살아온 것 후회 없어
직원들 마음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CEO 역할
여성 CEO 위상 달라진 것 피부로 느껴
혼자만의 조용한 여행 하고파

이오선 대표

신공장에 인테리어 비용만 8억 원이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나요?
스마트팩토리의 롤모델을 보여주는 사업장입니다. 이곳은 우리 회사의 생산현장만이 아니라 도금 업계 관계자들과 학생들이 직접 와서 눈으로 지켜보고 벤치마킹할 수 있는 현장입니다. 공장 내부를 2층에서 통유리를 통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세미나도 열고 교육도 받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다 보니 인테리어 비용도 크게 들어갑니다. 우리회사를 ‘도금사관학교’로 만들겠다고 큰소리쳤던 저의 말을 현실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대표님 이름이 들어간 전시관도 생겼습니다. 감회가 특별할 것 같습니다
성남시 분당구에 자리한 한국잡월드에 2020년 11월 11일 국내 최대 규모의 K-Skill 체험관인 숙련기술체험관이 개관됐습니다. 청소년들이 산업현장에 꼭 필요한 3대 숙련기술을 체험해보며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신개념 진로체험 공간입니다. 제조산업혁신을 이끄는 뿌리기술관의 ‘표면처리’는 기술전수자 이오선관으로 마련돼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전광판에 제 이름이 나타나더군요. 뿌듯합니다. 적어도 이 분야에서만큼은 후회 없는 인생을 산 게 아닌가 싶어요.

직원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직원이 있기에 CEO가 있다고 봅니다. CEO는 직원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것을 간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직원의 마음이 편안해야 회사 내 모든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고, 결국 직원과 함께 CEO도 행복해집니다. 직원복지를 더 강화하고자 합니다. 청년 직원들이 선호하는 편리한 기숙사도 확보하고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호텔급 휴양소도 건립할 계획이에요.

20여 년 전과 지금의 여성 CEO 입장은 다를 것 같습니다
과거엔 ‘여사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거나 왜곡된 시선이 지배적인 분위기였어요. 오죽하면 직원들조차도 저를 무시했으니까요. 아직도 ‘얼굴마담 아니냐’는 식의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이 있지만, 그래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요즘은 정부나 기관에서 여성 CEO에게 부여하는 혜택도 많습니다. 개발과제에 참여하면 가산점을 주기도 하죠. 제가 부산상공회의소 18명의 회장단 중 한 명인데, 회장단에 여성 CEO가 더 늘어나길 바랍니다.

경영을 떠나 개인적으로 꼭 해보고 싶은 것도 있지 않나요?
20년 넘게 오직 회사와 일만을 위한 인생을 살았어요. 경영을 떠나서는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꼭 해보고 싶은 것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혼자만의 조용한 여행입니다. 며칠이 걸리든 우리나라를 크게 한 바퀴 차로 돌면서 철저하게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어요. 그때는 휴대폰을 놓고 떠날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앞으로 시간 나는 대로 제가 살아온 인생을 잘 정리해두었다가 에세이 한 권 출간하고 싶습니다. 내 삶에 대한 기록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고난을 헤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동아플레이팅 제품

박창수 | 사진 김윤해



[2021-09-06, 14: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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