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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코리아 워커
“한미 합작 영화, 제가 만들 겁니다!”
㈜탁툰엔터프라이즈 Chris Weatherspoon

 

7년 전 미국에서 원어민교사로 한국의 시골학교에 온 청년 크리스. 그곳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인들의 인정에 푹 빠져들었던 그는 새로운 꿈과 희망도 찾았다. 영화감독이 되는 것. 중앙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한 그는 지금 애니메이션 제작 전문회사에서 번역 및 감수 업무를 맡고 있다. 그의 꿈은 한미 합작 영화를 만드는 것이란다.

원어민 교사생활 3년, 포천막걸리 맛에 반 하다
“제가 번역했어요. 지금 휴대폰에서도 볼 수 있고, 해외로 수출도 됩니다. 디즈니코리아와 계약도 됐어요. 기분이 아주 좋아요.”
이보혜 웹툰 작가의 「뾰족뾰족 포크 가족」을 직접 번역한 미국인 크리스(37세). ㈜탁툰엔터프라이즈(대표 양상은)에서 프로덕션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그는 지난 2년 동안 2분짜리 260편에 달하는 이 작품의 영어번역과 감수를 전담했고, 요즘은 매주 두 편씩 유튜브에 올리며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지금의 한국생활이 매우 만족스럽단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몇 번의 중요한 기회가 주어진다. 크리스의 경우 한국에 온 것과 웹툰분야에서 나름 입지가 단단한 지금의 회사에서 일하게 된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희망을 품을 수 있어서 더욱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7년 전 미국에 있을 때만 해도 지금의 모습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에서 텔레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ROTC 공군장교 출신이다. 한때 시카고에서 프로덕션에 근무하기도 했지만, 20대 후반에 계획에도 없었던 한국행을 선택했다. 그 시절 함께 일하던 친구들이 각자의 꿈을 찾아 다른 도시로 떠나면서 자신도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던 중, 재미교포인 여자친구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된 것.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원어민교사’를 채용한다는 것이었다. 대학시절 부전공으로 동양학을 공부했던 터라 한국에 대해서는 조금 아는 수준이었지만, 미지의 세계를 찾아간다는 설렘이 컸다.
“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었지만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 중 한 곳을 택하라면 한국이었어요. 한국 사람들의 솔직하고 정감 있는 이미지가 좋았거든요. 하지만 부담이 없진 않았어요. 주변에서 한국 사람들은 흑인을 싫어한다는 말을 많이 했거든요.”
그가 한국에 와서 처음 정착한 곳은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에 자리한 중리초등학교였다. 유치원생들까지 다 합쳐도 몇십 명 안 되는 시골 학교였다. 처음엔 그가 염려했던 대로 아이들이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아니라 단지 시골 아이들이 갖는 외국인에 대한 낯설음 같은 것이었다. 매사에 세심하고 꼼꼼한 데다 말투도 부드러운 크리스는 이후 아이들과 쉽게 친해졌고, 학생 수가 적다보니 사제지간의 정과 믿음이 생겼다. 이곳에서 그는 한국 문화와 사람들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마을 교회 목사와 친해지고, 같은 또래 농부와 친구가 됐다. 순두부찌개와 포천막걸리 그리고 꿀떡 맛에 익숙해졌다. 공기 좋고 사람들 좋고, 음식이 입에 맞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원어민교사생활 3년이 다 될 무렵,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다름 아닌 영화였다.

 

영화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전공이 텔레커뮤니케이션이다 보니 영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포천에 사는 한국인 친구가 중앙대학교 대학원에 영화전공 과정이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어요. 최근 들어서 한국 영화산업이 많이 발전하고 있잖아요. 기회는 이때다 싶었어요. 영화 프로듀서가 되기로 했죠.”
2013년 그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하지만 도전 뒤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도 외국 땅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경제적인 부분이었다. 유학생은 기본적으로 6개월 이상 학교를 다녀야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첫해에는 학비와 생활비 부담이 컸다. 학교 인근에 있는 흑석동 벧엘교회에서 장학금을 지원해준 것이 큰 힘이 됐다.
이런 크리스에게 중앙대학교 BK연구교수인 이지은 이사는 그야말로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그가 몸담고 있는 ㈜탁툰엔터프라이즈는 중앙대 지주회사로, 이미 KBS에서 시리즈1을 방영한 애니메이션 「갤럭시 키즈(galaxykids)」를 제작하는 등 업계에서는 나름 알려진 회사. 이 이사는 일자리를 찾고 있던 크리스를 비정규직 인력으로 연결시켰다. 매학기 자신의 강의를 듣는 크리스를 지켜보면서 그의 성실성과 섬세한 감각에 이 이사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동양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빠르고 심성이 착한 점도 장점으로 와닿았다. 공부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크리스의 입장과 애니메이션 수출을 위해 영어번역 및 감수 전문인력이 필요한 회사의 현실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면서 한국 생활의 자신감과 즐거움이 더 커졌어요. 학교 근처에 있는 아홉 평짜리 원룸에 살아요. 화요일만 8시간 근무하고, 다른 요일은 하루 4시간 일합니다. 틈틈이 교회에 가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봉사활동도 하고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데이트도 즐기지 못하지만, 절약해가면서 산다는 크리스. 한국 생활의 좋은 점도 많지만 외국인으로서 아쉬운 점도 있다. 금융권의 신용에 관한 것이란다. 외국인에 대한 신용카드 발급이나 핸드폰 할부구입이 제한적이어서 당장 실생활의 불편함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한국에서라면 꿈이 더 빨리 이루어질듯
대학원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크리스의 꿈은 구체화되었다. 그간 단편영화를 무려 13편이나 제작해보면서 자신이 갈 방향을 확실히 정했다. 다만, 작품제작을 통해 석사학위 통과만을 남겨놓고 있는 크리스에게는 가장 큰 고민이 있다.
“제가 제작하고 싶은 영화는 몇 분짜리 독립 단편영화는 아닙니다. 드라마나 애니메이션도 좋지만, 저는 스릴러물을 만들고 싶어요. 그것도 한미 합작 드라마로 말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죠. 그래서 졸업작품을 아직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죠.”
영화를 제작하려면 감독의 역량 이전에 기본적으로 비용, 시간, 사람이 필수다. 크리스로서는 당장 비용이 가장 큰 문제다. 또 마음에 맞는 한국 영화감독과 공동작업을 하고 싶은데,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막 영화판에 뛰어드는 그에게는 인맥 또한 풍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도 자신의 욕심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분야의 영화를 고집하면서 작품성까지 일궈내겠다는 의욕은 좋지만, 외국인인 데다 대학원생인 그로서는 무리가 따르는 일이라는 것을. 이 때문에 직장 상사이자 학교 스승이기도 한 이 이사는 그에게 조언을 해주곤 한다. 한 단계씩 차근차근 올라가는 과정을 밟는 것이 중요하니 졸업작품은 대작을 꿈꾸지 말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준비하라고.
천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해외에 수출되는 영화도 있지만, 그에 반해 개봉과 동시에 뒤로 밀려나는 작품들도 수없이 많다. 한미 합작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크리스의 목표는 멋진 프로젝트이지만, 영화제작의 현실을 감안할 때 그가 앞으로 인내하며 풀어가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하지만 크리스는 자기 고집도 세고, 꿈을 향한 열정도 강하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학위를 마치고 나서도 한국에서 영화 일을 하고 싶어요. 제가 원하는 작품을 반드시 만들고 싶거든요. 무엇보다도 제가 한국 사람들과 한국 문화를 좋아하니까 꿈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크리스의 돌직구
“요즘 잠이 안 와요.”
이지은 이사 크리스! 이젠 졸업작품 만들고 학위 받아야 하지 않아? 작품 준비는 하고 있는 거야? 아직도 장편영화 할 생각 하고 있구나.
크리스 글쎄요, 한국 감독과 합작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이 이사 크리스! 우선 졸업작품은 독립영화나 지금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에서 찾아봐도 좋을 것 같은데. 크리스의 꿈은 잘 알겠지만, 현실을 고려해야 하잖아. 나중에 얼마든지 만들 기회가 올 거야. 먼저 하나둘씩 배우면서 능력은 물론이고 인맥을 넓혀나가는 것도 중요해.
크리스 이사님 말씀도 맞는데 선뜻 정하질 못하겠어요. 그래서 좀 답답하기도 해요. 요즘 잠이 안 와요.
이 이사 지금은 잘할 수 있는 것을 택하는 게 현명한 거야. 이번에는 한 작품 직접 담당해도 좋을 거야. 크리스는 영어 잘하니까 라인프로듀서 역할을 하는 데 훨씬 유리할 거야.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 한번 도전해봐. 잘 성공시켜서 졸업작품으로 연결시키는 것도 좋겠는데.
크리스 (눈을 크게 뜨고) 이사님, 정말이에요? 제가 직접 프로듀싱할 기회를 주실 수 있는 겁니까?
이 이사 그동안 성실하게 일했으니까 크리스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거야.
크리스 그런데 애니메이션이 오히려 더 어려울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맡겨주시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 이사 그래. 다만 크리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 크리스는 한국어 듣기와 쓰기, 이해는 잘하는데, 말을 할 때 오히려 서툴거든.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많이 즐겨야 한국어 실력도 늘어. 나중에 장편영화 만들려면 아주 중요한 거야. 모든 일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거든. 이거 꼭 명심해야 돼. 알았지?
크리스 네네. 알겠습니다.

박창수 전문기자 사진 손철희 객원사진기자​

조회수 : 3,408기사작성일 : 201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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