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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도시제조
시간을 만드는 시계 명가
크리스챤모드

몇 해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물이 하나 올라왔다. 18년 전 결혼할 때 아내에게 예물로 받은 시계를 수리할 수 있느냐는 문의에 시계 제조사가 제공한 서비스에 감명을 받은 네티즌의 글이었다. 시계 제조사인 크리스챤모드는 오랜 기간 자사의 제품을 써준 고객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택배비용을 포함한 수리비용을 모두 무상으로 해준 것은 물론, 아내를 위한 여성용 시계를 선물로 동봉했다는 것이다. 자사 제품을 AS해준 게 뭐가 그리 특별할까 싶겠지만, 국내 시계산업의 현실을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온전히 국내에서 제조하는 시계 메이커가 이젠 거의 드물기 때문이다. 시계 속의 작은 부품 하나를 깎는 기술도, 도금을 입히는 기술도, 국내 제조를 고집하는 크리스챤모드이기에 가능했다. 크리스챤모드 이규삼 대표는 세월을 견디며 여전히 시간을 만들고 있다.

확대보기이규삼 대표

30여 년 시계 제조의 장인
이규삼 대표

시계 제조의 자존심 지키다

50년 가까이 시계 만드는 일에 종사하며 국내 시계산업의 흥망성쇠를 겪었을 것 같다.
과거에 한국의 시계 기술은 세계적으로 알아줬다. 1960년대 이후 시계산업이 성장하면서 시계 기술자는 인기 직종 중 하나였다. 나 역시도 시계 기술자가 되기 위해 1975년 한미시계학원에 다녔고 자연스럽게 시계 제조에 몸담게 됐다. 당시는 국내에서 쿼츠 시계가 양산되면서 대량 생산이 본격화됐고, 시계는 집집마다 하나씩 들이는 필수품이 되어 시계 회사들이 크게 성장했다. 1980〜1990년대에는 시계에 들어가는 부자재를 제조하는 기업과 조립 완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전국적으로 300여 곳이 넘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면서 시계 부자재 기업들은 대부분 중국으로 이전하는가 하면, 저가 중국산 시계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즈음 소득 수준이 높아지자 값비싼 수입 시계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국내 시계 제조업은 서서히 내리막을 걷게 됐다.

변화무쌍한 시계산업 속에서 크리스챤모드는 어땠나?
크리스챤모드는 국내 시계산업이 호황이던 1989년에 설립했다. 시계학원을 수료하고 아남산업과 알펙스시계 등 당대에 한창 잘나가던 시계회사에 근무했던 경력을 살려 회사를 설립하자마자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고 완제품을 생산했다. 당시에는 결혼할 때 예물시계가 필수품이던 때라 예물시계를 전문으로 생산해 종로나 백화점에 납품하며 로만손, 갤럭시, 아남시계의 뒤를 잇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설립 후 10여 년은 시계산업의 호황과 함께 견실하게 성장했다. 그러다 IMF 사태를 맞으며 국내 시계 시장은 급속도로 악화됐고, 회사도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발 빠르게 패션 시계로 눈을 돌려 돌파구를 마련했고, ‘Prima Class’, ‘Dox watch’, ‘Ti Sento’, ‘Brooks Brothers’ 등 패션 시계를 연이어 론칭했다. 신제품을 론칭하면서 홍콩과 두바이 등에서 열리는 세계시계박람회에 참가해 적극적인 해외 마케팅을 펼쳤고, 국내 시장에서도 백화점과 면세점에 입점하면서 입지를 다져왔다.

확대보기제조 공정에 사용하는 기계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 때문에 아날로그 시계의 존재감이 위축된 건 사실이지만 기계식 아날로그 시계에는 스마트워치가 넘보지 못할 매력이 있다. 작은 공간에 하나하나 공들여 만들어내는 정교한 기술력이야말로 시계가 갖는 가치다. 크리스챤모드 이 대표가 여전히 시계를 만드는 이유다.

확대보기아날로그 시계 제품들

국내 기술력으로 탄생한
명품 시계

‘가이거’와 라이선스를 체결해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국내 시계 시장은 2010년 이후부터는 해외 명품 브랜드를 선호하는 추세가 더욱 뚜렷해졌다.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 론칭하고 마케팅도 적극적으로 했지만 해외 브랜드 수준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시계를 만드는 기술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고, 그러던 중에 글로벌 패션 브랜드 ‘가이거(Geiger)’와 연이 닿았다. 다양한 연령대가 선호하고 가격도 합리적인 명품 브랜드의 시계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오스트리아 본사를 찾아갔다. 여러 차례 찾아가 크리스챤모드가 갖고 있는 역량과 기술력을 알리니 가이거 본사에서도 회사로 찾아와 생산 조립라인을 실사하고 갔다. 그 후 2013년에 가이거의 글로벌 라이선스를 체결할 수 있었다. 가이거 패션 시계는 온라인 쇼핑몰은 물론이고 백화점, 홈쇼핑 등 다양한 유통 채널을 통해 판매되고, 지금까지 크리스챤모드 매출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해외로도 수출하는 기업이라고 들었다.
가이거 시계의 경우 글로벌 라이선스를 체결하고 OEM 생산으로 전 세계에 수출되고 있다. 가이거는 거의 모든 아이템을 오스트리아 자체 공장에서 생산하는 등 품질 검사에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런데도 정밀산업군에 속하는 시계 제조를 크리스챤모드가 전담한다는 것은 그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또 2015년에는 시계의 메카인 스위스에 완제품을 OEM 수출하는 쾌거도 올렸다. 우리는 해외에서 열리는 시계박람회에 꾸준히 참여해 해외 바이어들에게 제품을 알려왔다. 특히 스위스에서 열리는 ‘바젤 시계주얼리박람회(Basel Show)’는 2014년부터 꾸준히 참가해 많은 바이어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지금까지 전 세계 30여 개국에 자사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확대보기시계 진열장

시계 제조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국내 시계 회사의 명품 고객 서비스’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회자됐던 적이 있다. 실제로 사후 서비스는 크리스챤모드의 자존심이라고 하던데.
비싼 해외 명품 시계도 고장이 나게 마련이다. 기능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수리를 하려면 최소 한 달 이상 걸린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특히 단종된 제품은 자재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턱없이 비싼 수리비용이 청구되기도 한다. 하지만 크리스챤모드에서 생산하는 모든 제품들은 본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서비스센터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시계 제조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부자재를 국내 협력 업체로부터 납품받아 시계 장인들이 직접 사후관리를 하기 때문이다. 외주 방식이 아니라 본사의 서비스센터에서 직접 사후관리를 해주는 시계 회사는 30년 전통의 크리스챤모드뿐이다.

국내 시계 제조업의 영속성을 위해 크리스챤모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과거에 시계산업이 잘나가던 때에는 국내에 시계 부자재 업체만 300여 곳 있었는데 대부분 중국으로 이전해 지금 남은 곳은 10여 곳 남짓이다. 대부분 우리 회사의 협력사다. 국내에 남은 소규모 시계 부품가공 업체들과 함께 ‘한국 시계 제조의 명맥을 잇는다’는 사명감이 있다. 중국에서 부품을 들여오거나 완제품을 들여와 마케팅만 하는 타 기업과 달리 순수 자체 기술로 제품을 개발, 생산하는 기업으로 존재감을 키워나가는 것이 크리스챤모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크리스챤모드의 향후 계획은?
일상 회복의 조짐이 보이는 올해는 매출을 최대한 회복하는 것이 목표다. 코로나19 이전이던 2019년은 130억 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팬데믹 이후 백화점과 면세점을 비롯한 오프라인 매장이 직격탄을 맞으며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올해는 온라인 쇼핑몰과 홈쇼핑에 주력하면서 오프라인 매장도 하나씩 다시 늘려나갈 계획이다. 또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신제품 개발도 추진 중이다. 현재 개발 중인 제품은 무슬림 시계다.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받아 올 7월에 개발이 완료되는 무슬림 시계는 해외 수출을 목표로 하는 중인데, 국내 할랄협회(KOHAS)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진희 | 사진 김윤해

조회수 : 207기사작성일 : 202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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