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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에서 중소기업의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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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중소기업 정책
경제정책을 입안할 때 가장 고민스러운 분야 가운데 하나가 중소기업 분야다. 기업 수와 고용 측면에서 보면 국민 경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고, 문제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푸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의 원인은 단일하지 않은데 하나의 솔루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가 많아 해법을 찾기가 더 어렵다.
이런 경우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나라나 선진국의 정책 등을 벤치마크하곤 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제도를 뒤섞어 도입하다 보면 원하는 해법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각 나라마다 정책의 이념과 뿌리가 달라, 토양이 다른 우리에게서 비슷한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나라의 정책과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역사적 흐름에서 중소기업의 역할과 위상, 경제정책의 큰 방향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정 경쟁 환경과 자생력에 초점 맞춘 독일
예를 들어 중소기업 정책 연구에서 참고를 많이 하는 독일의 경우, 중소기업의 지위와 역할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 독일에서는 십자군전쟁 이후 상인들의 연맹인 ‘한자(hansa)동맹’이나 전문적인 상업 ‘길드(guild)’와 같이 동종업에 종사하는 이익집단이 역사적으로 꽤 오랫동안 자리를 잡아왔다. 이들은 가족이나 가문을 중심으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몇 대째 운영하는 중소기업의 전통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높은 기술력을 축적하며 체제 안정에도 중심 역할을 한 덕분에 중소기업들의 입지는 그다지 낮지 않았다. 집단적인 대항 능력이 있기 때문에 대기업과도 대등한 공생적 관계를 유지했다. 즉, 역사적으로 ‘히든 챔피언’ 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는 유구한 토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경제정책의 방향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이상적인 완전경쟁을 보장할 때 시장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따라서 이를 조성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강조한다. 중소기업 정책도 이런 시각에 맞춰 대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주력한다. 기업에 직접 지원을 하기보다는 공정 경쟁이라는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해 중소기업이 자생력을 갖도록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주로 펼쳐왔다. 간접 지원도 무역동맹, 클러스터의 전통이 남아 있어 중소기업이 밀집한 클러스터 중심으로 하곤 한다.

실리콘밸리 신화 일군 미국의 창업장려정책
반면, 신대륙에서 새로운 경제대국을 만든 미국에서는 기업가정신을 통해 창업을 장려하는 것이 중소기업 정책의 중심이었다. 미국에서는 유럽과는 달리 노동 이동이 자유롭고, 개인의 독자적인 사업 기회가 풍부했다. 정부의 역할은 ‘독점의 억제와 경쟁의 촉진’으로 제한했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자조’를 원칙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 자금지원 사업도 민간 금융을 최대한 활용하고, 정부에서는 직접 자금 투입보다는 보증 프로그램 등을 활용하는 것을 선호해왔다.
특히 미국에서는 경기 변동이나 경제 구조 변동기에 대응해 시장 기능을 원활하게 하는 동력으로서 중소기업을 활용해왔다. 1970년대 이후 후발 공업국가들이 성공하면서 미국의 대기업들이 경쟁에서 밀리게 되자, 미국에서는 혁신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이를 위해 증권법 등의 규제를 완화해 첨단기술기업 투자를 위한 벤처캐피털을 활성화했다. 창업 투자를 장려함으로써 제조업 중심에서 혁신 산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개편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정책들이 실리콘밸리의 성장 토대가 되었고, 미국의 창업 중심 중소기업 정책이 확고하게 자리 잡는 배경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고용 확대를 통한 사회 통합을 위해 중소기업 정책을 활용하고 있다.

일본식 성장정책의 실패, 中企 역할 변화 필요
우리와 가장 유사한 형태는 일본이다. 수출로 성장한 일본은 ‘국제 경쟁력 강화’를 중소기업 정책의 핵심으로 삼았다. 전후 부흥기에는 경공업에 종사하는 중소기업이 외화 획득을 주로 담당함에 따라 수출 역군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후 주력 수출품이 대기업 제품으로 전환되자 대기업의 부품 공급자로서 중소기업의 역할을 부각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생산성, 임금 등의 격차가 커지는 ‘이중구조’가 나타났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 정책도 ‘이중구조’를 시정하면서 생산과 설비 합리화를 통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중심으로 삼았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2000년대 이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중구조’라는 틀이 중소기업 정책의 폭을 좁히는 제약이 되고 있다는 반성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격차 시정을 통한 보호 육성이라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특정한 산업과 개별 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전환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다가, 버블 경제를 거치면서 다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중소기업 폐업률이 높아지고 지역경제 붕괴 등이 이슈화되면서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 등이 정책의 중심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버블 경제 이후 나타난 여러 사회 · 경제 문제들의 해법으로서 지역균형 발전과 공정한 시장환경 정비의 주체가 되는 중소기업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비추어볼 때 우리나라 중소기업 정책의 중심은 무엇이었는지 한번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거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 전략에서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을 위한 보조자의 역할로 중소기업을 바라본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세계화와 개방이 가속화되고 중국이라는 거대 경쟁자가 생겨남에 따라 중소기업의 역할에도 변화가 필요해졌다. 하지만 어떤 새로운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합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보호와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새 경제 방향의 중심 주체가 되기 위해 중소기업이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할지 중심 철학을 세워야 정책에도 힘이 붙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조회수 : 2,091기사작성일 : 20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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