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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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은밀한 고민
결단의 고통, 처방전은 천리안인가? 점집인가?
의사결정

 

선택은 극도로 정제된 포기 행위이다.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를 모두 잃거나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을 내릴 때 대범해 보이는 사장도 사실은 속으로 졸아드는 경우가 많다. 미래에 대한 의사결정이라면 더욱 그렇다. 뭇사람들은 당장 눈앞을 보고 걱정하지만, 리더는 먼 곳을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리더의 고민은 앞을 먼저 본 대가요, 괜찮은 의사결정은 고민의 소산이며, 현명한 의사결정은 피눈물 나는 심사숙고의 결과다.

의사 결정의 고통
왜 점집을 찾나
자동차부품 기업을 운영하는 박 사장은 얼마 전 피 말리는 경험을 했다. 업계의 활황으로 중요한 사업 프레젠테이션 기회가 찾아왔다. 이 분야 베테랑 직원 A에게 업무를 지시했고,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되는 듯했다. 문제는 당일 오후 A가 이동 중에 사고를 당해 PT를 진행할 수 없게 된 것. 하는 수 없이 함께 준비한 직원 B와 C 중 한 명이 대신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 실력이 조금 낫다고 생각한 B 대신 그는 C를 선택했다. B는 사장의 눈을 슬슬 피하는 것처럼 보인 데 반해, C는 기회가 주어지면 뭔가 보여주겠다는 이글거리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박 사장은 그 직감을 믿기로 했고, 그날 PT는 개박살이 났다.

누가 대신 내려줘!
드라마였으면 어땠을까? 어수룩해 보였던 C가 실은 숨은 실력자였다는 반전 스토리에, 보잘것없는 C를 믿고 결단을 내린 박 사장의 직감에 감탄하는 해피엔딩 스토리가 아니었을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연달은 C의 실수와 무지로 결국 PT 도중에 B로 교체했는데, C는 물론이거니와 A를 능가하게 훌륭한 PT실력을 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앞서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기엔 역부족이었지만. 박 사장은 “결국 PT를 망친 사람은 C가 아니라 C를 선택한 나였다”고 고백하며 “완전히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발등을 찍은 심정”이라고.
무수한 의사결정을 하는 CEO는 몸무게만큼이나 마음이 무겁다. 특히 피를 말리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사장이 돼 보지 않은 사람들은 경영자들이 얼마나 예민한 상태에 있는지 잘 모른다”고 말하는 바이오 IT기업 장 사장은 특히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과 같다”고 말한다. 결정을 했다는 것은 선택을 했다는 것이고, 선택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 특히 사업을 전환하거나 업종을 추가할 때, 주요 거래처를 바꾸거나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 나설 때 내려야 하는 의사결정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장들 중에 용하다는 점집 한번 찾아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사 본인은 안 갔어도 아내가 찾는 것을 만류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바이오 기계기업 조 사장은 정작 마음속에 결정을 내린 후 점집을 찾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는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서다. 자기확신은 CEO의 덕목이고 필수요건인데, 미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확신을 얻고 싶은 심정이라고. 조 사장은 “직장인으로 있을 때 평소 신앙심이 깊고 합리적인 것으로 유명한 사장님이 대단위 부지를 매입하고 사옥이전을 위한 이삿날을 잡는 데 무속인을 이용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런 비합리적인 방법을 쓰나 싶어 우습기도 했는데, 사업을 시작한 후 지금 나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신(神)빨 제대로 받은 무당이 있으면 큰 결정이 있을 때 돌다리도 두드려볼 겸 찾아가는 것은 물론,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결정이 힘들 때 그의 안가(安家)는 무당집이었다. 지난번 사옥을 옮길 땐 공간 배치도뿐 아니라 직원의 좌석배치도까지 받았다. 직원의 사주팔자와 공간의 운까지 함께 고려한 배치였다고. 그는 이제 취미 겸 업무 겸 유명하다는 선생에게 고가의 풍수지리 과외도 받는다.

의사 결정의 기준
어리석은 결정은 누구의 탓인가
고급 주방용 기기를 생산하는 문 대표는 10년 전 생산기지를 모색하러 중국을 찾았다. 당시만 해도 인건비가 싸고 한국기업 유치를 환영하는 중국 정부의 우대정책으로 좋은 조건에 공장을 매입하고 정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막바지 계약만 남긴 상황. 상하이 길거리에서 ‘키스를 하는 남녀’를 발견한 그는 갑자기 생산기지를 베트남으로 틀었다. 베트남은 중국에 비해 기반시설이 미약했지만, 중국 시민의 개방화 속도를 봐서는 인건비가 급속히 상승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그의 판단대로 중국에 진출한 동종업계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로 중국 철수를 모색하고 있다. 그는 당시의 결정을 ‘신의 한 수’였다고 평가한다.

직관력은 안드로메다에서 번뜩 날아오는 감?
이겨야 생존이 가능한 전쟁터에서 CEO의 결정은 회사가 일취월장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기업인들을 가리켜 ‘타짜’, ‘승부사’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특히 자신의 감, 직관력으로 재미를 본 기업인들은 나름대로의 감을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조선업을 하는 강 대표는 폐선박을 싸게 사서 되파는 형태로 큰 재미를 봤다. 당시 시장 상황을 직감적으로 파악하고 던진 결과였다. 하지만 두 번째로 고철 폐선박을 사서 되파는 과정에서는 큰 손해를 보았다. 강 대표는 “첫 번째 승리에 취해 정확히 판단하지 않고 더 많은 양을 매입했다가 크게 손해를 봤다”며, 당시의 사건으로 큰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처리하는 과정에서 회사가 휘청하기도 했지만, 실패하더라도 절대로 달아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 몇 번의 의사결정으로 성공했을 때 사장이 빠지기 쉬운 자만과 욕심은 의사결정의 가장 큰 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는 것.
그렇다면 수십 년간 무수한 결정을 하며 경영 노하우가 쌓인 고수 사장들의 의사결정 노하우는 뭘까? 30년간 성공적으로 사업을 영위한 고수 CEO의 말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사장의 직관력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이 직관력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객관적인 데이터와 숱한 경험의 산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안드로메다에서 번뜩 날아오는 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외로 사업을 하는 사장들은 크든 작든 사기를 당한 경험이 있다. 대부분 객관적인 데이터를 등한시했거나, 사람을 믿고 확인하는 작업을 놓쳤거나, 어디 하나에서 구멍이 난 경우다. 객관적인 데이터와 서류를 분석하고 참고한 뒤 그 동안의 경험치에서 얻은 교집합에서 뛰어난 직관력이 발생하고, 이를 통해 성공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70%는 크게 실패하지 않는다. 나머지 30%는 하늘의 뜻, 운이다. 인생사에서 100%가 어디있겠나?”
승부를 걸어야 할 시점과 포기해야 할 시점을 아는 것, 포기를 해도 그냥 하지 않고 의미 있는 포기를 하는 것이 의사결정의 기준이라고 조언한다.

의사 결정의 타이밍
시간이 지나면 판이 보일까
식품업을 하는 심 사장은 남자 못지않은 화통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업계에서 대모로 통한다. 무엇보다 그의 큰 장점은 의사결정이 빠르다는 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장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꾸물거리는 시간만큼 직원들은 괴롭다”는 것. “일을 진행하려면 빨리 판단해 결정을 내려주고, 혹여 잘못된 결정이었으면 바로잡고 다시 결정하는 게 장고 끝에 악수를 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고수는 결정을 빨리 내린다
기업경영에서 흔히 등장하는 말이 ‘선택’과 ‘집중’이다. 말이 좋아 선택과 집중이지, 선택한 것이 잘못되었을 때는 재기 불능인 경우가 허다하다. 상황이 이럴진대 빠른 결정이 무조건 해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CEO의 빠른 의사결정은 직원들이 진취적으로 일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의사결정을 요구하면 중언부언, 갈팡질팡, 게다가 글자 14포인트, 행간 150 등을 요구하며 보고서류를 받아놓고 몇 주 동안 서랍 속에서 묻어놓는다면? 직원들의 사기도 서랍 속에 묻혀버린다. 물론 빠른 결정만이 해답은 아니다. 고통스럽고 힘든 결정을 위해 칩거를 하거나 고독한 산행을 하는 경우도 많다.
“거래처 사람과 미팅이 있어 나갔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는 통에 비를 쫄딱 맞고 들어왔다. 중요한 제안이 있던 날인지라 어찌 결정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 보니 글쎄, 새벽 4시가 됐다. 젖은 옷을 그대로 입은 채였다. 잠시 생각하고 비에 젖은 옷을 갈아입어야지 생각했는데, 시간이 그만큼 가고 있다는 것도 몰랐던 거다.”
초보 사장일 때 무당, 굿, 점, 부적, 사주, 풍수지리 등에 매달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판이 보이더라는 김 사장.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이런 말을 했다.
“확신을 가져라. 아니 확신에 차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그러면 차츰 진짜 확신이 생기게 된다.”
나는 왜 남들처럼 대담하게 결정을 못하는 걸까, 왜 나는 허구한 날 결정하고 나면 마음이 졸아드는 걸까 싶은 이 세상의 사장님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최윤경 객원기자​

 

조회수 : 2,671기사작성일 : 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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