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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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은밀한 고민
수지맞으려다 바람맞는 돈, 돈, 돈

 

사장에게 돈이란 무엇일까? 제대로 사업을 한다는 사장 치고 돈 때문에 사업을 한다는 사람은 없다. 돈을 좇으면 안 된다고. 그저 제대로 사업을 하다보면 돈이란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라고. 그들은 가식을 떠는 게 아니다. 진심이다. 하지만 오늘도 사장은 돈에 울고 돈에 웃는다. 돈에 대해서 때로는 엄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화통하기도 하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카멜레온 같다.

급전마련
급전 앞에 사장의 심장은 쪼그라든다
약속시간보다 세 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 사장의 핸드폰은 꺼져 있고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끝인가? 수많은 고비를 넘겨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정부며 금융권이며 쑤시고 다녔지만 막힌 돈줄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던 그때, 모임에서 알게 된 동료 이 사장이 눈물겹게도 선뜻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하늘이 배신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불통이라니. 오늘까지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회사가 넘어갈 판. 때마침 그랜저 한 대가 옆에 주차를 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일단 5,000만 원만 빌리자’는 생각에 차 문을 벌컥 열었다.

판돈의 끝은 얼마일까
지금은 사업을 정리한 강 사장이 10년 전에 경험한 일화다. 얼마나 급했으면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돈을 빌릴 생각을 했을까. “참 어이가 없지만, 급하니까 이것저것 따져볼 여력이 없더라”는 것. 당시만 해도 그랜저는 최상급 고급차에 속했고, 이런 차를 타는 사람이라면 돈 꽤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사정을 잘만 얘기하면 돈을 빌릴 수 있겠다는 확신까지 들었고, 그래서 이건 누가 봐도 되는 사업이고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고 5,000만 원만 융통해달라”고 했다. 물론 이자는 따따블로 쳐준다는 말과 함께. 다행히 운전석의 사장은 “별 미친 놈 다 있네” 하고 따귀를 때리는 대신, 자신도 사업을 하는데 회사에 전화를 걸어 오늘 수금이 제때 들어왔는지 체크하겠다는 매너를 발휘했다. 물론 돈을 빌릴 수는 없었지만, 외면하지 않고 들어준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강 사장은 제정신이 들고서야 깨달았다.
“사업이란 그런 겁니다. 돈 앞엔 예의도 상식도 없어요. 일단 급한 불은 끄고 봐야 한다는 생존본능만 작용 할 뿐이죠. 나중에 알고 보니, 돈을 빌려주기로 했던 이 사장도 투자받기로 했던 건이 어그러지면서 전화기를 꺼놓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소기업 사장에게 통장에 돈 한푼 없는 경우는 아주 흔한 일이다. 거래처에서 입금하기로 한 돈은 안 들어오지, 있던 돈은 구매하느라 다 써버렸지, 직원 월급일은 다가오지, 직장에 다닐 때는 생각하지도 못한 금액의 빚을 지고 만다. 빚을 지다지다 못해 점점 더 곤경에 빠져 심지어는 인생을 포기하는 불상사까지 생기지만, 사업을 중단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사업이 내리막을 걸으니 걷잡을 수 없더라. 손 내밀만 한 사람은 죄다 내밀었고, 온 사방이 막혔는데 때마침 거래처에서 수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쁨도 잠시, 수금 담당을 했던 영업직원이 그 돈을 가지고 잠적해 버렸다. 결국 회사가 망했다. 부도 당시에는 도망친 직원을 찾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원망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하늘에 감사한다. 돌이켜보니 어차피 회사가 회생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저 살려보겠다고 아등바등 할수록 빚은 늘어나고 주변인들에게 폐를 끼쳤을 텐데, 그 직원 덕에 그쯤에서 멈출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장 대표. 장 대표는 과거 1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소기업 사장이었다.
『3년 후에도 살아남는 사장의 조건』의 저자 박형진 대표는 “사업은 고스톱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눈앞에 위기가 닥치고 이대로 가다가는 너무 큰 것을 잃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 판이 끝날 때까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켜야 하는 갑갑함.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도 없다는 것. 이 고비만 넘기면, 조금만 더 융통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오늘도 사장은 신발 끈을 묶는다.

투자금의 두 얼굴
수지맞으려다 바람맞는다?
박 사장은 빅데이터와 함께 최근 가장 핫한 신기술을 개발한 IT 벤처기업 창업자다. 회사의 보유기술을 높이 평가해 투자자들의 접촉이 끊이질 않는다. 투자자금을 잘못 받으면 투자기관이 단물만 먹고 튀거나 자칫 회사까지 넘어갈 수 있다는 주위의 조언도 익히 들었다. 다만 당장 쓸 돈이 없고, 옥석을 가릴 안목이 없다는 점이 고민일 뿐.

주가에 울고 웃고
기업은 지속가능성과 성장성이라는 양 날개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돈이 따른다. 창업 초기기업 치고 돈 있는 기업은 없다. 사장의 자본금만으로 시작하는 기업도 극히 적고 연구개발비, 생산비, 마케팅비 등등 끝없이 자금이 필요하다. 투자유치는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좋은 기술을 한눈에 알아보고 헐값에 좌지우지하려는 투자자와 투자기관의 먹잇감이 되곤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투자금은 두 얼굴을 가졌다. 받으면 좋은데 받고 나면 족쇄가 된다. 코스닥에 상장한 이후부터 주가 때문에 마음이 편한 적이 없다는 김 대표.
“코스닥에 상장할 때만 해도 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조달받아 회사가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가 부담보다 훨씬 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빨리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바심, 불필요한 심리적인 부담, 외부의 간섭과 주주들의 압박 때문에 어떤 때는 회사 운영을 제대로 하기가 힘들다. 소소한 회사 정관 하나 쉽게 바꿀 수 없고, 심지어 인사권에도 관여하려 한다. 내 돈 갖고 내 맘대로 경영하겠다며 매출 5,000억 원이 넘는 규모에도 상장하지 않는 주변의 문 사장이 부럽다. 왜 남의 돈을 받아 속을 끓이느냐며, 속 편하게 작고 실속 있게 운영하겠다는 김 사장도 부럽다.”
사장들은 이렇게 투자받기도 하지만, 투자하기도 한다. 새로운 성장모델을 찾아 개인적인 재테크 삼아 투자하는 것이다. 바이오 기업을 운영하는 오 사장은 최근에 사기를 당했다. 투자할 만한 좋은 곳이 있다는 말에 혹해 벌어진 사단이다. 평소 철저하고 허세가 없기로 유명한 그가 사기를 당했다는 소식에 지인들은 의외라는 반응이다. “사장 치고 사기 한번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든 사기는 쉽게 가려고 하는 인간의 내면을 건드리는 작업이더라. 이지(easy) 고(go)하려면 이지(easy) 아웃(out) 되더라.”

사장의 돈
회사가 부자면 사장도 부자인가
올해 환갑이 된 최 대표. 사업한 지 올해로 30년째다. 젊어서 밑바닥부터 시작해 치열하게 달려온 자신의 인생이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허무하기도 하다. 회사를 키우는 데에만 돈을 쏟아부었지, 집으로 돈을 가져오는 일이나 재테크에는 도통 신경 쓰지 않았다. 회사가 부자가 되면 사장은 자연스럽게 부자가 된다는 생각으로 묵묵히 사업에만 전념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업으로 돈을 번 것보다 공장부지 매입과 아파트 투기로 번 돈이 더 많지 않던가. 사장 월급이나 주주 배당수익도 높게 잡아 만일을 대비해 다들 단단히 한몫 챙겨두었다. 그런데 최 대표는 비자금 하나 없고 재테크 하나 안 했다. 주변 사장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거짓말 말라”며 하나같이 비웃는다. 곧 있을 자식들 혼사와 노후가 걱정이다.

사장의 노후는 누가 책임지지?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다. 5,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한 대표는 “회사의 이윤이 곧 회사 오너의 이윤이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정말 순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둘은 동일한 개념이 아닐뿐더러, 심지어 서로 상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오너가 100% 지분을 가진 회사라도, 회사 돈은 회사 돈이다. 생산원가와 관리비, 직원들 월급까지 다 제하고 남는 순이익이 사장 돈이 아니다. 회사 돈을 사장 개인 돈으로 쓰고 싶다면 차입금이란 명목으로 다시 갚아야 하고, 배당의 개념으로 사장에게 지급할 수 있지만 배당세라는 세금을 내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회사가 잘되는 게 결국 사장도 잘되는 거라는 말.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회사 돈이 사장 소유가 아니라는 괴리 때문에 사장은 기로에 서기도 하고 흔들리기까지 한다.
“사장도 사람이다. 회사가 잘되는 ‘간접적인’ 성과가 아니라, 보다 ‘직접적인’ 성과를 원한다. 바로 사장 돈이다. 고용창출을 한다는 뿌듯함, 큰 기업을 이뤘다는 성취감. 다 좋다. 까놓고 얘기해서 자기 회사지만 자기 맘대로 돈을 못 쓰는 현실에 열받을 때도 있고, 무엇 때문에 내 인생을 모두 바쳤는가 싶어 부질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사업인데, 그러다가 쫄딱 망해 거리에라도 나앉으면 내 가족은? 내 노후는?”
그래서 사장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을 늘려주는 사람이 사장 입장에선 매우 고마운 존재다. 임원급에 올라가는 덕목은 어쩌면 여기서 나올지도 모른다. 재벌회사 사장의 ‘비자금 관리’가 최측근에서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팔아야 돈이 되는 금송아지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수중의 돈이 더 유용한 법.
사장도 비자금, 재테크, 노후자금에 자유롭지 않다. 처음에는 내 힘으로 벌지만 나중에는 돈이 돈을 벌어준다고 한다. 그래서 사장도 주판알을 튕긴다.

최윤경 객원기자​

 

조회수 : 1,526기사작성일 : 201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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