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CEO의 은밀한 고민
위기 앞에 왜 작아지는가
혁신

 

‘위기’와 ‘기회’는 샴쌍둥이인가? 흔히 위기는 기회라고 강조하지만, 위기가 기회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전화위복이 되기보단 무엇이 위기인지 모른 채 좌초되기도, 손쓸 새 없이 휩쓸려가기도 한다. 편안하게 지낼 때도 위기를 항상 생각하며 대비하는 거안사위(居安思危)한 자만이 환골탈태의 신호를 알아차린다.

‘위기’라는 늑대
사장은 양치기 소년인가
IT기반 소셜커머스 업체를 운영 중인 오 대표는 오늘 밤에도 거실을 서성인다. 좀처럼 잠을 청하기 힘들다. 언제부터였을까, 입술이 마르고 가슴이 울렁거리는 CEO의 고질병이 생긴 것이. 맛난 걸 먹어도 맛있는지 모르겠고 아무리 피곤해도 잠들기 힘들다. 회사를 창업하고 성장할 때는 발등의 불을 끄느라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고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들던 그였다. 그런데 회사가 성장한 지금, 오히려 잠들기 힘들다. 상반기보다 다소 떨어진 영업이익 숫자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며칠 전 모 대기업이 시장진출을 검토한다는 지인의 첩보가 귓가에 맴맴 돈다.

적당한 비관주의는 생존율을 높인다
재미있는 연구가 발표됐다. 비관주의자는 낙관주의자에 비해 생존율과 건강 가능성이 10% 이상 높다는 연구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삶을 강조하는 그간의 정설과는 대치되는 연구결과라 흥미롭다. 에를랑겐-뉘른베르크 대학교의 프리데르 랑 심리학 및 노인학 교수에 따르면, 낙관주의자는 사물과 현상의 긍정적인 면을 먼저 보기 때문에 문제점을 간과하기 쉬운 반면, 적당한 비관주의자는 사물과 현상의 부정적인 면을 먼저 인식해서 이에 대한 대비를 하기 때문에 생존율이 높다고 했다. 자신의 기대를 낮추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상황을 먼저 파악해 위기를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비관주의자는 낙관주의자에 비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낙관주의자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호의적이라면, 비관주의자는 자신이 관심 있는 몇 가지에만 호의적인 덕에 그만큼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고 전문가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경영에 대입해보자. CEO들이 왜 입만 열면 ‘위기’라는 말을 달고 사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되지 않는가? 신년만 되면 대기업 회장님들의 ‘올해 최대의 위기를 맞아’로 시작하는 신년사의 단골 문구는 하도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않을 정도다. 대한민국 1등 기업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조차 틈만 나면 현재에 자만해서는 안 되며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중소기업 CEO들도 예외는 아니다. 하다못해 구멍가게 사장님도 위기를 입에 달고 산다. 매출이 부진하면 돈이 없어서 위기고, 마진율이 떨어지면 남는 게 없어서 위기고, 가까운 데 비슷한 가게가 생기면 경쟁업체가 출몰해서 위기고, 갑자기 장사가 잘 되면 감당을 못해 위기다. 직원 입장에서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위기 레퍼토리가 지긋지긋하고 때로는 자장가로까지 들린다.
사장 입장은 어떨까? 어떤 상황이든 관심을 갖고 냉철하게 상황을 직시하다 보면 문제점이 눈에 띄게 마련이고, ‘만약’이라는 가정법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유일하게 줄여줄 수 있는 보험이다.
건축 자재를 생산하는 한 대표는 “40년간 사업을 하면서 깨달은 사업 요령이라면, ‘준비를 하면 근심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상황이 닥치면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먼저 보는 데 익숙해졌어요. 혹여 문제를 일으키거나 발목을 잡을 만한 것은 미연에 막고 보자는 거죠. 너도나도 발전했던 경제성장기에는 약간의 시행착오를 하면서도 큰 탈 없이 성장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달라요. 한번 삐끗하면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냉정하고 치사하다 할 정도로 쫀쫀하게 살피는 경우가 더 많아졌어요”라고 말한다.
1등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위기의식을 논하는 것은 어찌 보면 성공에 도취해 빠질 수 있는 해이함과 자만심을 경계한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장은 오늘도 ‘위기’가 왔다고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늑대의 출현
‘언제, 어떻게’ 변해야 하나
“연구개발과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격려도 할 겸 휴일에 회사 기숙사를 들렀는데, 정리정돈과 청소상태가 완전 엉망이었어요. 저희 회사가 IT기반 전자회사이다 보니 다른 기업에 비해 자율성을 강조하는 편입니다. 근무시간도 유연하고 사무환경도 최근 인테리어를 도입해 나름 자랑할 만합니다. 일하고 싶은 기업을 만들자는 게 평소 지론이니까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제가 강조하는 게 있어요. 회사의 가장 후미진 곳이 가장 깨끗해야 한다는 거죠. 예를 들면 화장실 같은 곳이요. 기숙사가 쉬고 자는 곳인데 좀 더럽고 엉망인들 어떠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작은 일을 할 줄 모르면 큰일도 할 줄 모릅니다.” 김 대표는 ‘변할 때가 왔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미래를 내다보는 직원, 어디 없소?
혁신은 사전적인 의미로 ‘이제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는 것’,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아주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관습, 조직, 방법 등을 완전히 바꿔 새롭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주로 기업경영에 많이 쓰인다. 단순한 생산기술의 변화가 아닌 새로운 차원의 신기술과 경영기법을 도입할 때 쓰인다. 문제는 위기가 코앞에 왔을 때는 혁신을 작동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낯선 것은 언제나 반발과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고, 자칫 때를 놓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빠지기 쉽다.
신제품이 성공을 거두어 매출이 늘어나고 이익이 발생하면 직원들은 축배를 들지만, CEO는 차기제품을 고민한다. 샴페인 잔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음을 고민하는 고달픔은 CEO의 숙명일지 모른다.
실제로 회사가 어느 정도 돌아가면 중소기업의 사장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살까이다. 지금 잘되고 있는 제품이 영원할 수는 없다. 시장상황이 급박하게 변하는데, 하나의 제품군을 가지고 사업을 하다보면 언제, 어떻게 퇴출될지 모른다. 경쟁사의 제품 개발에 따른 가격 저하나 중국산 동종 제품의 시장진입으로 인해 회사가 급전직하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산업별 시장변동과 경기흐름은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승승장구하던 중소기업이 빠른 속도로 무너지거나 매각되는 경우도 적잖이 보았다. 최근엔 신기술 선점효과도 줄어 웬만한 기술은 1∼2년 안에 경쟁사나 후발주자가 따라잡기 때문에, 차원이 다른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해 중소기업의 사장들은 불면의 밤을 보내고 직원들을 다독인다.
35년 전 한 대기업과의 막역한 거래관계로 앉아서 10여 년간 돈을 긁어모았던 철강업체 성 대표. 대기업과의 거래 단절로 한 방에 회사를 날리고, 10년의 낭인생활 후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서 철강 및 전자부품 회사를 일으켰다. 성 대표는 고령에 매출 500억 원 기업의 최고경영자지만, 여전히 야전침대를 곁에 끼고 일한다. 편할 때 앞을 보지 못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상기하기 위해서다. 거래처 다원화는 물론이고 지속적인 연구개발에 수시로 시장 동정을 살피고, 직원 근무태도를 체크하는 등 노령에도 변화 타이밍을 읽어내려고 여념이 없다. 자신 말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직원 한 명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성 대표의 한탄이 대한민국 중소기업 사장들의 한탄처럼 들린다.

혁신의 괴로움
어라, 사장도 월요병을 앓아
“월례조회에서 혁신을 얘기하면 ‘또, 저 소리’ 하는 싫은 표정이 역력하죠. 저 역시 직원으로 근무했을 때 그랬으니까요. 속으론 똥줄이 타지만, 역효과가 날까봐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자칫 동요해서 핵심 인재들이 빠져나가고 현장이 어수선해질까봐 마음 한편으로는 전전긍긍합니다.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면서 동시에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냉혹한 사실들을 주지시키는 일이 참 쉽지 않습니다.” 의료기기를 생산하는 최 대표의 넋두리는 끝이 없다.

계속 혁신하라, 여전히 우직하게
최 대표는 요즘 월요병을 앓는다. 금요일에는 훨훨 날고 토요일에는 여유를 부리다 일요일 오후 3시부터는 마음속에 먹구름이 낀다. 오늘이 토요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백 번 하며, 밤 9시 개그 프로를 웃는지 우는지 보다가 밤 11시에 마지못해 눈을 감는 월요병이 직원에게만 있는 병인 줄 알았다.
사실 그는 적절한 혁신 타이밍을 놓쳤다. “위기라는 것이 참 막연해요. 다가올 때는 무엇이 위기인지, 어떤 게 잘못된 건지 구별할 수 없어요. 막연하죠. 그저 지나고 나면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것이 위기더군요. 기존 사업을 유지하며 적당할 때 업종 추가를 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어요. 너무 늦어도 안 되지만 시장이 만개하기 전에 너무 일찍 가도 죽기는 매한가지라 주춤하던 사이에 늦어진 거죠. 기존 업종을 정리하고 업종전환을 추진하고 있는데, 인력이 문제입니다. 새 업종에 필요 없는 인력까지 다 끌고 갈 수는 없으니까요. 업종을 완전히 정리할 입장에 놓이다보니 본의 아니게 피를 묻혀야 해요.” 피를 묻힌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다.
안개 낀 망망대해를 항해하다 눈앞의 암초를 만나서야 방향키를 돌리는 것은 좌초되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의미로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한 스티브 잡스의 명연설을 이렇게 되새기는지 모르겠다.
“Stay Innovative, Stay Foolish(계속 혁신하라, 여전히 우직하게)!”

최윤경 객원기자​

조회수 : 2,888기사작성일 : 2015-09-30
기사 만족도 평가
별 개수를 클릭하여 기사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이 기사의 별점
평균 5점 / 2
  • 매우 불만족
  • 불만족
  • 보통
  • 만족
  • 매우 만족
별 5개 / 매우 만족

의견글 작성
  • (삭제 시 필요)
* 불건전한 내용이나 기사와 관련 없는 의견은 관리자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메뉴 열기
맨위로